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화] 제압(制壓) (3)
“힌트권 사용!”
[30포인트를 차감합니다. 힌트권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힌트권을 나열했다.
“물론이지!”
인물 힌트권!
수많은 힌트권 중에서 내가 선택한 힌트권이었다.
[40대 남자, 플라이 낚시, 경상도 사투리, 인슐린 주사.]
킹 메이킹 시스템이 몇 가지 정보가 담긴 한 남자의 프로필을 화면에 띄웠다.
지상태가 5년 동안 추적해온 범인!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보여준 건 박지은을 죽인 범인에 대한 정보였다.
플라이 낚시!
역시, 박지은을 죽인 범인은 예상대로 플라이 낚시광이었다. 박지은 뺑소니 사건 자료를 조사하며 파악한 내용이었다. 내가 지상태에게 건네준 쪽지에 적힌 주소도 역시. 놈이 자주 찾는 플라이 낚시로 유명한 강변이었다.
영월에서 동강 상류 쪽으로 문곡에서 아우라지 쪽으로 이어지는 XX 강변!
지상태가 놈을 찾기 위해 주말마다 찾았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오래된 상황이었다.
음, 적어도 지상태 역시, 놈이 플라이 낚시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저건 뭐지? 인슐린 주사? 새로운 정보군!
인슐린 주사라면 놈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건데…… 놈이 당뇨병 환자였다는 건가? 아무튼, 박지은을 죽인 범인을 우리가 먼저 잡아야 한다! 그래야 지상태를 활용할 수 있어!
<서울 근교, XX 카페>.
나는 보안을 위해 강상중 팀장과 박인수 검사를 서울 근교 한적한 카페로 불러냈다.
“특본, 내부 공사는 진행 중입니까?”
“네. 지금 공사하고 있습니다. 거의 마무리가 다 돼갑니다.”
“CCTV는요?”
“본부장님의 말씀대로 장현수 쪽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존 업체에 의뢰해 재설치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분명, 장현수가 CCTV 업체 쪽에 손이 닿아 있을 겁니다. 최대한 비밀리에 누가 장현수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셔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믿을만한 사람으로 마킹 시켜뒀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강상중 팀장이 눈을 부릅뜨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네. 수고해 주세요.”
“근데, 본부장님! 아무래도 한 형사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네? 한 형사가 왜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요. 원래 제가 개코라 수상한 냄새를 잘 맡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코를 벌름거렸다.
“음, 그래요? 그렇다면 확인을 한번 해보면 되겠군요.”
“네? 확인요?”
“네. 잠시만 기다리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아… 네…….”
“그건 그렇고 박인수 검사님! 뭐 좀 찾아내셨습니까?”
“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만간 왕건이 하나가 걸릴 듯합니다.”
박인수 검사가 눈을 빛냈다.
“어떤?”
“장현수가 김덕한 의원, 보좌관 시절 비밀리에 누군가와 접촉했던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그게 누구죠?”
궁금했는지 강상중 팀장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선중수 의원! 전남지역에서 5선을 지낸 야당 중진의원입니다.”
그렇지! 김덕한 의원과 당내 대권 후보 경쟁에 있는 선중수 의원이라면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다!
“장현수가 선중수 의원과 연결됐다는 확실한 물증이 있나요?”
“음, 아직은 정황뿐입니다. 확실한 물증을 잡으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듯해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장현수 검거가 우선이니 아직은 시간이 있어요. 천천히 확실한 물증을 잡을 수 있도록 고생해 주십시오. 선중수 의원이라면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에요. 신중하셔야 합니다.”
“네. 본부장님!”
“참, 내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는 두 가지 작전을 말씀드릴까해서입니다.”
“…….”
“…….”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박인수 검사와 강상중 팀장이 내 쪽으로 바짝 당겨앉았다.
“말씀하시죠!”
박인수 검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네. 그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지상태가 장현수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박지은을 죽인 범인을 우리가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저는 그자를 미끼로 지상태를 움직일 생각이에요.”
“어떻게 말입니까?”
강상중 팀장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장현수가 특본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것을 역이용해야죠. 제가 일단 지상태에게 미끼를 던져뒀습니다. 혼자 나온다고 했으니 일단 제 말이 사실인지 주판을 튕겨 보겠죠. 그걸 이용하려고 합니다.”
“어떻게요?”
“박지은을 죽인 범인에 관한 정보를 흘려뒀으니 지금 안달이 나 있을 겁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선 저나 지상태나 알고 있는 정보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지상태 입장에선 내가 뭔가 더 새로운 정보를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걸 역이용해야죠. 하지만,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 당연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죠.”
“음…… 그러니까 본부장님 말씀은 장현수가 우리 쪽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니 그에게 우리 쪽 계획을 흘려보자 이건가요?”
박인수 검사가 턱을 매만지며 눈매를 좁혔다.
“네. 바로 그겁니다. 저는 반대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만약에 지상태가 약속한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분명, 장현수와 지상태가 연결돼 있다는 게 되겠죠.”
“흠……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강상중 팀장이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두 번째 작전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5년간 샅샅이 뒤졌는데도 딱히 건져낸 정보가 없는데…… 어떻게 박지은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나요? 거의 단서도 없습니다.”
“음…… 우선, 강 팀장님은 김덕한 의원 주변을 철저하게 파악해주세요. 아마도,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당뇨병요?”
강상중 팀장이 코끝을 찡그리며 의아해했다.
“네. 박지은을 죽인 범인은 당뇨병을 앓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40대 남자, 플라이 낚시광, 고향은 경상도 그리고 인슐린 주사를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 아마도 이 정도 정보면 선택지가 좁혀질 겁니다. 반드시 지상태보다 우리가 먼저 이자를 확보해야 합니다.”
“후…… 진짜 강력계 형사로서 쪽팔려지는 느낌적 느낌이네요. 이런 정보를 어디서 찾으셨어요?”
“음, 그냥 뭐…… 꿈에서 봐뒀다 해두죠!”
“네? 본부장님 무슨 신기라도 들렸다는 말입니까?”
박인수 검사가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고요.”
<파주, 특본 소회의실>.
지금부터 여우사냥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수사진을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 물론, 한 형사도 회의에 참석시켜 테스트해 볼 요량이었다.
“음… 일단, 지상태가 장현수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끼를 던져뒀으니 지상태가 물기를 기다려야죠.”
“음…… 진짜 그곳에 혼자 가실 생각입니까?”
강상중 팀장이 슬쩍 CCTV를 힐끗거리며 연기했다. 이 정도면 대종상 주연상은 아닐지라도 조연상 정도는 탈 만한 훌륭한 연기였다.
“아뇨. 사실 정황만 있을 뿐, 제가 가진 정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 지상태를 유인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저 혼자 나간다고 하면 분명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으로 강변 근처에 매복해야죠.”
나는 강상중 팀장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지상태는 본부장님 혼자 나오는 줄 알고 있겠네요?”
강상중 팀장이 과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를 했다.
“네. 분명 지상태가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러니까, 팀장님도 만반의 준비를 해두십시오.”
그 순간, 한 형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저 갑자기 배가 부글거려서 화장실 좀…….”
한 형사가 자신의 배를 움켜쥐며 인상을 썼다.
“어? 어…… 그래.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보네. 그래 다녀와!”
역시, 한 형사였던가?
그 때, 나와 마주치는 강상중 팀장의 시선! 우리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김 형사야! 들었지! 연기력 죽이는 애들 좀 수배해서 사이트에 박아 놔라.”
시선을 거둔 강상중 팀장이 박수를 치며 수사진을 독려했다.
“네! 팀장님!”
유난히, 소회의실 천정 구석에 매달려 있는 CCTV에서 붉은빛이 깜빡거렸다.
* * *
<장현수의 아지트>.
띠띠띠띠!
장현수가 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접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역시나 지상태였다.
“혹시, 김정환이 지 과장님을 찾아왔습니까?”
“그걸 어떻게…….”
“그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 보고를 해주셔야죠.”
“음…… 개인적인 일이라.”
“아무튼, 그 곳에 나가시면 안됩니다. 놈들의 계략이에요.”
장현수가 자신이 CCTV와 한 형사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지상태에게 설명했다.
“흠…… 역시, 그랬던 겁니까?”
“네. 절대로 그곳에 가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소한 것이라도 저에게 반드시 보고해 주십시오. 혼자서 단독 행동하지 마시고요.”
“네에. 알겠습니다.”
쥐새끼 같은 놈! 너가 재주를 부려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야!
장현수가 종료 버튼을 거칠게 누르며 중얼거렸다.
<강원도, XX 강변>.
날씨가 쌀쌀한 관계로 낚시꾼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나와 수사팀은 지상태와 약속한 장소로 이동해 대기하고 있었다.
“김 형사, 그쪽 분위기 어때?”
“네. 팀장님. 아직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데요?”
“혹시 모르니까 철저하게 감시해!”
“네. 알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상류 쪽에 잠복한 김 형사에게 무전을 쳤다.
“박 형사, 그쪽은?”
“네.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낚시꾼들만 보일 뿐, 지상태는 보이지 않는데요? 혹시, 우리 계획을 눈치챈 게 아닐까요?”
“음… 큰일이군! 아무튼,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니 철저하게 감시해!”
여전히 강상중 팀장의 연기력은 일품이었다.
두 시간 후,
“본부장님! 아무래도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장현수와 지상태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듯하군요. 확실히, 우리 정보가 장현수한테 흘러들어간 것 같습니다. 지상태가 코빼기도 안 비치는데요?”
“…….”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지상태와 장현수가 공범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는데…… 우리 작전이 성공한 것 같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코가 새빨게진 강상중 팀장이 손을 주머니에 욱여넣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이제 철수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박 형사! 철수하자. 날도 추운데 이 근처 어디 가서 매운탕이나 먹으러 가자고!”
“네.”
하나둘씩, 매복해 있던 수사진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지상태가 눈치를 챈 것 같은데?”
“그러게. 우리 작전이 새나간 거아냐?”
수사진들이 우려섞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렇지! 당연히 새어나가야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지상태와 장현수가 공범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 *
일주일 후,
<특본, 본부장실>.
쾅!
강상중 팀장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본부장실로 들어왔다.
“본부장님! 드디어 잡았습니다.”
“네? 누구를 말씀입니까?”
“박지은을 죽인 범인요!”
“네? 확실합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상중 팀장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