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144화] 스트레이트냐? 훅이냐? (3) & 뿌리까지 뽑아주마 (1)
“말씀하시기 힘드십니까? 그럼, 지금부터 제가 말씀해 드리죠!”
나는 좀 더 공격의 고삐를 당겨야 했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스크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재판장님, 잠시 휴정을 요청합니다. 지금 증인은 지병으로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는 관계로 재판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증인이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잠시 휴식을 요청합니다.”
박인수 검사가 맥을 끊으려 휴정을 요청했다. 불리한 상황, 휴식을 통해 재점검하려는 의도였다.
“증인! 증언하기 힘드십니까?”
재판장이 박민재에게 물었다.
“음, 제, 제가 선천성 부정맥이 있어서 지금 숨을 쉬기 곤란합니다. 가슴도 좀 벅차오르는 듯하네요.”
박민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좋습니다. 벌써 재판이 시작된 지 2시간이 됐군요. 그러면, 검사 측 요청대로 30분간 휴정하겠습니다.”
<변호인 대기실>.
재판장이 휴정 제안을 허락하여 3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나와 공 수사관은 법정을 빠져 나와 변호인 대기실로 발길을 옮겼다.
“흠, 변호사님! 오늘 모든 걸 다 드러내실 겁니까?”
공 수사관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아뇨. 일단 오늘은 박민재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로 오늘 공판을 마칠 예정입니다. 배후까지 건드리기엔 시기상조 같습니다.”
“음,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하십니까?”
공 수사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금세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박민재는 꼬리에 불과해요. 이번 기회에 뿌리까지 흔들어 놔야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한 배우의 인생을 망치고자 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합니까?”
“흠, 그래도 H 그룹을 건드리는 건 위험할 텐데요. H 그룹 기조실이 어떤 곳인지 잘 아시잖아요. 이쯤에서 마무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의뢰인의 무죄를 밝히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사무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튼, 사무장님은 신경 쓰시지 마시고 박민재 쪽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의 출처가 어딘지 확실히 알아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430호 법정>.
어느새 30분간의 휴정 시간이 지나 다시 재판이 시작되었다.
“변호인, 증인 신문 진행하세요.”
“네.”
“증인이 메스암페타민이 검출된 텀블러를 피고의 텀블러와 바꿔치기한 것이 맞죠?”
“…….”
박민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의 시선을 외면했다.
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래 봐야 곧 드러날 텐데, 뭘 그렇게 애를 쓰십니까? 박민재 씨!
“다시 묻겠습니다. 어떻게 피고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증인도 알다시피, 피고의 아파트는 일부 가족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있는데 말입니다.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저는 누나의 아파트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쉬는 시간 동안, 어느 정도 말을 맞춘 듯 박민재가 차분하게 답변했다.
“확실합니까? 증인은 단 한 번도 피고의 아파트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박민재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보죠. 다음 동영상을 보시죠. 피고의 아파트 관리실에서 확보한 CCTV 영상입니다.”
틱, 나는 컴퓨터에 USB를 꽂고 영생을 재생시켰다.
가스 검침원이 정지수의 집으로 들어가는 영상이었다. 그가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정지수의 어머니 한필순 씨가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영상이었다. 가스 검침원은 오전 11시에 아파트에 들어가 약 30분간 머무른 뒤 문을 열고 나왔다. 당시 정지수는 집에 없었으며 그녀의 어머니 한필순 씨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파트 관리실은 관례로 CCTV 영상을 최근 3개월간 보존하고 있었으며 본 변호인이 확인한 결과, 3개월간 피고를 제외하고 그녀의 아파트에 들어간 사람은 피고의 어머니 한필순 씨와 그리고 가스 검침원 단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돌려 박민재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당시 집에 있던 한필순 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그 가스 점검 기사가 말하길, 가스 누출 신고가 들어와 점검차 나왔다고 했는데 도시가스공사에 확인해보니 당시 그 지역에서 그런 신고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가스 검침원을 파견하지도 않았고요. 그렇다면 저 검침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변호인, 지금의 진술이 본 사건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죠?”
진술을 듣고 있던 재판장이 코끝을 찡그리며 물었다.
“네. 분명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검침원이었다면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겠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검침원이 다녀간 다음 날, 피고의 집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된 텀블러가 발견되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잖습니까?”
재판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재판장이 궁금한 듯 의자를 앞쪽으로 당겨 앉았다.
“다음 화면을 보시죠!”
틱, 나는 스크린에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보시는 화면은 가스 검침원으로 가장해 피고의 아파트에 잠입한 김성철이라는 사람의 톡 대화 내용입니다.”
[박민재 :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빚 갚고 새 출발 할 수 있어!]
[김성철 : 형,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박민재 : 위험할 게 뭐 있어? 내가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이것만 두고 오면 돼!]
박민재가 대화 끝에 톡 창에 업로드 한 사진은 검찰이 증거물로 확보한 텀블러였다.
[김성철 : 알았어. 이거만 갖다 놓으면 약속한 대로 돈은 주는 거지?]
[박민재 : 인마, 걱정하지 마. 너 나 못 믿냐?]
[김성철 : 알았어. 누가 뭐래?]
“어…… 저, 저놈이….”
화면을 본 박민재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어 갔다.
“다음 화면을 보시죠.”
나는 박민재가 김성철의 톡 창에 업로드 한 텀블러를 확대한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2012-TS-AN-2543! 보시죠. 완벽하게 식별 가능하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일련번호가 검찰 측의 증거물과 동일합니다! 증인, 지금의 상황을 저와 여기 계신 방청객들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면 증인의 신분은 지금부터 증인이 아니라 피고로 바뀔 수 있습니다. 증인, 설명해 보시죠!”
“…….”
당황한 박민재가 벌게진 얼굴로 귓볼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흠, 변호인! 한 가지 묻겠습니다. 김성철이라는 사람과 증인은 어떤 관계입니까?”
화면을 지켜보던 재판장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서울로 상경한 후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김성철은 최근 경마와 스포츠 토토로 상당한 금액의 사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음, 그렇군요. 변호인, 계속하세요!”
재판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박민재, 저 인간, 쓰레기냐? 어떻게 매니저로서 저런 짓을 하지? 뒤통수를 제대로 후렸군!”
“분명 저 인간이 혼자 다 저지른 일은 아닐 테고, 분명 배후가 있을 텐데, 누구냐? 배후는?”
방청객들의 대화에서 이미 승부는 어느 정도 기울어진 듯했다. 역시, 스트레이트보단 훅의 파워가 한 수위였다.
“검사 측, 추가 심문하겠습니까?”
“아니오. 추가 심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재판장님, 다만 제가 최후 발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세요.”
박인수 검사의 요청을 재판장이 받아주었다.
“우선 정확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증거물과 증인을 채택한 부분에 있어서 재판장님과 법정에 참석하신 방청객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그 부분은 분명 본 검사의 불찰입니다. 다만, 증인, 박민재의 진술에 다소 착오가 있었다고 해서, 현장에서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검거된 피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본 검사는 여전히 피고에게 내려진 공소사실을 유지할 것임을 밟혀둡니다. 또한, 향후 재판에서도 공소사실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수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박인수 검사가 양 볼이 불거지도록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다.
“피고 측 변호인, 추가 심문 있습니까?”
1차 공판에서 이 정도 성과면 생각 이상이다. 더 무리할 필요는 없어!
“아니오. 추가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및 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실시한 피고 정지수의 1차 공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공판은 3주 후, 이곳 430호 법정에서 재개됩니다.”
공판 종료를 선언한 재판장이 좌우 재판관들과 함께 법정을 빠져나갔다.
“수고했어. 김 변!”
공판이 끝나자 김정주 주필이 내게 다가와 밝은 표정으로 어깨들 두드려주었다.
“음, 이제부터 시작인데요. 뭘.”
“하하하, 이 친구도 박 회장님과 똑같은 말을 하네?”
김정주 주필이 뒤따라오던 박 회장을 가리켰다.
“저요? 주필님, 제 흉이라도 보신 겁니까?”
박 회장이 눈을 크게 뜨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그래요. 수고했습니다. 김 변!”
박 회장이 밝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음, 이쯤 되면 한고비는 넘긴 것 같은데,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김 변!”
박 회장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대체, 두 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지. 아무튼, 법조계 사람들은 도통 속을 모르겠으니…….”
김정주 주필이 나와 박 회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허허허, 두고 보시면 압니다. 안 그래요? 김 변?”
박 회장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네에.”
* * *
<정은 법률사무소>.
“선배님! 첫 공판 잘 치렀다면서요?”
공 수사관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서자 장 검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럼요. 우리 변호사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분 아닙니까? 천하의 박인수 검사도 땀을 뻘뻘 흘리더구먼요.”
공 수사관이 방정맞게 끼어들었다.
“그렇죠. 당연하죠. 우리 선배님을 누가 말려요.”
장 검이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사건은 어떻게 됐어? 장 변도 오늘 선고 공판이었잖아!”
“어떻게 됐을 것 같은데요?”
장 검이 얼굴을 내밀며 눈을 깜박였다.
“흠, 글쎄.”
나는 모른 척, 잠시 뜸을 들였다.
“무죄 받아냈어요. 아마 증거가 너무 명확해서 검찰 쪽에서도 항소할 것 같진 않네요.”
“해냈구나! 역시, 장 변이야. 축하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와, 이러다 우리 박엔정처럼 되는 것 아닙니까? 줄줄이 승소들 하시고 아주 승소 머신이네. 머신이야! 이런 날, 가만있을 순 없죠? 안 그래요, 변호사님?”
공 수사관이 술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눈빛을 빛냈다.
“좋습니다. 오늘 제가 쏩니다!”
“나이스! 오래간만에 목에 떼 좀 벗겨봅시다!”
공 수사관이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사무장님과 장 검은 먼저 시골집에 가 계세요. 저, 이거만 마무리 짓고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공판 자료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여간, 대충 좀 하시지. 꼭, 이러신다니깐.”
공 수사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요. 급한 거 아니면 같이 나가요.”
이번에는 장 검도 거들고 나섰다.
“금방 끝낼게. 내가 원래 하던 일 마무리 안 하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가서 삼겹살 구워놓으라고. 익기 전에 내려갈 테니까!”
“알았어요. 그럼, 빨리 내려오세요.”
“일 못 해 한 맺힌 총각 귀신이 붙어먹었나? 뭔, 일을 저렇게 못 해서 안달이람!”
“사무장님, 어서 내려가요. 저 무지 배고파요!”
공 수사관이 투덜거리자 장 검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띠리리링.
두 사람이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김정환입니다.”
“김정환 변호사님 맞으십니까?”
“네. 제가 김정환입니다.”
“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듯한 남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