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160화] 의문(疑問) (2)
지이이잉.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소파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 장엄하게 고막을 뒤흔드는 소리. 킹 메이킹 시스템이었다.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음, 킹 메이킹 시스템이 가동한 것을 보면 확실히 뭔가 있긴 있나 보군!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힌트권 사용!”
나는 YES 버튼을 터치했다.
[포인트 30을 차감합니다.]
곧이어 재생되는 동영상에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 * *
<장례식장>.
“안 돼! 안 돼! 현수 아버지! 이렇게 가는 게 어딨어! 난, 절대 당신 이렇게 못 보내!”
상복을 입은 한 여자가 입관하려는 장의사의 팔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며칠은 잠을 자지 못한 듯 보였다. 그녀는 죽은 이의 아내, 정숙이었다.
“애미야, 이제 현수 애비는 그만 놔주자. 네가 자꾸 이러면 현수 아비 저승길, 발걸음이 떨어지겠니! 애미야!”
그녀의 시어머니로 보이는 노파가 그녀의 몸을 잡아당겼다. 그녀 역시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 저는 억울해서 현수 아버지 이렇게 못 보내요. 절대로 못 보내요. 현수 아버지는 세상에 법 없어도 살 사람이에요. 어머니!”
정숙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어미야. 저 어린 것을 생각해서라도 정신 줄 놓지 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효막심한 놈, 그런 놈한테 무슨 미련이 남아서…….”
흑흑흑, 노파 역시 그녀와 몸을 포개며 흐느꼈다.
그 순간,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아이, 그는 어린 장현수였다. 장현수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여기까지가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이었다.
* * *
“현…… 현수? 그럼, 지금 저 아이가 장현수란 말이야?”
나는 킹 메이킹 시스템에게 확인차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장현수가 맞는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흠, 그렇다면 장현수의 아버지가 자살한 건가?”
[네.]
“그가 자살한 이유는 뭐지? 이유를 말해줘!”
[…….]
“뭐야? 말 못 하겠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역시,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미션을 제시할까요?]
“흐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잠시 망설였지만,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 그리고 사건 정황을 볼 때 나는 직감적으로 범인으로 장현수를 떠올렸다.
분명, 이 사건은 장현수와 깊은 관계가 있어! 아무래도 이 사건은 맡지 않는 것이 좋겠어!
나는 이쯤 해서 빠져야 할 것만 같았다.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 * *
며칠 후,
<박엔정, 박 회장 집무실>.
오랜만에 박 회장이 나를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했다.
“어서 오게. 김 변!”
박 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 회장님.”
나는 허리를 숙여 공손히 그에게 인사했다.
“앉지! 그나저나, 우리 김 변 얼굴이 핼쑥한데, 무슨 일 있는 게야?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박 회장이 소파에 앉으며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아닙니다. 요즘, 무리를 좀 했더니 좀 피곤했나 봅니다.”
얼굴을 만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까칠했다.
“이런, 이런,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 몸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무리하면 쓰나…… 내가 보약이라도 한 재 해줄까?”
박 회장이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아뇨,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허허허, 사람 하곤, 그런가? 하긴, 강철도 씹어먹을 나이니 그렇기도 하겠구먼.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도 챙기도록 해. 몸이 건강해야 큰일도 할 것 아닌가?”
박 회장이 검지를 흔들며 나를 가리켰다.
“네에.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듣자 하니 장현수가 변호인으로 자네를 지목했다면서?”
박 회장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허허허, 여기 앉아있으면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얘기가 들려온다네. 우리 김 변과 관련된 일인데 내가 모른 척하면 안 되지.”
하긴, 천하의 박엔정 회장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네. 하지만, 의뢰를 맡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
“네? 왜, 왜라뇨?”
박 회장의 의외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나? 당연히 변호사야 의뢰인이 요청하면 그가 누구든지 당연히 수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죄를 지은 사람도 변호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야.”
허허허, 박 회장이 다리를 꼰 채, 너털거렸다.
“음,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마음이 가질 않습니다. 현장에도 가보고 자료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니 지금까진 장현수가 유력한 용의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음, 그렇군. 그렇다면 자네 말은 유죄일 확률이 높은 의뢰인의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건가?”
“네. 저는 법을 어긴 사람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지, 범법자를 옹호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 판단은 장현수가 범인입니다. 모든 것은 검찰이 알아서 하겠죠. 제가 할 일은 없는 듯합니다.”
“음…… 그렇군! 자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
흐음, 박 회장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자넨 김덕한 의원이 왜 죽었다고 생각하나?”
박 회장이 뜬금없이 김덕한 의원 얘기를 꺼냈다.
“흠, 글쎄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원, 사람 하곤.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
“자네는 김덕한 의원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세간에 떠도는 말처럼 청렴결백한 이 시대의 참 정치인인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최고의 리더라 생각하나?”
박 회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가르쳐 주지. 한 20년 전쯤이던가? 김덕한 의원이 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내가 그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었다네. 모두 나를 말렸어. 한데, 모두 말리던 그 사건을 왜 맡았는지 아나?”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김덕한 의원의 눈빛이 지금의 자네와 같았다네. 한 마리 초원의 늑대와도 같았지. 살아서 펄떡이는 눈빛이 인상적이었어. 난 그 눈빛이 참으로 맘에 들었다네. 그래서 내가 김 의원의 변호를 맡은 거야. 난 재판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김 의원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
박 회장이 천정을 올려다보며 당시를 회상했다.
“음, 그러셨군요.”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몸이 박 회장 쪽으로 쏠렸다.
“후후후, 이제 좀 관심이 생기나 보는군. 좀 더 얘기해줄까?”
박 회장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음, 그래서 그 이후에 김 의원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재판은 워낙 전설적인 재판이라 저도 그 판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보안법 위반 사범을 무죄로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박 회장은 그 사건에 승소하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내 실수야. 지금까지도 내가 70 평생을 살면서 단 하나 실수를 꼽으라면 바로 그 재판이네.”
창밖으로 내다보는 박 회장의 눈빛이 흐려졌다.
“실수라뇨? 그 이후로 김덕한 의원은 승승장구했고 진보진영의 대표주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인사가 됐어요. 게다가, 그렇게 비명에 가지만 않았어도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데요.”
“그러니까, 실수라는 거야. 인간이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결국, 그 달콤함이 독이 되어 자기 살을 갉아 먹게 되는 거야. 알래스카의 늑대가 피가 묻은 칼을 빨다 죽는 것처럼 말이네.”
“…….”
“결국, 탐욕에 물든 김덕한은 마치 마약 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해 이성을 잃어버렸어. 미친 듯이 권력의 높은 곳을 향해 올라서려고 발버둥 쳤지. 결국, 탐욕에 물든 그는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한 집안의 가장을 허무하게 쓰러지게 했지. 물론, 그 사람의 가정 역시 풍비박산이 난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가, 가장을 무참히 짓밟아?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
며칠 전,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이 떠오른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듯했다.
“네? 한 가장을 무참히 짓밟았다고요? 그게 누굽니까?”
“흐음, 알고 싶나?”
“네.”
“허허, 이제야 흥미가 좀 생기나 보는군. 장충석! 장충석이라고 한때는 전도유망한 사업가였었지.”
띵!
장충석? 서…… 설마!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람의 아들이 누군지 아나?”
“누, 누굽니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장현수란 이름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흐음, 이쯤 되면 얼추 알아차렸을 텐데, 그러고 보니 우리 김 변이 눈치가 별로구먼. 바로 김덕한 의원의 보좌관인 장현수야.”
“…….”
자, 장현수! 그자가 맞았어!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적잖은 충격이 밀려왔다.
“어떤가,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스토리가 나오지 않겠나?”
결국, 장현수는 아버지의 일에 대해 복수하려고 했던 것인가?
“네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허허허, 얼굴이 하얘지는 것을 보니 충격인가 보군.”
“네. 충격적이군요.”
“아마도, 장현수는 다음 주 내로 무혐의로 풀려나게 될 거야. 하지만, 수사가 답보 상태이니 아직까진 그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겠지.”
박 회장은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말일세.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그런 장현수가 수많은 변호사를 놔두고 왜 유독 자네를 찾았을까?”
“음, 장현수가 수임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순진하긴. 아냐, 아냐, 절대 그건 아냐. 분명 뭔가 있어. 그자의 행동으로 볼 때 자네와 뭔가 게임을 하지는 건데, 왜 그랬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박 회장이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의아해 했다.
“저도 그 점이 의문이긴 합니다.”
“허허허, 의문이면 풀어야지. 김 변, 그렇지 않나?”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다시, 실타래가 엉킨 듯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며칠 후,
<법무법인, 정은>.
띠리리링.
새로운 의뢰인을 만나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공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검사님, 말씀하신 대로 장현수 완벽하게 벗겨왔습니다.”
헤헤, 자신감이 충만한 공 수사관의 목소리였다.
“그래요…….”
“어? 어? 그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목소리는 뭐죠? 그렇게 난리를 치시더니만….”
“뭐. 그냥요. 그나저나 뭔 특별한 정보라도 있습니까?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세요?”
“그게 말입니다. 진짜, 대박 정보인데…… 놀라지 마십시오.”
무슨 일인지 공 수사관이 잔뜩 뜸을 들이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