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146화] 뿌리까지 뽑아주마 (3)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은 H 그룹 김태현과 GM 소속 배우 민서영이 모 호텔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대표님, 이, 이제 어떡하죠?”
민서영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뭘 어떡해?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연기나 잘하라고! 이번 배역 어떻게 따낸 건지 알고 있지? 제발, 감독 눈에 좀 들어보라고! 내가 봐도 연기가 시원찮아. 이번 작품 무조건 잘돼야 한다고! GM의 사활이 걸린 작품이야.”
김태현이 퉁명스럽게 그녀를 다그쳤다.
“네. 최선을 다할게요. 그런데, 대표님, 그래도 1차 공판을 보니까 김정환 변호사가 만만치 않던데요. 이러다가 잘못되는 것 아닐까요?”
민서영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그녀가 다시 재판에 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새끼가 뭘 어떻게 해. 정지수는 현장에서 검거됐어. 그거만큼 확실한 증거가 뭐가 있어. 정지수는 현행범이라고. 김정환이 아무리 날뛰어봤자 소용없어.”
“박민재는 어떡하고요? 그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돈 싫다는 놈 봤어? 어차피, 그 새끼는 어쩔 수 없이 구속될 상황이라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몇 년 살고 돈 챙기는 게 낫지. 그리고 그 새끼 걸리는 게 많아서 쉽게 입 못 열어. 걱정 마! 이런 인간은 노예근성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주인을 안 물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김정환 변호사는요?”
“흠, 그게 문제긴 한데, 아무튼, 나도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만약을 위해서 당부하는 건데,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야. 혹시라도 내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은 네가 끌어안고 가는 거야. 만약에 내가 걸리게 되면 너도 딸려 들어갈 수밖에 없어. 내가 무사해야 너도 구한다고! 어차피 나야 법무팀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겠지만, 넌 아니잖아. 걸리면 이 생활 끝이라고. 그러니까 맘 단단히 먹고 있으라고.”
“네에. 전, 대표님만 믿어요. 그나저나 혹시 언니가 뭘 알고 있는 건 아니겠죠?”
“알긴 뭘 알아. 수면제 처먹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투약한 건데… 쓸데없는 걱정 말고 입단속이나 잘하라고! 내일 2차 공판 때는 분명 끝장을 볼 거니까 걱정 마. 시X, 감히 배우 주제에 내 명령을 거부해? 건방진 년, 이참에 그년 기획사랑 묶어서 이 바닥에서 매장해 버릴 테니까 두고 봐.”
딩동, 딩동.
“룸서비스입니다. 주문하신 음식 가져왔습니다.”
벨보이가 객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화면은 여기까지였다.
흠, 역시, 김태현과 민서영은 내연관계였군! 결국,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정지수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어! 도대체, 빌어먹을 금수저의 뇌에는 똥만 가득 찬 건가?
그나저나, 대화 내용이…… 1차 공판이 지난 시점인데…… 첫 공판이 끝난 시점이 이틀 전이니까, 이 영상이 찍힌 시점은 아무리 빨라봐야 어제라는 소린데…… 아니지! 어제는 분명 아니다. 김태현이 이틀 전에 미국 출장을 떠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적어도 어제는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설마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 건가?
“킹 메이킹 시스템! 다시 한번 화면을 재생해줘! 최대 볼륨으로!”
[알겠습니다.]
“여기서 멈춰!”
‘아, 우리 호크스가 좀 더 힘을 내야 하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TG 스타스 5선발을 우리 타자들이 못 터나요?’
두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TV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프로야구 중계, 캐스터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해설자와 캐스터의 말투로 볼 때 정규방송이 아닌 지역 방송인 듯했다.
편파중계가 틀림없다!
H 그룹 모기업인 H 호크스와 TG 스타스와의 프로야구 중계였다. 호크스의 유니폼이 홈경기 유니폼인 흰색인 것으로 봐서 대전 홈경기가 틀림없었다. 김태현이 야구광이었으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
음, 5회 말에 0 대 0이라…….
나는 재빨리 컴퓨터를 켜고 프로야구 경기 일정을 살폈다. 중계 예고를 살펴보니 이 경기는 종편, TBS와 지역 방송인 DBC 두 군데서 중계하기로 되어있었다. DBC는 대전 지역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 지역방송국이었다. 지역방송의 편파중계가 틀림없다면 장소는 대전! 대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시간은?
만약에 미래에 벌어진 일을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거라면 적어도 2차 공판이 있을 9월 3일 이전이라는 건데…….
경기 일정을 살펴보니 지금 시점부터 9월 3일까지 대전 홈구장 경기는 총 6경기!
8월 31일부터 9일 2일까지 3연전을 대전에서 TG 스타스와 경기를 치르게 되어있었다! 영상 속에서 김태현이 ‘내일 공판에서…’ 란 말을 했으니, 그렇다면 9월 2일 경기가 틀림없다는 소리! 경기가 6시 30분에 시작될 것이고 5회 말 현재 0 대 0이라면 굉장히 경기 시간은 빨랐을 텐데… 경기 시간이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하면 결국, 영상 속의 시간은 9월 2일 오후 7시 30분 내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게다가 벨보이한테 음식을 시킨 것으로 봤을 때 저녁이란 소린데, 얼추 시간은 맞는다!
그렇다면, 이 영상은 9월 2일 오후 7시 30분 전후에 대전의 모 호텔에서 찍힌 미래 화면! 호텔이 위치한 장소만 알아낸다면 뭔가 큰 것을 잡아낼 방법이 있을 듯한데…….
“킹 메이킹 시스템 화면을 다시 재생해줘!”
[네. 알겠습니다.]
“멈춰!”
나는 민서영 바로 뒤에 있는 창문 사이로 YS 정유 전광판이 보이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췄다.
전광판이 보이는 각도로 볼 때, 적어도 김태현이 묵은 호텔의 층수는 4층을 넘기 힘들다! 결국, 3층 내지는 4층에 투숙했겠군!
띠리리링.
나는 바로 공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 수사관님, 혹시 김태현이 자주 찾는 호텔을 추려볼 수 있을까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음, 설명하려면 길어요. 일단, 김태현이 자주 찾는 호텔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에이, 그, 그걸 어떻게 압니까? 호텔이 한두 개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뭐 흔적이나 남기겠습니까?" 아마, 숙박 정보도 없을걸요? 그런 걸 남길 인간들이 아니잖습니까?”
공 수사관의 목소리가 비관적이었다.
“흠, 일단 지역을 대전 쪽으로 좁히면요?”
“그래도 쉽지가 않을 텐데요. 그쪽에 뭐 호텔이 한두 갠가요?”
“방법이 없을까요?”
“당연히 없죠. 잠시만요. 아! 맞다. 대전에 H 그룹 계열의 피렌체 호텔이 하나 있긴 한데요!”
공 수사관이 무언가 찾은 듯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요? 그럼 그 호텔 근처에 YS 주유소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야 뭐, 어렵지 않죠. 데이브 지도를 보면 되죠!”
틱, 공 수사관이 컴퓨터를 켜는 듯했다.
“음, 피렌체 호텔 근처엔 주유소가 없는데요?”
흠,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렇군요. 그럼 그곳은 아닙니다.”
“근데, 이걸 왜 찾는 겁니까?”
“김태현이 민서영과 그곳에 투숙할 예정입니다.”
“네. 민서영이 GM 소속이고 김태현이 대주주니 암, 투숙해야죠. 네? 뭐라고요? 투숙했던 것도 아니고 한다고요? 이건 뭐, 노스트라다무스 뭐 그런 거예요? 지금 미래를 볼 수 있다, 뭐, 이런 소리 하시려는 거 아니죠? 설마…….”
공 수사관의 목소리 톤이 급하게 올라갔다.
“그런 게 뭐 중요합니까? 요즘, 언젠가부터 제가 좀 신기가 들렸는지 이상한 게 보이네요.”
대충 둘러댔다.
“정말요?”
“아니 농담이에요 농담! 아무튼, 대전 지역에 있는 호텔 중에 근처 100M 내에 YS 주유소가 있는 호텔을 찾아봐 주십시오. 분명 높은 건물이 없는 외곽지역입니다. 도심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자체적으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호텔이니 규모는 어느 정도 있을 겁니다. 반드시 찾아야 해요!”
“네네 그건 알았고! 신기요? 그거 내림굿을 해야 하는데…… 안 그럼 신병 걸려요!”
“아, 진짜 이러실래요? 농담이라고 했죠?”
“알았어요. 알았어! YS 주유소라…… 그래도 선택지는 좀 줄여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공 수사관이 말꼬리를 늘이며 이죽거렸다.
“음, 분명 자체적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음, 적어도 주방을 갖춘 호텔이어야겠군.”
“네.”
“알겠습니다. 레이더 한 번 돌려보죠! 언제까지 알아봐 드릴 깝쇼?”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네네. 알아모시겠습니다.”
* * *
2주 후, 2차 공판 하루 전,
<정은 법률사무소>.
다행히 생각보다 쉽게 김태현이 묵었던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100M 내에 YS 주유소가 있고 주방 시설을 갖춘 식당, 객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 범주 안에 해당하는 대전 지역의 호텔은 총 3개였다. 그중, 창밖으로 YS 주유소 간판을 볼 수 있는 호텔은 단 하나, 서대전 외곽에 위치한 팰리스 호텔이었다. 좀 더 정보를 확보해보니 그곳은 김태현과 민서영이 가끔 만나 밀회를 즐기는 장소이기도 했다.
“대, 대박! 변호사님, 진짜 신기 들린 것 맞습니까? 이…… 이걸 예측하고 계셨다는 거죠?”
공 수사관이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그가 가방에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내 자리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김태현이 그곳에 투숙한 게 맞습니까?”
“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도대체, 2주 전에 이 이 인간이 이 호텔에 투숙할 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진짜, 미치겠네?"
공 수사관이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어이없어했다.
“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됐습니까? 가져오신 겁니까?”
“흐음, 제가 누굽니까? 자, 여기요. 이거, 이거 정말 대박이던데…… 이걸 열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완전 판도라 상자에요. 진짜!”
공 수사관이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들었다.
“일단, 줘보십시오!”
“자, 잠깐만요!”
획, 공 수사관이 USB를 뒤로 감추며 말했다.
“왜, 왜요? 뭐 하시는 겁니까?”
나는 어이없는 그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변호사님, 진짜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거 까시면 H 그룹이랑 전면전으로 가야 해요.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공 수사관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이게 답입니다.”
내 대답은 하나, 이것뿐이었다.
“흠, 네네. 맞습니다. 맞아요.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네요. 우문현답이십니다. 여기 있어요."
공 수사관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USB를 건네주었다.
역시,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줬던 내용과 같아! 이거면 됐다!
컴퓨터에 USB를 꽂고 재생시켜보니,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과 동일했다.
“그나저나, 사무장님, 이걸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