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화] 스트레이트냐? 훅이냐? (2)
“올해로 13년째면, 피고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겠군요.”
반격을 가하려는 박인수 검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네. 거의 종처럼 제가 누나를 모시고 다녔으니 어느 정도 알 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처럼? 박민재, 저 인간은 지금 자신의 진술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의로 정지수와 거리를 두려는 수작이다. 이미 입을 맞춰둔 거겠지.
“그렇다면, 피고의 식성이나 취향도 잘 알고 계시겠군요?”
“음, 누나는 자주 차에서 식사하시기 때문에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진술을 끌어내려고 이러는 건가?
나의 시선이 박인수 검사의 입에 모이는 순간이었다.
“피고가 평소에 커피를 자주 마셨습니까?”
“아뇨. 누나는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는커녕, 카페인이 들어있는 에너지 음료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고가 최근 들어 커피를 자주 마셨다는 제보가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거죠?”
결국, 이것이었나? 당신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잘못 건드렸어! 박인수 검사! 이건 악수야!
“그게 저도 의아했습니다. 워낙 커피를 안 마시는 누나가 어느 순간부터는 물 마시듯 커피를 마셨으니까요. 대형 텀블러에 든 커피를 매일 마셨어요.”
“그러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유를 묻지 않았나요?”
“네. 당연히 여쭤봤죠. 그랬더니 그냥 갑자기 커피가 좋아졌다고만 했습니다.”
“그렇군요. 커피는 누가 탔죠?”
“누나가 직접 타왔습니다. 영화를 찍다가도 쉬는 시간에는 틈틈이 마시곤 했습니다.”
“커피를 그렇게 대량으로 마시기 시작한 시점이 어떻게 됩니까?”
“흠, 한 서너 달 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석 달이면 피고가 구속되기 2~3개월 전쯤이 되겠군요.”
“네.”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증인이 생각하기에 피고가 갑자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 만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피고가 커피를 마시기 전과 후의 변화가 있었습니까? 행동이라든지 아니면 성격의 변화 등등 사소한 것이라도 변화를 감지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글쎄요. 원래, 누나가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아 많이 웃는 스타일이 아닌데, 가만히 앉아있다 실실거리며 웃을 때도 있었고 멍하니 딴생각을 할 때도 있고, 참! 심한 갈증을 느끼기도 했어요. 화장실도 자주 가고!”
박민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며 열변을 토했다.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와 감정 기복이라…… 좋습니다. 피고는 잠을 잘 자는 편입니까?”
박인수 검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초기 증세! 이제 본격적인 공격을 하겠다는 건가?
“아뇨. 누나는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라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잠에서 깨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운전할 때, 각별하게 조심하는 편이죠.”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그렇게 예민한 성격의 피고는 왜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커피를 마시게 된 걸까요? 음…… 그 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박인수 검사가 결심을 굳힌 듯, 한 박자 늦춰 입을 열었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 비닐봉지에 담긴 텀블러와 문서를 들고 증인석으로 돌아왔다. 정지수가 커피를 타 마시던 텀블러였다.
“피고, 이 텀블러가 피고의 것이 맞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정지수를 향해 텀블러를 들어 올렸다.
“그, 그게…….”
당황한 정지수가 말을 더듬었다.
“본 텀블러는 피고의 집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 이 텀블러가 피고의 것이 맞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정지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흩뿌리며 다그쳤다.
“네에, 마, 맞습니다.”
어쩔 수 없었는지 정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군요. 저 역시 한때 피고의 팬으로서 모든 것이 저의 판단 착오이길 바랐는데 어쩔 수 없군요. 심히 유감입니다. 증거물로 확보한 피고의 텀블러에서 소량의 메스암페타민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본 문서는 국과수에서 작성한 텀블러를 분석한 화학 성분 검출 확인서입니다.”
박인수 검사가 확인서를 들어 올렸다.
“재판장님, 국과수에서 작성한 확인서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박인수 검사가 재판장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채택합니다.”
“이상, 증인 신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인수 검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끗 쳐다봤다. 마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가 검사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지금 커피에 마약을 타서 마셨다는 거지?”
“일단,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저걸 김정환 변호사가 어떻게 해명할지 궁금해지는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나의 안면을 노린 박인수 검사의 스트레이트가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심문하시겠습니까?”
재판장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증인, 증인은 피고의 최측근이 맞습니까?”
“네. 누나의 가족을 제외하곤 제가 가장 누나와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피고가 평소에 결벽증에 가깝도록 청결에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겠죠?”
“네. 누나는 유난히 청결에 신경 썼습니다. 옷에 묻은 작은 먼지도 가만히 두지 못했죠. 결벽증에 가까웠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지금 당신이 뱉은 말이 당신의 발목을 잡을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겠지!
“그렇군요. 그러면, 피고가 사용한 텀블러는 누가 구입한 거죠? 피고가 직접 구입한 것입니까?”
“그, 그게….”
“제, 제가 구입한 것이 아닙니다. 민재가 사다 준 거예요.”
박민재가 잠시 머뭇거리자 피고석에서 정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끝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심적 압박이 큰 것 같았다.
“피고! 지금은 피고의 발언 시간이 아닙니다. 발언을 자제해 주세요.”
즉각적으로 재판장이 정지수에게 주의를 시켰다.
“네. 맞습니다. 제가 구입한 겁니다.”
박민재가 황급히 자신이 구입한 사실을 밝혔다.
흠, 그래! 이것까지 거짓 증언을 할 순 없었겠지!
“그런데, 왜 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머뭇거리셨습니까?”
나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흠, 법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박민재가 침착하게 적당히 둘러댔다.
“불필요한 오해라…… 증인이 결백하다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진술로 증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불필요한 추측성 질문은 자제해 주세요.”
재판장이 박인수 검사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텀블러를 어디서 구입하셨죠?”
나는 잠시 멈췄던 질문을 시작했다.
“흠, 신사동, 회사 근처에 있는 ‘제타벅스’에서 구입했습니다.”
“몇 개를 구입하셨습니까?”
“네? 며, 몇 개라뇨?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연히 한 개를 구매했죠.”
순간, 박민재가 손을 올려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당황할 때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확실합니까? 정말 하나만 구매하셨나요?”
“네. 확실합니다. 하나만 구매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언제까지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결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현금으로 하셨나요?”
“아뇨. 법인카드로 결제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드 영수증을 받으셨겠군요. 법인카드 영수증은 가지고 계십니까?”
“아뇨. 경비 처리를 하기 위해 이미 회사에 제출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화면을 보시죠!”
[텀블러 가격 : 7만 4천 원. 2013년 8월 18일.]
틱, 내가 스크린에 띄운 화면은 박민재가 사용했던 법인카드 영수증이었다.
“네. 맞습니다. 증인의 말대로 증인은 ‘제타벅스’ 신사점에서 텀블러 1개를 회사 법인카드로 구매한 것이 확실합니다. 시기도 증인이 구매 시기로 언급한 시점과 일치하는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증인이 실수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
그 순간, 탁자 위에 올려진 박민재의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증인이 구입한 텀블러는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텀블러죠. 전국적으로 3000개만 한정 생산했습니다. 제가 유통 경로를 조사해보니 강남에서는 신사점 2곳을 비롯해 총 12개 매장에 각 10개씩 총 120개의 텀블러가 공급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텀블러에는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일련번호는 ‘JB’로 시작하며 강남에 풀린 텀블러의 일련번호는 JB 2012-TS-AN-1030에서 1150였죠. 그러니까 검사 측에서 제시한 증거물에는 반드시 저 일련번호가 찍혀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검사 측에서 제시한 증거물에 저 일련번호에 해당하는 번호가 새겨져 있지 않다면 적어도 저 증거물은 강남 ‘제타벅스’ 점에서 구입한 텀블러가 아닐 것이고 결국, 피고가 사용한 텀블러가 아닌 셈이죠!”
“…….”
그 순간, 박민재가 연신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해 했다. 그가 박인수 검사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재판장님! 제가 검사 측에서 제시한 증거물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흠, 그렇게 하시죠.”
“네. 감사합니다.”
나는 지문이 남지 않도록 장갑을 낀 후, 비닐 지퍼 팩을 열고 텀블러의 일련번호를 확인했다.
[2012-TS-AN-2543]
나는 큰소리로 텀블러에 적힌 일련번호를 또박또박 읽었다.
“안타깝게도 일련번호가 2543이군요. 그렇다면, 본 텀블러는 강남 지역이 아닌, 종로구에 있는 ‘제타벅스’에 공급된 텀블러가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공급 시기도 다릅니다. 강남 지역에 풀린 텀블러는 8월, 종로 지역에 풀린 텀블러는 9월 10일부터 판매를 시작했고 9월 4일에 피고가 구치소에 수감되었으니 피고가 구매했을 리는 없겠군요.”
“뭐, 뭐야? 이렇게 되면 박민재가 증거를 위조했다는 거야?”
“와, 김정환이 또 하나 건져 올리는 건가?”
일진일퇴의 공방 속에 법정은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회장님, 점점 윤곽이 드러나는군요?"
김정주 주필이 박 회장을 보며 밝게 웃었다.
“글쎄요. 썩은 감자 줄기 하나 잘라낸다고 해결이 됩니까? 땅속에 묻혀있는 썩은 것들도 줄줄이 딸려 올라오게 해야죠!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허허허, 두고 보시면 압니다.”
박 회장은 뜻 모를 미소만 입가에 띠었다.
그렇다면, 이제 확인 사살을 해야지!
“화면을 보시죠.”
틱, 나는 또 다른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국과수에서 검사한 화학품 검출 보고서였다.
“증인이 실수한 것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피고는 증인이 누구보다 더 청결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죠. 화면을 자세히 봐주십시오. 본 자료는 피고의 집에 있는 가재도구에서 검출된 화학품 검출 내역입니다. 그릇, 숟가락과 젓가락, 유리잔 기타 등등 모두에서 이산화염소가 검출되었습니다. 참고로 이산화염소는 살균 소독제에 주로 사용하는 성분입니다. 깔끔한 피고의 성격대로 모든 가재도구에서 이산화염소가 검출되었습니다. 만약 검사 측에서 제시한 저 텀블러가 피고가 사용한 텀블러가 맞는다면 반드시 저기에서도 이산화염소가 검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검사 측에서 제시한 국과수 보고서를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네, 확인해보십시오.”
“보십시오. 검사 측에서 제시한 보고서 그 어느 곳에도 이산화염소가 검출되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보고서를 확인한 나는 방청석을 향해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음, 역시나 김정환 검사의 완승인가?”
“하여간, 저 인간, 승소 머신이구먼.”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박민재! 이제 모든 것은 끝났어! 아니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야 맞는 말인 것 같군! 당신을 시작으로 지금부터 썩은 감자 줄기를 줄줄이 끌어 올려 낼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증인, 증인은 왜 거짓 증언을 한 것입니까? 피고의 차 트렁크에 몰래 숨기려고 했던 물건은 무엇입니까? 왜 피고의 텀블러를 메스암페타민이 검출된 텀블러로 바꿔치기한 것입니까? 증인, 말씀해보세요!”
나는 눈에 힘을 주며 그를 응시했다.
“그, 그게 흐음, 그….”
당황한 박민재가 귓불을 만지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시기 힘드십니까? 그럼, 지금부터 제가 말씀해 드리죠!”
나는 좀 더 공격의 고삐를 당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