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3화 (3/140)

3화. 레벨은 허울뿐이지.

본좌는 천마다 3화.

“그러니까 뭘 하겠다고?”

“방송. 형을 스트리머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야. 아, 물론 촬영은 내가 할게. 캡슐 기능에는 생방송 기능이 있거든. 어때?”

“방송? 스트리머? 그게 다 무엇이냐?”

천마에게는 너무 어려운 용어들이었다.

천강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백성들한테 본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지. 형이 평소에 하는 행동들을 생방송으로 내보낼 거야. 녹화도 한 다음에 동영상 사이트에 올릴 거고.”

“그걸 하면 뭐가 좋은데?”

“뭐가 좋긴. 잘만 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천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우야. 이 형이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건······.”

“그럼, 이 게임도 오늘로 마지막이야.”

“뭐, 뭣이?”

“돈이 있어야 게임을 하지. 돈 없이 하는 건 강도나 하는 짓이라고. 어······ 그래. 사파! 사파 알지? 나도 무협지는 봤어. 사파 놈들이 꼭 그런 더러운 짓을 하잖아. 돈 안 내고 이것저것 다 강탈하는 거.”

“지, 지금 본좌가 사파라는 것이냐! 그 후안무치들과 본좌를 비교하다니. 아무리 네가 본좌의 아우라도 그런 발언은 용서할 수 없다!”

천강의 예상대로 천마는 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흥분했다.

“그러니까 그런 행동을 해 서는 안 된다는 거지. 지금 세상은 말이야. 무예나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 무조건 돈이야. 명예? 사랑? 권력? 전부 다 돈으로 살 수 있지. 이 세상은 돈이 최고야.”

“허어······.”

천마는 자신의 아우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이 세상의 진리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이 안에서만 천마도 운기조식을 할 수 있고 무공도 쓸 수 있다.

이걸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형은 지금까지 백수로 놀고먹었잖아. 그것 때문에 엄마랑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지금이라도 큰 아들 노릇은 해야지. 강호인들은 부모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야?”

“크, 크흠. 보, 본좌는 그리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됐네. 오늘부터 방송 시작하는 거야. 알겠지?”

“뭐, 그게 무슨 대수라고. 알아서 하거라. 나는 그냥 나대로 무공을 되찾을 테니. 그걸 방해하지 않겠다면야 협조해 주겠다.”

“좋아.”

천강은 신이 난 듯 휘파람을 불며 얼른 방송을 켰다. 사실, 천강은 몇 달 전부터 스트리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템도, 특출나게 두드러진 것도 없어 시청자가 많지 않았다.

끽해 봐야 20명 정도?

하지만 천강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거면 되겠다.

모 아니면 도겠지만, 그래도 시도할 가치는 있지 않겠는가?

저 말투,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정말 천마라고 굳게 믿는 정신병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말이다.

“안녕하십니······.”

방송을 키자마자 인사 멘트를 던지던 천강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입을 다 물었다.

어차피 시청자는 아직 0명이지만, 녹화를 위해 인사 멘트를 치려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본인을 천마라고 일컫는 극한의 컨셉충.

그 컨셉에 충실한 사람을 옆에서 촬영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다. 즉, 천강의 목소리는 아무짝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편집만 잘하면 되겠지.’

천마가 뭘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위해 슬쩍 지도만 해 주면 될 터.

‘일단 부딪혀 보자.’

* * *

“자기소개? 왜 그런 걸 해야 하지?”

“그, 그거야 당연히 시청자 분들이 아셔야 하니까요. 그쪽이 누구인지를.”

“본좌는 천마다. 그 이상으로 필요한가? 본좌의 이름에 하늘이 떨고 땅이 무너졌다. 그 이름 하나로 천하를 움켜쥐었으니, 무슨 소개가 더 필요하단 말이냐?”

천강은 천마의 소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걸 보는 시청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극한의 컨셉충 또라이가 방송을 시작했구나! 라고.

천강은 이걸 모두 녹화해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뉴튜브에 올릴 생각이었다.

천강도 방송을 하고 있던 터라 천강 채널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걸 천마 채널로 이름을 바꾸고 기존에 있던 영상을 모두 삭제할 예정이다.

그리고 형의 영상을 올려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아직 구독자 수는 500명에 불과해 수익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천강은 괜찮았다.

모두가 처음부터는 잘 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천천히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말의앞뒤가다름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음? 예전 BJ 어디갔누?

방송을 키자마자 천강의 방송을 가끔씩 챙겨보던 시청자 하나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천강은 빠르게 인사를 올렸다.

“이제 BJ 천강은 없습니다.”

-그럼 이제 방송 안 함?

“아니요. 대신, 다른 걸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한번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ㅇㅇㅋㅋ

[말의앞뒤가다름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아니. 이런 시ㅂ······.”

천강은 속으로 불경을 외우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렸다. 괜찮다. 시청자들이야 원래 변덕이 심하지 않던가.

지금 시청자가 단 1명이 없다고 해도 수만 명이 본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하자.

“흠흠. 자. 천마님. 이제 늑대를 한번 잡아 주시겠어요?”

“이 늑대들을 왜 자꾸 잡으라는 것이냐?”

“한번 해 주세요.”

방송을 위해 천강은 일부러 존댓말을 사용했다.

“쯧. 귀찮게 하는구나. 그놈의 촬영인가 뭔가 때문에 본좌의 수련을 방해하지 말거라. 본좌는 어서 힘을 되찾아야 하니까.”

천강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왜 천마는 이곳에 온 것일까?

저것이 정신병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저 상상의 나래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천마님은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되셨나요?”

“본좌도 사실 잘 모르겠다.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마지막 기억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걸 말씀해 주세요.”

갑자기 존대를 하는 천강이 부자연스러웠는지 천마는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자 천강이 눈치껏 알아서 하라는 손짓을 했다.

“본좌의 마지막 기억이라······. 천하를 일통시키고 저 명나라 황제까지 무릎 꿇린 그날. 본좌는 깨달았다. 본좌가 영원히 살아야 천하가 평화롭다는 것을.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의식을 벌였다.

“의식이요?”

“그래. 대마불생(代魔不生). 강호에서 오랫동안 금지시켰던 의식이지. 이 의식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불로장생의 의식이랄까?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 때문에 아무도 그걸 하지 않았어.”

생각보다 디테일한 형의 설명에 천강은 내심 감탄했다. 이거면 컨셉충 영상감이 꽤 나올 것 같았다.

혹시 이 형은 일부러 컨셉을 잡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그 부작용이라는 게 뭐죠?”

“그 의식을 하면 대부분 죽거나, 주화입마에 빠지거든.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닌 게 되는 거지. 하지만 본좌는 강인하기 때문에 그 의식을 버텨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지. 그런데 막상 의식이 거행되고 나서 본좌는 의식을 잃었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다.”

천강은 보았다.

천마의 얼굴에 지나가는 씁쓸함을. 그 순간만큼은 천마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천강도 감성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어요?”

“물론이지. 하지만 방법이 없구나. 이곳 말고는 바깥세상에서 무공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 의식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 모두가 강호와 무공에 대해서는 상상 속 허구라고 믿고 있으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급다운 되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천마 컨셉충까지는 좋았으나, 이렇게 분위기를 다운시키면 지금까지 좋았던 영상감이 날아가고 만다.

천강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자. 다시 돌아와서. 지금 천마님의 레벨이 어떻게 되시죠?”

“응? 알면서 왜 물어 보느냐? 본좌는 아직 레벨이 1이다.”

그로기 상태로 만든 늑대를 아직 죽이지 않아서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늑대는 벌써 도망간지 오래.

이번에는 다른 늑대가 천마에게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라도 시청자 분들이 오해하실 수 있으니, 천마님의 능력치를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는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의 정보를 볼 수가 있다.

천강은 천마의 정보창을 띄었다.

“자. 보시는 바와 같이 천마님의 레벨은 1입니다. 하지만 늑대의 레벨은 15죠. 과연 레벨 1로도 늑대를 사냥할 수 있을까요?”

늑대의 레벨이 15라고?

“잠깐만. 그 말은 지금 저 늑대가 본좌보다 레벨이 높다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천마님도 저처럼 몬스터의 정보를 보실 수 있어요.”

천강이 알려 준 대로 따라하자 천마는 늑대의 기본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레벨 15짜리 늑대.

천마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그래. 짐승 따위가 본좌보다 레벨이 높단 말이지······. 뭐랄까 이 기분. 이것이 바로 약자의 감정인가? 하지만 레벨이란 그저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뼛속 깊이 깨닫게 해 주마.”

천마가 늑대들을 도발하며 손가락을 까다였다.

천강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 더 극한의 컨셉충을 보여 달라고!’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크르르-.”

“크아앙-!!”

늑대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친구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어······ 잠깐만. 저건 좀 위험한데.”

천강은 순간 생방송이라는 걸 잊었다.

3마리의 늑대.

아까 천마가 보여 준 몸놀림은 분명 대단하긴 했으나, 3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아무리 피지컬로 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레벨 1이 레벨 15의 늑대들을 단신으로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이건 내가 나서야겠는데.’

계산 실수였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들이 아닌가.

저렇게 동료를 부르는 것도 늑대의 특징이다. 그걸 잊었던 게 첫 번째 실수였고 천마가 아직 현실 감각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놓쳤다는 게 두 번째 실수였다.

천강은 등 뒤에 있는 대검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지금 천강의 레벨로는 저 늑대들이 떼거지로 덤빈다고 해서 무서울 건 없었다.

‘젠장. 영상 좋았는데, 편집하고 다시 찍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뽑고 앞으로 나가던 중.

천강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콰직-! 뻐억-!

“깨갱!”

세 마리의 늑대 공격을 천마가 이리저리 피해내며 반격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야가 보이지 않는 뒤에서 늑대가 공격을 하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천마는 허리를 숙여 늑대의 날카로운 발톱을 피해냈다.

그리고 길게 뻗은 발이 늑대의 턱을 가격해 한 마리씩 피를 달게 하고 있었다.

“서, 설마······ 이거 잡는 거야?”

움직임을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다가도 이따금씩 어색한 몸동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천마는 짧게 혀를 찼다. 마치 지금의 몸이 매우 불편하다는 듯이 말이다.

“캬우우-.”

세 마리 중 한 마리의 늑대가 천마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천마 몸이 밝게 빛을 냈다.

‘레벨업을 했구나.’

레벨 15짜리를 잡았으니, 한 마리만 잡아도 레벨업이 될 터.

쿠웅-!

촤아아-!

이윽고 다른 한 마리까지 쓰러지면서 또 다시 천마는 레벨업을 했다.

“캬오오-!”

“감히!”

콰직-!

마지막 세 마리까지 깔끔하게 잡아내면서 천마는 순식간에 레벨 4가 되었다.

천강은 손을 툭툭 털고 있는 천마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레벨만 높다고 본좌를 공격해? 이 레벨이란 건 참 부질없는 것이로구나.”

처음에는 천마에게 바실레이아의 무서움을 보여 주려고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누가 과연 믿어 주기나 할까. 1 레벨 초보자가 15 레벨 늑대 세 마리를 잡았다고 하면?’

말로는 못 믿겠지만, 영상을 보여 주면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 어떤 조작도 들어간 것이 아니니까.

“대, 대박이다.”

“응? 뭔 박?”

천강은 확신했다.

이 컨셉은 분명히 먹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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