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154화] 위기 (危機)
“근데, 변호사님…… 문제가…….”
공 수사관이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다.
“문제라뇨? 무슨 문제요. 문제가 있을 게 뭐가 있어요?”
“그게, 생각지도 못했는데 상훈 씨가 정신지체 장애자예요. 제가 보기엔 정신 연령이 7~8세 수준인데…….”
그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네? 정신지체요?”
“네. 아무래도 법정 증언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판결에 절대적으로 불리할 듯한데, 어쩌죠?”
“흠, 그럼 그 어머니는요? 어머니도 같이 있지 않았나요?”
“후, 그게 문제가 있는 게, 상훈 씨 어머니는 상황을 정확히 모르더라고요.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상황을 모르더라고요. 잘 못 봤나 봐요.”
“그래요? 일단 알았습니다. 아무튼, 제가 한번 만나봐야겠어요. 지금 어디세요?”
“네. 신림동에 있는 제타벅스예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제길,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 후,
<신림동, 제타벅스>.
나는 한상훈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신림동으로 이동했다.
“변호사님, 여기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제타벅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 수사관이 손을 흔들었다.
“앉으시죠.”
“네. 이분이 한상훈 씨입니까?”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초코라떼와 도넛을 먹고 있었다. 도넛 포장과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벌써 서너 개는 먹은 듯했다. 게다가, 그의 옷과 얼굴에는 도넛 크림이 잔뜩 묻어 있었고 한상훈은 게걸스럽게 초코라떼를 할짝거렸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공 수사관의 말대로 6~7세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네. 어떡하죠?”
공 수사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거렸다.
난감하네. 이 일을 어쩌지?
순간 절망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안녕하세요? 김정환 변호사라고 합니다. 한상훈 씨 맞나요?”
“아… 네네. 제 이름이 한상훈이에요. 그런데 아저씨! 변호사가 뭐예요?”
갈 수록 태산이었다. 옆에 있던 공 수사관이 어이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네. 그게…… 상훈 씨처럼 착한 사람들 도와주는 일을 해요.”
설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 그래요? 좋은 일이구나. 나도 나중에 변호사 해야지!”
쪽쪽쪽, 한상훈에 손에 묻은 크림을 게걸스럽게 빨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변호사님, 어쩌죠?”
“글쎄요. 저도 난감하네요. 그나저나 어머님은 어디 계시나요?”
“네. 몸이 안 좋다고 하셔서 일단 집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나저나, 쉽지 않겠는데요.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후우, 일단 생각 좀 해봅시다. 뭔가 방법이 있겠죠.”
“어, 그 아줌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그 순간, 한상훈이 벌떡 일어나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에게 달려갔다. 상당한 미모의 여자였다.
“상훈 씨, 어디 가요?”
“쟨 또 왜 저래? 아휴 진짜!”
깜짝 놀란 공 수사관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줌마! 아줌마! 저 몰라요? 난 아줌마 잘 아는데!”
들은 체 만 체, 한상훈이 달려가 그녀의 옷소매를 움켜쥐었다.
“누…… 누구세요?”
당황한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했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낯선 남자가 갑자기 손을 잡았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상훈 씨,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이리 와요.”
공 수사관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뭔가 답이 나올 수도 있겠어!
“아뇨, 아뇨. 사무장님, 잠깐만요! 그냥 놔둬 봅시다.”
나는 일어서려는 공 수사관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네? 왜요? 저 인간 사고 칩니다. 저러다가 뭔 일 생겨요!”
“아니에요. 잠깐만요. 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뭔가 나올 게 있을 것 같아요.”
“네에….”
공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 왜 그래요? 저… 절 아세요?”
잔뜩 겁에 질린 여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에이, 왜 그래요? 우리 지난주 일요일에 마트에서 봤잖아요. 근데, 아줌마! 오늘은 입술에 빨간색 안 발랐네요. 난, 빨간색이 좋은데…….”
한상훈이 횡설수설했다.
“뭐… 뭐예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아저씨, 전 아저씨를 몰라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당연한 반응이었다. 벌게진 얼굴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리고, 머리핀도 바뀌었다! 옛날엔 이쪽에도 두 개, 저쪽에 한 개 꽂았는데…….”
한상훈이 아랑곳하지 않고 횡설수설했다.
“아악!”
한상훈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대려 하자 그녀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에게 사과한 후, 지금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아…… 네. 아뇨. 괜찮아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여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례지만, 제가 몇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네에…….”
“혹시, 지난주 일요일에 마트에 가신 적이 있어요?”
“네. 저기 XX 마트에 갔었어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그래요? 확실한가요?”
“네. 맞아요. 장을 보느라 갔었어요.”
“그럼, 혹시 그때,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셨나요? 기억이 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네네. 맞아요. 빨간색 맞습니다. 그날 새로 산 립스틱을 테스트도 해 볼 겸. 발랐어요.”
“빨간색이 확실한가요?”
“네. 짙은 와인색이니까 빨간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정말 절 봤었나 보네요?”
여자가 자리로 돌아간 한상훈을 가리켰다.
짙은 와인색! 그렇지! 한상훈의 눈에는 와인색이 빨간색으로 보일 수 있다. 하늘이 우릴 버리지 않는군!
“그럼, 하나만 더요. 원래 머리핀을 자주 하시나 봐요?”
“네. 제가 머리핀을 종종 하는 편이에요.”
“그날 머리핀을 했었나요?”
“네. 그날도 머리가 부스스해서 머리핀을 하고 갔었죠.”
“아저씨! 노란색 머리핀요!”
자리에서 우리 얘기를 듣던 한상훈이 소리쳤다.
“저, 친구 얘기가 맞습니까?”
“네네. 맞아요. 노란색! 어이없네요. 그걸 어떻게 기억하지?”
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에.”
다행이야! 이젠 잡을 수 있을 것 같군!
“상훈 씨, 근데 어떻게 저 여자분을 기억해요?”
나는 자리로 돌아와 한상훈에게 물었다.
“아! 그게요. 전 예쁜 여자는 다 기억해요! 난 예쁜 여자들이 좋아.”
헤헤헤, 한상훈이 초코라떼를 할짝거리며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하늘 병원 그 간호사도 예뻤나요?”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네네. 그 누나도 엄청 예뻤어요. 지금도 다 기억해요. 눈, 코, 입 그리고 가, 가슴도…….”
히히히, 한상훈이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변호사님! 바로…….”
공 수사관도 이제야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눈을 빛냈다.
“네. 맞습니다. 지금 사무장님이 생각하고 계신 게 맞습니다. 어쩌면 예상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겠군요.”
“역시 역시, 변호사님이십니다. 그걸 잡아내시다니!”
공 수사관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 그때 그 간호사가 정미영 씨 병실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하겠네요?”
“네네. 이 예쁜 간호사 누나는 코에 점이 있었어요. 그리고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있었어요. 반짝반짝, 금 색깔이에요. 다리도 가늘고 그리고 가슴이 되게 컸어요!”
한상훈이 양팔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네네. 그래요. 그리고 그 간호사가 병실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그 누나가 잠자고 있던 아줌마 손가락에 낀 반지를 뺐다 꼈다 했어요. 그리고 막 신경질 부리고 막 화내다가 막,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손가락에 끼우는 심전도 측정기를 반지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한상훈이 과도한 제스처를 취하며 설명했다.
“상훈 씨, 혹시 이 사람 맞습니까?”
나는 정미영 씨 담당 간호사, 장영선의 사진을 그에게 내보였다.
“맞아요. 맞아! 이 누나예요. 와! 사진도 이쁘다!”
짝짝짝, 한상훈이 해맑게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변호사님, 이 정도면 얼추 각이 나오는데요?”
“네. 하늘이 우릴 도운 듯합니다.”
“선배님! 사무장님! 저 왔어요.”
그 순간, 뒤늦게 도착한 장 검이 손을 흔들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 장 변 어서 와!”
“장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와! 예쁘다. 누구예요?”
한상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훈 씨, 같이 일하시는 변호사님이셔.”
“안녕하세요!”
“네. 장영은 변호사라고 합니다.”
장 검이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와, 아줌마도 이 아줌마처럼 예쁘네?”
한상훈이 장 검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어깨에 멘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가수, 윤하의 사진이었다.
“이봐요. 닮았잖아요!”
한상훈이 자랑스럽게 사진을 내밀었다.
“와, 우리 장 변호사님 계탔네! 윤하하고 동급이 되셨어!”
오호! 공 수사관이 장 검을 쳐다보며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네?”
장 검이 눈을 깜박거렸다.
“자, 잠깐, 장 변! 지금 밖으로 다시 나가 봐!”
나는 다시 한번 한상훈의 눈썰미를 테스트해봐야 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가라고요?”
“일단 밖으로 나가 봐.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줄게!”
“아, 알았어요.”
“상훈 씨, 지금 온 여자가 예쁜가요?”
장 검이 나가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네네. 너무너무 이뻐요.”
“그래요? 그럼, 그 여자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나요?”
“음, 노란색 목도리 그리고 파란색 치마, 흰색 윗도리요.”
“네. 맞아요. 잘하셨네요.”
“입술에 바른 색깔은요?”
“분홍색!”
“그럼, 귀걸이를 했나요?”
“네네. 별 모양! 귀걸이였어요.”
“굿! 손톱에 뭘 칠했나요?”
“네네. 손톱은 빨간색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방금 그 여자 얼굴에 특징이 있나요?”
“보조개! 그 누나는 보조개가 참 예뻐요!”
Perfect! 이젠 됐어!
잠시 후, 장 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왔다. 별 모양의 이어링, 빨간색 매니큐어 등등 한상훈이 말한 것과 100% 일치했다. 이 정도 기억력과 눈썰미면 정상적인 성인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훨씬 더 정확하다고 보는 것이 맞아! 그의 증언에 문제가 될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충분히,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음, 장 변 좋겠는데?”
“선배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늘부로 장 변의 미모가 인정된 거 같아!”
“네? 미모요? 제가 원래 한 미모 하잖아요. 몰랐어요?”
“그, 그래.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건 왜요?”
뜬금없는 미모 타령에 장 검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장 변호사님 미모 인정! 오늘부터 공식 미녀로 인정합니다. 변호사님 그렇죠?”
땅 땅 땅, 공 수사관이 주먹을 말아 쥐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네네. 인정!”
* * *
<서울 남부 법원>.
나는 이번 의료사고에 관한 모든 정보와 자료를 취합해 검찰에 제출했다. 검경의 수사 결과, 위법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 검찰은 하늘 병원을 대상으로 기소를 결정했다. 결국, 법원에서 검찰의 기소를 받아들여 재판이 결정되었다. 담당 검사는 박인수 검사였다.
“지금부터, 하늘 병원의 업무상 과실 치사 상에 관한 첫 공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장이 첫 공판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