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163화] 반격(反擊) (1)
“이미, 한상길이가 골로 간 건 아실 테고 이제 남은 건 한 사람뿐인데…… 그 사람은 어떻게 조져 주는 게 좋을지 모르겠네. 흐흐흐.”
소름 끼치도록 음산한 웃음소리였다.
“네? 뭐, 뭐라고요?”
“뭘, 그렇게 시치미를 떼시나. 다 알고 있으면서! 안 그래요. 김정환 씨?”
“제가 알긴 뭘 안다는 겁니까? 장현수 씨 거기 어딥니까?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우리가 무슨 할 얘기가 있을까 싶군요. 변호사님은 제 변호도 거부하셨잖아요. 그런 사람이랑 내가 무슨 말을 해?”
“아무튼, 일단 만납시다. 만나서 얘기해요.”
“그래요? 뭐, 그거야 어려울 거야 없지만…… 근데, 제가 변호사님을 어떻게 믿죠? 한상길이 똥구멍이나 핥아대던 사람을?”
쿵, 역시 나한테 접근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군.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에이, 자꾸 그렇게 모른 척하시면 내가 섭섭하죠. 한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유린하신 분이 너무 뻔뻔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한상길을 죽인 거지?”
“왜요? 유도 신문이라도 해서 녹음이라도 하시게?”
“…….”
“음,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네. 기생충처럼 권력에 빌붙어 아부하며 힘없는 사람들 피 빨아먹던 당신을 정의로운 검사다, 인권 변호사다 하면서 떠받들어 모시는 꼴이라니. 한심한 것들!”
끌끌끌, 장현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장현수 씨, 일단 만납시다. 지금 당신은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더 법을…….”
“지, 지금 죄라고 했어? 당신들이 했던 짓은 그럼 뭐야? 한 사람을 무참히 짓밟은 건 죄가 안 된다는 건가? 법은 항상 당신들 같은 쓰레기들의 편이었어. 힘없고 빽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법은 항상 가혹했지. 법은 항상 너희들의 편이야. 어떡해? 법이 하지 못한다면 내가 심판을 내려야 하는 것 아냐? 더러운 비리 검사 양반?”
수화기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거친 목소리였다.
흐음, 모든 것을 알고 있는구나!
“장현수 씨, 내가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습니다. 진정하시고…….”
“얘기? 무슨 얘기? 미안한데, 난 당신한테 할 말이 전혀 없어. 잘 들어. 비리검사 양반!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난 너한테 내가 당했던 것과 똑같이 갚아줄 생각이야. 아니, 더욱더 비참하게 해주겠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야? 지옥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줄 테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뚜뚜뚜뚜, 소리쳐 봤지만 이미 전화가 끊어진 상태였다.
제길, 이제 어쩔 수 없다! 최대한 피해를 막아보려고 했는데 이제, 더는 안 되겠어. 놈을 잡아야겠다!
띠리리링.
나는 급히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변? 무슨 일인가?”
“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긴히 상의 드릴 일이 있습니다. 제가 좀 찾아봬도 될까요?”
“음, 김 변이 찾는다는데 내가 뭘 망설이겠나. 당연히 찾아와도 좋지!”
“네. 알겠습니다. 지금 로펌으로 가겠습니다.”
“아냐, 아냐. 그럴 필요 없고 집으로 오게. 오래간만에 같이 식사나 하세.”
“네. 그럼, 지금 댁으로 가겠습니다.”
* * *
<박 회장의 자택>.
“부탁이 있습니다. 회장님!”
식사를 마친 후, 박 회장에게 물었다.
“부탁?”
“네. 회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꼭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뭐든, 말씀해보시게. 김 변 부탁이라면 내가 하늘에 별도 따다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정색을 하니 더욱더 궁금해지는구먼.”
박 회장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환하게 웃었다.
“음…… 아무래도…….”
성한수, 김덕한 의원, 최근, 한상길의 죽음까지 모든 사건이 장현수와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이들 모두 장현수의 부친, 장충석의 죽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부연했다.
“흠… 그러니까 자네 말은 검찰에 특별 수사본부를 만들어 달라는 건가? 그리고 자네를 수사본부에 투입해 달라는 거고?”
박 화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건가요?”
박 회장의 표정이 굳어있는 듯했다.
“허허허, 잘 아는구먼. 난, 대통령이 아니니까 말일세. 하긴, 대통령이라도 이런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박 회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허허허, 내가 어디 못 한다고 했던가? 뭔 사람이 이렇게 성질이 급한가?”
“네?”
“흠, 대통령은 못 할지 몰라도 나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자네가 부탁하는 일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준다 안 했던가? 난 빈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네.”
“…….”
“그에 비하면, 이건 훨씬 수월할 것 같은데 말이야. 안 그런가? 김 변!”
“그, 그럼 가능하단 말씀입니까?”
“어디 내가 한번 힘 좀 써봄세. 유력한 대권 후보가 살해당한 일이야. 게다가 부장검사 출신이 변사체로 발견됐고, 충분히 특본을 꾸릴만한 명분은 가질 수 있단 말이지. 일단, 검경으로 수사팀을 꾸리면 그 자체로 기소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써봄세. 그러면, 훨씬, 자네가 수사하는 데 훨씬 수월하겠지.”
박 회장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가 자네한테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순간, 박 회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자네. 장현수한테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 겐가? 그자를 꼭 잡아야 할 이유가 있나?”
“…….”
“말하기 곤란한가?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네. 그렇게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니까.”
박 회장이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아닙니다. 회장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한상길 부장의 부하 검사로 있을 때 제가 한상길 부장의 지시로 진한 제약 압수수색을 지휘했습니다. 결국, 장충석의 아들인 장현수가…….”
나는 한상길과 김정환과의 모든 관계를 박 회장에게 털어놓았다.
“음, 그런 일이 있었나?”
박 회장이 미동도 없이 마저 차를 마셨다.
뭐지. 저 반응은?
의외로 박 회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서, 설마 이것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내가 좀 놀라는 표정이라도 지을 걸 그랬나?”
후후후, 박 회장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웃었다. 마치 박 회장이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네. 그게!”
당황한 나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 과거의 일이 아닌가? 살면서 그만한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난 젊었을 때, 사람을 두 명이나 죽인 살인범도 무죄로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네. 그런 면에서 자네 일은 아무것도 아냐. 결국,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흐음, 박 회장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박 회장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구나!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소름 끼치도록 그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네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하하, 너무 맘에 두지 말게나. 다 지난 일이야. 지난 일!”
“아, 알겠습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오늘 검찰총장하고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던 걸 깜빡 잊었구먼. 이거, 귀한 손님을 모셔놓고 대접도 제대로 못 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아닙니다. 회장님. 전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되겠나? 음, 자네 부탁은 내, 오늘 박 총장 만나면 넌지시 부탁해보도록 하겠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가능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습니다.”
“알았네. 알았어! 내가 오늘 박 총장이랑 담판을 지어봄세. 성질 하곤! 급한 건 누굴 닮았나 모르겠구먼.”
허허허, 박 회장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 * *
<장 검의 집>.
놈 역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어.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르는 인간이다. 어쩌면 장 검이 위험할 수 있어. 일단, 장 검부터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
나는 직감적으로 장 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영은아! 나야. 집 앞이니까 잠깐만 밖으로 나올래?”
나는 급히 장 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지금 집 앞이라고요? 설마,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닐 거고?”
“아냐. 갑자기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달려왔어. 지금 나올 수 있지?”
“정말요? 오늘 제 생일이에요? 어… 아닌데. 아무튼, 살다 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네요. 잠시만요. 바로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장 검이 내려왔고 우리는 근처 놀이터로 장소를 옮겼다.
“선배님, 진짜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믿을 수가 없어요!”
장 검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어…… 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할 얘기도 있고 해서…….”
“음 그럼 그렇지! 어쩐지. 웬일로 우리 집을 찾아왔나 했네. 말씀해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장 검이 실망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아냐, 아냐. 네가 보고 싶어서 온 거 맞아!”
“입에 침이나 바르면서 그런 말 하세요.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빨리, 용건이나 말씀해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그, 그래. 그럼 말할게. 실은 말이야…….”
나는 박 회장과 나눈 대화를 장 검에게 모두 말해 주었다.
“흐음, 그러니까 장현수를 잡기 위해 특별 수사본부를 꾸린다는 거죠?”
장 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래. 정황상, 장현수 혼자 저지른 짓이 아니야. 분명, 그를 돕는 조력자들이 있다고! 장현수만 잡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야. 어쩌면 장현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일 수 있어.”
“그러니까, 결국 나도 위험하다는 거네요?”
너무나 눈치 빠른 그녀였다. 장 검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나보고 어디 안전한 데 가서 숨어 있어라? 뭐, 그런 건가요?”
장 검이 말허리를 자르며 끼어들었다.
“어? 어…….”
“음, 지금 그러니까 선배님이 내 걱정을 해서 이러는 거다. 뭐 이렇게 해석이 되나요?”
장 검이 몸을 움직여 내 쪽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어! 어! 당연하지. 장 검이 걱정되니까 이러는 거지. 물론!”
“음, 그럼 사랑해! 해봐요.”
장 검이 내 손을 살포시 잡으며 말했다.
“어?”
“뭐가 ‘어’예요. 사랑해! 해보라니까요?”
장 검이 더욱더 내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 사… 사랑해!”
“후후, 그럼 됐어요. 일본에 고모가 살아요. 고모 못 본 지도 꽤 오래됐는데 이참에 고모나 보러 다녀와야겠네요.”
“정말? 진짜지?”
“네네. 사랑하는 사람 부탁인데, 뭐, 그 정도도 못 들어 드릴까!”
달빛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이 나는 장 검의 보조개는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웠다. 나는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 * *
<법무법인, 정은>.
띠리리링.
며칠 뒤, 박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변, 아무래도 일이 잘된 듯한데?”
“네? 정말입니까?”
“허허허, 그렇게도 좋은가? 자…… 이제부터 다시, 김 변이 검사가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