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톱 배우 정지수는 정말 무죄인가? (2)
“킹 메이킹 시스템! 힌트권을 보여줘!”
촤르르르.
[상황 힌트권, 인물 힌트권, 사물 힌트권, 장소 힌트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힌트권을 흩뿌렸다.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정지수 씨 주변의 인물 관계도가 중요하다. 필로폰이라는 마약 특성상 공급에서 수요까지 비밀리에 거래될 뿐만 아니라 공급 역시 점조직으로 움직일 테니 무엇보다 거래에 개입된 인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사람이 키 포인트가 될 수 있어. 그렇다면 인물 힌트권이 효과적이겠지!
인물 힌트권!
나는 주저 없이 인물 힌트권을 클릭했다.
[30 포인트를 차감하겠습니까?]
“물론!”
지이이이잉.
누구지?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는 정지수의 매니저 박민재였다.
정지수의 매니저, 박민재라…….
“물론, 좀 더 자세한 힌트를 얻으려면 미션을 해결해야 하겠지?”
[물론입니다. 미션을 제시할까요? Y/N]
“당연하지! 미션을 보여줘!”
나는 지체하지 않고 YES 버튼을 눌렀다.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 밑을 밝혀라!]
킹 메이킹 시스템이 제시한 첫 번째 미션은 등하불명,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였다.
등잔 밑을 밝혀라…… 가장 가까운 곳에 허점이 있다는 말인데, 그렇지! 연예인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매니저! 박민재를 파보면 뭔가 나올 거야. 그래, 우선 매니저부터 시작해 보자!
* * *
<서울 동부 구치소>.
나는 우선 정지수를 만나 사건 정황을 들어본 후 매니저 박민재와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수감돼 있는 동부 구치소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정지수 씨의 변호를 맡은 김정환 변호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핏기 하나 없이 초췌한 얼굴의 정지수가 힘없이 인사했다. 화려한 은막의 스타였던 그녀였기에 그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힘없이 속삭이듯 답했다.
“식사는 잘하고 계십니까?”
바짝 말라붙어 기름기 하나 없이 메마른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네.”
들릴 듯 말 듯, 그녀는 한마디 말조차 입 밖으로 보내기 버거워 보였다.
“정지수 씨, 제가 질문을 몇 가지 하려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그녀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부러질 것처럼 가녀린 손목이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2월 10일, 정지수 씨가 검거될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날 저녁에 H 그룹에서 주최하는 연예인 자선 바자에 참석했습니다. 자신들의 애장품을 경매해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였기에 저도 흔쾌히 참여했죠. 제가 영화를 찍을 때 입었던 의상 몇 벌을 가지고 갔습니다.”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상황이었는지 그녀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계속 말씀하시죠.”
“행사를 마시고, 회사 관계자, 기획사 대표 그리고 다른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어떤 종류의 식사였습니까?”
“뷔페식이었어요.”
“어떤 음식을 주로 드셨나요?”
“그날 유난히 속이 안 좋아 음식은 거의 손대지 않았어요. 물만 조금 마시고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흠,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물 외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나요?”
“아뇨. 밥은 먹지 않았지만 와인을 두 어 잔 정도 마신 것 같아요. 한 잔은 행사를 주최하신 H 물산, 김 대표님과 함께 마셨고 저희 기획사 대표이사인 송종국 대표와 같이 한 잔 더 마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쓰러진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어요. 일어나 보니 호텔 침대 위에 제가 누워있더군요.”
정지수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와인 두 잔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원래, 술을 잘 못 드십니까?”
“아뇨. 아주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는 맞출 만큼은 마시는 편이에요.”
“실례지만, 주량이 어떻게 되십니까?”
“소주 2~3병은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정도입니다.”
흠, 정지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와인 두 잔에 정신을 잃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소에도 술을 자주 드시는 편인가요?”
“아뇨. 작품 들어가면 거의 마시지 않아요.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돼서요. 하지만, 작품을 끝내고 나면 지인들과 자주 즐기는 편입니다.”
“경찰 조서를 살펴보니, 당시 바자회 장으로 가실 때, 직접 운전을 하셨던데요? 평소에도 직접 운전을 하시는 편입니까?”
“아뇨. 제가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운전이 서툴러서 거의 매니저가 데려다줍니다.”
“그러면, 그날은 왜 직접 운전을 하셨습니까?”
“매니저가 아팠어요. 워낙 건강한 체질이라 그동안, 밤낮을 안 가린 강행군 속에서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사람인데 그런데, 그날은 민재가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아서 할 수 없이 제가 직접 차를 몰고 나왔어요.”
“민재라면 정지수 씨의 매니저인 박민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아요. 민재가 제, 매니저예요.”
사고 일, 하필 매니저가 아팠다!
“흠, 우연치고는 묘하군요. 매니저분은 언제부터 같이 일하게 된 건가요?”
“음, 제가 데뷔를 한 이후로 쭉 함께했으니 이제 13년이 돼가는군요.”
소주 3병 정도 주량의 사람이 와인 두 잔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날 유독 건강한 매니저는 감기, 몸살을 앓았다는 거지?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사람도 그녀의 매니저인 박민재! 분명 그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묻고 돌아가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 테니 뭐든 기억나시는 것이 있으면 빠짐없이 메모해두세요. 다음에 다시 오면 반드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다음에 뵙…….”
“변호사님! 저는 결백합니다. 마약 같은 건 생각도 해본 적 없어요. 지금도 왜 제 몸에서 마약이 검출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퀭하니 꺼져버린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변호사님! 저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로 기존 광고는 물론, 신규 광고들도 전부 계약 해지됐고 차기 작품 계약도 무효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돈 같은 건 아무 상관 없어요. 저는 지금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제 삶의 가치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변호사님!”
돌아서려는 내 등에 대고 그녀가 절규했다.
[물론일세. 김 변, 변호사는 말이야! 사건 의뢰를 맡는 순간, 의뢰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네. 의뢰인과 내가 하나가 돼야 승소할 수 있는 거야. 그 의뢰인이 천하의 대역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말이야.]
그 순간, 박 회장이 며칠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 저도 정지수 씨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주르륵, 그녀의 가녀린 뺨 위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은 법률 사무소>.
“장 변, 아무래도 이번 사건 뭔가 냄새가 나.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닌 것 같아. 지금 정지수 씨를 만나고 왔…….”
“선배님, 우선 방송부터 보시고 말씀하시죠.”
틱, 장 검이 말허리를 자르며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최근, 상습적 마약 복용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유명 배우, 정지수 씨에게 계속해서 메스암페타민 이른바, 히로뽕이라고 불리는 마약을 공급한 마약 공급업자 고현우 씨가 지난 새벽 모 룸살롱에서 경찰에게 검거되었습니다. 경찰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고현우 씨는…….]
“이게 뭐, 뭐야?”
뉴스 내용은 정지수에게 마약을 공급했던 중개업자 고현우가 검거됐다는 내용이었다. 정지수를 홍대 클럽에서 만나 지금까지 십여 차례 메스암페타민을 팔았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어쩌죠? 이렇게 되면 이젠 회생불능인 거 같은데? 게다가, 정지수 씨의 자택에서 마약 투약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주사기 10개가 무더기로 발견이 됐답니다. 주사기 바늘에서 남녀 DNA도 검출됐는데, 지금 국과수에 정밀 감식을 요청한 상태라네요. 이 정도면 상황 끝인 것 같은데, 이래도 이 사건을 우리가 맡아야 하나요?”
장 검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정지수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 아냐, 아냐. 그녀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분명 진실을 말하고 있었어!
“흠, 정말 난감하군. 일단 상황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상태론 뭐라고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아.”
“……….”
장 검이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사무장님은 지금 어디 계셔?”
“법원에 갔어요. 지정은 씨 폭행 사건 때문에 공판 자료 확인하려고요.”
“음, 일단 지정은 씨 사건은 장면이 알아서 잘 좀 처리하고 사무장님 오시면 경찰서에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상황 좀 파악하라고 해줘. 난 만날 사람이 있어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진짜 이번 사건, 진행하실 생각이세요?”
장 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어서려는 내 팔목을 잡았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건 뭔가 썩은 냄새가 진동해. 단순히 한 연예인의 마약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무슨 소리예요? 그럼, 누가 정지수 씨를 모함이라도 했다는 말이에요?”
“나도 지금은 딱히 뭐라 말할 순 없는데, 아무튼 뭔가 있어! 지금, 정지수 매니저 만나러 갈 거니까, 사무장님 오시면 바로 경찰서로 보내.”
나는 황급히 옷걸이에서 외투를 꺼내 입었다.
“흠, 알았어요. 다녀오세요.”
후유, 장 검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장 변, 수고하고! 나, 간다.”
* * *
<박민재의 오피스텔>.
나는 정지수의 매니저인 박민재를 만나기 위해 신사동에 있는 그의 오피스텔을 찾았다. 휴대전화 번호도 바뀐 상태였고 회사엔 이미 사표를 제출하고 잠적한 상태였다. 아무리 연락을 취해봤지만 만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충대충 하세요!”
“아, 그건 중요한 겁니다. 조심조심, 다뤄주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뭐야? 이사하나?
그의 집은 XX 오피스텔 5층, 508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508호를 향해 복도를 걸어가자 이삿짐 직원들이 분주히 짐을 옮기고 있었다.
“혹시, 박민재 씨 맞습니까?”
그중 집주인처럼 보이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반팔 나시를 입은 채, 그는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185센티 정도의 큰 키에 다부져 보이는 건장한 체격을 갖춘 30대 남자였다.
“네. 제가 박민잰데요? 누구시죠?"
그가 손등으로 땀을 훔쳐내며 나를 힐끗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