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157화] 죄는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냐 (3) & 국회의원 김덕한 살인사건 (1)
하루 전, 나는 박인수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사님, 저 김정환입니다.”
“네. 김 변호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공판 준비는 잘돼가십니까?”
“네.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이 정도 자료면 할 만하겠는데, 그나저나 한상훈 증인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데 괜찮을까요? 저쪽에서 그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텐데요. 정현석 변호사가 놓칠 리가 없어요. 끝까지 태클을 걸 겁니다.”
“음, 저도 그분이 고민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일단 저쪽에서 이의 제기를 하면 젊은 여성 방청객을 선택해서…….”
“음,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거 가지고는 판사를 설득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어쩌면 역공을 당할 수도 있어요.”
“일단 1차적으로 시도해보고 그래도 변호사 측에서 물고 늘어지면 이 방법을 쓰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거 말이에요… 이번 공판에 우 배석 할 판사를 이용하세요.”
“우 배석 판사라면 신은경 판사요?”
“네. 신은경 판사가 상당한 미모잖아요. 그 점을 이용하면 될 겁니다.”
“그렇긴 하죠. 전에 보니 미모가 상당하더라고요. 그나저나 그래도 괜찮을까요?”
“재판 진행 차원이라고 설득하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변호사 입장에서 감히 사법부까지 건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천하의 정현석 변호사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음, 아무튼, 정말 기발한 생각이군요. 하여간, 김 변호사님은 못 당하겠어요.”
<법정>.
“그렇다면, 보다 확실하게 증명토록 하겠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발길을 돌려 재판석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신은경 판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실례지만…….”
박인수 검사가 우 배석 판사인 신은경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신은경 판사를 대상으로 한상훈의 기억력을 테스트하겠다는 것이었다.
“네? 검사님, 뭐예요? 이런 게 어딨어요? 안 돼요!”
화들짝 놀란 신은경이 손을 내저었다.
“신 판사! 뭘 그렇게 놀라? 나도 궁금하다고. 재판 진행상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니 특별히 문제 될 거 없으니까 시켜보자고!”
재판장이 신은경을 설득했다.
“후, 수도 없이 재판을 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정말 난감합니다.”
“에이. 그래도 미인으로 인정받는 건데 나쁘진 않잖아! 그리고 재판을 위한 건데 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재판장이 그녀를 쳐다봤다.
“이거 난감한데……… 좋아요. 알겠어요. 그나저나,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저도 법정 밖으로 나가 있어야 하나요?”
“아뇨. 그냥 여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네. 뭐…… 그렇게 하죠. 다만 사법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발언을 할 경우에는 검사님이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다만, 제가 증인에게 다소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다 판사님이 워낙 미모가 출중하셔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십시오.”
“흠, 네. 뭐. 너무 심하게만 하지 마시고요.”
흠흠, 아무리 판사라도 미인이라는 소리가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녀가 마지못해 박인수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증인, 그걸 좀 착용해 주시겠습니까?”
재판장의 허락을 받은 박인수 검사가 안대를 꺼내 한상훈에게 전달했다.
“이게 뭐예요?”
“네. 안대라는 건데 눈에 쓰시면 됩니다.”
“이렇게요? 와! 아무것도 안 보여요!”
한상훈이 신기한 듯 둘러보더니 안대를 썼다.
“네. 잘하셨습니다. 잠시만 쓰고 계시기 바랍니다.”
“네네.”
“혹시, 앞에 재판석에 앉아 계셨던 신은경 판사님이 미인이신가요?”
“아, 늙은 아저씨 옆에 앉은 그, 그 여자요?”
“네. 맞습니다.”
“예뻐요. 진짜, 무지무지 예뻐요. 영화배우 한혜수 닮았어요!”
하하하, 그 순간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반면에 신은경 판사의 미간은 심하게 일그러지는 듯했다.
“신 판사님의 외모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네. 저 누나는 원래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여요. 원래 나이는 30대인데, 지금은 23살 정도이거든요. 헤헤.”
맞는 말이다. 신은경 판사의 실제 나이는 33세, 하지만 동안이었기에 실제로 보이는 외모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근데, 자세히 보면 티가 나요. 헤헤.”
“어떤 티가 납니까?”
“눈 밑에 주름이 많아요. 그리고 목도 쭈글쭈글해요. 그래서 그 부분이 저 누나의 약점이에요. 그래서 그걸 가리려고 목까지 올라오는 옷을 저렇게 입어요. 헤헤.”
그의 발언은 정확했다, 신은경 판사는 평소에도 목을 가리는 터틀넥 티셔츠를 주로 입었다. 오늘 역시, 연한 베이지색 터틀넥을 입은 상태였다. 당황한 신은경 검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흠흠흠, 신은경 판사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헛기침을 했다.
“하하하, 뭐냐? 진짜 장난 아니네?”
“맞아, 맞아. 저 판사 오늘도 목폴라 입었네.”
호기심이 생긴 방청객들이 신기한 듯 한상훈의 입에 시선을 모았다.
“그 밖에 신 판사님 외모의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네네. 저 누나의 피부는 어린애처럼 말랑말랑한데 굉장히 약해요. 그래서 예쁘게 화장품 같은 거도 못 발라요.”
“판사님, 맞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고개를 돌려 신은경 판사에게 물었다.
“흐음, 네. 마, 맞아요. 저는 화장품 피부 트러블이 심해서 함부로 화장을 못 해요. 특히 색조 화장품은 더 심해서 거의 못 하는 편이에요.”
한상훈은 단지 여자의 외모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외모를 통해 평소의 습관까지 파악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은경 판사가 한상훈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밖에 신은경 판사님의 특징이 있나요?”
“그리고 저 누나는 철 같은 걸 싫어해요. 금만 좋아해. 그리고 성격도 딥다 깔끔해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보세요. 다른 아저씨들 자리는 지저분한데 저 누나는 책들도 전부 똑바로 쌓여 있고, 그리고 볼펜이랑 물이 항상 제자리에 있잖아요. 조금도 위치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리고 볼펜 한 번 만지고 손 닦고 책 한 번 만지고 손 닦고 하잖아요. 그리고 자꾸자꾸 몰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어요. 엄청 깨끗한 사람이에요.”
공판 자료를 책으로 착각한 것 이외에는 한상훈의 증언은 모든 것이 100% 일치했다. 엄청난 관찰력이었다. 한상훈은 신은경 판사의 사소한 행동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판사님, 증인의 말이 맞습니까?”
“네에…… 진짜 얼떨떨하군요. 저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어서 액세서리를 못 해요. 그리고 평소에 결벽증이 있다고 얘길 들을 정도로 주변이 지저분한 것을 싫어합니다. 정말 놀랍군요. 어떻게 7세 지능을 가지고 있는 증인이 이럴 수 있죠? 이게 가능한 건가요?”
신은경 판사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음, 가족도 이 정도로 자세하게 파악할 순 없어. 신은경 판사의 모든 것을 이 짦은 시간에 완벽히 파악했잖아. 정말, 믿을 수 없는구먼. 놀라워!”
옆에 있던 재판장 좌 배석 판사를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요. 믿을 수가 없군요.”
좌 배석 판사, 최상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증인, 이제 안대를 벗으셔도 됩니다.”
“네네.”
한상훈이 안대를 벗으며 해맑게 웃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본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오신 방청객 여러분! 보시는 바와 같이 증인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는 사소한 행동도 놓치지 않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7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지닌 증인이지만 인물에 대한 관찰력과 인지력에서만큼은 전문가 못지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증인의 증언은 객관성과 타당성을 바탕으로 법적인 효력이 충분하다고 본 검사는 확신합니다. 증인은 이 순간만큼은 결코 7세 지능을 지닌 지적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게, 이 정도면 믿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군! 검사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을 것 같아.”
방청객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피고 측 변호인에게 묻겠습니다. 이것도 사법부와 검찰이 야합한 것입니까? 제가 신은경 판사님을 매수해 자작극을 벌인 거로 생각하십니까?”
“음, 그, 그게…….”
당황한 정현석 변호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그의 셔츠는 흥건히 젖어있었다.
“왜 대답을 못 하시는 겁니까? 말씀해 보시죠!”
박인수 검사가 좀 더 강한 어조로 다그쳤다.
“…….”
정현석 변호사가 이마의 땀을 훑어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변호사님, 아무래도 게임 셋인 거 같은데요? 정현석 변호사는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요. 회상 불가입니다.”
툭툭툭, 공 수사관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요. 피고 측에서 더 이상 내세울 카드가 없어 보이네요.”
“선배님, 고마워요.”
장 검이 지긋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눈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심문하시겠습니까?”
“…….”
정신이 반쯤 나간 듯 정현석 변호사가 눈만 껌벅였다.
“변호인! 반대 심문 안 할 거예요?”
재판장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 아뇨.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더 반대 심문은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늘 병원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관한 1차 공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두 명의 판사와 함께 신속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재판을 마친 후, 박인수 검사가 나를 찾아왔다.
“변호사님,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좋죠!”
박인수 검사와 나는 법원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자, 드시죠! 역시 커피는 이거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박인수 검사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커피는 자판기 커피가 최고죠!”
“그렇죠! 어떻게 이렇게 맛이 좋은지. 검사들한테는 필수품인 것 같아요.”
“저도 검사 시절에 이거 없었으면 못 살았습니다. 거의 마약 수준이죠.”
“하하하.”
“아마도 특별한 일 없으면 이번 재판 승소하실 겁니다.”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자 박인수 검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다, 검사님 덕분이죠.”
“제 덕은요 뭐. 저야 변호사님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놨을 뿐인데…….”
후후후, 박인수 검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겁니다. 아무리 잘 차려주면 뭐 합니까? 맛있게 잘 먹어야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본 사람만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가요?”
하하하, 박인수 검사가 기분 좋게 너털거렸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 받으셔도 됩니다.”
“아뇨. 모르는 번호예요. 뭐. 대출받으라는 전화겠죠.”
띠리리링.
또다시 울리는 휴대전화, 좀 전과 같은 번호였다.
“전화 받으시죠!”
박인수 검사가 귀에 손을 올리며 받으라는 시늉을 했다.
“네. 죄송합니다. 그럼, 잠시만요.”
나는 전화를 들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김정환 변호사님?”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제가 김정환입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제,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네? 장난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도 다 법에 저촉이 되는 겁니다. 전화 끝…….”
“변호사님! 제발, 제발 전화 끊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김덕한 의원의 보좌관 장현수입니다. 제, 제가 김덕한 의원을 주, 죽였습니다.”
“장난하지 마시라니까…….”
“변호사님! 이, 이것 좀 보십시오!”
그 순간, 박인수 검사가 휴게실에 있는 TV 쪽으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네? 무슨 일인데요?”
“김덕한 의원이 죽었네요. 정황상 타살인 것 같다는데…….”
“네? 타살이오?”
뚜, 뚜, 뚜, 뚜.
뭐? 김덕한 의원이 죽어? 설마…….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장현수 씨!”
황급히 휴대전화를 귀에 대봤지만 이미 전화는 끊긴 상태였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