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화] 유전 유죄(有錢有罪) (2)
정말, 역겨워서 못 봐주겠네! 너희들 이렇게 살지 마라. 그러다가 불지옥에 떨어진다. 기대해도 좋아! 지금부터 내가 잘근잘근 밟아주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증인석으로 다가갔다.
“증인, 증인의 진술을 들어보니 3개월 전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시던데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군요.”
“흠, 뭐. 저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썰미나 기억력이 좋아야 하니까요. 안 그러면 이 짓도 못 합니다. 나름 기억력은 좋은 편입니다.”
고현우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대단하시군요. 그럼 묻겠습니다. 피고가 확실히 필로폰 주사를 직접 투여했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하더군요.”
“능숙하게라…… 그 말씀은 피고가 마약 투약 경험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뭐. 아무래도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당시 피고가 입고 있던 의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글쎄요. 그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군요.”
고현우가 잠시 머뭇거리며 머리를 까딱거렸다.
“이상하군요. 상당히 오랜 시간을 밀실에서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과 눈썰미가 뛰어나신 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기…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어떡합니까?”
고현우가 계속되는 질문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증인에게 불필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주의하세요!”
재판장이 박인수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알겠습니다.”
“증인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그럼, 제가 확인시켜 드리죠.”
틱, 나는 스크린에 당시 정지수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띄웠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당일 씨에스타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저 스크린에 있는 사진들은 당시 피고가 씨에스타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저기, 핑크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는 사람이 피고 맞죠?”
나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정지수에게 물었다.
“네. 저 맞습니다. 그날 저의 코디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정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피고의 말대로 정지수 씨의 사진이 맞습니다. 홀과 씨에스타 정문에서 찍은 사진이 틀림없군요.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진 속 피고는 전부 민소매 원피스 차림이군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고현우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뭐, 뭐가 이상합니까? 그냥, 같은 옷인데…….”
그가 당황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렇죠? 전부 같은 옷이죠? 증인이 밀실에서 피고를 만났을 때도 저 옷차림이었습니까?”
“흠흠, 네. 지금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확실합니까?”
“그게, 음…… 핑크색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음, 맞는 것 같습니다.”
고현우가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그래요? 그럼, 이번엔 이 사진들을 보시죠.”
틱, 마우스를 움직여 또 다른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마약 중독자들의 팔에 생긴 주사 자국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시퍼렇게 주사 자국이 선명한 사진이었다.
“증인은 분명, 피고가 혼자서 마약을 투여할 정도로 능숙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보자가 직접 자신의 팔에 마약을 투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조력자가 시범을 보이거나 팔에 주사를 놔주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결국, 증인의 말대로 피고가 직접 마약을 투여했다면, 저 사진들처럼 팔에 주사 자국이 선명해져 있어야 할 겁니다. 증인, 이 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 모르겠습니다.”
이제야 어느 정도 감을 잡았는지 고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시는 것이 많군요. 그럼 이것도 제가 설명해 드리죠. 그래서 마약 중독자들은 주사 자국이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팔이 드러나는 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거의 팔을 가리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좀 전의 사진을 보면 피고는 시종일관 어깨가 드러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지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만약, 피고가 마약을 투여했다면 저렇게 과감하게 팔을 드러내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말입니다. 본 변호인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
고현우가 연신 다리를 떨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음, 이제 김정환 변호사가 슬슬 반격을 시작하나?”
“그러게 말이야. 점점 흥미진진해지네.”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즐기듯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이제, 당신의 간교한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증인, 증인은 피고와 함께 술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맞죠?”
“네.”
“무슨 술을 마셨습니까?”
“음, 그냥. 위스키를 마셨던 것 같습니다.”
“피고가 많이 취했었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피고가 먼저 필로폰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초면인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눴다면 적어도 1시간은 같이 있었겠군요. 맞나요?”
“음,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고현우가 최대한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기 위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증인이 씨에스타에 온 시간은 몇 시입니까? 대충이라도 기억이 나시나요? 기억력이 좋으시니 알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대충 저녁때였던 것 같은데, 그것도 정확한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역시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황스럽군요. 그토록 기억력이 뛰어난 증인이 갑자기 기억력이 나빠진 이유는 뭘까요?”
“아무튼,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흠흠흠, 고현우가 헛기침했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박인수 검사가 또다시 브레이크를 걸며 나섰다.
“아뇨. 재판장님! 증인이 씨에스타에 도착한 시각은 본 사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하지만, 증인이 정확한 시각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재판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제가 확인시킬 수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네.”
“음, 좋습니다. 그럼, 계속 심문하세요!”
재판장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좋아! 이제부터 너의 알리바이를 완전히 깨부숴주마!
“본인의 차가 맞습니까?”
나는 스크린에 오른쪽 범퍼가 깨진 빨간색 외제 스포츠카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네? 네. 맞습니다.”
내가 의외의 사진을 내밀자 당황한 듯한 현우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상당히 고급 차인 것 같은데, 왜 범퍼가 깨졌습니까? 사고라도 당하셨나요?”
“그,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현우가 애써 외면하며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아뇨. 모를 리가 없죠. 증인! 다시 묻겠습니다. 왜, 범퍼가 깨진 겁니까?”
“흠, 모르겠다고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톤을 높였다.
“증인, 목소리 낮추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재판장이 고현우에게 주의를 시켰다.
“흠,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것도 설명해 드리죠. 증인은 씨에스타에 도착하기 전, 접촉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시각은 정확히 20시 00분경, 당시 상대편 차량 주인이 즉시 보험 회사에 연락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니 정확한 시각일 겁니다. 본, 자료는 당시 가해 차량 주인이 보험 회사에 사고 접수한 내역입니다. 신고 시각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군요. 재판장님! 본 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합니다.”
“채택합니다.”
재판장이 내가 제시한 증거물을 받아들였다.
“증인과 상대편 차량 주인은 약 10분간 실랑이를 벌인 후 헤어졌습니다. 본 사진은 당시 사고 차량 주인이 찍은 사진을 어렵게 확보한 사진입니다. 이후, 증인이 차를 몰고 씨에스타에 도착한 시각은 20시 20분 경입니다.”
“보시죠.”
나는 스크린에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본 사진은 시에스타 앞 사거리 교통통제 카메라에 찍힌 증인의 차량 사진입니다. 사진에 찍힌 시간은 20시 15분! 다행히도 증인이 신호 위반을 하셨더군요! 역시, 오른쪽 범퍼가 일그러져 있습니다. 사진이 찍힌 사거리 모퉁이를 돌면 바로 씨에스타가 있어서 결국, 증인이 씨에스타에 들어간 시간은 20시 20분경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당시, 주차장에서 씨에스타에 도착한 증인과 대화를 나눈 직원의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그, 그게…….”
꿀꺽, 고현우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피고의 시간대별 동선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을 보시죠!”
내가 화면에 띄운 내용은 씨에스타의 매니저와 정지수가 나눈 통화 내역과 그녀가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매니저 : 정지수 씨, VIP실에서 영화사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지수 : 네. 차가 좀 막히네요. 지금 몇 시죠? 한 5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요.]
[매니저 : 아 네. 지금 6시 10분이네요. 대표님도 이제 막 오셨습니다.]
[정지수 : 네. 모퉁이만 돌면 되니까,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매니저 : 네. 알겠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피고가 씨에스타에 들어간 시각은 대략 6시 15분, 피고는 영화사 대표와 약 한 시간가량 식사하며 대화를 나눴고, 메인 홀로 나온 시간은 19시 20분! 이때까지도 증인은 씨에스타에 도착하지 않았겠죠?”
“…….”
고현우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방청석에 앉아있던 김태현의 얼굴을 힐끗거렸다.
“계속하겠습니다. 피고는 그 후, 메인 홀로 나와 1시간가량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 후, 20시 25분에 씨에스타에서 나왔습니다. 귀가하기 직전, 씨에스타 정문 앞에서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나타난 날짜가 선명하군요!”
나는 정지수가 씨에스타에서 나와 귀가하기 전 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들어 올렸다.
“재판장님! 피고의 차를 발렛파킹해준 씨에스타 직원의 육성 증언과 함께 본 사진을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나는 재판석에 서류봉투를 건네주었다.
“음, 채택합니다.”
“그렇다면, 증인과 피고가 마주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고작 5분! 그 5분 사이에 술을 마시고 필로폰을 투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증인의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증인,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흐음, 흠…… 그게, 흠……”
고현우가 연신 콧바람을 내뱉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 그 간교한 혀를 더 날름거려보시지!
“증인! 설명하시기 힘드신가요?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이제 슬슬 재판의 윤곽이 드러나는구나!”
“천하의 박인수 검사도 어쩔 수 없는 건가?”
방청객들은 이미 마지막 카운터 펀치 한 방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피고 측 변호인! 증인 김상식 씨 출석하셨습니까?”
재판장이 본 재판의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는 김상식을 호출했다.
“네.”
“저, 저 인간이 어떻게 여길…….”
방청석에 앉아있던 김태현의 동공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날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