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149화] 유전 유죄(有錢有罪) (3)
“피고 측 변호인, 증인 심문하십시오.”
이제는 끝을 낼 때가 왔군!
“네.”
나는 천천히 증인석으로 걸어 나왔다.
“뭐, 뭐야. 저 인간이 왜 저기에 앉아있는 거야?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한 김태현이 옆에 앉아있던 수행비서, 최창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그게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뭘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처리… 안 했어?”
목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김태현이 눈치를 보며 소곤거렸다.
“음, 그게 저, 저자가 어떻게 박엔정하고 연결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쪽에서 손을 쓰는 바람에…….”
최창호가 우물쭈물했다.
“뭐? 박엔정? 그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저, 무지렁이 같은 놈이 박엔정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미친 거 아냐?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와? 당장, 안정국이한테 전화 넣어봐!”
“네네. 알겠습니다.”
최창호가 벌게진 얼굴로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증인, 증인은 피고와 무슨 관계입니까? 지인인가요?”
“아뇨.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김상식이 불안한지 연신 방청석을 힐끗거렸다.
“음, 그렇다면 피고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증인이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표님, 음…… 놀랍게도 박 회장이 김상식이를 직접 케어했답니다.”
조용히 자리로 되돌아온 최창호가 김태현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뭐, 뭐라고? 박 회장이 직접? 왜?”
김태현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박 회장에게 향했다.
“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고 김정환 변호사가 저자를 박 회장에게 맡겼다는군요.”
“이런, 시X! 뭐, 이런 X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김태현이 고개를 숙인 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야. 저 새끼 얼굴도 보기 싫으니까 재봉틀로 틀어막든 입을 찢어버리든 어떻게든 틀어막아!”
“일단, 안 사장님이 조치한다 하셨습니다. 좀 기다려보십시오.”
“뭘, 어떻게?”
“안 사장님이…….”
최창호가 주변을 살피더니 김태현의 귀에 뭔가를 속닥거렸다.
“그…… 래?”
“음, 자,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왔습니…… 다.”
김상식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쾅!
“비켜!”
김상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험악하게 생긴 비곗덩어리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법정 뒤쪽에 있던 기자들을 우악스럽게 밀쳤다.
“아야, 앙거!”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남자들이 어기적거리며 뒷자리에 일렬로 도열했다. 멧돼지보다 두꺼운 목덜미, 몸통인지 허린지 구분되지 않는 심상치 않은 외모, 강렬한 눈빛이 한눈에 봐도 일반 방청객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김상식을 압박하기 위해 안정국이 보낸 사성파의 조직원들이었다.
“아야, 네 거짝서 뭣 허냐? 얼른 내려온나잉!”
“쥐새끼멩키로 도망 다녀 쌌더니 여기 와 있었냐? 시방, 거서 뭐 한다냐?”
남자들이 손가락질하며 김상식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신성한 법정에서 뭐 하는 겁니까? 당장 나가세요!”
화들짝 놀란 재판장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이고, 판사님! 지송합니다. 지덜도 재판 구경 왔어라. 여기 방청권 있다 안 허요!”
조폭 하나가 방청권을 들어 허공에 흔들었다.
“경위! 당장 저 사람들 퇴정시키세요! 당장!”
화난 재판장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모두 나가세요! 여긴 신성한 법정입니다. 계속 이렇게 행패를 부리시면 법정모독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두 명의 경위가 그들에게 다가가 경고했다.
“아따, 우린 그냥 재판 구경 왔어라. 우리가 뭔 잘못이 있다요?”
남자들이 버티며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꾸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아이고, 무시라! 알았어요. 알았어! 나가면 될 거인데 왜 그래싸소! 아그야, 그만 가봐야 쓰겄다.”
“네. 성님!”
우두머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고개를 삐딱하게 숙인 채 김상식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목심 아깐 줄 알면 그 주둥아리 처닫아라잉!’
손날을 세워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
꿀꺽, 그 모습에 겁에 질린 김상식이 말을 잇지 못했다. 핏기가 걷힌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김상식 씨, 왜 그래요?”
“그, 그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김상식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머뭇거렸다.
“김상식 씨! 왜 그래요?”
“변, 변호사님, 저…… 저 못하겠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김상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상식 씨, 전 약속하면 반드시 지킵니다. 절 믿으세요.”
“저, 저 사람들을 보고도 믿으라고요? 아뇨, 전 못 합니다. 안 할 거예요!”
김상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 무식한 놈들! 고작 너희들 머리에서 나오는 방법이라곤 이런 것들뿐이겠지! 조폭 때려치워라! 그런 머리로 어떻게, 밥벌이라도 할 수 있겠니?
그나저나 곧 올 때가 됐는데…….
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쾅!
그 순간, 법정 문을 열고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저승사자들이 이제야 왔군!
“지금 재판 중입니다. 신성한 법정에서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사람들…….”
경찰들의 등장에 또다시 놀란, 재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판사님! 경찰청 광역 수사대 강상중 팀장입니다. 워낙 사안이 긴급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기 체포영장 있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재판장에게 다가가 공손히 체포영장을 내보였다.
“음…… 이해는 하지만, 여긴, 신성한 법정입니다. 이렇게 무단으로 출입해 재판을 방해하면 어떡합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 쪽에 책임소재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저 사람들 빨리 끌고 나가세요!”
흠흠, 재판장이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야! 너덜 쓸데없는 객기 부리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라! 괜한 객기 부리다간 다 죽는 수가 있어! 박 형사, 쟤네들 얼른 데리고 가자!”
“네. 팀장님.”
박 형사가 무장한 전경들과 함께 법정 뒷문 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김정환 검사…… 아니, 김 변호사님!”
강상중 팀장이 밝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네. 수고하십니다. 쓰레기 청소 깨끗이 부탁드립니다.”
“넵. 청소랄 것도 없습니다. 저것들은 재활용도 안 돼서 그냥 폐기 처분해야 합니다. 야! 시간 없다. 빨리빨리 쓸어 담아라.”
우당탕탕!
“시X, 놔! 안 놔!”
“야, 너덜 좋은 말할 때 얌전하게 굴어. 뒈지기 전에! 조용히 오라를 받아라. 이 조폭 새끼들아!”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조폭들이 우왕좌왕하며 거칠게 반항했다.
“야! 너덜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지랄이야? 쓸데없는 반항하지 말고 조용히 가자! 어차피, 곧 오게 될 건데…… 뭐, 벌써들 와서 지랄이야? 지금 예행 연습하냐?”
하지만, 아무리 조폭들이고 해도, 법정에서 그것도 무장한 경찰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황당한 표정의 김정주 주필이 박 회장을 쳐다봤다.
“글쎄요…… 이것 참,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되는군요. 김 변, 이 사람 물건이야. 물건!”
허허허, 박 회장이 주먹을 말아 쥐더니 가볍게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흠, 그런 게 있어요.”
하하하, 박 회장이 더욱더 큰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
* * *
며칠 전,
나는 광역 수사대에 있는 강상중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쿠, 검사님 웬일입니까?”
“강 형사님, 잘 지내셨죠?”
“저야 뭐, 죄지은 놈들 잡아 족치고 있죠. 참! 변호사 개업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한번 찾아가 봬야 하는데…….”
“여전하시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형사님께 부탁 하나 하려고요. 이번에 제가 사건을 하나 맡았는데…….”
나는 강상중 팀장에게 정지수 사건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음, 정지수 씨는 나도 팬인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나저나, 부탁하실 일은 뭡니까? 제가 아무리 바빠도 검사님, 아니지. 변호사님 부탁은 무조건 들어드려야죠!”
“아무래도 사성파 쪽에서 뭔가 무력시위를 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팀장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군요. 어차피 잘됐네요. 우리도 요즘 사성파 놈들,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놈들의 기세가 요즘 하늘을 찌를 기세거든요. 더 커지면 우리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타이밍을 보고 있었죠.”
“네. 아무래도 이번 공판에 김상식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니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법으로 법정에 난입하면 체포하는 데 훨씬 더 수월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희야 놈들이 한자리에 모여 준다면 땡큐죠. 준비해 두겠습니다. 이놈들 간댕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네. 법정이 어디라고 거길 기어들어 올 생각을 해? 허허, 참!”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사성파, 이놈들 때려잡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밥상을 차려주시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하하하, 강상중 팀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잠시 후,
한 시간여, 조폭들의 난입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그들은 강상중 팀장을 위시한 광역 수사대 요원들에 의해 전원 체포되었다.
“정숙, 정숙하세요! 지금부터 다시 재판을 재개하겠습니다. 변호인, 증인 신문 시작하세요.”
재판장이 다소 어수선했던 법정을 진정시키며 재판을 다시 진행했다.
“네.”
“김상식 씨, 이젠 걱정 마시고 사실대로 진술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네. 변호사님!”
이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지 김상식의 표정이 밝아졌다.
“증인, 증인이 증인석에 앉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네. 사실, 저는 사성파라고 폭력조직의 일원이었습니다…….”
평정심을 되찾은 김상식이 차분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흠, 결국, 그렇게 된 건가?”
“그렇다면, 누군가 김상식에게 사주해 와인에 수면제를 탄 거고, 와인을 마신 정지수가 정신을 잃은 틈을 타 마약을 투여했다 이건가? 이쯤 되면 딱 각이 나오는데?”
“그럼, 사주한 사람이 누굴까?”
“누구긴, 정지수가 걸려 들어가면 반사이익을 보는 족속들이겠지! 아니면…….”
방청객들이 나름대로 날카로운 추리를 내놓았다.
“증인, 묻겠습니다. 증인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결국, 증인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와인에 수면제를 타, 피고에게 전달한 것이라는 건데, 제 말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흠, 그렇다면 증인에게 사주한 사람은 누굽니까?”
“음, 그게…….”
김상식이 방청석을 힐끗거리며 머뭇거렸다.
“증인, 이제는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증인 때문에 평생을 지켜온 한 배우의 소중한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증인!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 혹시, 증인을 사주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무, 무슨 소리야? 이 자리에 있다니?”
“그러게, 이러면 이거, 이거, 대박인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법정 안의 모든 사람이 숨죽인 채, 시선을 김상식의 입에 모았다.
“다시 묻겠습니다. 혹시, 증인을 사주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네에. 있습니다.”
후, 김상식이 마음을 굳힌 듯 심호흡을 했다.
“그게 누굽니까?”
“그게…….”
김상식이 방청석을 향해 팔을 들어 올리고는 천천히 검지를 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