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147화] 유전 유죄(有錢有罪) (1)
<팰리스 호텔>.
휘휘휘, 휘휘 휙!
팰리스 호텔의 벨보이 박인천이 휘파람을 불며 트레이를 밀고 4층 복도를 지나갈 무렵이었다.
“이봐. 박인천이!”
획, 공 수사관이 모퉁이에서 박인천의 팔을 잡아당기자 그가 힘없이 딸려 들어왔다.
“뭐, 뭡니까? 누…… 구세요?”
깜짝 놀란 박인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누구긴 누구야. 경찰이지!”
공 수사관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그의 눈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빛과 같은 속도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네? 그, 근데 경찰이 무…… 슨 일로?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 데요.”
박인천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며 어리둥절했다.
“이거, 403호로 가져가는 거지?”
“네네. 그, 그런데요? 그게 뭐 잘못된 건가요?”
“지금, 거기 김태현 대표가 묵는 방 맞아?”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음식을 시키셔서 가져가는 것뿐입니다.”
“아, 정말! 너 자꾸 이럴래? 나 두 번 말하는 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이다. 너, 이리 와봐.”
공 수사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왜, 왜 그러세요. 정말!”
“내가 여기 그냥 온 것 같아? 이미 다 알고 왔어. 이거 전부 네가 업로드 한 거 맞지? 몰카에 변태 포르노에…… 애니멀에 롤리타까지 아주 가지가지 더러운 짓은 다 했더라?”
공 수사관이 모 불법 사이트에 박인천이 업로드 한 동영상 리스트와 아이디, 그의 신상에 관한 정보가 담긴 문서를 내밀었다.
“이게 뭐, 뭡니까? 제, 제가 한 것 아닙니다.”
문서를 확인하는 그의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뭘. 아냐 자식아! 이미 사이버 수사대에서 정황 파악 다 했어. 너, 곧 있으면 체포영장 발부될 거거든? 어떡할래? 한 5년 푹 썩을래? 아님, 내가 널 좀 도와주려고 여기 온 건데, 내 부탁 하나 들어주고 집행유예 받을래?”
“저, 정말입니까? 뭘 도와드려야 하나요?”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됐는지 박인천이 고분고분해졌다.
“아 놔. 이 새끼가 평생을 속아만 살았나. 그렇다고! 자식아! 믿어라, 좀, 믿어!”
공 수사관이 손등으로 박인천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뭐, 뭔데요 제가 할 일이…….”
박인천이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저기 403호에 있는 사람들이 김태현하고 민서영 맞지! 그것부터 말해!”
“아이 씨, 아, 안 되는데……”
“아놔 이 새끼! 아직도 똥, 오줌 못 가리네? 너, 몰카 촬영에 음란물 유포죄가 얼마나 큰 줄 알아? 진짜 콩밥을 먹어야 ‘네. 알겠습니다.’ 할 거냐?”
“아, 아 알았어요. 맞습니다. 거기 두 사람이 지금 묵고 있어요.”
“그래그래. 다 알고 왔는데, 뭘 그렇게 끝까지 버티니? 선수끼리! 음, 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어려운 거 없어. 이거 그 사람들 몰래 테이블 밑에 놔두기만 하면 돼. 너, 원래 이런 거 선수잖아. 안 그래?”
공 수사관이 박인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공 수사관이 박인천에게 초소형 녹음기를 건네주었다.
“네네. 이거만 설치하면 되는 거죠?”
“그래그래. 그리고 나중에 나한테 갖다 주면 돼! 넌, 지금 정의를 수호하는 위대한 일을 하는 거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툭툭, 공 수사관이 박인천의 엉덩이를 건드렸다.
* * *
<정은 법률사무소>.
“흠, 그렇게 된 거군요.”
“네. 아주 변태 중에 상 변태 새끼더라고요. 애들 좀 풀어서 알아보니까, 불법 사이트에 업로드 한 동영상이 100개도 넘어요. 죄다, 호텔 몰카에 변태 포르노 등등 더러운 짓은 혼자 다 했더라고요.”
공 수사관이 헛구역질하며 치를 떨었다.
“그래도, 이건 불법인데…….”
“에이, 선수끼리 왜 그러십니까? 아무리 불법적인 증거 수집이라고 해도 사안이 중대하고 결정적일 경우는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는 건 아시잖아요?”
“아뇨.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USB를 확보하게 된 그 과정 자체가 불법이라는 거죠. 사무장님은 경찰을 사칭한 거고 게다가 이 증거를 수집한 경위가 밝혀지면 박인천, 이 사람도 처벌을 받아야 하거든요.”
“하여간, 우리 변호사님은 조선 시대에 선비로 태어났어야 딱인데, 하필 지금 태어나셨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경찰 사칭한 게 문제 되면 제가 다 책임집니다. 그리고 박인천 그 인간, 불법감청 한 건 본인이 감수하기로 했으니깐요. 몰카 촬영에 음란물 유통이면 적어도 5년인데, 불법 감청이 훨씬 싸게 먹히죠. 안 그래요? 놈이 아이큐가 두 자리만 돼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거예요.”
“그럼, 박인천의 다른 죄들은 그냥 넘어가시겠다는 겁니까?”
“어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렇게 융통성이 없으셔서 앞으로 어떡하셔? 우리 변호사님! 제가, 자료 싹 다 정리해서 공판 끝난 다음에 사이버 수사대에 넘길 거예요. 이런 놈을 왜 그냥 둡니까? 그냥 하는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이 인간, IQ가 두 자리도 안 되는 게 맞나 보네. 내 말을 믿은 걸 보니?”
크크크, 공 수사관이 어깨를 들썩이며 피식거렸다.
“아무튼, 어떤 형태든 불법은 안 돼요. 그리고 이번에 경찰 사칭하신 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 수사관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이죽거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이번 공판에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스모킹 건을 확보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정지수 사건 2차 공판.
<430호 법정>.
후, 이제 끝장을 봐야 할 타이밍인가?
심호흡하며 법정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박인수 검사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공판 서류를 넘기며 있는 그의 표정이 비장했다. 나를 힐긋 쳐다보는 그의 안경이 조명에 반짝거렸다.
음, 검사님! 오늘 끝장을 봅시다! 더 끌 것 없잖습니까?
나 역시 그를 응시하며 천천히 변호인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면 지금부터 증인 신문을 시작했겠습니다. 고현우 씨, 출석했습니까?”
“네.”
형식적인 피고 심문을 마친 후, 본격적인 증인 신문에 들어갔다.
고현우!
고현우는 마약 공급 업자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최근에 경찰에 자수한 상황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정지수에게 직접 마약을 공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현우 진술의 진위 여부는 본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모킹 건이었기에 나는 어떡하든 그의 허점을 파악해야 했다.
“증인, 증인은 언제 처음 피고를 알게 됐습니까?"
“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석 달 전쯤 된 것 같습니다.”
“어디서 만났죠?”
“홍대에 있는 모 클럽에서 만났습니다.”
“피고가 드나들 정도면 일반 클럽은 아니었을 테고 어떤 클럽이었습니까?”
“네. 클럽 이름은 씨에스타라고 철저한 회원제 클럽이었습니다. 주로, 연예인들이나 재벌 2세, 3세들이 드나드는 곳이죠. 유명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죠.”
“그렇게 회원제로 운영이 되었다면 증인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드나들 수 있었죠?”
“검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이 바닥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입니다. 실체도 형체도 없죠. 저 역시, 중간 보급 책에 불과하거든요. 어떻게 약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알려고도 하지도 않았죠. 아는 순간 요단강을 건너야 하니까요. 저는 그냥, 위에서 작업해주면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작업이오? 이해하기가 쉽지 않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네. 그냥 한 마디로 제가 씨에스타에 드나들 수 있도록 신분 세탁해주는 겁니다. 보통, 재미교포나 재일 교포 사업가로 위장해줍니다. 저 같은 경우는 재미교포, 사업가로 위장해 그곳에 들어갔죠.”
“그렇군요. 그곳에서 증인이 피고에게 메스암페타민을 직접 전달했다는 거죠?”
박인수 검사가 직접적인 답을 끌어내려 했다.
“아닙니다. 저는 저, 저 사람하고 몇 마디 대화만 나눈 것뿐이에요. 전, 그냥 씨에스타에 온 회원인 줄 알았어요. 저는 저 사람을 모릅니다. 마약이라뇨!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갑자기 정지수가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피고, 정숙하세요. 지금은 피고가 발언할 시간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저는 절대 아닙니다!”
재판장이 정지수를 향해 경고하자 그녀가 의자에 몸을 내던지며 흐느꼈다.
“검사, 계속하세요!”
“네.”
박인수 검사가 메마른 시선으로 정지수를 응시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똑바로 기억하시고 정확하게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에게 메스암페타민을 제공하게 된 과정을 말씀해주십시오. 만약에 위증하실 경우에는 가중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박인수 검사가 고현우에게 경고했다. 진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의 전략이었다.
“네. 물론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한진영 씨의 소개로 정지수 씨를 만났습니다.”
“지금 구속되어 있는 한진영 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한진영 씨는 정지수 씨와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고 그 사람의 소개로 정지수 씨를 밀실에서 만났습니다.”
박인천의 말대로 한진영은 정지수와는 친하게 지내는 동료였고 최근 대대적 마약 단속 수사에 걸려 수감된 상태였다.
“피고, 피고가 한진영 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증인의 진술이 사실입니까?”
재판장이 정지수 씨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네에.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입니다.”
사실이었기에 정지수 입장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검사! 계속하세요.”
“네. 재판장님.”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밀실에서 정지수 씨와 저는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정지수 씨가 먼저 약을 원했습니다. 이미, 한진영 씨가 정지수 씨에게 귀띔해준 것 같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 밀실에서 직접 피고에게 메스암페타민을 제공했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 본인이 직접 메스암페타민을 투여했습니까? 아니면, 증인이 투여하는 것을 도와줬습니까?”
죄질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저, 정지수 씨가 직접 투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바늘을 꽂는 모습이 꽤 능숙했습니다.”
“거, 거짓말이야!”
정지수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원망 섞인 시선을 느꼈는지 고현우가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말을 이어갔다.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와, 이거, 진짜 롤러코스터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관건은 김정환 변호사가 고현우의 진술을 깨야 하는 건데, 어떤 수를 들고 나올까?”
박인수 검사의 심문이 끝나자 법정은 혼란에 휩싸인 듯 어수선해졌다.
“변호인, 반대 심문하세요!”
“네.”
정말, 역겨워서 못 봐주겠네! 너희들 기대해도 좋아! 지금부터 내가 잘근잘근 밟아주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증인석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