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13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1)
“증인, 증인은 피고, 서호영 씨를 수사한 담당 형사가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본 사건의 수사팀장이었습니다.”
박 형사가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 사건의 초동 수사도 직접 지휘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훼손 없이 사건 현장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증인의 중요한 임무죠!”
“네. 그렇습니다.”
“증인은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올해로 10년 차입니다.”
“그렇군요. 10년 차면 상당한 베테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왜 창문을 열어놓는 실수를 하셨습니까? 그렇게 되면 사건 현장이 훼손될 텐데 말입니다.”
“그건 저의 실수였습니다. 실내 대기가 너무 탁해 순간적으로 실수했습니다.”
목격자가 존재하고, 살해 추정 시각이 깨진 상황에서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박 형사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려는 심정으로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물론, 육참골단(肉斬骨斷)이 적절히 어울리지는 않지만 말이다.
“부실한 초동 수사였음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네. 지금 생각해보면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박 형사가 모호한 단어를 사용해 교묘히 피해 가려 했다.
“증인,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지 마시고 ‘예, 아니오.’로만 답해주십시오. 초동 수사 부실을 인정하십니까?”
“네. 일정 부분 인정합니다.”
박 형사가 끝까지 확답을 피하며 빠져나가려 했다.
“좋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감식반과 국과수에서 내놓은 사망 추정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계셨습니까?”
굿, 좋았어. 장 검!
이번 사건은 검경뿐만 아니라 국과수의 책임도 크다! 반드시 그들에게도 죄를 물어야 해!
“아뇨. 몰랐습니다. 저희는 다만 국과수에서 분석한 자료를 신뢰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강력반 경력 10년이면 국과수 자료가 부실했다는 것을 충분히 사전에 파악하고 계셨을 텐데요. 그렇지 않나요?”
장 검이 노련하게 잽을 날리며 박 형사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막다른 길에 몰린 박 형사가 완강히 저항했다. 그가 목소리 톤을 높여 대항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김은혜의 지갑에서 현금이 도난당했고 침대에서 체모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연히 외부 침입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요? 수사기록을 살펴보면 전혀 보강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더군요. 애초에 외부 침입 자체를 수사에서 배제했던 것 아닙니까?”
그렇지! 장 검은 지금 경찰이 애초에 서호영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모든 수사 방향을 그에게 집중했음을 밝히려는 거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폭력적 가학 수사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좋은 전략이야!
“흠, 맞습니다. 체모가 발견된 건 사실이죠.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과 기록을 중심으로 DNA 조사를 의뢰해보니 일치한 유전자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숙박업의 특성상 충분히 체모가 남을 개연성이 있었고, 김은혜의 지갑에서 현금이 없어진 이유는 서호영이 외부 침입이 있었던 것처럼 꾸미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고 판단했기에 수사 초반에 외부 침입 가능성은 배제했었습니다.”
박 형사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구석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다.
“그렇군요. 수사 초반에 외부 침입 변수를 배제했다면 결국, 수사 초기부터 서호영을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군요?”
“김은혜 주변 관계도 깨끗했기 때문에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도 없었고 외부 침입 변수를 배제한다면 경찰로서는 강력한 용의자는 서호영, 단 한 사람뿐이었죠. 당시엔 서호영이 범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박 형사가 적절하게 직접 자신을 변호하며 침착하게 진술을 이어나갔다.
“음, 지금 증인은 ‘당시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본 변호인에겐 지금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증인, 묻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서호영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 검이 비수를 꺼내 조금 더 깊숙이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게…….”
박 형사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돌려 장준환 검사를 힐끗거렸다.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도 서호영이 김은혜를 죽인 진범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 검이 단호한 목소리로 박 형사를 다그쳤다.
“…….”
당황한 박 형사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렸다.
“뭐야?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 순간, 방청객들의 침 넘기는 소리와 웅성거림이 법정을 가득 메웠고 모든 시선은 박 형사의 입에 향해 쏠려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증인! 지금도 김은혜를 죽인 범인이 저기 앉아있는 피고 서호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 검이 목소리 톤을 높여 심리적으로 더욱더 그를 압박했다.
“그…… 그게.”
박 형사가 고개를 돌려 장준환 검사를 힐끗거렸다. 상당히 그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증인 개인의 사적인 판단에 근거한 진술을 유도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 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은 증인 개인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정황과 증거, 증인, 국과수 결과 자료 등을 토대로 복합적인 수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증인의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입니다. 진술을 멈추게 하여 주십시오.”
박 형사가 잠시 머뭇거리자 장준환 검사가 코너에 몰린 권투 선수를 구하려는 세컨드처럼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증인은 본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담당 형사입니다. 그의 의견은 분명 전체 수사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판단됩니다. 증인! 변호인의 질문에 답변하세요!”
재판장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그의 간절한 희망을 짓밟았다.
쾅!
장준환 검사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양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검사! 법정에서 예의를 갖추십시오.”
재판장이 그를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건….”
장준환 검사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꼭 필요한 진술입니다. 증인, 답변하세요.”
결국, 재판장의 날카로운 비수가 그의 숨통을 죄어오는 순간이었다. 재판장이 냉정하게 장준환 검사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잠시 소란이 있고 나서 박 형사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내뱉은 말이었다.
“뭐, 뭐야? 이번 재판도 뒤집히는 거야? 역전의 명수, 김정환 파냐?”
“그러게.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그의 말 한마디의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그 순간, 방청석이 순식간에 용광로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닐 수도 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장 검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실, 수사가 점점 진행되면서 어쩌면 서호영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습니다. 서호영의 알리바이가 확실했고 무엇보다도 살해 동기가 미미했기 때문이죠. 내부적으로 회의한 결과, 어쩌면 금품을 노린 제2의 용의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외부의 압력이 있었습니다.”
여우 같은 인간! 지금 자신을 사건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수작이야.
“외부의 압력이오? 어떤 압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야?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거야? 이건, 특종감인데?”
모든 방청객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장준환 검사의 얼굴에 꽂혔고 심지어 재판장까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장준환 검사를 쳐다봤다.
“…….”
박 형사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어느새, 그의 옷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증인, 증언하셔야 합니다. 외부의 압력이라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꿀꺽, 장 검 또한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그녀의 침 넘기는 소리가 방청석까지 들리는 듯했다.
“애초부터 기… 획 수사였습니다. 국과수 부검 기록도 조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혀, 외… 부 편수를 고려하지 않은 부실한 보고서였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매, 매수해 거… 거짓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박 형사가 세상 살기 싫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웅성웅성.
“미쳤네. 미쳤어!”
“어처구니없군. 레알, 할 말이 없는구먼!”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증인! 지금 증인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몰 충격적인 진술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지금 하신 진술! 사실입니까?”
“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믿을 수가 없는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몇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사람을 매수했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누굽니까?”
“흠, XX 모텔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성수입니다.”
“본 변호인을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발언이군요. 지금까지 수차례 법정에서 증언한 목격자 김성수의 증언이 모두 거짓 증언이었습니까?”
“…….”
박 형사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면, 김성수로 하여금,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겁니까?”
“…….”
마찬가지였다.
이, 이런 시X!
그 순간, 장준환 검사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거칠게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이 그의 심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죠! 피고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피고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가한 적이 있습니까?”
마지막 카운터 펀치였다. 장 검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 했다.
“그… 건, 그, 그게….”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방청객들의 몸이 앞쪽으로 쏠렸다. 마치 뒷바람에 억새가 앞쪽으로 넘어지는 듯했다.
“말씀해주십시오!”
“저희는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박 형사가 천정을 한 번 올려다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힘겹게 입술을 뗐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거야?”
박 형사의 충격적인 발언에 방청석은 충격에 휩싸였다.
주르륵, 피고석에 앉아있던 서호영의 감은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증인,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 서호영에 한 가학 수사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부러진 피고의 정강이는 가학 수사의 결과입니까?”
“지, 지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박 형사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가학 수사를 지시한 사람은 누굽니까? 말씀해주십시오.”
“그… 그게….”
박 형사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는 장준환 검사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제 끝을 냅시다! 박 형사님, 이제 모든 진실을 털어놓으십시오!
그때, 나와 박 형사의 시선이 겹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상황을 끝내기를 주지시켰다.
“증인! 증인에게 피고에 대한 가학 수사를 지시한 사람이 누굽니까?”
“음, 그게, 지금 저, 저기 계시는…….”
박 형사가 검사석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와 동시에 법정의 모든 사람의 머리도 슬로우 모션처럼 그와 궤를 같이했다.
“지, 지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려는 거야? 박형식이! 미쳤어! 재판장님! 휴정을 요청합니다.”
장준환 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각합니다. 증인! 말씀하세요.”
“…….”
재판장이 단호한 선언에 장준환 검사가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저기 계시는 장준환 검사의 지시였습니다.”
드디어, 박 형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박 형사 미, 미쳤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재판장님! 모함입니다. 지금 저자와 변호인이 야합해 공권력을 유린하려는 짓입니다. 지금 증인은 위증하고 있습니다!”
장준환 검사가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튀어나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발악했다.
“흠, 검사, 소란 피우지 마세요. 더 소란을 피우면 퇴정 조치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재판장님, 제…… 가 결백하다는 증, 증거가 있습니다.”
그 순간, 장준환 검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려는 건가? 장준환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