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화] 톱 배우 정지수는 정말 무죄인가? (1)
“김 변, 이것 좀 보게.”
박 회장이 좀 전과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게 뭡니까?”
그가 넘겨주는 서류봉투를 받아들었다.
“음, 이 사건, 김 변이 맞아줬으면 좋겠는데…….”
국내 최고의 톱스타, 정지수 마약 연루 사건!
박 회장이 내가 넘겨준 서류는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톱스타 배우, 정지수의 마약 사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이건…….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서류를 넘겨보는 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약류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국내 최고 여배우인 정지수 씨에 관한 상세 자료였다. 그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신성의약품) 및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등의 혐의를 동시에 받고 있었다. 익명 제보자의 제보를 받은 경찰청 산하 광역 수사대 마약 수사팀의 끈질긴 잠복근무 끝에 현장에서 검거된 경우였다. 보통, 현장에서 범인이 검거될 경우, 변호사를 선임한다 할지라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정지수는 시내 모 호텔에 투숙해 있었고 검찰이 현장에 들이닥쳤을 당시에도 마약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국제 영화제에서도 수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였고 유니세프 등 자선단체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왕성한 봉사활동을 해왔던 그녀였기에 팬들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모든 정황 증거가 확실했고 2차례에 걸친 마약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케이스였다. 게다가, 필로폰은 마약 중에서도 중독성이 강해 그 죄질은 더욱더 무거웠다.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습성이 없는 초범임을 부각하여 형을 낮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회장님, 이 사건은 이미 끝난 거 아닌가요? 이 사건에 변호를 맡는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서류를 들척이며 물었다.
“음, 김 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박 회장이 한쪽 눈썹을 추켜 올렸다.
“아무리 살펴봐도 형을 낮출 가능성은 없습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마약류 근절 캠페인을 벌이는 상황이고 경찰도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최근 유명 인사들의 마약류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서 여론 또한 최악인데, 방법이 없어 보이는군요.”
“흠, 내가 형을 낮추라고 했나?”
“네? 그럼, 이 사건을 제가 맡기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냥, 요식 행위 식으로 법정에 서라는 건가요?”
“아니지. 그게 아니지. 정지수는 무죄야. 그러니까 법정에서 그녀가 무죄임을 김 변이 밝혀야지!”
무죄?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렇게 모든 증거가 확실한 사건에서 무죄를 밝히라는 건가? 병풍 속의 닭이 살아나와 홰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빠르겠군!
“회장님, 무죄라뇨? 이 사건에 어떻게 무죄가 된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이건 아무리 인맥을 동원하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무죄는커녕, 감형도 어려운 사건입니다. 명백한 유죄를 무죄로 만들라 하시면 저는 이 사건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실례지만,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솔직히 불쾌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무죄를 만들 방법은 단 하나! 로펌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고위층을 매수하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그런 걸 나에게 하라고 한다면 죽어도 맡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허허허, 성격 하곤…… 바둑은 침착하게 잘 두시는 양반이 뭐가 그렇게 급하신가? 김 변호사! 좀 전에 나와 두던 바둑 기억하나?”
박 회장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 손을 잡으며 뜬금없이 바둑 얘기를 꺼냈다.
“…….”
“김 변, 좀 전에 나와 바둑을 둘 때를 상기해 보게. 나는 솔직히 마지막 판은 내가 이긴 줄 알았지 뭔가! 내가 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결국은 내가 진 바둑 아니었나? 내가 김 변에게 질문 하나 함세. 자네는 그 바둑을 이길 거로 생각했나?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이긴 겐가?”
박 회장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반집 차이였지만 나는 그 바둑에서 박 회장을 잡을 자신이 있었기에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중앙을 내준 것이었고 귀와 변을 잡아서 이긴 것이다.
“흠,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나 역시, 이 재판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네. 아무도 승소할 수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달라. 김 변이라면 이길 수 있는 묘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탁, 박 회장이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다.
박 회장이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순간, 일렁거리는 찻잔 속에 비친 박 회장의 안광이 소름 끼치도록 위압감을 주었다. 어느새,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하나 여쭙겠습니다. 회장님은 정말 정지수가 무죄라고 생각하십니까?”
“흠, 당연히 무죄라고 생각하네. 내 의뢰인이지 않나? 난 사건을 맡는 순간, 의뢰인을 전적으로 믿네. 절대 의심치 않아!”
“진심입니까?”
되물어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일세. 김 변, 변호사는 말이야! 사건 의뢰를 맡는 순간, 의뢰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네. 의뢰인과 내가 하나가 돼야 승소할 수 있는 거야. 그 의뢰인이 천하의 대역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말이야.”
“아뇨, 의뢰를 맡은 변호사로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서 묻는 겁니다. 정지수는 무죄입니까?”
“물론일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박 회장이 답했다.
이글거리는 강렬한 눈빛! 지금, 박 회장은 확신하고 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정지수의 무죄를 확신하는 근거는 뭡니까?”
“글쎄, 그건, 자네가 알아내야지!”
허허허, 박 회장이 부드럽게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흠, 좋습니다. 사건을 맡도록 하죠.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뭐든지 말해보시게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지원하겠네.”
“만약, 조사 과정에서 정지수가 유죄라고 확신이 든다면 저는 이 사건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물론이지.”
“그리고, 이 사건을 제가 맡은 이상, 모든 일은 저의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회장님이나 회사는 이 사건에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 어려울 것 있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먼, 나 역시, 바라는 바일세.”
박 회장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건을 맡아주겠나?”
“네. 제가 한번 맡아보겠습니다.”
갑자기 도전하고 싶은 맘이 솟구쳤다.
“흠, 그럼, 우리 현실적인 얘기를 해볼까? 생각해둔 수임료는 있나? 말씀해 보시게나. 얼마를 원하든 내, 원하는 만큼 줄 생각이네.”
“한, 천억쯤 되겠습니까?”
“천억? 허허허, 적지 않은 돈이구먼. 어디 보자. 우리 회사를 담보로 잡히면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려나…….”
박 회장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노련하게 내 농담을 받아쳤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앞에서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수임료요? 당연히 받아야죠. 다만, 특별대우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회사 규정에 맞춰 주십시오.”
“허허허, 김 변 이 사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맘에 드는 사람이야. 볼수록 탐이 나는구먼!”
박 회장이 목젖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었다.
* * *
<정은 법률사무소>.
“두 분 이쪽으로 와보세요. 제가 박 회장을 만나고 왔는데….”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장 검과 공 수사관에게 박 회장이 의뢰한 사건에 관해 설명했다.
“어머, 정지수 씨 사건이라고요?”
장 검의 동공이 빛의 속도로 팽창했다.
“정지수? 그 ‘밀월 여행’으로 칸에서 여우주연상 받은 그 배우 말인가요? 헐, 진짜 대박이네요. 우리가 그 사건을 맡다니!”
공 수사관이 한술 더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우, 정지수가 맞습니다.”
“와. 진짜 대박이긴 한데, 그 사건 승소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나요? 제가 알기론 현장에서 검거된 거로 아는데…….”
장 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아. 생각보다 어려운 케이스가 될 듯해.”
“음,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해요.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면 정지수 씨를 자백하게 해서 정상참작을 끌어내 형을 낮추는 방향으로 접근해야겠군요. 음, 우리나라는 플리바겐 시스템은 없지만, 마약 범죄 특성상, 또 다른 투약범들이 있을 테니, 정지수를 설득해서 수사에 협조하게 하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방법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장 검도 나와 대동소이한 생각이었다.
“아니,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돼. 우리는 무죄를 밝혀내야 해.”
“무, 무죄요? 에이, 김 변호사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 사건 저도 검찰 쪽 지인들 통해 주워들어 아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완전 빼박이라던데…….”
공 수사관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게요. 선배님, 사무장님의 말이 맞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건은 무리인 것 같아요.”
장 검 또한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혹시, 似非而是(사비이시)란 말을 아나?”
“사시이비 아니에요?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안은 다르다는 뜻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장 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맞아. 사시이비! 근데 내가 말을 살짝 바꿔 봤어! 사비이시! 겉은 잘못됐으나 속은 옳다! 모든 건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것 아냐? 일단, 의뢰를 맡기로 했으면 의뢰인은 무조건 옳은 거야. 두 분 다 이 점 명심하세요!”
“뭔 소리래?”
공 수사관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 정지수 씨를 만나봐야겠어. 장 변, 나 구치소에 좀 다녀올게.”
“네에. 일단,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장 검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변호사님!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공 수사관이 덩달아 서류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장님! 가방 챙기실 필요 없는데요. 저 혼자 갈 거예요!”
나는 공 수사관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그렇지, 그렇지! 그, 그게 깜빡했네. 오늘 법원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 공판 서류가 어디 있더라.”
공 수사관이 엉거주춤 자리에 앉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서랍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사무장님, 오늘 법원 쉬는 날인데요. 가시게요?”
“그, 그런가요? 오늘 쉬는 날인가? 하하, 그렇군요. 내가 정신이 없어서…….”
탁탁, 공 수사관이 벌게진 얼굴로 탁상용 달력으로 책상 위를 내리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후후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네.”
“그러시던가요.”
공 수사관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답했다.
“킹 메이킹 시스템 가동!”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킹 메이킹 시스템을 호출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언제나 낮고 묵직한 목소리의 그가 나의 명령에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