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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32화 (13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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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

“증거요? 검사,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무슨 증거가 있다는 거예요?”

재판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증인, 박형식 형사가 말도 안 되는 허위 증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증거를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장준환 검사가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들었다.

그래. 바로 그거지! 당신이 할 수 있는 짓은 그것뿐이잖아! 이제부터 무차별 폭로전의 서막이 오르는 건가?

어느새, 조금씩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그게 뭡니까?”

재판장이 안경을 벗고는 장준환 검사의 손을 응시했다.

“녹음파일입니다. 박형식 형사가 본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확인하기 위해 그를 만나 녹음해둔 음성파일입니다.”

결국, 장준환 검사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뒤집어쓸 수는 없는 노릇, 어쩔 수 없는 그의 고육지책(苦肉之策) 이었다. 검사로서의 도덕성은 내팽개쳐버리더라도 실리는 챙기겠다는 의도였다.

“좋습니다. 확인해보도록 하죠.”

“네. 재판장님!”

장준환 검사가 컴퓨터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두 사람!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야?”

“김 기자, 카메라 기사 왔어! 이건 특종이야 특종!”

잠시 후, 음성파일이 재생되었고 화들짝 놀란 기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박 형사…….”

장준환 검사가 재생한 음성파일은 예상대로 얼마 전,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사전에 사건 조작을 모의하는 정황이 담긴 파일이었다.

“본 화면은 제가 박 형사의 비위에 관한 첩보를 입수해 확인하기 위해 녹음한 음성파일입니다.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증인이야말로 기획 수사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고 몇몇 증인을 사전에 매수해 사건을 은폐했으며 공문서까지 위조해 본 검사를 기만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그의 말을 믿은 부분에 관해서는 본 검사의 과실임을 인정합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정준환 검사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끝까지 발악하는군! 하지만. 어쩌나? 쥐도 막다른 곳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했는데? 박 형사가 가만있지 않을걸? 후후후,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군. 어디, 막장 드라마 한 편 감상해 볼까?

나는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박 형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박 형사가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거렸다.

뭐, 뭐지?

나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하고 유심히 그의 행동을 살폈다.

“따라서, 본 검사는 증인을 위증죄와 함께 법정 모독죄를 적용해 증인, 박형식을 고발하고자…….”

“X 까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누가 누굴 매수해? 뭐? 내가 기획 수사를 했다고? 어디서 개구라를 떨어?”

장준환 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 형사가 스프링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 이게 뭔지 알아? 네놈, 목숨 줄 끊어놓을 저승사자야! 내가 발끝에서부터 똥구멍까지 핥아주니까 나를 개호구 새끼로 봤나 본데, 당신, 사람 잘못 봤어? 누굴 고발해. 시X!”

박 형사가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악다구니를 부렸다.

“증인!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지 마세요!”

단단히 화난 재판장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 네. 죄송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박 형사가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참다못한 박 형사가 반격의 칼을 꺼내 들었다. 그가 마찬가지로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들어 장준환 검사를 향해 흔들었다.

뭐? 뭐야? 이건 시나리오에 없던 상황인데? 박 형사도 보험을 들어뒀단 말이야? 설마, 설마 했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장 검을 쳐다봤다. 그녀 역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장 검 또한, 어깨를 들썩이며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했다.

“변호사님, 이것 좀 틀어주십시오!”

박 형사가 장 검에게 USB를 넘겨주었다.

“네.”

장 검이 얼떨결에 USB를 받아들어 컴퓨터에 꽂고 화면을 재생했다.

“박 형사, 자 이거 받아!”

장준환 검사가 두툼한 서류봉투를 박 형사에게 넘겨주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시나리오지. 이대로만 해. 주연배우 서호영에 악역으론 김성수가 딱 맞겠지!”

“흠, 시나리오 좋은데요?”

박 형사가 문서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박 형사도 동아줄 제대로 잡는 거야.”

“흠, 다 좋긴 한데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좀 있습니다. 증거가 너무 부실해서 불충분해요. 그게 문제입니다.”

“하, 이 사람!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쳐 줘야 하나? 경찰 생활 10년 넘었으면 이 정도는 알아서 처리해야지. 용의자는 지금 서호영뿐이야. 진범이 범인이 누구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냥, 서호영이 범인이 돼주면 돼! 이런 사건은 무조건 자백이 중요해. 어떡하든 자백받도록 해.”

“흠,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박 형사!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당신 말고도 할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아?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겠어?”

“흠, 아, 알겠습니다. 저는 검사님만 믿겠습니다.”

박 형사가 고개를 숙이며 꼬리를 내렸다.

“흠, 박 형사!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아. 그냥, ‘딱’하고 제비 다리 하나 부러뜨리면 그 제비가 황금이 넘쳐날 박 씨를 몰고 올 거라고! 언제까지 경대 출신들한테 밀리면서 살 거야? 그냥, 제비 다리 하나 부러뜨린다고 생각해! 언제까지 경대(경찰대) 출신들한테 밀리면서 살 거야? 서럽지도 않아? 말단 형사 생활! 박 형사도 국장 자리까진 꿰차야 할 것 아냐?”

“어휴, 그렇게만 된다면야…….”

“하하하, 내가 뒤를 봐주면 못할 것도 없지!”

박 형사의 USB에 담긴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썩을 대로 썩은 검경의 합작품이었다.

“와, 진짜 눈 뜨고 보기 힘든 막장 드라마네. 눈 썩는다. 진짜!”

“캬악, 퉤! 진짜, 썩은 내가 진동하는구먼!”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얼마나 무고한 사람을 집어처넣었냐!”

격랑이 휘몰아치듯 분노한 방청객들의 원성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

“조용! 조용히 하세요! 다들 정숙하세요!”

당황한 건 재판장도 마찬가지였다. 쾅쾅쾅, 재판장이 책상을 내리치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흠, 본 재판장도 판사 생활 18년 만에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혹스럽습니다. 서기! 일단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내용은 기록하지 마세요.”

어느 정도 진정되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재판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뗐다.

“네.”

“검사,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제 눈이 잘못됐나 의심스럽군요. 제가 지금부터 검사에게 30분을 드리겠습니다. 30분 내로 저 영상에 관해 저와 방청객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일어날 불상사는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재판장이 검사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재판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장준환 검사를 응시했다.

“재판장님, 제, 제게 시간을 조금만 주…… 주십시오. 제가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성한 법정을 유린하려는 저들의 간교한 술… 채….”

장준환 검사가 검붉어진 얼굴로 발악했다.

“검사! 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지금 법정을 모독하고 있는 쪽은 검사예요! 게다가 지금 변명 따위를 듣자고 시간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저 동영상의 진위를 떠나 검사로서 양심을 속이지 말고 솔직히 답변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까?”

재판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격노했다.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재판장님! 저, 저자가 모두 꾸민 짓입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지금까지 검사 생활을 해왔습니다. 미, 믿어주십시오!”

장준환 검사가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재판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흠, 추악한 영혼의 말로인가? 아직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어! 당신은 검사복보단 파란 죄수복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장준환 검사님!

추억한 그의 몰골이 안타까웠다.

“검사! 멈추세요.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강제 퇴정하겠습니다. 경고합니다. 검사, 자리로 돌아가세요!”

재판장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 차 있었다.

“재, 재판장님! 믿어주십시오. 저는 정의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노…….”

장준환 검사가 동공이 풀린 채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재판장 쪽으로 옮겼다. 정신이 반쯤 나간 모습이었다.

“경관! 이 사람, 당장 퇴장시키세요!”

“네.”

재판장의 명령에 두 명의 경찰이 신속히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검사님, 가시죠!”

“야 이 새꺄. 놔! 이거 안 놔? 너 내, 내가 누군지 알아? ”

짝, 장준환 검사가 게거품을 물며 경찰관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검사님, 더 저항하시면 무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품위를 지키시죠!”

두 명의 경관이 장준환 검사의 양팔을 더욱더 세게 움켜쥐었다.

“놔, 놓으라고! 너희 같은 것들이 내 몸에 손을 대? 나야, 나라고!”

장준환 검사가 양팔을 결박당한 채 질질 끌려 법정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정숙하세요. 이로써 김은혜 살인사건에 관한 항소심, 2차 공판을 마칩니다. 다음 달 10일에 결심공판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 나도 판사 생활 10년 만에 이런 막장은 첨이네?”

세 명의 재판관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서류를 챙겨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흠, 결국 이렇게 되는군! 이렇게 되면 이이제이 전략도 대성공이군!

“가,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서호영이 일어나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서호영 씨! 앞으로는 당당하게 살아가세요. 법은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나는 그를 향해 엷은 미소를 보냈다.

“장 변, 오늘 수고 많았어!”

툭툭, 나는 변호인석으로 다가가 서류를 챙기고 있는 장 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흠, 씁쓸하네요. 같은 검찰 출신으로서 개운치가 않아요. 그래도 능력 있는 검사였는데…….”

장 검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눈을 꾹꾹 누르며 괴로워했다.

“사필귀정 아니겠어?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이용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이번 재판을 통해 반드시, 죄를 지었으면 그 대가를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거야.”

“그렇겠죠? 참! 그나저나 선배님! 솔직해 말해봐요!”

장 검이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뭘?”

“혹시, 나 몰래 시간 이동 장치 뭐, 이런 거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장 검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간지러워. 왜 이래?”

“도대체, 매번,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다 알고 계시잖아요. 이번에도 두 사람이 저렇게 물고 뜯고 할 줄 어떻게 아셨느냐고요? 선배님이 무슨 신이에요?”

“아… 그게, 그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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