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화] 모략(謀略) (2) & 너희 그렇게 살지 마라! (1)
<정은 법률사무소>.
“무슨 방법이란 말씀이세요? 얼른 말해보세요.”
항상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그였다.
“사실, 이번 사건의 담당 검사 박인수 검사실에서 일하는 추 수사관이 제 고향 절친이거든요. 그놈을 구워삶아서 짬짜미하면 어찌어찌 될 수도 있는 일이긴 했는데, 검사님이 워낙 합법적으로 하라고 난리를 치셔서 제가 다른 방법을 썼죠. 제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묘수 중 묘수였어요.”
공 수사관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며 으스댔다. 그가 위풍당당하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요. 그 방법이 뭐냐니까요?”
점점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는 듯했다.
“당시, H 그룹이 주최한 바자는 국내 최고의 톱스타들이 모인 자리였죠. 영화배우들뿐만 아니라 톱 가수들도 죄다 모인 자리였어요. 아이돌이란 아이돌은 다 참가했었죠. 이렇게 잘 차려진 최고급 밥상에 똥파리가 안 꼬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크크크, 공 수사관이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뜸을 들였다.
“음, 파리? 혹시…….”
“빙고, 지금 변호사님이 머릿속에 생각하고 계신 것이 맞을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똥파리는 바로 파파라치죠. 파파라치들이 이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죠. 그래서, 제가 애들을 좀 풀어서 드디어 이걸 찾아냈다는 거 아닙니까?”
공 수사관이 자랑스럽게 USB를 내어놓았다.
좋아! 이것만 잡아낸다면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그러니까, 파파라치들이 찍은 영상 중에 누군가 정지수 씨에게 와인을 건네는 장면이 잡혔다는 거죠?”
“당근이죠. 사실, 이 인간이 정지수를 찍으려는 건 아니었고 그 옆에 있던 아이돌, 장현수를 찍으려던 건데 우연케도 정지수가 찍힌 거죠. 아무튼, 뭐로 가나 서울로 가면 그만 아닙니까?”
하하하, 공 수사관이 너털거리며 웃었다.
“일단, 화면을 봅시다.”
“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공 수사관이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공 수사관의 말대로 한 남자 웨이터가 H 그룹 김태현에게 와인을 건넸고, 김태현이 웨이터를 보며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와인 한 잔을 정지수에게 건네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초점은 장현수에 맞춰진 영상이라 정지수의 모습이 화면 오른쪽에 치우쳐지긴 했지만, 고성능 캠코더였는지 화질은 선명했다.
“자, 잠깐만요. 사무장님! 화면 좀 멈춰주세요!”
“여, 여기요?”
공 수사관이 나를 쳐다봤다.
“네네. 바로 거기!”
“저기 저 사람! 지금 김태현에게 와인을 넘겨준 웨이터 H 호텔의 직원인가요?”
나는 멈춰진 화면에 보이는 웨이터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화면 속에 와인 잔을 들고 있는 웨이터의 팔목과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남자의 팔목에 같은 문양의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틀림없이, 동일 인물이었다.
“흠, 그게 궁금하셨겠죠? 그럴 줄 알고 제가 저 인간, 신상을 좀 파봤습니다.”
“진짜요?”
솔직히 상당히 놀랐었다. 공 수사관의 능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변호사님은 속고만 사셨습니까? 당연, 진짜죠. 자…… 그럼 지금부터 놈의 화려한 경력을 읊어보겠습니다. 사기전과 3범에 절도 2범, 음란물 유포에 협박 공갈, 사문서, 공문서 위조 등등 전과가 10범이 넘네요. 어때요? 이 정도면 화려하죠? 이 인간, 잡범 중에 개잡범이더군요.”
공 수사관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후, 사무장님, 진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이 정도면 얼추 퍼즐이 맞춰지네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저 인간이 웨이터로 변장해 이곳에 온 건 분명 수상하긴 한데, 영상으로 봐선 뭐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공 수사관이 궁금한 듯 자신의 코를 비틀며 물었다.
“음, 저자가 정지수의 잔에 약을 탄 것 같습니다.”
“헐, 지저스! 무슨 약해요? 서, 설마 마약?”
공 수사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다.
“그건 아니고, 수면제를 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 왜요?”
“음,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서겠죠!”
“라이벌요? 누구요?”
공 수사관이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후, 사무장님! 저랑 스무고개 하십니까?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나는 몸을 비틀어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눼, 눼. 암요. 누가 뭐랍디까?”
공 수사관이 툭 튀어나온 광대를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좀 더 확실해지면 말씀드릴게요. 그나저나, 저 사람 좀 마킹 좀 철저하게 해주세요. 분명, 누군가와 거래가 있었을 겁니다.”
“그, 그게 누군데요?”
“흠, 저도 지금은 확신할 순 없지만, H 그룹 김태현 쪽 사람일 수도 있고, GM 기획 쪽이든 아니면 박민재든 파보면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반드시 이 자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내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거야 제가 전문이니까요. 제가 아주, 발가벗겨 오겠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네네.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흠, 네. 사무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나저나, 밑도 끝도 없이 저자가 와인 잔에 약을 탄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흠,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마킹이나 잘해주세요.”
“네? 그럽죠. 저야 뭐. 까라면 까야죠.”
공 수사관이 섭섭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여간,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더 모를 분이시네. 무슨 신기가 들렸나?’
공 수사관이 투덜거리며 구시렁거렸다.
* * *
<박엔정, 박 회장 집무실>.
1차 공판 3일 전, 박 회장이 나를 호출했다.
“어서 오세요. 김 변!”
“네. 회장님.”
“자! 앉지!”
“네.”
“어떻게, 공판 준비는 차질 없이 준비하고 계시나?”
30분여 환담을 한 후, 박 회장이 물었다.
“음, 그럭저럭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이라…… 이번 사건, 그렇게 녹록지 않을 텐데? 그렇게 대충 해선 쉽지 않아!”
박 회장이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 흩뿌렸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럭저럭 이란 말은 1차 공판에서 무죄를 밝히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재판, 1심이 끝나기 전까지는 정지수 씨의 무죄를 밝혀내겠습니다.”
“지금 무죄라고 그랬나? 허허허, 자네도 이젠 내 말을 믿는가 보군.”
박 회장이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뇨. 회장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 제가 조사해서 눈으로 확인한 팩트를 믿을 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허허허, 사람 하곤. 이렇게 뻣뻣해서야 앞으로 어찌 큰일을 하누!”
박 회장이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 뻣뻣한 겁니까? 타성에 젖어 소신을 굽히고 불의와 타협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면 그 큰일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졌네, 졌어! 아무튼, 보면 볼수록 탐나는구먼! 자네는…….”
“…….”
“자네, 혹시, ‘사쿠라 니쿠’란 말을 아나?”
박 회장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네. 색깔이 벚꽃과 유사한 연분홍색인 말고기를 가리키는 말 아닙니까?”
“음. 자네도 알고 있었구먼."
박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사쿠라 니쿠가 뭘 뜻하는지도 알고 있겠구먼.”
박 회장이 깊숙이 파묻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소고기인 줄 알고 사서 먹어보니 말고기였다는 얘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즉, 겉보기는 비슷하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야. 특히나, 상황이 바뀌면 철새처럼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을 이탈해 변절하는 인간들을 비꼬는 말이지. 일부 어리석은 인간들이 사쿠라 꽃이 만발했느니, 사쿠라가 피었느니 하면서 떠들고 돌아다니는데 무식한 인간들이야. 굳이 이 말을 꼭 쓰고 싶다면 차라리 말고기라고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지금 이분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네. 그건 그렇고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자네에게 이번 사건을 맡겼고 자네는 흔쾌히 사건을 맡아주었네. 그렇다면 우린 이미 동지 아닌가?”
“…….”
“난, 자네가 결코 말고기가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아.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치든 자네가 사쿠라 니쿠가 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자네에게 소고기가 되어 주겠다는 뜻이야.”
박 회장의 안광을 내뿜으며 나를 응시했다.
“전, 단 한 번도 사쿠라 니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않을 겁니다.”
“허허허, 그래그래.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아직 썩지 않았어! 김 변! 난, 김 변의 이런 면이 참 좋아! 마치, 숲속에 제왕, 호랑이를 보는 것 같구먼! 눈빛이 너무 맘에 들어!”
박 회장이 목젖을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반드시, 박 회장을 자네의 조력자로 만들어야 해!’
그 순간, 김정주 주필의 말이 떠올랐다.
“과찬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의 뜻에 호응했다.
“좋아! 그나저나 이번 재판에서 내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뭐든 말해보시게나! 내 뭐든 기꺼이 도와줄 테니.”
“아닙니다. 특별히 도와주실 건 없고 승소하게 되면 계약서에 사인하신 대로 수임료나 차질 없이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그 배짱 한번 맘에 드는구먼. 내가 요즘, 머리가 아파 웃을 일이 없었는데 자네 덕에 실컷 웃네그려. 고맙네. 고마워!”
박 회장이 덥석 내 손을 움켜쥐었다.
* * *
며칠 후,
<서울 동부 법원, 430호 법정>.
드디어, 1차 공판이 다가왔다. 나는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며 천천히 법정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지수가 과연 어떻게 될까?”
"글쎄. 워낙 증거가 빼박이라 쉽지 않을걸?”
“그래도, 김정환 변호사잖아. 섣부른 예상은 금물이야. 이번 재판도 흥미진진하겠는데!”
“천하의 김정환이라도 이번 재판은 쉽지 않을걸?”
문을 열고 들어가자 430호 법정은 수많은 방청객과 기자들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톱스타 정지수의 재판인지라 기존의 사회부 기자들뿐만 아니라 연예부 기자들도 대거 참석해 방청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박 회장님이 직접 오신 건가? 어? 주필님도 오셨네? 두 분이 아는 사이신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변호인석으로 자리를 옮기자 방청석 중앙에 박 회장과 김정주 주필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며 환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제 시작이군!
본 사건의 담당 판사인 부장판사, 강선호가 모습을 보이자 법정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며 변호인석에 앉았다. 수없이 많은 공판을 치러봤지만, 유난히 긴장되는 듯했다.
후!
나는 마른침을 삼켜 넘기고 깊게 심호흡하며 긴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