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145화] 뿌리까지 뽑아주마 (2)
“여보세요. 김정환입니다.”
“김정환 변호사님 맞으십니까?”
다급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네. 제가 김정환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전에 누구신지 먼저 신원을 밝혀주시겠습니까?”
“저는 기, 김상식이라고 합니다.”
김상식? 이, 이자는 바자 때 정지수에게 와인을 건네준 웨이터!
“네. 김상식 씨! 말씀하십시오.”
“저, 저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구해주다뇨?”
“제가 지금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목숨이 위급합니다. 저를 구해주십시오.”
겁에 질린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김상식 씨! 일단 만납시다. 거기 어디예요?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네. 여기는 포천, XX시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오셔야 합니다. 여기도 안전한 곳이 못 됩니다.”
“네. 지금 바로 출발할 테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네.”
띠리리링.
“장 변, 미안한데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갈 거 같은데 어쩌지?”
전화를 끊고 바로 장 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지금, 고기 잔뜩 시켜놨는데?”
“미안해. 드디어, 김상식이 연락을 취해왔어!”
“김상식이오?”
“뭐, 뭐 김상식이 연락했다고요?”
전화기 밖으로 음식을 잔뜩 입에 담아 우물거리는 공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금 포천에 바로 가야 할 것 같아!”
“아, 알았어요. 저희도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
“아냐, 아냐. 그럴 것까진 없고 마저 먹도록 해. 갔다 와서 보자고!”
“알았어요. 아무튼, 조심하세요.”
“그래. 나중에 사무실서 만나.”
부릉, 나는 급히 녹음기를 챙긴 후, 차의 시동을 걸었다.
* * *
<포천 XX리의 외딴 폐가>.
나는 급히 차를 몰고 포천으로 달려갔다. 김상식이 나를 만나자고 한 곳은 포천 XX리, 인적이 드문 농가에 있는 낡은 한옥이었다. 낡았다기보단, 전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폐가가 더 어울릴 만큼 스산한 곳이었다.
“계십니까?”
삐거덕,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어두컴컴할 만큼 폐가는 음산했다.
여기가 맞는 건가?
나는 거미줄이 잔뜩 늘어진 마루를 건너 안방으로 조심스럽게 발길을 내디뎠다.
“누, 누구야?”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검은 그림자에 핏발이 잔뜩 선 눈동자, 서슬 퍼런 칼날이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김, 김정환 변호사입니다. 김상식 씨?”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검은 그림자의 형체를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신속히 신분을 밝히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휴우, 네에.”
털썩, 내가 신분을 밝히자 그때야 안심이 되는지 검은 그림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어두운데, 밝은 곳으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뇨, 아뇨. 그, 그냥 이대로가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저를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그리고 쫓기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어느 정도 암에 적응이 생겼는지 희미하게나마 김상식의 얼굴 윤곽이 나타났다. 울퉁불퉁한 얼굴에 피투성이인 채 붕대를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누군가로부터 심한 린치를 당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금 더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 아닙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우선, 약속부터 해주시죠.”
그가 몸을 뒤로 빼며 손사래를 쳤다.
“무슨 약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먼저, 약…… 속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신문 기사를 보니 김…… 변호사님은 검사 시절부터 증인들을 철저하게 보호해줬다고 하더군요. 그, 그래서 이……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저, 저를 살려주신다고 약속하십시오.”
그가 흥분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흠, 네. 그거라면 제가 약속드리죠. 믿으셔도 됩니다. 제가 책임지고 김상식 씨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말씀해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는 흥분한 김상식을 최대한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 사성파 놈들한테 쫓기고 있습니다.”
“사성파요?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왜 쫓기고 있는 거죠?”
나는 조심스럽게 셔츠에 꽂힌 만년필 형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장안평 일대, 유흥가를 장악하고 있는 조폭 조직인데, 제가 한때 그 조직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자들이 김상식 씨를 쫓고 있는 건가요? 같은 조직원이라면서요.”
“아무래도 불안했던 거죠. 제가 입을 열면 문제가 커지니까…….”
치지직, 김상식이 조금은 안정되는지 담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 불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모진 고초를 당했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정지수 씨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에. 변호사님이 어느 정도 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위험해진 거죠. 이미 사성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변호사님도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놈들도 변호사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까요.”
무섭군! 어떻게 이런 정보까지 새나간 거야?
“조폭 따위에 겁을 먹지는 않습니다.”
“네. 저도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변호사님이 길상파도 쓸어버린 사건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성파는 생각보다 잔인한 놈들이고 그 배후에는…….”
김상식이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다.
“배후요? 사성파 뒤에 배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누구죠?”
“그, 그게…….”
김상식이 불안한지 입술을 잘근거리며 머뭇거렸다.
“정확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당신을 보호할 수 있어요. 아시겠지만 저는 검찰 출신입니다. 제가 충분히 당신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제가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김상식 씨를 보호해 드리도록 할 테니 말씀해주십시오.”
“시X, 어차피 빠져나갈 구멍도 없고, 저나 변호사님이나 같은 처지나 마찬가지니 믿고 말씀드리죠. 사성파 배후엔 GM 기획이 있습니다. GM 기획, 박 사장과 사성파 보스 안정국은 막역한 사이죠.”
결국, 이 자들이 연루되어 있었어! 가만, GM 기획 박 사장은 사실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H 그룹, 김태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는 소린데…….
“흠, 그러니까…….”
“네. 맞습니다. 저도 이 생활 10년이 넘은 빠꿈인데, 그 정도 눈치가 없겠습니까? 변호사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와인 잔에 수면제를 탔습니다. 물론, 안정국이 시킨 거죠. 이 일만 잘 성사되면 중국으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시X! 상황이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놈들은 절대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제가 법정에 서는 걸 막아야 할 테니까요. 조만간 이곳도 곧 찾아낼 거예요.”
“네. 저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와 함께 가시죠.”
“거, 거기는 안전할까요?”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손이 마구 떨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으로 김상식 씨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거, 기가 어딥니까?”
깜짝 놀란 김상식이 눈을 크게 떴다.
“가보시면 압니다.”
나는 서둘러 김상식을 차에 태웠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
안전한 곳! 대한민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면 이곳밖에 없었다. 그의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띠리리링.
나는 박엔정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김정환입니다.”
“김 변, 늦은 밤에 웬일인가?”
“흠, 제가 회장님께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부탁?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릴세. 말씀해 보시게나. 무슨 부탁인가?”
“흠, 사람 한 명만 보호해주십시오.”
“사람?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가? 사람을 보호해 달라니.”
“저, 지금 평창동으로 가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자세한 것은 만나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흠, 그래? 내막은 모르겠다만, 김 변이 부탁하는 일이라면 하늘에 별도 못 따다 줄 게 뭐 있나? 간첩만 아니면 내 누구 둔 받아줌세.”
“후후후, 네. 간첩은 아닙니다. 근데 조폭인데 괜찮습니까?”
“조폭이라고? 암, 암, 당연하지. 내가 간첩만 아니면 괜찮다고 안 했나?”
껄껄, 박 회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바, 박 회장이 누굽니까? 저, 저를 거기로 데리고 간단 말인가요? 거기가 어딘데요?”
전화를 끊자 김상식이 의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 박엔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네! 거기가 우리나라에서 제, 제일 유명한 로펌 아닙니까?”
박엔정이란 말에 안심이 되는지 김상식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맞습니다. 거기라면 안심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가,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저, 저 이제는 살았습니다!”
김상식이 무릎에 올려놓은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흠,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지은 죗값은 반드시 치러야 할 겁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법정에 서주셔야 하고요. 이 두 가지를 약속하지 못하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김상식 씨를 보호해 드릴 수 없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뭐든, 뭐든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 * *
<정은 법률사무소>.
나는 김상식을 박 회장에게 맡기고 사무실로 돌아와 장 검과 공 수사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음, 그러니까 사성파가 김상식의 배후라는 거죠?”
공 수사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사성파는 최근 장안평을 근거지로 세력을 확대한 신흥 조직입니다. 아마 안정국이라고 그자가 보스일 텐데요.”
“네. 맞습니다.”
“음, 그 안정국 뒤를 GM 기획 박 사장이 봐준다는 거고요?”
장 검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래. 사실, 박 사장이라기보다는 박 사장은 얼굴마담 정도고 H 그룹의 김태현이 실제 배후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음, 결국,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정지수를 마약 중독자로 몰아 제거하겠다는 뜻인가요?”
“음, 표면상으론 그런데, 단순히 정지수를 제거하기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할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죠. 단순히 배우 하나 매장하려고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이는 무리수를 둘 것 같지는 않아요.”
공 수사관이 눈썹을 매만지며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김상식이 확보된 이상, 뭔가 나와도 나올 거예요. 사무장님은 GM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주시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보고해주세요.”
“네. 변호사님!”
“자자. 그럼 밤이 늦었으니 퇴근들 합시다! 그나저나, 두 분 회식은 잘하셨나요?”
“음, 당연하죠. 삼겹살만으론 양이 안 차서 한우도 좀 건드려줬습니다. 여기 계산서요. 경비 처리 해주실 거죠?”
공 수사관이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 내밀었다.
“헐, 30만 원이 넘네요?”
“왜요? 아까우세요? 대표 변호사님!”
장 검이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니 아니, 아깝긴, 두 사람이 맛있게 먹었으면 된 거죠. 아깝긴 뭐가 아까워요!”
“그렇죠? 변호사님은 우리가 배부르게 먹는 것만으로도 기쁘시죠?”
공 수사관이 얼굴을 내밀며 느물거렸다.
“그렇죠. 암요. 저, 저도 기쁩니다.”
<김정환의 오피스텔>.
띠리리릭.
두 사람과 헤어진 후, 현관문을 열고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지이이잉.
[두 번째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상세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킹 메이킹 시스템의 묵직한 목소리가 온방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