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170화] 제압(制壓) (6)
“어, 어 그게 제가 어, 그러니까, 맞아요. 제가 요 며칠 몸이 좀 안 좋아서 광주에 있는 동생네 집에 가 있어서…… 그래서, 그래서 그럴 겁니다.”
장학수가 고개를 돌려 다락 쪽을 힐끗 살피더니 비지땀을 훔쳐내며 말을 더듬었다.
“아! 제가 잘못 봤네요. 지금 보니 오늘 날짜 맞네! 나도 이제 안경을 써야 하나?”
벌컥벌컥, 지상태가 일부러 목소리 톤을 올려 우유 뚜껑을 열더니 마시기 시작했다.
“캬! 시원하니 좋네.”
지상태가 옷 소매로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아냈다.
“장학수, 지금 내 말 잘 들어! 안에 누가 있으면 고개만 끄덕여!”
그 순간,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그가 사각지대로 몸을 비틀더니 외투를 들쳐 장학수에게 권총을 내보였다.
“…….”
겁에 질린 장학수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쥐새끼 같은 놈들! 음, 나를 속였단 말이지. 장학수! 그럼 주변에도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나? 눈만 깜박거려!”
“…….”
장학수가 그의 말대로 눈을 깜박거렸다.
“시X, 그럼, 안에 있는 새끼가 김정환이냐?”
“그, 그게…….”
“똑바로 대답해. 심장에 구멍 나기 싫으면…….”
지상태가 장학수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방아쇠에 검지를 끼워 넣었다.
“…….”
장학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깜박거렸다.
개새끼들!
“하하하, 장학수 씨! 남의 집을 방문하면서 빈손으로 왔네요? 이 근처 어디 과일 집이라도 있습니까?”
지상태가 일부러 들리라는 듯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에이. 이건 예의가 아니죠.”
하하하, 웃고 있었지만, 인상은 험악했다.
“네에. 저기 아래로 내려가면 있습니다.”
“여기 주소가 어떻게 되나? 배달이라도 시켜야 할 텐데…… 음, 주소 이거 맞죠?”
지상태가 우편함을 살펴보며 그중 우편물 하나를 꺼내 무언가 적더니 장학수에게 내밀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허튼수작하면 넌 죽는다. 지금 저 벽장문을 잠가.]
“…….”
장학수가 눈을 깜박거렸다.
“빨리해!”
지상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
겁에 질린 장학수가 고개를 끄덕인 후, 내가 숨어 있는 다락방 입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상태가 총을 꺼내 장학수의 등 뒤를 겨냥했다.
다락방 쪽으로 이동하던 장학수가 잠시 멈춰서 냉장고 위에 놓여있는 상자를 열고 무언가를 꺼내려던 찰나,
창틈 사이로 비치는 빛에 반사되어 그 무언가가 번쩍거리는 순간,
탕! 탕! 탕!
억!
딸그랑!
세 발의 총성과 외마디 비명이 연달아 퍼지며 장학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손에는 열쇠 꾸러미가 쥐어져 있었다.
제길!
열쇠 꾸러미를 무기로 착각한 지상태가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후다닥,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시한 지상태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김 형사님, 지상태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서두르세요! 퇴로를 막아주세요! 지상태가 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바짝 긴장하셔야 합니다!”
“네에!”
총소리에 놀란 나는 김 형사에게 무전을 친 후 다락방에서 바로 튀어나왔다.
“장학수 씨! 장학수 씨!”
그의 목에 손을 갖다 대 보았지만, 맥박이 뛰지 않았다.
“이 형사님! 대로변 확보하세요! 지상태가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학수가 총에 맞았습니다. 구급차 불러주세요.”
“네, 본부장님!”
멈춰! 지상태!
급박한 순간, 수사진들은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추격전을 펼쳤다. 퇴로를 차단하고 대로변과 연결된 골목길을 지킨 수사팀은 지상태를 포위할 수 있었다. 수사진은 여우 몰이를 하듯 지상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지상태! 총 내려놔.”
뒤쫓아 갔던 내가 그에게 총을 겨눴다.
“본부장님, 실탄 세 발을 썼으면 지금 지상태가 가지고 있는 총에 실탄은 없습니다. 바로 덮쳐도 되지 않을까요?”
내 옆으로 다가온 이 형사가 목소리 톤을 낮춰 속삭였다.
“아뇨. 아직 두 발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은 위험합니다. 경계를 늦추면 안 돼요.”
“전부 비켜! 안 비키면, 여기 있는 놈 중에 딱 두 놈은 죽는다. 비켜!”
지상태가 수사진에 총구를 겨누면서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탕! 탕!
모두 뒷걸음치며 경계하는 순간, 장 형사가 지상태가 방심한 틈을 타 그를 덮치려 했고 이를 눈치챈 그가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장 형사! 장 형사!”
연속으로 두 발을 얻어맞은 장 형사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이 형사님! 진정하세요.”
분노한 이 형사가 총구를 들어 지상태를 겨누자 내가 그를 가로막았다.
“장 형사!!!”
그 순간, 모든 형사가 지상태에게 덤벼들었고 동료를 잃은 이 형사가 오열하며 장 형사에게 다가갔다.
“연행하세요.”
“네. 본부장님!”
지상태가 완강히 저항했지만, 수많은 형사의 완력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결국, 우리는 지상태의 양손에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놔!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아? 본청 수사과장이라고! 다 죽고 싶어!”
수사진이 지상태를 제압한 후 수갑을 채우자 악다구니를 부렸다.
“김정환 너, 이 개새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넌 절대 건드리면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어. 네 질긴 목숨 줄도 여기서 끝이야!”
지상태가 나를 노려보며 독설을 내뱉었다.
결국, 김덕한 의원 살인의 유력한 용의자, 지상태가 우여곡절 끝에 검거되었다.
* * *
<김정환의 아파트>.
푸슉! 푸슉!
한 남자가 사시미 칼을 들고 비어있는 아파트로 잠입해 침실로 들어갔다. 그가 잠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불룩 튀어나온 새하얀 침대 시트 위로 시퍼런 칼을 꽂아 넣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십 차례….
어느새 새빨간 피가 시트 사이로 새어 나와 침대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뭐…… 뭐야?
그가 수십 차례 칼을 휘두른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트를 들치자 그의 시선에 들어온 건, 이미 죽은 돼지 몸뚱이였다. 당황한 그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장현수! 왜? 내가 아니어서 섭섭한가?”
후후후, 나는 천천히 장현수의 뒤로 다가가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뭐…… 뭐야?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한 장현수가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형사가 그러던가? 내가 정신없이 술 처먹고 자고 있을 거라고?”
“이, 이런 시X!”
장현수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사진!
“어이, 장현수! 인제 그만 지랄하고 여기서 끝내자. 김 형사! 연행해!”
강상중 팀장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김 형사에게 명령했다.
지상태의 검거로 조바심이 생긴, 장현수가 급거 나를 습격했고 한 형사를 통해 사전에 그의 동선을 파악한 우리는 비교적 쉽게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한 달 후,
“이 정도면 충분히 기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장현수의 아지트, 지상태의 휴대전화, PC, 계좌를 압수 수색한 수사팀은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달간의 강도 높은 심문을 통해 장현수와 선중수 의원, 지상태와 경찰청장 한산도의 검은 커넥션 역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오로지 아, 아버지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고 지금껏 살아왔어!”
장현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입가에 게거품을 물었다.
장현수!
한때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복수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 모든 계획을 수립했지만, 썩어빠진 세상은 그를 검게 물들였다. 선중수 의원과 결탁한 그는 돈과 권력에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고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는 순수한 마음 역시 퇴색되고 말았다. 선중수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장현수는 아버지 복수라는 미명 아래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제거하며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을 채워나갔다. 과연, 악인을 악으로 단죄했다고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나는 지은이를 사랑했어! 더러워진 지은의 몸뚱이를 깨끗하게 해줄 필요가 있었어!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는 것뿐이었거든!”
지상태!
그 역시, 장현수와 같은 부류였다. 아니, 어쩌면 지상태는 태어났을 때부터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연인이었던 박지은이 가지고 있던 김덕한 의원의 비리 자료를 이용해 출세하려 했던 그였다. 김덕한 의원에게 유린당했던,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있던 박지은마저 죽여 버릴 정도로 그는 잔인한 사이코패스였다. 그가 과연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자격이 있을까?
* * *
<서울중앙지검, 입구>.
팟! 파파팟!
선중수 의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의원님, 고 김덕한 의원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다는 협의를 받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흠, 이건 나를 모함하기 위한 현 정권의 정치탄압입니다. 난, 결코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어요!”
선중수 의원이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렇다면, 장현수 씨를 전혀 모른단 말씀입니까?”
“김덕한 의원의 보좌관이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협의를 부인하고 계시는 겁니까?”
“부인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팩트에 충실한 수사를 한다면 모든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겁니다. 제발, 검찰이 결론을 결정해 놓고 수사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본부장님, 저 인간, 너무 뻔뻔한 것 아닙니까?”
위에서 기자회견을 내려다보던 박인수 검사가 혀를 내밀며 ‘끌끌’ 거렸다.
“음…… 그러게. 또다시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아. 저 눈을 봐. 저 사람은 지금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야. 본인 스스로 자신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어. 이 정도면 저들에게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흠…… 저런 사람들이 위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난, 돌아가신 그분의 말처럼 반드시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 것이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선중수 의원을 보며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1년 후,
<박엔정 박 회장의 자택>.
박 회장과 김정주 주필, 그리고 내가 그의 자택에 모였다.
“음…… 김 변, 이번 재판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네. 회장님.”
결국, 선중수 의원은 직권남용 및 불법 정치자금 조성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죄목으로 수감되고 말았다. 그는 온갖 인맥을 동원했고 그의 입을 두려워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수많은 인사의 필사적인 방어의 결과였다.
“음, 이렇게 되면 선중수 의원의 정치 인생도 끝이 아닌가 합니다.”
흐음, 김정주 주필이 가느다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비록, 살인교사 혐의는 벗어났지만, 이번 일로 정치생명은 끝이 난 듯싶군요.”
“네. 이제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썩어빠질 대로 썩어 문드러진 정치판! 새로운 피로 정화를 시켜야죠. 안 그런가? 김 변!”
김정주 주필이 나를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암암. 그래야 말고요. 이제부터 새로운 정치판을 열어봅시다!”
껄껄껄, 박 회장이 내 손을 꽉 쥐며 환하게 웃었다.
지이이잉.
[지금부터 프레지던트 메이킹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웅장한 울림과 함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