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130화] 빼박 증거로 하드캐리 (2)
“그럼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 묻겠습니다. 검사 측, 진술에 따르면 김은혜의 부모님들이 피고와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피고가 판단컨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그분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변변치 못한 직장에 홀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점이 못마땅했겠죠. 저라도 애지중지 키운 딸을 그런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서호영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유약한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피고, 불필요한 부연 설명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결국, 피고의 직장과 집안 사정이 문제였습니까?”
장 검이 서호영의 진술에 제동을 걸었다.
굿! 그렇지. 쓸데없는 감정적 진술은 이로울 게 없어!
“네. 여러 번 저를 찾아오셨고 그때마다 두 분은 제 직장과 아버지를 거론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군요! 결국, 피고의 경제적 능력과 불우한 가정환경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겠군요.”
“네에.”
후후, 노련하게 잘하고 있군! 결국, 두 사람 간의 사랑에는 문제가 없음을 끌어내려는 거야!
장 검의 노련한 재판 진행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렇다면, 김은혜 씨도 그의 부모님들과 똑같은 생각이었나요? 피고의 경제적 능력 때문에 그녀가 결혼을 주저했던 건가요?”
“아뇨. 은혜는 그렇지 않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 직장과 우리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는 착한 여자였습니다. 항상 집에 찾아와 편찮으신 아버지 병간호도 기쁜 맘으로 했어요.”
“그렇습니다. 피고의 말대로 검사 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사망한 김은혜는 비록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여전히 피고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장님! 본 사진들을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서호영의 아버지, 서장수와 김은혜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채택합니다.”
재판장이 사진을 건네받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하나, 제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검사 측의 주장처럼 김은혜는 총 5차례 맞선 자리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두 번 이상 만난 맞선남은 없었죠. 결국,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맞선 자리에 나갔을 뿐, 피고를 향한 사랑이 식어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검사 측의 주장처럼, 결혼정보 회사에 가입한 것도 사실이나, 자의에 의한 가입은 아니었습니다.”
장 검이 천천히 발걸음을 법정 중앙으로 옮겼다.
“XX 결혼 정보 회사에 의뢰해 본 바에 따르면 김은혜는 총 10차례 맞선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가입돼 있었더군요. 하지만, 소위 ‘매칭’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성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커플매니저가 수차례 제안했지만, 김은혜는 그때마다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부모들과 갈등이 심했죠. 당연히, 가입 또한 그녀의 부모님이 가입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검사 측에서 주장한 김은혜가 변심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음이 입증된 셈입니다.”
그래! 잘했어! 지금 법정에서의 쟁점은 김은혜의 변심 여부야! 그게 서호영의 살해 동기가 될 수 있으니까! 결국, 장준환 검사는 치정에 읽힌 살인으로 몰고 가려 했던 거지. 김은혜가 변심하지 않았다면 살해 동기도 희미해진다.
장 검이 정확히 포인트를 잡고 신중하게 심문을 이끌어 나갔다.
“우리는 흔히 ‘죽겠다’, ‘죽고 싶다’, ‘죽인다’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합니다.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죽거나 남을 해하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겠죠? 결국, 검사 측에서 톡의 내용을 근거로 제기한 서호영의 살인 동기는 신빙성이 없으며 법적 효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 본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장 검이 차분하게 진술을 끌고 나갔다. 그녀가 가볍게 장준환 검사의 논리를 깨뜨리는 순간이었다.
“음, 장영은 변호사도 강단이 보통 아닌데?”
“그러게, 하긴 지난번 특검 때도 활약이 대단했잖아!”
기자들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피고는 사건 일 XX 모텔이 투숙했었죠?”
“네.”
“모텔에 투숙한 이유는 뭔가요?”
“다음 날이 은혜의 생일이었어요.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자정이 지나면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굳이 모텔에서 생일 축하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물론,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사람들이 모텔을 출입한 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 은혜와 좀 더 같이 있고 싶기도 했고, 은혜가 심한 결막염을 앓고 있어서 사람 많은 곳은 불편해서 부득이 모텔을 찾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사건 당시, 새벽에 큰 소리가 들렸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제가 실수로 폭죽을 은혜 쪽으로 터트려서 은혜가 깜짝 놀랐습니다. 워낙, 눈에 민감한 친구였는데 당황한 은혜가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 은혜의 언성이 좀 높아졌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사건 현장엔 생일 축하용 폭죽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당시, 종업원인 김성수의 말에 의하면 오전 8시로 모닝콜을 요청했다고 하셨는데요. 맞습니까?”
“네. 회사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다녀와야 했습니다.”
“급한 일이었습니까?”
“아뇨. 급한 일은 아닌데 가능하면 오전에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종업원이 실수로 7시에 모닝콜을 했는데 전혀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다고 김성수 씨가 증언했습니다. 게다가 김성수 씨는 피고가 잠결에 전화를 받은 것 같지 않게 목소리가 잠겨있지 않았다고 했죠! 이 부분에 관해 본 변호인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보통은 그런 경우라면 화를 내거나 항의하지 않습니까?”
“은혜는 지병으로 심한 위장병을 앓고 있었어요. 자극적인 음식은 먹으면 안 되는데 밤에 맥주와 함께 과일을 먹었어요. 결국, 탈이 났죠. 밤새워 뒤척이더군요. 최근에 결혼 문제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가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밤새 헛구역질에 구토를 반복했어요. 그래서 덩달아 저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때 때마침 모닝콜이 와서 빨리 처리하고 돌아와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서호영이 침착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김은혜 부검 결과 과일 조각이 나왔고 위장에서 심한 궤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7시에 모텔을 나선 후, 돌아온 시간은 몇 시죠?”
“11시쯤 됐습니다.”
김성수가 그가 모텔을 나선 시각과 다시 돌아온 시간을 확인해준 만큼, 적어도 아침 7시~11시까지의 알리바이는 증명이 된 셈이었다. 결국, 검사 측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서호영이 무죄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상 피고 심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했어! 장 검!
나는 장 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잠시 후,
“지금부터는 양측에서 신청한 증인 신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피고 측, 증인 신문 후 검사 측에서 반대 심문토록 하겠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피고 측 변호인! 증인 출석했습니까?”
“네.”
장 검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국립 과학 연구소 이진선 부검의 출석했습니까?”
“네.”
“나는 증인으로서…….”
재판장의 호출에 이진선이 증인석에 앉아 차분하게 증인선서서를 낭독했다.
“변호인, 심문 시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증인, 증인께서 이곳에 나온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장 검이 증인석으로 다가가 물었다.
“음, 피고의 몸에 생긴 흉터 및 상처에 대해서 증언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흉터와 상처요?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장 검이 서류를 들척이며 말했다.
“저기 앉아 있는 피고, 서호영 씨의 몸에 생긴 상처가 사고로 인한 것인지 누군가의 가격에 의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가격?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뭐, 뭐야? 지금 가학 수사가 있었다는 거야?”
그동안, 잠잠했던 기자들이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사고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가격에 의해 생긴 상처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네. 제 소견상은 그렇습니다. MRI 사진을 보면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진선이 화면이 띄운 것은 정강이뼈를 찍은 두 장의 MRI 사진이었다.
“보시는 화면 중 왼쪽 사진은 일반적인 사고에 의해 생긴 정강이 골절 사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서호영 씨의 골절 사진이죠. 육안으로 보더라도 확연히 구분되죠!”
이진선이 포인터로 화면을 가리켰다.
“그렇군요. 왼쪽 환자의 경우는 골절 방향이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나 있는 반면에 오른쪽 사진은 마치 유리잔이 깨진 듯 산산조각이 난 듯합니다.”
장 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쳐다봤다.
“맞습니다. 왼쪽 사진은 일반적으로 넘어지거나 계단을 헛디뎌 계단 모서리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사물에 부딪히면 흔히 생길 수 있는 골절의 양상입니다. 각 변형이나 전위가 심하지 않은 경우죠.”
이진선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왼쪽의 경우를 좀 설명해 주십시오.”
“서호영 씨의 경우는 경골과 비경골 모두 골절된 복합 골절입니다. 정강이에 엄청난 충격을 가해 면과 면이 닿아 심하게 골절된 양상입니다.”
“그 말씀은 누군가가 흉기를 이용해 고의로 피고의 정강이를 내리쳤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뭐, 뭐야? 진짜 경찰이 가학 수사를 한 거야?”
“이게 말이 돼? 군부 독재 시대냐? 어이없군!”
취재를 나온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MRI 사진에 나타난 양상으로 볼 때, 적어도 일반적인 사고에 의해 생각 골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진선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피고의 정강이를 내리쳤다면 어떤 종류의 흉기였을까요?”
“추정컨대, 밀도가 높고 단단한 둥근 형태일 거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야구 배트 같은 것일까요?”
“네. 성인이 야구 배트로 정강이를 내리친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겠군요!”
이진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본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실을 인용해 마치 수사 과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장준환 검사가 즉각적으로 보호를 하고 나섰다.
“검사님! 제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던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학 수사나 경찰의 폭력 행사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본 변호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장 검이 뚫어지도록 장준환 검사를 응시하며 쏘아붙였다.
“…….”
장준환 검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장 변! 이젠 숨통을 끊을 때가 온 것 같아!
나는 장 검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님!
장 검이 천천히 법정 중앙으로 다가갔다.
“재판장님! 피고, 서호영의 오른쪽 정강이가 골절된 생긴 이유를 밝혀줄 증인을 신청하겠습니다.”
장 검이 재판장을 쳐다보며 오른손을 살짝 올렸다.
“채택하겠습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를 직접 수사했던 남부 경찰서 박형식 형사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웅성웅성.
“이건 또 뭐야? 담당 형사가 피고 측 증인으로 나온다는 거야?”
“헐, 세상에! 이런 재판은 난생처음이군! 본사에 빨리 연락해서 방송 카메라 가져오라고 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기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