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화] 국회의원 김덕한 살인사건 (2)
“여보세요? 여보세요?”
수화기에 대고 외쳐봤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773-4529]
틱틱틱,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로 다시 전화해봤지만 어이없게도 남겨진 번호는 공중전화였다.
누군가 TV를 보고 장난을 친 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검사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김덕한 의원이 죽다뇨?”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넣고는 박인수 검사가 있는 TV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게요. 양평에 있는 모텔에서 피살된 듯합니다. 이거 보통 살인사건은 아닌 것 같은데요? 유력 정치인의 피살이라…….”
박인수 검사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타살이 확실합니까?”
“일단, 보도만 봐서는 확실하지 않아요. 부검해봐야 알겠지만, 유서도 없고 사건 현장에 유혈이 낭자한 것으로 보아 둔탁한 흉기로 가격당한 것 같네요. 일단, 정황상 타살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합니다.”
“진짜 어이가 없군요. 김덕한 의원이면 야당의 차기 대권 주자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김 의원만큼 청렴결백한 국회의원도 드문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김 의원이 왜 양평에 있는 모텔에 갔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것참, 이상하군요. 거긴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갔을까? 흠,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죠. 그건 뭐 조사해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박인수 검사가 턱을 손으로 괸 채 뚫어지도록 TV를 지켜봤다.
김덕한 의원! 386세대로 80~90년대 운동권 출신이다. 수차례,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감과 석방을 반복한 후 풀려나 재야인사로 활동하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승승장구, 내리 4선에 성공한 중견 정치인으로서 진보진영의 리더 겸 정신적 지주였다. 평소에 검소한 생활과 청렴한 의정활동으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며 서민층을 기반으로 한 유력한 차기 야권 대선주자였다. 그런 그가 피살됐으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한 대형 사건인 게 틀림없었다.
일주일 후,
<법무법인, 정은>.
누군가 TV를 보고 장난 전화를 건 것이겠지! 분명 그럴 거야…….
그 이후론 장현수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에 그의 목소리는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최근, 양평에서 피살된 채 발견된 김덕한 의원은…….]
“흠, 결국 김덕한 의원의 죽음이 타살로 밝혀졌네요.”
TV를 보고 있던 장검이 말했다.
“그러게, 직접적 사인은 두개골 함몰에 의한 쇼크사인데 목에 삭흔이 있는 것으로 봐서 처음엔 목을 졸라 죽이려다 실패해 둔기로 내려친 듯해. 흠, 이런 점으로 볼 때, 범인은 살해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라는 건데…….”
“그럴 가능성이 크죠! 그나저나 누가 감히 대권 주자에게 이런 짓을 했을까요?”
“…….”
‘내가 김덕한 의원을 죽였습니다!’
잊은 줄 알았던 장현수의 전화가 찝찝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으며 신경을 건드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가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자 장 검이 툭툭 내 어깨를 건드렸다.
“아, 아냐. 아무것도…….”
“그건 그렇고 선배님, 저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요.”
“어디?”
“저 옛날에 다니던 초등학교요.”
장 검이 뜬금없이 자신의 초등학교 얘기를 꺼냈다.
“그래?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같이 가주실 거죠?”
장 검이 해맑게 웃으면서 화사한 보조개를 드러냈다.
“물론이지. 그게 뭐 어렵다고? 지금이라도 가자.”
“정말요!”
장 검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 * *
<상현 초등학교>.
차를 차고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장 검이 다니던 상현 초등학교 정문 앞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가팔랐고 길 양옆에 늘어선 아까시나무에서 달콤한 향내가 피어올랐다.
“장 검, 여기야?”
“네. 여기가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요. 하나도 안 변했네요.”
차에서 내린 장 검의 눈빛이 아련했다. 교문에 상현 초등학교라는 낡은 명패가 걸려있었다.
좁게만 보이던 정문을 지나 나와 장 검은 학교 교정을 걷고 있었다.
“와, 졸업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데 별로 변한 게 없어요!”
동네 놀이터같이 아담한 학교 운동장을 보며 장 검이 소리쳤다.
“…….”
“원래 학교 운동장이 이렇게 작았나?”
장 검이 나를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음, 그건 말이야. 운동장이 작은 게 아니라 장 검이 커서 그렇겠지!”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오랜만에 들어보는 장 검의 청량한 웃음소리였다.
“와! 여기도 그대로네!”
장 검이 내 손을 이끌며 운동장 귀퉁이에 있는 등나무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눈에 봐도 그녀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은 곳인 듯했다.
“엄마는 맏이였고 이모는 늦둥이였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줄곧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죠. 저랑 두 살 차밖에 나지 않아 같은 방을 썼어요. 처음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후, 장 검이 벤치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이 학교도 이모랑 같이 다녔던 학교예요. 투덕투덕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이모랑 저는 친자매나 다름없었죠. 오늘 문득 이 학교가 생각나더라고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쓸쓸한 눈빛에 마음이 헛헛했다.
“흠, 그랬구나.”
“이렇게 이모가 갑자기 떠날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줄걸!”
흑흑흑, 장 검이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실컷 울어! 그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거야.”
토닥토닥, 이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어깨를 빌려주고 그저 등을 두드려 주는 것뿐이었다.
잠시 후,
“내가 주책이죠! 이젠 됐어요.”
어깨에 기대 한참을 소리 내 울던 장 검이 훌쩍거리며 나를 올려다 봤다.
“좀 시원해? 자 이거.”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전달했다.
“고마워요. 선배님!”
그녀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퉁퉁 부은 눈도 예뻐 보였다.
“와! 여기 등나무가 많네!”
주변을 둘러보니 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은은한 향내에 정신이 아찔했다. 등나무 꽃 때문인지 장검의 체 향 때문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윙윙윙.
그 순간, 우리를 일용할 양식을 탐내는 적으로 판단한 벌들이 윙윙거리며 무력시위를 했다.
“무슨 벌이 이렇게 많아? 아무래도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나 봐!”
휙휙휙, 나는 손을 내저으며 장 검에게 달려드는 놈들을 쫓아냈다.
“엄마야!”
어디서 많이 보던 신파극이다. 벌 한 마리가 그녀에게 달려들자 깜짝 놀란 장 검이 내 품에 안겼다.
헉, 이 뭔가 말캉말캉한 건 뭐지?
말랑말랑, 물컹한 촉감이 시냅스를 타고 전두엽을 자극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상큼한 그녀의 살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앗, 이러면 안 되는데…….
그새를 못 참고 그(?)놈이 성질을 내려 했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엉덩이를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 슬픈 생각을 해야 하나? 애국가를 불러야 하나…….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겹쳤고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숨 막히는 몇 초가 흘렀다. 그때였다. 잘 익은 자두처럼 탱글탱글한 그녀의 입술이 클로즈업되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꿀꺽, 제길,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켜 넘겼다. 심장은 나대고 손은 마구 떨렸다.
드라마에서 보면 이럴 땐, 과감하게 남자가 리드를 하는데…….
나는 중대한 거사를 치르는 듯 드라마 장면을 떠올리며 결정적인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운동회 달리기 시합 때, 선생님의 신호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헉, 흡! 한발 늦었다!
그 순간, 갑자기 장 검이 팔로 목을 걸고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살짝 벌어진 장 검의 입술 사이로 달곰한 막대사탕 같은 향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녀의 향인지 등나무 꽃 냄새인지 분간할 순 없었지만,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이렇게 된 이상, 나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과감하게 돌진하는 수밖에…… 한 손으로는 장 검의 머리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순간, 장 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내게 맡기는 듯했다. 잘록한 그녀의 허리가 자석에 끌리듯 내 쪽으로 딸려 왔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좀 더 열리자 나는 저돌적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헐!
하지만 패기 있게 돌진한 초보 병사는 그녀의 입속에서 갈 길을 잃었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아얏!
혀를 깨물린 장 검이 아파했다.
병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쪽팔리게…….
“장 변, 괜찮아?”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했다.
“네. 괜찮아요.”
그녀가 피식거렸다. 꽃처럼 피어나는 보조개는 등나무 꽃보다 천 배, 만 배는 아름다웠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거야? 자, 장 검! 다, 다시 할래? 이번엔 자, 잘할게.”
솔직히 당황스러워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을 할 수 없었다.
“…….”
말없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검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심장은 더욱더 나댔고 장 검은 그런 심장 소리에 맞춰 옅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때야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던 내 손이 할 일을 찾은 듯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나, 선배님 정말 좋아해요!”
그때, 장 검이 살짝 고개를 들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띵!
바로 귀 앞에서 에밀레종을 치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했다.
‘좋아해요!!!!’
태어나 처음 여자한테 들어보는 소리!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이 정신이 아득했다.
“어? 어어. 나도 그, 그래! 나도 장 검이 좋아!”
제길, 한없이 촌스러운 대사다. 남들은 이럴 때 멋지게 대사를 날리던데, 이게 뭔가?
사실, 장 검보다 내가 먼저 그녀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서없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띠리리링.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려 거사를 치르려는 순간, 주책스럽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 선배님, 전화 받아요.”
장 검이 내 품에 안겨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어어! 미안, 미안, 잠시만…… 이 시간에 전화가 올 데가 없는데…….”
나는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여, 여보세요?”
“혹시, 김정환 변호사입니까?”
“네. 맞습니다만. 어디십니까?”
“네. 저는 양평 경찰서 박승호 형사라고 합니다.”
“네? 경찰서요?”
“어머, 경찰서래요? 거기서 왜요?”
내 목소리가 컸는지 장 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나도 무슨 일인지는 몰라. 잠깐만! 확인해보고!”
“네.”
“경찰서에서 저한테 무슨 일이죠?”
“양평 인근에서 김덕한 의원이 피살당한 사실은 알고 계시죠?”
“네. 그런데 그 사건과 제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사실은 김덕한 의원을 죽였다고 자수한 사람이 나타났는데요. 한사코 변호사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요. 변호사님이 오셔야 자백을 하겠다고 난리네요. 잠깐 서로 나와주셔야겠습니다.”
서, 설마…….
“네? 그, 그 사람 신원은 파악이 됐습니까?”
“네. 지금까지 김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장현수더라고요.”
“네? 자, 장현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