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162화] 복수(復讐) (2)
“장현수가 무혐의로 풀려났다고요?”
“네. 경찰서에 확인해본 겁니다.”
미치겠네? 그 폭탄 같은 인간을 풀어주면 어쩌자는 거야?
“제길, 장현수를 풀어주면 어떡합니까?”
“제, 제가 안 그랬어요?”
공 수사관이 손사래를 치며 정색했다.
“후,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그러면 한상길이 위험합니다. 사무장님, 경찰서에 연락하셔서 한상길 신변 보호 요청하시고요. 장현수는 감시 붙여달라고 하세요. 급해요!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점점 마음이 급해져 갔다.
“워워. 변호사님, 그렇게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 들어보세요. 지금 변호사님은 현직 검사가 아니십니다. 우리는 수사권이 없다고요. 그러니 당연히 한상길의 신변도 보호할 수 없고, 장현수 미행도 못 붙입니다. 따라서 지금 말씀은 불가하시다 이겁니다!”
공 수사관이 손바닥을 내보이며 나를 진정시켰다.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무장님께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까? 일단, 광수대 강상중 팀장한테 연락을 해보세요. 제가 부탁한 일이라고 말씀드리면 도와줄 겁니다.”
“아! 강상중 팀장! 그거 묘수네요. 그러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공 수사관이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움직이세요.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장현수 그 인간,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네. 바로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리고 당분간 이 일은 장 변한테는 비밀입니다. 이모님 그렇게 가시고 아직 맘 정리가 안 됐을 거예요.”
“얼, 엄청나게 챙기시는군요. 이거 이거, 곧 국수 먹는 것 아닙니까?”
공 수사관이 가자미눈을 뜨며 느물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고요. 강 팀장한테 연락이나 해보세요. 전 양평 경찰서로 가서 어떤 사유로 장현수가 풀려난 건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진짜, 한상길이 위험합니다. 서두르셔야 해요!”
“네네. 알겠습니다.”
한상길 출소에 맞춰 장현수 석방이라…… 점점 사건이 심각해지는군!
나는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며 양평으로 향했다.
<양평 경찰서>.
한 시간여 남짓 달려서 양평 경찰서에 도착해 담당 형사인 박 형사를 만났다.
“흠, 장현수가 무혐의로 풀려났다면서요? 그게 말이 됩니까? 장현수는 이번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예요.”
“네. 증거 불충분에 결정적으로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있더라고요. 그나저나, 변호사님이 장현수 변호를 하신다고 했던 것 아닙니까? 근데 지금 왜 이러시는 겁니까?”
박 형사가 까칠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지금 알리바이라고 했나요? 어떤 알리바이가 있던가요?”
“이상하네, 아무튼, 국과수 보고서를 보면 김덕한 의원의 사망 추정 시각은 대략 새벽 1시! 그런데 그 시간에 장현수는 서울에 있었어요. 물론, 서울에서 그를 봤다는 증인도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증인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공범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나는 눈매를 좁히며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이보세요. 변호사님!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변호사님이 이러는 건 오버예요. 이건 너무 월권 아닙니까?”
박 형사가 기분이 나쁜 듯, 몸을 비스듬히 돌려 앉았다.
“형사님, 사건 현장에 가서 확인한 건데, 분명 면식범이 틀림없었어요. 분명, 장현수가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장현수 이대로 놔두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요. 반드시, 사람을 붙여주셔야 합니다.”
“헐, 이 변호사님, 아직도 검사인 줄 아나 보네. 네네! 면식범. 알겠습니다. 다, 알겠으니까 그만 돌아가 주세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시지 마시고요.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박 형사가 일어나 나를 떠밀듯이 밀어버렸다.
* *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수사대>.
마음이 급해진 나는 해결책을 찾으러 강상중 팀장을 만나기 위해 광역 수사대를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김 변호사님!”
강상중 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았다.
“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공 사무관님한테 연락은 받았습니다.”
“네. 한상길 쪽에 사람은 붙여주셨습니까?”
“그, 그게…….”
강상중 팀장이 이마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흠, 며칠 전에 한상길이 출소했다는 것은 아실 테고, 근데 어이없게도 출소한 날, 그날 저녁에 지인을 만나러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지금은 연락 두절 상태예요.”
“네? 연락 두절이요?”
“네. 저희도 알아보곤 있지만, 아직은 소식이 없네요.”
자, 장현수가 벌써 손을 쓴 건가?
“그러면 장현수는요?”
“흠, 역시 변호사님 말대로 사람을 붙여두긴 했는데,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거의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것 같아요.”
두문불출? 그렇다면, 뭔가 조력자가 있다는 소린데…….
“후, 일단 장현수 마킹은 당분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변호사님의 부탁이니 최대한 들어는 드리는데, 우리 쪽 인력도 그렇게 여유로운 편은 아니라서 애들을 장기간 박아두는 것은 힘들 듯합니다. 그리고 한상길 실종 건도 정식 신고가 들어오면 최선은 다해 보겠지만 관할 경찰서에서 처리할 일이라 저희로선 쉽지가 않네요. 죄송합니다.”
강상중 팀장이 이마를 문지르며 난감해 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형편이 허락하는 만큼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장현수는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제가 양평 경찰서 쪽에 확인해보니, 딱히 혐의점이 없는 듯 보이고 게다가 한상길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강상중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길게 말씀드리긴 어렵고요. 아무튼, 장현수 이 사람, 굉장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김덕한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기도 하고요.”
“흠, 제가 보기엔 별거 없어 보이지만,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여건이 허락되는 한 신경 쓰고 마킹 하겠습니다. 그리고 관할 경찰서 쪽에도 공문을 보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흠, 그나저나 양평 쪽도 골치가 아픈가 봅니다. 김덕한 의원 살인사건도 점점 미궁에 빠지는 듯해요. 증거도 없고 증인도 나타나지 않아서 애를 먹는 모양이더라고요.”
“네.”
<법무법인, 정은>.
그 이후로 며칠이 더 지났지만, 한상길은 나타나지 않았고 장현수는 여전히 자신의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가끔, 편의점이나 약국을 찾았을 뿐 그는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벼, 변호사님, 큰일 났습니다.”
공 수사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나는 직감적으로 한상길을 떠올렸다.
“한상길이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와! 이 인간 결국 이렇게 영화처럼 가는구먼.”
공 수사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확실합니까?”
이미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니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네. 당연하죠. 낚시꾼의 신고로 한탄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어요. 경찰 쪽에서 비공개 수사를 하려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기자들이 가만두지 않을 듯싶습니다. 곧, 언론에 공개될 것 같아요.”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건가?
“사인은 뭡니까?”
“흐흠, 부검을 해봐야 확실한 사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목 쪽에 삭흔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같아요. 죽은 후에 강에 버려진 것 같습니다.”
“증거는요? 뭐 좀 나온 게 있습니까?”
“흠, 증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게 담당 형사 말이에요. 아무것도 못 건진 듯싶어요. 그나저나, 변호사님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네요. 분명, 장현수와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 새끼, 이거 완전 범죄의 신이네.”
공 수사관이 혀를 내두르며 진저리를 쳤다.
결국, 일이 이렇게 돼버렸군. 결국, 이제 남은 김정환, 아니 나뿐인가?
어느새,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
“변호사님, 뭘 그렇게 골몰히 생각하세요.”
아무 말 없이 먼 산을 쳐다보자 공 수사관이 내 팔을 흔들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 쪽의 반응은 어떤가요? 김덕한 사건과 연속 선상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습니까?”
“아뇨. 절대 그럴 리가 없죠. 아무래도, 한상길 사건은 금전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요. 한상길이 순천 때부터 워낙 비리가 많았잖습니까? 조폭이랑 연루되기도 하고 사채업자 기타 등등 쓰레기 같은 인간하고 어울려 다니더구먼…… 결국, 이렇게 가네. 아무튼, 금전 관계가 굉장히 복잡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 점에 초점을 맞춘 듯해요. 경찰은 김덕한 건과는 완전 별개의 건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어이없군요. 장현수의 과거사를 캐보면 분명 연결고리가 보일 텐데, 왜 그러는 걸까요?”
“그게, 일단 장현수가 무혐의로 풀려나는 바람에 쉽지 않을 겁니다. 흠, 그럼, 일단 우리가 조사한 자료를 저쪽에 넘겨볼까요?”
넘겨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놈의 타깃은 이제 저니까요…… 게다가 경찰이 우리 말을 믿을 리가 없죠.
“아마 소용이 없을 겁니다. 자료를 넘긴다 해도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예요. 초점을 다른 데다 두고 있는 경찰이 쉽게 이쪽에 인력을 투입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경찰 쪽에서 우리 쪽 자료를 신뢰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으음, 그럴 수도 있긴 하겠네요. 그나저나, 변호사님, 솔직히 한상길 저렇게 간 건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 인간, 못된 짓만 골라 하다가 천벌 받은 거 같은데, 그냥 이쯤에서 우리도 관심 끄죠? 나머진, 경찰에서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전, 변호사님이 왜 장현수에게 이렇게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어요.”
“…….”
“변호사님! 요즘 사건 의뢰도 미어터지는데 변호사님이 혼자 다 맡기에는 역부족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영양가 없는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그리고 수습 변호사들 면접도 봐야 하는데, 변호사님이 이러고 계시니 나, 참나!”
공 수사관이 답답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띠리리링.
그 순간, 울리는 전화벨 소리. 장현수의 전화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무장님, 잠시만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볼일은 보셔야지. 다녀오세요.”
공 수사관이 손을 휘저었다.
나는 대충 둘러대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여보세요. 김정환입니다. 누구십니까?”
나는 황급히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김정환 변호사님? 저 장현수입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장현수의 전화였다.
“네. 김정환입니다.”
“이미, 한상길 골로 간 건 아실 테고 이제 남은 건 한 사람뿐인데…….”
“네? 뭐, 뭐라고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