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화] 너희 그렇게 살지 마라! (2)
<서울 동부지원, 430호 법정>.
좌우 판사들과 함께 강선호가 서류를 내려놓고 재판석에 앉았다.
“모두 정숙 해주십시오. 지금부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및 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피고 정지수의 1차 공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강선호 판사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리자 법정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느새, 내 등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검사 측, 출석하셨습니까?”
“네.”
박인수 검사가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박인수 검사!
일반적으로 마약 사건은 일반 형사법에 따른 형사 사건이 아닌 마약법에 따라 별도로 수사와 재판을 한다. 박인수 검사는 마약 통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연예계 및 정관계 인사들의 마약 연루 사건을 전담했었고 단 한 번도 패소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마약 사건에 관한 한 최고의 베테랑이었다. 비근한 예로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았던 한민당 당 대표의 둘째 아들 신은수 씨도 집행유예가 될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실형을 선고할 만큼, 강단과 뚝심을 갖춘 열혈 검사였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재판이었다.
그래! 한번 제대로 붙어봅시다!
하지만, 나 역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소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은근히 승리욕이 타올랐다.
“피고 측 변호인, 출석하셨습니까?”
“네.”
“그러면, 지금부터 인정 신문을 하겠습니다. 피고! 피고의 이름이 정지수가 맞습니까?”
“네.”
정지수가 가지런히 모은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직업을 말씀해 주십시오.”
“배우입니다.”
“주소는…….”
“검사, 공소 사실을 밝히세요.”
강선호 판사가 피고에 관한 간단한 인정 신문을 마친 후, 박인수 검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네. 피고 정지수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중 연예인으로서 대중에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불법적으로 마약을 상습 복용하여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이 막대함으로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마약 근절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중에도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여함으로써 국민을 기만한 행위 역시, 정의사회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본 검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60조 및 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정지수를 기소합니다.”
박인수 검사가 담담히 공소 사실을 밝혔다.
“피고, 검사의 공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강선호 판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본 변호인은 피고에게 내려진 검찰 공소 사실 전부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음, 이번엔 김정환 변호사가 무리수를 두는 것 아냐?”
“그러게 말이야. 현장에서 검거된 피고를 어떻게 무죄로 만들겠다는 거야?”
“정상 참작으로 형을 감하는 게 최선일 것 같은데……”
“두고 보자고! 그래도 김정환이잖아! 아무튼, 무패 검사와 변호사의 싸움이라…… 흥미진진하군! ”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회장님, 김 변호사가 조금 무리하는 것 아닐까요?”
박 회장 옆에 앉은 마약 담당 수석 변호사, 진상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흠, 글쎄. 이제 시작인데 뭘 그래? 호랑인지 고양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흐음. 박 회장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부터 피고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검사, 심문하세요.”
양 측의 모두 발언이 끝나자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네.”
박인수 검사가 천천히 피고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유로운 표정에서 그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피고의 직업은 배우시죠?”
네. 맞습니다. 배우입니다."
“본 검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배우들은 배역을 맡으면 그 역할에 몰입해 깊이 빠진다고 한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맡은 역할에 동화되기도 하죠.”
“그렇군요. 영화에서 알코올 중독자 역할을 했던 모 유명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마치 평상시에도 알코올 중독자가 된 듯 자신의 정체성이 헷갈린다고 하더군요. 피고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침착하게 진술을 이끌어 나갔다.
“흐음, 네.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때때로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과하게 되는 때도 있긴 합니다.”
지금, 박인수 검사는 배우라는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정지수가 마약에 손을 대게 된 동기를 밝히려는 거다. 일반적으로, 일반인보다 감정의 기복이 큰 배우나 연예인이 마약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재판에서 부각하려는 전략이야.
“영화 촬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엄청난 공허감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다른 예로는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눕게 되면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엄청난 공허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모 유명 가수의 인터뷰 기사도 있더군요. 그만큼, 연예인들은 감정 기복이 일반인보다 크다고 볼 수 있겠죠. 피고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습니까?”
박인수 검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술을 끌어냈다. 게다가, 실제 사례를 나열하며 진술의 객관성을 확보하며 정지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노련한 마약 저격수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판이 어려워질 수도 있어!
꿀꺽, 박인수 검사의 노련한 심문에 조금은 긴장이 됐는지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정지수 씨, 절대로 이번 질문에 답하지 마세요!
나는 정지수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흠, 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행히 사전에 연습한 데로 정지수가 침착하게 답변했다.
“그렇군요. 그래도 피고는 감정 조절을 잘하시는 편인가 보군요.”
“…….”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검거되기 하루 전, H 그룹에서 주최한 자선 바자에 참석하셨죠?”
“네. 참석했습니다. 바자에 물건을 내놓기 위해 참가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날, 손수 운전하셨던데 평소에도 직접 차를 운용하십니까?”
“아뇨. 평소에는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곤 했습니다.”
“그럼, 그날엔 왜 손수 운전을 하신 겁니까? 무슨 특별한 사유라도 있나요?”
“그날 매니저가 심한 독감에 걸려서 몸이 안 좋다고 하길래 제가 직접 차를 몰았습니다.”
“이상하군요. 지금 피고는 매니저인 박민재 씨와는 완전히 상반된 진술을 하고 계시는군요. 확인한 본 바에 의하면 매니저인 박민재 씨는 그날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평소에 건강한 체질이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바자 장소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피고가 극구 만류를 했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된 거죠?”
박인수 검사가 코끝을 찡그렸다.
“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민재는 그날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전하겠다고 했어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깜짝 놀란 정지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뭐야? 박민재! 지금 무슨 수작을 벌이는 거야?
예상치 못한 박민재의 진술 번복이었다.
“흠, 잠시 후에 박민재 씨가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니 다시 한번 대질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피고의 진술은 피고에게 굉장히 불리해질 수 있는 진술입니다. 다시 생각하시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피고, 피고가 직접 차를 운전한 이유가 뭡니까?”
“검사님, 지금 말씀드렸잖습니까? 민재가 몸이 아파…….”
“피고! 박민지 씨는 당시 몸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피고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건강한 체질이었고 13년 동안, 단 한 번의 스케줄 펑크도 없었을 정도로 성실했던 그가 운전을 못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면 병원엘 갔을 텐데 당시, 진료 기록이 전혀 없어요. 판사님! 박민재의 최근 3개월간의 진료기록 내역을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박인수 검사가 목소리 톤을 높이며 서류봉투를 재판석에 내밀었다.
“채택합니다.”
결국, 이것이었군! 박민재, 이 인간은 애초에 운전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정지수가 직접 운전하도록 유도했어! 결국,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단 말인가?
그 순간, 싸한 느낌에 등골이 오싹했다.
“피고, 다시 묻겠습니다. 거짓 없이 답변하시길 바랍니다. 당시, 직접 차를 운전한 이유는 매니저에게 뭔가를 들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유도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입니다. 피고, 지금 질문엔 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민재한테 뭘 숨겨요? 전혀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듯 정지수의 목소리 톤을 높였다.
제길!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경고합니다! 피고, 계속 그렇게 거짓 진술로 일관하시면 위증죄로 고발당하실 수 있습니다.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검사님! 전, 진짜 검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금세라도 그녀의 큰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흠, 좋습니다. 그럼 제가 확인시켜 드리죠.”
박인수 검사가 검사석으로 돌아가 비닐봉지에 담긴 두 개의 주사기를 들고 돌아왔다.
“보십시오. 두 개의 주사기는 같은 것입니다.”
박인수가 비닐봉지를 들어 올렸다.
웅성웅성.
“뭐야? 분위기 싸한데?”
“재판 초반부터 이거 너무 싱겁게 끝나는 것 아냐?”
이미 방청객들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했는지 술렁거렸다.
“하나는 정지수 씨의 자택에서 발견된 주사기고 또 하나는 피고의 차량에서 발견된 주사기입니다. 이 두 주사기는 동일한 것으로 매트 암페타민과 정지수 씨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결국, 피고는 행사 일도 매니저인 김민재의 눈을 피해 마약을 주사하려고 직접 차를 운전해 행사장으로 향했다고 추측하는 것이 본 검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당시, 행사장에서 피고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을 목격한 목격자들의 진술서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박인수 검사가 하얀 서류봉투를 꺼내 재판석에 제출했다.
“채택합니다.”
재판장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재판은 초반부터 상당히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역시, 마약 통다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이상, 피고 심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힐끗 쳐다보는 박인수 검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기 싸움을 하려는 듯 날카롭게 나를 응시했다.
겨, 결국 이거였던가? 차에서 주사기가…….
마치 둔탁한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심문하시겠습니까?”
“…….”
“변호인!”
“네에?”
“변호인, 반대 심문 안 할 거예요?”
답변이 없자 강선호 재판장이 짜증이 난 듯 목소리 톤을 높였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반대 심문하겠습니다.”
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