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65화 (165/170)

# 165

[165화] 제압(制壓) (1)

<특본, 본부장실>.

지상태가 이번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강상중 팀장님, 제 방으로 올라와 주세요.”

“네. 본부장님!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나는 인터폰을 연결해 강상중 팀장을 불러들었다.

“본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내 방으로 올라온 강상중 팀장이 궁금한 듯 미간을 좁혔다.

“음… 혹시, 지상태라고 아십니까?”

“지상태요? 지금 경찰본부에 있는 지상태를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잘 아는 사이입니까?”

“알다마다요. 상태는 제 경찰대학 동기예요. 워낙, 처세술이 뛰어난 놈이라 주요 요직만 거치면서 힘 하나 안 들이고 고속 승진한 케이스죠. 그나저나, 지상태는 왜요?”

강상중 팀장이 지상태라는 이름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뭔가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듯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팀장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경찰대 동기면 친하지 않으셨나요?”

“네. 한때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긴 했죠. 경찰대를 졸업하고 우리 둘 다, 강력부에서 처음 경찰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정의로움에 충만했던 녀석이 어느 순간 변하더라고요.”

강상중 팀장이 눈 밑을 긁적거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변해요? 어떻게 말입니까?”

“흠, 마치 미친놈처럼 위만 보며 달렸어요. 경찰 내부의 고질적인 부정, 부패를 도려내 정의로운 경찰을 만들겠다는 당찬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줄타기를 시작했거든요.”

강상중 팀장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줄타기요? 그건 뭡니까?”

“네. 동아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죠. 동기고 선배고 없었어요. 상태가 내사부로 자리를 옮긴 후부터는 미친 듯이 모가지를 쳐냈습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경찰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

“그렇게 망나니처럼 칼을 휘둘러대며 경쟁자들을 쳐내더니 결국, 지금의 경찰청장 라인을 탈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경찰청장의 복심이 될 수 있었죠. 다들 상태를 경찰청장 배정에 운의 개라고 부를 정도니까 말 다 한 거죠. 아마, 출셋길은 열렸을지 몰라도 주변에 그놈 옆구리에 칼빵 놓고 싶은 경찰들 좌악 깔렸을 겁니다.”

강상중 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음, 그렇군요. 그렇게 변한 특별한 원인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딱히, 모르겠는데…… 아! 음…… 한 5년 전인가? 그놈, 애인이 죽었죠, 아마? 뺑소니 교통사고였는데,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어요. 그때 상태 이놈이 완전 맛이 가서 범인 잡는다고 난리를 쳤는데, 결국 못 잡고 미제 사건으로 끝이 나버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상태가 이상해진 것 같긴 하네요.”

강상중 팀장이 미간을 좁히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애인이요?”

“네. 박지은이라고 저도 안면은 있는 여잔데 상태랑 결혼까지 하기로 약속한 사이였으니까 그놈, 입장에서도 미칠 일이었죠.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폐인이나 다름없었어요.”

애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것도 뺑소니 교통사고라…… 박지은이 죽고, 그 이후로 강직했던 경찰의 변절이라…… 그녀의 죽음이 결국, 지상태를 변절하게 했다는 건데, 도대체, 그녀의 죽음은 이 사건과 무슨 연관 관계가 있었던 말인가?

점점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 어지러웠다.

“그랬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흠,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나저나, 지상태, 그 친구는 무슨 이유로?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을 텐데요.”

“아… 아닙니다. 그냥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서요.”

“아…… 네. 아무튼, 그놈 이름을 들으니까 다시 속이 부글부글하네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나쁜 새끼! 변해도 어떻게 이렇게 변해?”

강상중 팀장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중얼거렸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박지은 불의의 사고와 지상태의 변절이라……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텐데 말이야.

쾅!

“본부장님!”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밖으로 나갔던 강상중 팀장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네? 무슨 일이시죠?”

“네. 본부장님! 지금 갑자기 떠오른 사실인데요. 정확하진 않지만, 상태 여자친구가 김덕한 의원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상태가 얼핏 얘기했던 것 같은데요? 만약에 제 기억이 확실하다면 뭔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네? 박지은이 김덕한과 같이 일했다는 겁니까?”

깜짝 놀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네. 분명, 비서로 일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 말을 아끼는 인간이라 처음엔 몰랐는데 우연히 김덕한 의원 사무실 앞을 지나다가 지은 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맞아요. 확실합니다.”

따닥, 강상중 팀장이 소리를 내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박지은이 김덕한 의원 비서였다고?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본부장님,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눈치 빠른 강상중 팀장이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네. 저도 느낌이 좋지 않군요. 팀장님, 박지은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조사를 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사건 기록도 좀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은 씨가 임신 중이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강상중 팀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문을 나섰다.

* * *

<김정환의 아파트>.

만약 박지은의 죽음이 김덕한 의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지상태가 김덕한을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음…… 그렇다면 김덕한 의원이 죽던 날, 장현수가 서울에 머물렀다는 알리바이가 맞을 수도 있다!

장현수와 관련된 수사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처음엔 장현수가 증인들을 매수해 거짓 증언을 하게 한 거로 생각했던 것이 나의 실수였다.

만약에 공범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

장현수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을 찾아다녔어!

장현수를 봤다는 증인들의 진술은 너무도 명확하게 장현수를 지목하고 있었다. 결국, 장현수는 서울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고 범행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면?

장현수를 도와준 공범이 치밀한 지상태라면 증거를 남길 일도 없었겠지.

점점 심장이 속도를 내는 듯했다.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장현수! 그리고 만약에 박지은의 죽음과 김덕한이 연결돼 있다면……… 맞아! 지상태 역시, 장현수와 같은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조용한 방안을 뒤흔드는 전화벨 소리. 나는 직감적으로 장현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정환 검사님! 역시, 만만치는 않군요?”

역시나 장현수의 전화였다.

“장현수 씨?”

“우리 검사님, 발악도 할 줄 알고 대단하시네. 한상길이 똥구멍이나 빨아주는 똥개 새끼인 줄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구르는 재주가 있어? 특본은 예상 밖인데, 아주 칭찬해!”

장현수가 손뼉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일단 자수하세요. 장현수 씨!”

“자수요? 지난번에 한 번 했잖아요? 또 합니까. 왜요, 날 못 잡겠어요?”

“이미, 출국금지에 수배령이 떨어졌고 당신의 협의를 입증할 모든 것을 갖춘 상태입니다. 시간 끌수록 당신에게 불리해집니다.”

“어휴, 별걸 다 하셨네. 그나저나 어쩌지? 난 한국을 나갈 생각이 없는데? 쓸데없는 짓을 하셨네.”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였다.

“다시 경고합니다. 어차피 버텨봤자 당신의 죄만 가중될 뿐입니다. 자수하세요. 장현수 씨!”

“아니,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섭섭하지. 당신이 이렇게 멀쩡한데 내가 어떻게 들어가? 개새끼 한 마리가 남았는데 그건 처리해야지.”

“장현수! 잘 들어! 난 절대 한상길이 시킨 짓을 하지 않았어! 당신 아버지 회사 압수수색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 난 그 사건에서 완전히 빠졌었다고! 당신 아버지 죽음과 난 관련이 없어.”

“크크크,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하고 다니면서 너무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아냐? 변명해도 그럴싸하게 해야지. 그 말을 누가 믿겠니?”

“…….”

“아무튼, 내기 한번 해 보자고! 당신 목이 먼저 따이나 내가 먼저 잡히나?”

“…….”

“여보세요? 말이 없어졌네? 우리 검사님 긴장하셨구나? 아무튼, 밤길 조심하시고 다음에 또 보십시다. 그때는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거예요. 참, 비도 많이 오는데 우산 잘 챙겨 가시고!”

뚜뚜뚜뚜.

“장현수! 장현수!”

장현수가 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깐! 뭐? 비?

창밖을 내다보니 유리창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위층에서 건물을 청소하던 청소부가 유리를 닦으면서 떨어뜨린 물이었다. 분명,

장현수는 내 사무실을 엿보고 있었던가? 어이없군…… 장현수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어!

제길, 나는 고개를 들어 구석에 박혀 반짝거리는 CCTV를 올려다 보았다.

며칠 후,

<특본, 김정환 본부장실>.

지상태의 여자친구, 박지은 사고를 재조사한 강상중 팀장이 보고서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본부장님, 당시 사고를 수사했던 남부 경찰서 이상순 형사를 만나고 왔는데, 뭔가 미심쩍은 게 있더군요.”

강상중 팀장이 책상 위에 당시 수사 자료를 올려놓았다.

“그게 뭔가요?”

“박지은이 사고를 당한 지점이 신문사 인근이었다고 합니다.”

“신문사요?”

“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박지은 시체 부검 보고서를 보니, 성폭행 흔적이 있었다는군요.”

“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성폭행이라뇨?”

“게다가, 임신 중이었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임신이오? 설마, 지상태의 아이였습니까?”

“네에. 아무래도 상태 아이였던 것 같아요. 녀석이 그렇게 미쳐 날뛸만 했더군요.”

강상중 팀장이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음…… 그리고 또 하나, 당시 사망한 박지은이 소지하고 있던 USB가 있었는데, 그건 확인도 하기 전에 사라졌답니다.”

“네?”

성폭행 흔적에…… 지상태의 아이까지!

신문사로 가던 도중 뺑소니 사고로 사망, 게다가 박지은이 소지하고 있었던 USB라면…… 박지은은 신문사에 무언가 알리고 싶었던 거야! 그런 박지은이 뺑소니를 당했다면 범인은 그 USB가 절대로 공개되면 안 되는 사람이겠지!

“팀장님!”

“본부장님!”

강상중 팀장과 내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먼저 말씀하시죠!”

나는 강상중 팀장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네. 본부장님, 아마도 우리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만약에 박지은이 소지하고 있었던 USB와 그녀의 몸에 남은 성폭행 흔적이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면?”

강상중 팀장이 코끝을 매만지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분명, 박지은의 성폭행 흔적과 김덕한 의원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본부장님 말씀대로 김덕한 의원을 직접 살해한 사람이 장현수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지금으로써는 그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지상태! 내가 상태 입장이었어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만약에 박지은의 죽음이 김덕한 의원과 연관이 있다면 충분한 살해 동기가 될 테니까요!”

“네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죠. 일단 김덕한 사망 일, 지상태의 알리바이를 조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특본에 설치된 CCTV 모두 철거해주시고 지금부터 모든 보고는 팀장님이 직접 저에게 해주십시오. 지금부터는 절대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면 안 됩니다.”

“네? 그,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특본에 스파이가 있다는 말씀같이 들리는데요?”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럼, 당장 그 쥐새끼 같은 놈을 색출해야죠!”

흥분한 강상중 팀장이 발끈했다.

“아뇨. 일단 모른 척해주세요.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강상중 팀장의 팔을 잡아끌며 진정시켰다.

“쥐새끼를 잡으려면 몽둥이를 들고 설칠 게 아니라 먹음직스러운 쥐약을 놓아야지요.”

“쥐약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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