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164화] 반격(反擊) (2)
박엔정 박 회장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에 검찰과 경찰의 합동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반신반의했지만 그건 박 회장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기우에 불가했다. 결국, 그의 말 한마디에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인력들을 모두 차출할 수 있었다. 검찰의 박인수 검사, 광역 수사대의 강상중 검사가 특본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능력이었다. 박 회장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김 변, 다시 검사가 된 소회가 어떤가?”
박 회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음, 글쎄요. 다시 검찰로 돌아간 건 아니지만 아무튼, 감개무량합니다.”
“일렁거리는 자네 눈빛을 보면 느낄 수 있다네. 내가 보기엔 자네는 역시, 검사가 천직이야. 아무튼, 이 모든 것은 자네가 결정한 일이니 책임은 자네한테 있는 거야. 내가 난생처음으로 검찰총장한테 부탁을 다 했다고. 그러니까 그 점 명심하라고!”
하하하, 박 회장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검찰의 수장인 총장을 움직일 정도의 엄청난 영향력!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대통령도 쉽지 않은 일이야.
인자한 웃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움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회장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본, 회의실>.
“김 변호사님, 아니지…… 김 본부장님! 검찰로의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평소에도 본부장님과 함께 일해보고 싶어서, 제안이 왔을 때 냉큼 물어버렸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네.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박 검사님과 함께 일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나는 반가워하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네네. 저도 검…… 사…… 님, 아니지, 주둥이가 습관이 돼서, 헤헤. 본부장님이죠.”
강상중 팀장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냥,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네네, 제가 이렇게 말을 더듬는 것을 보면 본부장님은 검사가 천직이십니다. 역시, 본부장님은 나쁜 놈들 때려잡는 게 천직이세요. 왕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강상중 팀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왕은 무슨요. 아닙니다. 제가 다시 검찰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에 한정해서 임시로 특본 본부장을 맡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가고 싶다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검찰이 아닙니다.”
“이런들 저런들 어떻겠습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죠. 변호사님이시든, 검사님이시든 나쁜 놈들 감방에 처넣으면 다 검사인 거죠.”
아차, 강상중 팀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열심히 해봅시다.”
“그러면, 지금부터 검… 아니지, 본부장님도 오셨으니 신명 나게 일해볼까요?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지난번 사이코패스 새끼 처넣을 때보다 더 떨리는데요?”
아차, 강상중 팀장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두드리며 눈을 빛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전략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박인수 검사나 강상중 팀장이나 하나같았다. 그들이 의욕에 찬 눈빛으로 상황판을 주시했다.
“그러면, 장현수에 대한 브리핑을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장현수는 대구 출신으로…….”
나는 장현수의 개인 프로필 설명을 시작으로 그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음, 역시 비명횡사한 자기 아버지에 대한 복수극이군요.”
강상중 팀장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하지만 단순한 복수극은 절대 아닙니다. 오로지 자기 아버지에 대한 복수만을 염두에 두며 철저히 자신을 위장했어요. 10여 년간 철저한 각본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또한,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상당히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입니다.”
“음, 그렇군요.”
박인수 검사가 상황판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현수는 김덕한 의원의 수족으로 그가 어려울 때 그의 옆에서 손수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능력을 인정받았죠. 헌신적인 그의 보좌 덕에 김덕한 의원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냈습니다.”
“역시, 복수심이란 무서운 거군요.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원수 밑에서 그를 도우면서 지내올 수 있었을까요?”
후, 강상중 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하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병을 얻어 세상을 떴으니 자식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죠.”
박인수 검사가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박 검사님의 말처럼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가 정당화될 순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를 검거해야 합니다. 그를 검거해 모든 죄를 밝히고 그를 돕는 배후까지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그것이 이렇게 어렵게 특본이 꾸려진 이유이기도 하죠.”
어쩌면, 장현수 보다 그의 배후를 밝혀내라는 것이 박 회장의 의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신장수도 그렇고 김덕한 의원, 거기에 한상길까지, 장현수가 아무리 똑똑한 놈이라고 해도 쉽게 그들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본부장님의 말씀처럼 분명, 그를 돕는 조력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강상중 팀장이 수사자료를 들척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맞습니다. 팀장님이 제대로 보셨어요. 이번 사건은 분명, 장현수가 사건의 직접적인 용의자지만 그를 잡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단순한 사건은 아닙니다. 장현수는 신장수의 모든 스케줄을 꿰고 있었고, 김덕한 의원을 손쉽게 지방의 모텔로 불러들일 정도면 뭔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장현수의 프로필을 뒤적이며 천천히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죠! 김덕한 의원이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로 부상한 시점이니 그를 견제하려는 세력들이 있었을 겁니다. 결국, 그의 약점은 분명 그의 정적들에겐 훌륭한 먹잇감이었을 겁니다. 장현수가 그것을 모를 리 없겠죠. 그걸 이용해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미간을 좁히며 눈을 빛냈다.
“검사님이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김덕한을 중심으로 그의 정적들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겁니다. 게다가, 장현수는 한상길의 가석방 정보에 그의 동선까지 모든 것을 사전에 완벽히 알고 있었어요. 분명, 그를 돕고 있는 조력자들이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혐의가 없다 해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한 사람을 그렇게 쉽게 풀어 주다뇨?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도 그 점이 아주 찜찜했거든요.”
강상중 팀장이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네. 제 생각에도 이번 장현수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엮여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우리는 엄청난 난관에 맞닥뜨리게 될지 모릅니다. 모두들 긴장들 해주십시오.”
“…….”
박 검사와 강상중 팀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일단, 박 검사님은 검찰 쪽과 정관계 쪽에 장현수와 연결고리가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주세요. 아마도, 김덕한 의원 주변을 집중적으로 파보면 뭔가 나와도 나올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필요한 자료는 준비해 뒀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현수가 일련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분명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을 겁니다. 강상중 팀장님은 이 엄청난 자금이 장현수 쪽으로 어떻게 흘러들어갔는지 살펴봐주세요. 일단, 장현수 계좌부터 압수수색해 확인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나저나 이렇게 치밀하게 모든 것을 처리한 장현수가 섣불리 흔적을 남겼을까요? 아무리 계좌를 파봐야 영양가가 없을 것 같은데요?”
흐음, 강상중 팀장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코끝을 찡그렸다.
“네. 물론 계좌 정보에서 직접적인 단서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장현수가 치밀하게 처리를 해뒀을 테니까요. 다만, 장현수 소유의 계좌를 파보면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나올 겁니다. 우리 수사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단 돈 10원이라도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장현수에게 전달된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조사해 둬야 할 겁니다.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해도 분명 장현수가 간과한 부분이 있을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장현수 이 새끼는 지금 어디 있을까요? 이미, 경찰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성북동 장현수의 은신처는 이미 정리해 버렸더라고요. 요즘은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도 하지 않고 있어요.”
“당연하겠죠. 사전에 정보가 새어나갔을 가능성이 급니다. 일단, 이번 특본의 1차 목표는 장현수부터 검거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 집중해주세요.”
“네. 가용 가능한 병력을 동원해 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다만, 경찰 쪽에서도 그를 돕는 조력자가 있을 겁니다. 가능하시면 팀장님이 믿을 수 있는 정예요원을 선별하셔야 할 겁니다.”
“흐음, 네. 알겠습니다. 저도 경찰이지만 이런 소리 들을 때마다 쪽팔려 죽겠습니다. 썩어빠진 윗선부터 싹다 물갈이를 해야 경찰이 새롭게 태어날텐데…….”
에이 씨, 강상중 팀장이 인상을 구기며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번 사건은 유력 정치인에 대기업 대표 그리고 전직 검사가 모두 살해된 사건이에요. 단순히 장현수의 복수극이 아닙니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반사 이익을 보는 사람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셔야 할 겁니다. 생각보다 거대한 적들과 싸워야 할 거예요.”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박인수 검사와 강상중 팀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특본, 본부장실>.
장현수는 도대체 어디로 잠적한 걸까?
그는 임시 특본이 꾸려진 정보까지 사전에 입수할 수 있었어! 그렇다면 검찰 수뇌부가 됐든, 경찰 본부가 됐든 장현수와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는 건데…….
빙그르르, 나는 눈을 감은 채, 의자를 한 바퀴 돌려보았다.
지이이잉.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귓전을 때리는 묵직한 목소리, 킹 메이킹 시스템이었다. 내 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물론이야. 힌트권을 보여줘.”
[30포인트를 차감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Y/N]
“당연하지!”
나는 미련 없이 상태창의 YES 버튼을 터치했다.
“힌트권을 보여줘!”
[힌트권을 제시합니다. 장소 힌트권, 인물 힌트권, 상황 힌트권…….]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나의 명령에 따라 상태창의 여러 개의 힌트권을 배열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힌트권이라면, 장소 힌트권인데…….
“당연히, 상세 힌트를 받으려면 단계별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렇다면 장소 힌트권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장소 힌트권이 아니라면…….
일단 장현수를 돕고 있는 조력자가 누군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인물 힌트권이 가장 유용하겠군!
지상태!
인물 힌트권을 터치하자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한 장의 남자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 지상태였다. 경찰대학 출신으로 탁월한 능력으로 고속 승진해 최단기에 수사과장으로 임명된 엘리트 오브 엘리트 경찰이었다.
이 사람이 장현수와 연관되어 있다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