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68화 (168/170)

# 168

[168화] 제압(制壓) (4)

“박지은을 죽인 범인요!”

“네? 확실합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상중 팀장에게 달려갔다.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강상중 팀장이 멜론 톡을 보내왔다.

[네.]

강상중 팀장과 나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네. 우선, 이걸 좀 보십시오.”

강상중 팀장이 조심스럽게 한 남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사람이 박지은을 살해한 범인이란 말입니까? 누구죠?”

강상중 팀장이 건네준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장학수라고, 한때, 김덕한 의원의 차를 운전했던 기사였더군요. 5년 전에 박지은이 죽고 난 이후로 종적을 감췄었습니다.”

결국, 이것이었군.

박지은은 김덕한 의원의 수행비서였다. 빼어난 외모를 지녔으며 명문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물론, 지상태와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외부에 비치는 모습과 달리 가증스러운 김덕한 의원이 자신의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그녀를 유린했던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 박지은이 김덕한에게 유린당할 당시, 그녀는 지상태의 아이를 가진 상태로 추정된다. 지상태가 그를 죽일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결국, 박지은은 복수를 위해 김덕한 의원에 관한 갖가지 비리 및 부정축재 자료를 수집해 폭로하려 했다. 이를 사전에 알아차린 김덕한이 그의 기사, 아니지 거의 종복이나 다름없는 운전기사 장학수를 이용해 그녀를 제거했다.

어느 정도 감을 잡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예상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장학수!

역시, 그가 박지은을 살해한 범인이었어!

“지금, 장학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점점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목포에서 검거했고 지금은 지상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한 곳에 옮겨뒀습니다.”

“잘하셨어요. 일단, 그에게서 김덕한의 사주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두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은 완강히 진술을 거부하고 있지만, 증거나 정황이 차고 넘치니 곧 자백하게 될 겁니다.”

강상중 팀장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됐습니다. 그러면 이제,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미끼들이 마련되었으니 지금부터 본격적인 바퀴벌레 사냥을 나가보도록 하죠!”

“네. 본부장님! 이번 기회에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양 주먹을 힘껏 말아 쥐었다.

“강 팀장님! 무작정 덤볐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바퀴란 놈의 특성상 잡자고 덤비면 더욱더 깊은 곳으로 숨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그러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때를 기다렸다가 스스로 기어 나오게 해야죠!”

“흐음, 그렇군요!”

강상중 팀장의 눈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 * *

<카페, 비빌디>.

특본 소속의 한 형사와 지상태가 은밀히 접선하는 장소이다. 두 사람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비발디로 들어왔다.

“요즘, 특본 분위기는 어때?”

지상태가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흠…… 특별히 진전된 것은 없습니다. 장현수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긴 한데, 쉽지가 않은가 봅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전력을 장현수 검거에 투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때 과장님을 용의선상에 올려둔 적도 있긴 했는데 지난번 강변 건으로 인해 완전히 벗어난 상황입니다.”

한 형사가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면 지난번에 김정환이 나를 찾아왔던 이유는 간을 보려고 했던 거란 말이지?”

“네. 맞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과장님과 박지은 씨의 관계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과장님을 한번 떠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군.”

“네. 김정환의 얕은 수였습니다. 과장님을 꾀어 뭔가 얻어보려는 수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지난 번, XX 강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습니다. 수사진이 총출동한 상태여서 자칫 낭패를 볼 뻔했어요. 나타나셨으면 저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한 형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건 그렇고 그쪽에서 한 형사에 대해서 의심하는 기색은 없나?”

“네. 매번, 저를 중요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을 보면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입니다. 강 팀장도 중요 업무를 저에게 일임한 상태입니다.”

“아무튼, 각별하게 신경 쓰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바로 연락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약속하신…….”

한 형사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건 걱정 마.”

툭, 지지 상태가 테이블 위에 열쇠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건 뭡니까?”

“서울역 4번 출구 쪽 임시 보관함 열쇠야. 열어보면 알 거야.”

“아… 네…….”

한 형사가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그때야 만족한 듯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가?”

“장현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정말 귀신같은 놈이군요! 특검도 그것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에요.”

한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한 형사!”

“네.”

“사냥개는 그냥 사냥만 하는 거야. 사냥개가 주인한테 궁금한 게 생기면 안 되지. 안 그래?”

“네?”

순간, 한 형사의 얼굴이 붉어지는 듯했다.

“내가 당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명심해. 사냥개가 사냥 말고 쓸데없는 데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네? 그게…….”

당황한 한 형사가 어쩔줄 몰라했다.

“이런저런 말이 많아지면 귀찮아서 어떻게 사냥을 하나? 그때는 더 사냥개가 아니지. 그냥, 두들겨 패서 불에 그을리는 수밖에 없다고!”

지상태가 식어버린 커피처럼 차디찬 시선을 한 형사에게 흩뿌렸다.

“네… 에……. 제가 실수했습니다. 과장님!”

꿀꺽, 잔뜩 긴장한 한 형사가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특본, 수사 전략 회의>.

나는 강상중 팀장을 비롯한 주요 수사팀을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 물론, 한 형사를 포함해서 말이다.

“강 팀장님,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모두 스크린을 봐주십시오. 현재, 수사는…….”

강상중 팀장이 약 1시간가량, 브리핑을 진행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흠…… 강 팀장님, 이게 다인가요?”

나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면목 없습니다. 사실 장현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수사가…….”

강상중 팀장이 고개를 숙이며 침통해 했다. 훌륭한 연기였다. 역시, 경찰 말고 연기자를 했어야 했다.

“그 면목은 언제나 세워지는 겁니까? 지금 특본이 발족된 지 한 달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수사는 아직도 제자리걸음 아닙니까? 입이 있으시면 말씀해 보세요! 위에서는 슬슬 특본을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연기를 이렇게 잘했나?

나 스스로 감탄할 만큼 훌륭한 연기였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최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겁니다. 결과를 가져오세요. 결과를!”

“네. 알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음…… 그나저나, 본부장님! 김덕한 의원 비서였던 박지은 씨 사건 있잖습니까. 그게…….”

“그게 뭐요?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어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게, 범인의 행방을 찾은 듯싶어서요…….”

“하, 진짜 답답하시네. 그게 뭐 중요합니까? 김덕한 의원이 죽은 마당에…… 답답하십니다. 진짜!”

억지로 얼굴을 붉히려 하니 힘들었다.

“아…… 네.”

“제발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마시고 장현수 검거에 집중합시다. 슬슬 위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제발 말만 하시지 마시고 결과를 가져오세요!”

탁, 나는 거칠게 보고서를 내던지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팀장님, 아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회의실을 빠져나가자마자 한 형사가 조심스럽게 강상중에게 다가갔다.

“뭘?”

“박지은을 죽인 범인의 행방을 알아내셨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 그거? 별거 아냐. 그냥 장현수 수사하다가 얻어걸린 건데, 딱히 보고할 게 없어서 들고 나왔는데 안 먹히네. 역시나 개뿔, 쓸데없는 짓을 했나 봐. 에이, 욕만 얻어먹었네. 시X, 지는 뭐한 게 있다고. 우리들만 닦달이야!”

강상중 팀장이 옷에 먼지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아…… 네.”

“한 형사! 근데 그건 왜 관심 가져?”

“아뇨. 그냥, 예전에 범인을 못 잡았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아서요.”

한 형사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양가 없는 일이니까 신경 꺼!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그런 데까지 신경 쓸 겨를 없어. 일단, 장현수 이 새끼를 잡는 것이 급선무니까 그쪽에 집중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도둑고양이가 썩은 생선에 관심을 보이는데요?]

잠시 후, 강상중 팀장으로부터 멜론 톡이 왔다.

[그래요? 음… 그러면 작전을 슬슬 시작해 볼까요?]

[네. 알겠습니다.]

<며칠 후, 특본>.

“자자, 오늘은 그동안 야근하느라 수고들 많았는데 목에 묵은 때나 벗어내 봅시다.”

짝짝, 강상중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마주쳤다.

“팀장님! 진짜 회식인가요?”

강 형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그래, 오늘 본부장님이 한턱 쏘신다니까 오래간만에 때 좀 벗겨보자!”

“와!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형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다.

“저…… 팀장님! 저는 좀 할 일이 남아서 나중에 참석하겠습니다.”

그중에 단 한 명의 예외, 한 형사가 이마를 긁적이며 강상중 팀장에게 말했다.

“뭐야? 다 같이 움직이는데, 혼자만 왜 그래? 이거 너무 튀는 거 아냐? 한 형사?”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쓰던 보고서가 있어서 이것만 마무리 짓고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흠…… 그래? 뭐, 일하겠다는데 내가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내려와. 저기 앞에 돼지 갈빗집 알지? 거기로 갈 거니까 그쪽으로 오라고!”

강상중 팀장이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네.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가겠습니다.”

“그래그래. 너무 무리하지 마. 가뜩이나 밤샘 잠복근무에 지쳐있을 텐데 몸 생각 좀 하라고!”

툭툭톡, 강상중 팀장이 한 형사를 힐끗거리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네.”

[본부장님, 도둑고양이가 움직일 것 같습니다. 놈이 물어가도록 책상 위에 장학수에 관한 프로필을 올려뒀습니다.]

[네. 잘하셨어요. 그럼 이만 내려오시죠.]

[네. 알겠습니다.]

삐그덕.

잠시 후, 한 형사가 주변을 기웃거리더니 강상중 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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