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152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1)
장 검 이모가 있던 회복실에는 그녀만 자고 있을 뿐, 그녀 외엔 아무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회복실로 들어왔다.
“뭐야? 이게 왜 삑삑거리지? 고장 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맨날 왜 이래? 아, 진짜 귀찮아 죽겠네.”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가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심전도 측정기 스위치를 거칠게 재부팅했다.
“아, 진짜 기계 좀 바꾸라니까, 하여간 돈 아끼려다 이 지랄 하다가 사고 한번 크게 나지. 에이, 이게 왜 이렇게 안 되지?”
간호사가 심전도 측정기를 정미영의 손가락에 다시 끼우려고 노력했지만, 반복적으로 실패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이, 이…… 게 어떻게 된 거야?”
그 순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간호사의 동공이 커지며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걷혔다.
“선생님! 선생님!”
화들짝 놀란 간호사가 병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음,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온 시각은 정확히 오후 6시 33분!
간호사가 회복실로 들어온 시각이 6시 23분이었으니 그녀가 정미영 씨 병실에 머문 시간은 총 10분이었다. 저 간호사의 태도로 봤을 때 뭔가 문제가 있던 것이 틀림없다. 생각을 정리해 보자!
만약 심전도 경고음이 고장이 아니라 제대로 울린 거라면, 저 간호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 된다! 결국, 저 간호사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심정지 골든 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상당히 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취과 김 선생이 간호사와 같이 들어와 심폐소생술을 시작으로 응급조치를 시행하는 화면이었다. 그들이 조치한 시점은 이미 심정지 골든 타임을 지난 후였다. 결국, 의무 기록지에 기록된 것처럼 심장 박동은 돌아왔으나 결국 뇌사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게 진실이었군!
결국, 심장에 문제가 발생해 심전도기가 울렸던 거야! 정미영은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니 자각할 수 없었겠지! 그런데도 간호사가 안일하게 기기 고장으로 오판하면서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다! 이미 뇌는 저산소증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테고, 응급처치해서 심장박동은 돌아왔지만, 이미 뇌사 상태에 빠져있었으니 소용이 없었겠지. 이건 명백히 병원의 과실이 틀림없다! 병원장의 입장에서는 이를 은폐해야겠지! 그래서, 담당 의료진들을 장기 휴가 보낸 것이 확실해! 이 인간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내가 반드시 밝혀내겠어!
흠, 그나저나 문제군. 당연히 병원 측에서 간호사한테는 약을 쳐놨을 테니, 그녀가 증언하지 않을 것은 당연할 텐데, 그렇다면,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목격자가 필요하다!
잠시만…… 그렇지!
“킹 메이킹 시스템! 화면 98%쯤으로 다시 재생시켜줘!”
[네. 알겠습니다.]
저, 저 그림자!
분명 목격자가 있었다! 저 사람들을 찾아야 해. 어떻게 찾지?
맞아! CCTV! 병실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병원 복도 양쪽엔 분명 설치되어 있었어! CCTV 영상을 확보해야 한다. 반드시!
나는 간호사가 병실 밖으로 나가는 시점, 문틈 사이로 어렴풋하게 비친 두 개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두 그림자가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이었다.
* * *
<서울대 의대, 병리학 연구실>.
우선, 나는 몇 가지 확실히 해둘 것들이 있었다. 나는 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준표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아, 아저씨, 어…… 웬일이세요. 바쁘실 텐데!”
벌떡, 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실은 말이야, 장 변 이모님이 최근에 의료사고로 돌아가셨거든…….”
나는 준표에게 장 검 이모, 정미영의 사고사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 아저씨 말이 맞는다면, 마, 만약에 그, 그 간호사가 제 때에 마취과 선생님한테 콜만 했어도 화를 면했을 거, 거예요. 심정지 골든 타임이 5분에서 최대 10분이니까 그 간호사가 허비한 시간이면 환자의 뇌세포는 이미 엄청난 타격을 입, 입었을 거예요. 아마도 의사가 응급조치를 취했을 시점엔 이미 뇌, 뇌사가 진행됐을 확률이 노, 높습니다. 심장은 돌아왔지만, 상태가 심각하니까 대학병원으로 트랜스퍼 했던 겁니다.”
“…….”
“아니 근데, 노, 놀라운 게 어떻게 심전도 경고음을 기계 고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 그 사람은 의료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건 기본 중 기본인데 간호사가 그런 시, 실수를 하다뇨? 어떻게 이런 일이…… 그나저나 우리 장 검 아줌마 불쌍해서 어떡해요?”
준표가 울먹거리며 어쩔 줄 몰랐다.
“그러게 말이야. 지금 장 변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준표야! 지금 나한테 했던 말 나중에 법정에서 증언해 줄 수 있지?”
“다, 당근이죠. 다른 사람 일도 아니고 장 검 아줌마 일인데요. 제가 의학적으로 필요한 자료는 미리 주, 준비해 둘게요. 걱정 마세요.”
준표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맙다. 그나저나 같은 의사인데도 괜찮겠어?”
“그,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자, 잘못을 저질렀으면 버, 벌을 받는 거예요. 그게 맞아요!”
그래! 네 말이 맞는다. 어린 너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치를 왜, 어른들은 모르는 걸까?
“그래. 기특하고 고맙다. 준표야.”
“뭘요!”
준표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법무법인, 정은>.
법률적 자문을 할 의사를 확보한 나는 지금부터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CCTV 화면을 확보해야 했다.
“사무장님, 사건 일 하늘 병원의 CCTV 영상을 확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걸 찾아야 우리가 승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네? CCTV요? 아마, 안 될걸요? 병원에서 순순히 내놓지 않을 거예요. 검찰도 아닌데 우리가 그걸 확인할 권리도 없고요.”
공 수사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반드시 사고 일 CCTV 영상을 확보해야 합니다.”
“글쎄요. 딱히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요. 병원이라는 곳이 환자들의 신상 공개를 극도로 꺼릴 뿐만 아니라 만약에 구린 게 있다면 더욱더 그 핑계로 내놓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병원 측에서 이미 영상을 삭제했을 가능성도 커요.”
“그건 상관없어요. 일단 CCTV 화면만 확보할 수 있다면 디지털 포렌식 검사를 통해 복구할 순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룸살롱이나 유흥업소 같으면 애들 좀 풀면 뭔가 방법이 나올 것도 같은데 병원이라…… 아마도 환자들 프라이버시 운운하며 절대 안 내줄 겁니다.”
“그렇군요.”
“음, 다만 만약에 그럴 수만 있다면 혹시 모르죠?”
공 수사관이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이내 눈을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만이라뇨? 그게 무슨 뜻이에요?”
“뭔가 꼬투리를 잡을 수 있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군요.”
공 수사관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꼬투리요? 자꾸 말을 돌리지 마시고 정확히 말씀해 주세요. 무슨 꼬투리요?”
“그게, 뭐. 의료법 위반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수색영장 첨부하면 CCTV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의료법 위반이라고요?”
“네. 의료법 위반사항 잡아내 영장 청구하는 거죠.”
“그게 가능할까요?”
“그러니까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까 ‘만약’이라는 거죠.”
공 수사관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음, 의료법 위반이라…… 맞아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늘 병원 성형외과가 유명하던데. 음, 어쩌면 방법이 전혀 없을 것 같지는 않군요!”
“뭐, 뭔데요?”
“프로포폴!”
“프로포폴요? 아, 맞아요. 거기가 모든 시술에서 제약 없이 프로포폴을 투약해준다고 소문이 났죠. 최근에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됐으니, 어쩌면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공 수사관이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눈을 빛냈다.
“맞습니다. 2011년 2월부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프로포폴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죠. 분명, 거기서 뭔가 잡아낼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음,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확률에 기대봐야죠. 소문이 그렇게 무성한 것으로 볼 때, 프로포폴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개연성이 있어요.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프로포폴 주사를 의사들이 직접 놓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 없이 프로포폴을 투여한다면 분명 문제가 됩니다. 그럴 가능성이 큰 게, 일반적으로 관행처럼 그렇게 해오고 있는 병원들이 많습니다.”
“음, 간호사도 간호조무사와는 달리 의료법상 의료인이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프로포폴 투여는 명백한 의료 행위예요. 최근 대법원은 ‘의사가 간호사에게 의료 행위의 실시를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위임한 적이 없음에도 간호사의 주도적인 판단하에 프로포폴을 주사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라는 판결을 냈어요. 절대로 간호사가 임의로 프로포폴을 투여할 수 없습니다. 음, 아마도 병원 측도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을 파고들어 CCTV 화면을 확보하자? 이건가요?”
“일단, 검찰이나 경찰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정황증거를 확보해서 자료를 그쪽에 넘길 생각이에요.”
“흠, 그건 너무 일이 커질 것 같은데…….”
공 수사관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크든 작든 불법적인 부분이 있다면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렇게 되면 분명 CCTV 화면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사무장님은 하늘 병원 성형외과 환자들을 파악해주세요. 그들에게 접촉해서 증언을 좀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가능하면 녹취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해보긴 하겠는데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나저나 만약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죠?”
“일단 해봅시다. 안 되면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요.”
며칠 후,
목격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공 수사관이 시무룩한 표정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변호사님,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요?”
탁탁탁, 공 수사관이 외투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자리에 앉았다.
“환자들을 못 만났습니까?”
“아뇨. 만나기야 했죠. 그런데, 다들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요.”
“…….”
“자신이 프로포폴을 맞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게다가 투약이야 간호사가 할 텐데 그게 의사의 지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딱히 건질 만한 게 없었어요.”
“그렇군요.”
“변호사님, 이젠 어쩌죠?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
공 수사관이 암담한 듯 손가락으로 눈 밑을 긁어내렸다.
“뭐, 이렇게 된다면 할 수 없죠. 극약 처방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요.”
“극약 처방이오?”
“네. 극약 처방! 지금의 상황이면 그 방법뿐일 듯합니다.”
“그, 그게 뭔데요?”
드르륵, 공 수사관이 궁금한 듯 의자를 내 쪽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사무장님, 이쪽으로 와보세요. 그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