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컨셉충
1화. 본좌는 천마다.
하늘과 땅 아래에 이보다 더 악한 힘은 없다 하여 부르는 그 이름, 천마.
그의 손짓에 태산이 날아가고 우렁찬 포효에 천지가 흔들린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앗아가 버리는 아수라의 광기가 검 밖으로 나오는 순간, 하루 종일 핏물 섞인 비가 내렸다.
그것이 바로 강호의 지배자 천마였다.
“본좌는 천마다.”
그가 스스로를 천마라 일컬을 때마다 모든 강호인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본좌의 말 한 마디면 온 땅이 피바다가 될 것이며, 그 어떤 생명도 살아남지 못 하리라.”
허세로 들릴 수 있어도 그는 충분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모두를 두렵게 만든 것이리라.
“본좌는 영원히 살리라.”
그렇게 그의 권력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니까 누구시라고요?”
“몇 번을 물어보는 것이냐! 본좌의 존안을 보면 알지 않느냐! 본좌는 천마다!”
“아, 예. 그러시구나.”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여긴 대체 어디냐!?”
“아이고 인석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아악!”
온몸이 저릿해지는 등짝 스매싱에 천마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이 중년의 여인이 어마어마한 내력을 가진 고수가 아닌가 싶었다.
검황의 최후 비기인 무결천순(無缺天順)도 천마의 몸을 흠집조차 내지 못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아낙네의 손짓에 천마는 정말 오랜만에 온몸이 고통으로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흠. 상태가 심각한데요?”
환자의 상태를 가만히 살펴본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고 있고 폭력 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것을 보니, 상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닙니다. 혹시, 이 환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가요?”
“아이고. 선생님. 스트레스라뇨. 이놈은 허구한 날 집구석에 쳐 박혀 놀고먹던 놈입니다. 앞날 걱정도 하지 않고 욜로인가 꼴로인가로 살겠다며 펑펑 놀기만 했었어요.”
천마,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자 평범한 가정의 아들인 23살의 청년. 그의 이름은 이천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된 영문인지 천마의 영혼이 그의 안에 들어가 버렸다.
“저기, 환자분. 그러니까 본인이 천마라는 거죠?”
“그래! 본좌가 바로 천마다! 얼른 본좌를 천마신교로 데려가지 못할까! 방금 전까지 의식을 거행 중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너희들의 무례를 내가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며, 이건 무림맹주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의사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본인을 천마라고 주장하는 청년의 뒤에 있던 어머니에게 물었다.
“환자가 평소에 무협지를 많이 읽었습니까?”
“조금 읽었던 거 같기도 한데······.”
“게임은요? 가상현실게임에 영향을 받아 정신착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니요. 게임은 하지 않아요. 그 캡슐이 얼마나 비싼데 이런 놈한테 그런 걸 사주겠습니까?”
가상현실게임에 필요한 캡슐의 가격은 무려 3천만원에 달한다.
“으음. 아무래도 본인이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일단은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정신병일 수도 있지만, 어떤 충격을 받아 기억상실증에 걸린 걸 수도 있거든요.”
“기, 기억상실증이요?”
“예. 일시적인 거라면 다행이지만, 이게 장기적인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큰 병원에 가셔서 검사라도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천웅의 어머니 경희는 갑자기 오늘 아침에 발작을 일으키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아들 덕에 오늘 일도 나가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둘째 아들이 발버둥을 치는 제형을 힘으로 끌고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상실증이라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러다 큰 병이라도 발견되면 가뜩이나 집안 사정도 그리 좋지 않은데, 그 많은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큰 아들이지 않은가.
매일 속만 썩이던 놈이었긴 하지만, 자식은 자식이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예?”
“머리는 아주 깨끗합니다. 어떤 종양도 발견되지 않았고요.”
마침 가까운 거리에 있던 큰 병원에 들러 검사를 해 보았다. 그런데 의사는 아무런 이상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 그럼 제 아들이 왜 저러는 거죠?”
경희가 가리키는 곳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천마, 천웅이 있었다.
“여긴 또 어디냐! 당장 신교로 날 데려가라니깐!”
대충 봐도 심상치 않은 환자의 상태에 의사는 침음을 흘렸다.
“흠. 기억상실증이 꼭 머리에 뭐가 생겨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리고 기억상실증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간만이 답이라는 건가요?”
“예. 일단 약을 처방해 드릴 수는 있긴 한데, 상태를 조금 완화시키는 진정제 정도라서······.”
다행히 머리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에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절로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잘만 놀고 있던 아들이 저러는 것일까.
“일단 경과를 지켜보시고 다시 오세요.”
의사의 말에 경희는 그냥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는 아들을 끌고 나오며 차에 태우려 했다.
“나, 나를 또 이 괴물 속에 넣으려는 것이냐!”
“형. 그만 하고 빨리 타. 집에 가야지.”
“그래, 인석아!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나, 나를 어,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 이거 놔라!”
천마는 자신의 양팔을 붙잡고 자동차라 불리는 괴물 안으로 집어넣으려 하는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전에 있는 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무공 또한 발현되지 못 하고 있었다. 초로해 보이는 이 두 사람의 손조차 뿌리치지 못할 정도라니.
‘설마 내 힘을 봉인한 것인가?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애를 써도 넘치던 완력도, 세상을 뒤집었던 내력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힘을 봉인 당한 것 같진 않다.
이건 마치 단전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 이놈들. 본좌를 이렇게 대우하다니! 얼른 천마신교로 가지 못하겠느냐!”
“에휴.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이를 어쩐다.”
경희가 차를 운전하기 시작하자, 천마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 그러나 싶어 슬쩍 바라보니, 그는 완전히 경직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타 보는 자동차!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이 두 번째다.
오늘 처음 보는 경희와 동생, 천강에게 강제로 이끌려 병원까지 왔었으니까.
천마는 낯선 풍경과 말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이 정체불명 괴물의 속도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 다다랐을 때쯤.
천마는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내리자. 동네 쪽팔리게 하지 말고 조용히 내려 이눔아.”
경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먼저 차에서 내렸다.
“형. 이제 그만 내리자.”
천마는 줄곧 긴장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던 사내에게 시선을 옮겼다.
“보니까 그대가 본좌의 아우인 것 같은데. 맞느냐?”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양반이 갑자기 이러니, 동생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방금 내리신 저 고수께서는······ 본좌의 어머니?”
“고수?”
“그래. 저분의 손끝은 마치 소림의 최고 절기인 팔괘장의 그것과 같았다. 본좌가 예전에 어떤 땡중에게 맞아봐서 잘 알아.”
그 땡중이 사실은 소림의 지주인 무극도사였다.
“······.”
천강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제 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놈의 본좌라는 소리는 그만 하면 안 돼?”
“본좌를 본좌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는가? 이 몸은 천지를 떨게 하는 존재다. 황제마저도 본좌에게는 고개를 숙였거늘.”
“형이 무슨 본좌야. 취직도 못 하고 집에서 팽팽 노는 사람이. 아. 백수의 왕, 뭐 그런 건가?”
“뭐, 뭣이!”
순간 목소리가 높아진 천마는 다시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지금이 정확히 어떤 때인가? 황제가 누구며 천마신교는 어디에 있지?”
“황제? 천마신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은 2030년 3월이고 황제 같은 건 없어. 천마신교도 없고.”
“황제가 없다고? 천마신교도 없어?! 어, 어떻게 그런 일이!”
눈을 감으며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면서 천마도 대충 이곳이 먼 미래라는 건 짐작했다.
바깥 풍경만 봐도 절로 그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이 몸도 자신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황제가 없다는 것과 천마신교가 없다는 건 당최 믿을 수가 없었다.
“나참.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형이 정신병에 걸렸다고 확신한 동생 천강은 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와 천마신교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알려 주었다.
천마신교부터 그 외 관련된 것들은 전부 허구에 불과하다고.
“그러니까······ 천마신교라는 건 무협 소설에 나오는 허구다?”
“그래.”
“그러므로 마교도 없고 백교도 없으며 나 천마도 없다?”
“그렇지. 내공이나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아.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진작 CIA 같은 애들한테 붙잡혀서 인체실험 당했을 걸?”
“씨아······ 뭐?”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무서운 사람들이야.”
씨아 뭔가 하는 놈들은 흑화련 같은 건가-라고 천마는 생각했다. 그리고 천강의 말에 천마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무공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니. 백교도, 마교도, 거기다가 사파와 황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명 이 아우 놈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단전에서 꿈틀거려야 할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아우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한다.
그게 아니라면 천마가 들어오게 된 이 몸뚱이에 내력을 심을 단전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 분명 모든 게 다 거짓말일 거야.”
일말의 희망을 품는 천마였다.
* * *
“아아······. 대체 내가 왜 이런 곳에······.”
천마는 절망했다.
이 세상은 천마가 상상조차 하지 못 한 세상이었다. 모든 것이 기계로 돌아가고 군인은 칼 대신 총을 쓴다. 특히 스마트폰이라는 걸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머리를 저릿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강의 말대로 무공이나 무림 같은 건 소설 속에 존재하는 상상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마는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몸을 살피며 기를 운행하고 어떻게든 소량의 내공이라도 쌓으려 했다. 하지만 전혀, 아무것도 쌓이지가 않았다.
운기조식조차도 되지가 않으니, 그야 말로 천마가 일반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후······. 그 짜증나는 땡중 놈의 말이 떠오르는군.”
천마 공도 언젠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가 있을 겁니다- 라고 끌끌 거리며 말했던 무극도사. 그날이 등선하는 날만 아니었으면 그 대머리를 박살냈을 것이다.
“또 그 기운행인가 뭔가 하는 거 하다가 밤 샌 거야? 벌써 일주일이 넘었는데, 이제 그만 포기해도 되지 않아?”
“시끄럽다. 본좌에게는 포기란 존재하지 않으니······.”
천강은 다크써클이 축 내려온 천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렇게 답답하면 차라리 바실레이아 온라인을 해 보는 게 어때?”
“뭐?”
발음하기도 어려운 단어에 천마는 눈을 껌뻑이기만 했다.
“바실레이아 온라인. 거기서는 형이 원하는 무공을 마음대로 익힐 수가 있어. 거긴 가상현실이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무공을 익힐 수가 있다니!”
가상현실게임이란 말은 듣지도 않고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던 천마였다.
“말 그대로야. 형이 그렇게 원하는 무공, 그 아수라 파멸 어쩌구 같은 비슷한 걸 거기서는 익힐 수 있어.”
천마는 가부좌 자세를 하고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런 곳이 있었으면 나한테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거, 거기가 어디냐! 부탁이다, 아우. 부디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다오! 그 무림으로 말이다!”
천강은 물끄러미 천마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랑 약속 하나 해.”
“응? 야, 약속이라니.”
“형이 그동안 얼마나 쓰레기처럼 살았는지 모르지?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지 마. 내가 그 게임 시켜주면, 형도 그만 속 썩이고 약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서 정신 차려야지. 취직도 해야 하고.”
“취, 취직?”
“그래! 나랑 엄마만 일하고 형은 탱자탱자 놀기만 했잖아! 아빠도 없이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실질적으로 보면 형이 우리의 가장이라고. 그런데 형은 매일······!”
천강은 잠시 말을 멈추고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렸다. 그렇지 않아도 천마는 이 몸의 주인과 그 가족이 부유한 삶을 살지 못 한다는 걸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 몸뚱이의 주인은 굉장히 막되 먹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 그래. 아우가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기만 한다면 내가 뭔들 못 하겠느냐?”
무공에 목이 마른 천마는 지금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따라와.”
천마에게서 목숨을 건 맹세까지 얻어낸 천강은 제 형을 데리고 캡슐방으로 갔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 모두의 인생을 바꿔 놓을 줄은 천강은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