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155화] 죄는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냐 (1)
“하늘 병원 측의 응급 조치엔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시기 적절했죠. 초기 대응부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했고 환자의 심장박동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사망한 것은 안타깝지만 하늘 병원의 과실을 논할 수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하늘 병원 측에서 내세운 마취과 전문의, 지현수가 하늘 병원의 처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아, 아니에요. 화, 환자의 상태를 최초 발견한 간호사의 조치만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절대로 환자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심정지가 일어나 상황에서 초기 대응은 어, 어처구니없이 허술했습니다. 수술을 마친 환자가 회복실에 들어갔는데도 데스크를 비운 의료진의 무책임함과 심정지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간호사의 명백한 과, 과실입니다. 이, 이건 미국에서 있었던 시, 실제 사례입니다. 보, 보십시오.”
검사측에서 신청한 증인, 준표가 사례를 스크린에 띄워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공판은 예상대로 박빙의 흐름이었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팽팽하게 맞섰다. 박인수 검사의 대항마로 하늘 병원 측은 부장판사 출신 정현식 변호사를 선임해 맞불을 놓았다. 일진일퇴의 공방전! 법정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음, 그러면 마지막 증인 심문을 하겠습니다. 검사! 한상훈 씨, 출석했습니까?”
“네.”
한상훈이 신기한 듯 법정을 두리번거리며 증인석에 앉았다.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증인, 증인 선서서 낭독하세요!”
“네? 증인 선서서가 뭐예요?”
하하하, 한상훈의 어리숙한 행동에 법정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정숙! 정숙하세요! 증인, 글자 읽을 줄 모릅니까?”
“아니에요. 저 글자 잘 읽어요. 엄마한테 배웠어요. 보세요! 기억, 니은, 디귿…….”
한상훈이 더듬거리며 글자를 읽어나갔다.
“후, 네네. 그만하시고요. 증인, 거기 놓인 종이에 쓰인 내용 읽으시면 됩니다.”
재판장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네네. 읽어볼게요! 나, 나는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 보태지 않고……. ‘보태지’가 뭐지?”
한상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듬더듬 증인 선서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야? 약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데?”
“그러게. 저런 사람의 증언이 법정에서 효력이 있나?”
한상훈의 등장에 방청객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흐음, 검사! 한상훈 씨가 검사 측에서 신청한 증인이 맞습니까?”
재판장의 판단 역시, 방청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재판장이 박인수 검사에게 재차 확인하며 물었다. 의아한 표정은 여전했다.
“네. 맞습니다.”
“그래요? 음…… 알겠습니다. 일단, 증인 심문 시작하세요!”
“네.”
“본격적인 심문에 들어가기 전에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저희 쪽에서 확보한 영상을 잠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스크린에 하나의 영상을 띄웠다.
하늘 병원 간호사, 장영선이 정미영 씨가 잠들어 있는 병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과 한상훈과 휠체어에 타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궁금한 듯 문 옆에서 병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영상이었다.
“저기 보이는 남자가 지금 증인석에 앉아 있는 한상훈 씨입니다. 증인, 맞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화면을 잠시 멈추고 한상훈에게 물었다.
“네네. 맞아요. 저예요. 저! 와, 신기하다. 내가 저기 나왔네?”
흥분한 한상훈이 손뼉을 치며 신기해했다.
“네. 맞습니다. 확실히 증인이군요. 재판장님, 지금 화면 하단에 찍힌 시각을 한번 봐주십시오. 분명, 간호사 장영선 씨가 병실로 들어간 시각은 정확히 18시 23분입니다.”
“그렇군요. 검사, 계속하세요!”
화면을 유심히 살펴보던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박인수 검사가 다시 화면을 멈추고 증인석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증인! 지금 봤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네네. 똑똑하게 기억이 나요. 전부 다요!”
한상훈이 양팔을 펼쳐 큰 원을 그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몇 가지 물어볼 테니 기억나는 대로만 말씀해 주실 수 있죠?”
박인수 검사가 한상훈의 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쉬운 어휘를 사용해 질문했다.
“네네. 내가 말해줄게요. 전부 말할 수 있어요. 전부!”
“좋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정미영 씨 병실에는 왜 들어가신 거죠?”
“아, 그거요? 내가요. 처음에 우리 엄마 병실인줄 알았거든요. 315호! 그런데 들어가 보니까 우리 엄마 병실이 아니었어요. 거긴 316호였거든요. 에이, 내가 숫자를 잘못 봤어요.”
한상훈의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자책했다.
“음, 병실에 잘못 들어가신 거군요?”
“네. 맞아요. 그런데, 다른 아줌마가 잠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가려고 했는데 네모난 기계에서 삐삐 소리가 났어요. 시끄럽게요.”
당시, 정미영이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을 잠자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그래서요. 간호사 누나한테 가서 일렀어요. 지금 저 방에서 삐삐 거린다고요. 잘했죠?”
헤헤헤, 한상훈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랬군요. 혹시, 증인이 이른 간호사가 저분 맞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증인석에 앉아있던 박영선을 가리켰다.
“네네. 맞아요. 저 누나예요. 저 누나 엄청 이뻐!”
흐흐흐, 한상훈이 벌게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부끄러워하자 박영선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하, 뭐냐? 정신지체자인가? 왜 저래?”
그 순간, 방청석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선배님, 괜찮을까요? 음, 좀 불안한데요.”
장 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걱정 마. 박인수 검사를 믿어! 다 잘될 거니까!”
나는 장 검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증인이 본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주실래요?”
박인수 검사가 그의 눈높이에 맞춰 쉬운 말로 증언을 유도했다.
“네. 알았어요. 저, 간호사 누나가 병실로 들어가더니, 네모난 기계를 막 껐다 켰다 했어요.”
“그렇군요. 혹시 그 네모난 기계가 이것 맞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심전도 검사기를 찍은 사진을 한상훈에게 내보였다.
“맞아요! 바로 이 기계예요! 와, 내가 본 거랑 똑같다!”
한상훈이 신기한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렇군요. 그다음에 간호사가 어떻게 했나요?”
“잠자던 아줌마 오른손에 있던 반지를 뺐다가 꼈다가 막 그랬어요. 그러면서 막 신경질 내고 그랬어요. 욕도 하고요! 에이, 간호사 누나는 웃는 얼굴이 더 이쁜데…….”
에이, 한상훈이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야? 저 사람 말이 맞는다면 저거 큰 실수 아냐?”
“그러게, 이미 심정지가 일어난 상태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는데?”
“문제 정도가 아니지! 시급을 다투는 일인데, 분명 엄청난 과실이지!”
“근데, 저 사람 증언이 타당성이 있을까?”
“그러게 말이야. 아무래도 이 재판은 그게 관건일 것 같은데…….”
방청객들이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증인, 계속하시죠!”
“그러다가, 갑자기 간호사 누나의 얼굴이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했어요. 그다음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막 뛰어나갔어요.”
한상훈이 자신의 몸을 흔들며 떠는 흉내를 냈다.
“계속하세요.”
“그런 다음에 의사 아저씨랑 저 간호사 누나가 같이 들어왔어요. 내가 본 것은 이게 다예요. 더는 나도 몰라요.”
한상훈이 수줍게 장영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겠습니다. 증인,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머지 화면을 보시겠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정지해 있던 화면을 다시 재생했다. 장영선이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가는 장면과 곧이어 의료진들이 다급히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화면 하단에 18시 33분이라는 시각이 명확히 표기돼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장영선 간호사가 병실을 빠져나간 시각은 병실로 들어온 지 정확히 10분이 지난, 6시 33분입니다. 결국, 장영선 간호사가 병실에 머문 시간은 정확히 10분이죠. 과연 장영선 간호사는 그 10분 동안 무엇을 했던 걸까요?”
박인수 검사가 화면의 시각을 포인터로 가리켰다.
“만약 환자가 심정지가 발생한 상황이라면 10분이라는 시간은 생명이 걸린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당연히 응급 조치가 이뤄졌어야 할 시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장영선은 안일한 대처로 그 시간을 허비했고 그로 인해 심정지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정미영 씨는 뇌사 상태에 빠졌고 뒤늦게 응급 조치를 했지만 사망하고 말았죠. 이는 명백한 의료 과실입니다. 게다가, 병원 측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료진과 간호사를 휴가 보내며 입막음을 했고 사실을 왜곡했습니다. 이는 분명한 의료법 위반이며 공문서 및 사문서 위조에 해당합니다. 이상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판단을 피력했다.
“변호사님, 박 검사님 심문하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요? 박 검사에게서 변호사님의 모습이 보이는 건 저의 착각일까요?”
공 수사관이 내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글쎄요. 저보다 더 능숙하게 잘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거, 변호사님이 코치하신 거죠?”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네. 알겠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심문하시겠습니까?”
박인수 검사의 심문이 끝나자 재판장이 정현석 변호사를 쳐다봤다.
“네.”
정현석 변호사가 한 손에 서류를 들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꽉 쥔 주먹이,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증인, 증인의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정현석 변호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요?”
“네. 여기 증인 말고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정현석 변호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저는 27살인데요.”
“물론, 증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셨겠죠?”
정현석 검사가 한상훈을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봤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현석 변호사는 한상훈의 정신연령을 물고 늘어질 심산이었다.
“아, 아뇨… 아, 맞다! 다녔어요. 한마음 학교! 저 한마음 특수학교 다녔습니다.”
“아, 특수학교요? 특수학교는 어떤 학교입니까?”
“몰라요. 아, 그러고 보니 특수가 뭐지? 야구 선순가?”
한상훈이 검지를 마주치며 눈을 깜빡거렸다.
“정말 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자신이 다닌 학교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지체장애인이 증인석에 앉아 있군요! 증인, 혹시 부모님 이름은 알고 있습니까?”
정현석이 더욱더 자극적인 질문을 하며 한상훈의 심리 상태를 흔들어놓았다.
안돼! 한상훈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전략이야! 박인수 검사! 막아야 해!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증인의 건강 상태를 빌미로 인격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통했는지 다행히도 박인수 검사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증인의 인격에 손상을 입히는 발언은 자제하세요!”
“네. 너무 어이없는 상황이라 제가 잠시 흥분했었나 보군요. 아무튼, 본 변호인은 검사 측에서 신청한 한상훈 씨를 절대로 증인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변호인,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금부터 제가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재판장님께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지이이잉.
정현석 변호사가 스크린을 내리고 리모컨 버튼을 눌러 PPT 화면을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