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129화] 빼박 증거로 하드캐리 (1)
<남부 교도소>.
나는 서호영의 증언을 확약받기 위해 그를 만나러 교도소를 찾았다.
“호영 씨,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네. 변호사님 덕분에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조금은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잠시 후,
“아버님 문제는 제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박 형사나 장준환 검사 이 두 사람, 결코 서호영 씨를 도와줄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자들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호영 씨의 자백을 받기 위해 공허한 약속을 한 거예요. 제가 알아보니 아버님께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는 조폭을 끼고 있는 악덕 업자더군요. 계약서 자체가 불법이고 협박으로 작성된 아버님의 신체 포기 각서는 법적 효력이 전혀 없습니다. 아버님은 제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아버님이 지신 부채 또한, 법적으로 탕감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도, 그 사람들, 무지막지하게 무섭던데 집에 찾아오고…….”
“자꾸 이런 식으로 호영 씨가 두려워하니 그놈들이 더 설치고 다니는 겁니다. 제가 반드시 그놈들이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그게 저, 정말로 가능할까요?”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네. 물론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서호영 씨는 자신의 무죄 증명에 집중하세요. 법정에서 증언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호영 씨가 협의를 벗을 수 있어요.”
“그, 그게…… 그런데.”
여전히 걸리는 것이 있었는지 써 호영이 머뭇거렸다.
“서호영 씨! 호영 씨가 지금 뭘 걱정하고 계시는지 압니다. 다만, 만약에 서호영 씨가 증언을 회피하신다면 제2의, 제3의 서호영 씨가 나올 거예요. 이번 기회에 검찰과 경찰의 강압, 폭압 수사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모든 준비는 해뒀으니 서호영 씨 신변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 겁니다. 제가 호영 씨의 변호사입니다. 저를 믿으셔야 해요!”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변호사님만 믿겠습니다.”
나의 설득에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는지 그가 입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2차 공판 하루 전,
<정은 법률사무소>.
나와 장 검은 늦은 밤까지 공판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첫 공판 때문인지 조금은 긴장된 표정의 장 검이었다.
“두 분 변호사님들!”
자정 즈음, 공 수사관이 양손에 치킨과 맥주를 들고 사무실을 찾았다.
“수사관님!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장 검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네. 여기, 앞을 지나가다 보니 불이 켜져 있어서 올라와 봤습니다. 역시나 했더니만, 두 분 아직 퇴근 안 하셨네요?”
“네. 내일 공판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고, 출출하실 텐데 이거 좀 드시고 하시죠!”
공 수사관이 양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치킨과 캔맥주였다.
“와, 치느님!”
짝짝, 장 검이 치킨을 보자 반색을 하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맥주 님도 오셨습니다. 역시, 야식의 제왕은 치느님과 맥주죠!”
“맛있겠네요. 장 변, 그리고 보니 우리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네?”
“그러게요!”
“자자, 재판도 중요하지만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드시죠. 몇 번 먹어봤는데 아주 맛나요. 여기가 워낙 유명한 집이라 제가 거짓말 좀 보태 한 시간은 기다렸습니다.”
공 수사관이 테이블 위에 치킨과 맥주를 펼쳐 놓았다.
잠시 후,
“장 변호사님, 내일 첫 공판인데 안 떨리십니까?”
공 수사관이 맥주를 들이켜며 물었다.
“후, 안 떨리긴요? 무지 긴장되네요. 검사 생활하면서 수없이 공판에 나가봤지만, 변호사 신분으로 올라가는 법정은 남다른데요? 더 떨려요.”
장 검이 발그레 붉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장 변호사님은 망치랑 맞짱도 뜨신 분이에요. 뭐가 겁나세요! 분명 잘하실 겁니다.”
공 수사관이 양 주먹을 불끈 쥐며 힘을 북돋웠다.
“그렇죠! 제가 망치 총알도 피해 간 사람인데!”
아자! 장 검 역시,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나저나 수사관님, 혹시 박 형사 쪽에서 이상한 움직임 같은 건 없죠?”
나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됐다.
“흠, 지금까지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리고 장준환 검사 쪽도 잠잠합니다. 일단, 박 형사가 증언대에 선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특별할 게 있겠습니까?”
공 수사관이 코끝을 찡그리며 닭 다리를 입에 넣었다.
“아무튼, 공판 끝날 때까지 신경 바짝 쓰셔야 합니다. 박 형사, 이 사람 간교한 사람이에요. 절대 믿을 사람이 못 돼요.”
“그러게요. 사실, 형사가 피고 측 증인으로 나선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장 검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겠지!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야! 아무튼,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 쉬자고!”
시계를 보니, 이미 시곗바늘이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어! 수상하다 수상해! 두 분, 어딜 들어가 쉽니까?”
그 순간, 공 수사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와 장 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수, 수사관님! 지금 무슨 생각 하시는 겁니까?”
“뭐지? 저 빨개진 얼굴은? 그러니까 더 수상하네?”
공 수사관이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수사관님, 1절만 하시죠?”
장 검이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아무튼, 두 분 좋은 밤 되십시오!”
크크크, 공 수사관이 고개를 숙여 사악하게 웃었다.
“수사관님!”
장 검이 공 수사관을 째려봤다.
* * *
<서울 고등법원, 304호 법정>.
장 검이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모습이 생각보다 긴장한 듯 보였다.
파이팅!
내가 장 검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들어 보이자 그녀가 해맑게 웃어주었다. 역시나, 꽃처럼 피어나는 보조개는 법정에서도 싱그러웠다.
“검사 측, 피고 심문하십시오!"
피고, 서호영에 관한 간단한 인정 신문과 재판 절차에 관한 설명을 간략하게 마친 재판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장준환 검사가 법정 중앙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박 형사가 못내 눈에 거슬렸는지 그가 흘끗거렸다. 박 형사가 부담스러웠는지 이내 고개를 숙여 눈길을 피했다.
“피고는 사망한 김은혜 씨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장준환 검사가 건조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법정을 울렸다.
“연인 사이였습니다.”
“사귄 지는 얼마나 되셨죠?”
“5년 정도 됐습니다.”
“음, 그렇군요. 그 정도 기간이면 통상 보통의 남녀 사이라면 결혼을 고려할 시기인데 결혼 계획을 하고 계셨습니까?”
음, 지금 장준환 검사는 살해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살해 추정 시각이 뒤집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서호영이 혐의를 벗을 수는 없는 상황! 명확한 살해 동기가 있다면 서호영은 여전히 제1의 살해 용의자가 될 수 있다. 장준환 검사는 그 점을 파고들려 하고 있어!
“그, 그게…….”
당황한 서호영이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제가 좀 더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 검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근 들어 두 사람의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진 정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사망한 김은혜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님은 직접 피고를 수차례 찾아가 자신들의 딸과 헤어지기를 종용했죠. 피고 맞습니까?”
“네에. 맞습니다.”
서호영이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또한, 김은혜 역시, 피고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거로 수차례, 그녀의 부모님이 주선한 맞선 자리에 나갔고 확인해 보니 심지어 결혼 정보 업체에까지 가입했더군요. 피고! 묻겠습니다. 최근에 김은혜가 그녀 부모의 주선으로 나간 맞선 자리에 찾아오신 적이 있죠?”
“네.”
꿀꺽, 서호영이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뭔가를 떠올렸는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곳은 왜 간 것입니까?”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맞선을 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침착해! 서호영! 그런 진술은 할 필요가 없어!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피고는 그곳에 가서 뭘 하셨습니까?”
장준환 검사가 서 호응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그… 그게, 그 상황에서는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서호영이 벌게진 얼굴로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서호영이 장준환의 유도신문에 지금 심리적으로 말리고 있어! 쓸데없는 진술을 늘어놓고 있다. 장 검! 여기서 일단 브레이크를 걸어야 해!
나는 고개를 돌려 장 검을 응시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본 사건과 연관성이 없는 사적인 일을 들춰 피고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시정하여 주십시오!”
적절한 시기에 장 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했어! 장 검!
“기각합니다. 정황상, 사망 당시 김은혜와 피고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검사의 진술은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진술입니다. 검사! 계속하세요!”
재판장이 단호하게 장 검의 이의신청을 거절했다.
재판장이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긴 했지만, 서호영이 심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은 충분히 확보했다. 잘했어! 장 검!
“네. 말씀하시기 힘들면 제가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피고, 서호영은 김은혜의 맞선 자리에 나가 테이블을 던져 훼손하고 맞선남의 멱살을 잡고 구타했습니다.”
“아니에요. 멱살을 잡은 적은 있지만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절대로, 그런 적은 없습니다.”
서호영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피고!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네.”
재판장이 서호영에게 제지하자 그가 힘없이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아뇨. 분명, 서호영은 당시 맞선 자리에 나온 김모 씨의 멱살을 잡았으며 얼굴과 가슴 두 차례, 폭력을 가했습니다. 증거물로 당시 상황을 목격한 카페 주인과 종업원의 진술서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사람의 눈은 정확하지 않다! 분명, 멱살만 잡았어도 구타를 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어! 게다가 시간도 많이 흘러 기억을 확신할 수 없을 테니 정황상 그럴 수 있다는 추정만으로도 구타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장준환 검사는 그걸 이용한 거야!
“채택합니다.”
장준환 검사가 서류봉투를 재판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다음 화면을 보시죠!”
틱, 장준환 검사가 스크린을 내려 PPT 화면을 띄웠다. 서호영과 김은혜가 나눈 톡 내용이었다. 장준환 검사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2012년 10월>.
[너,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호영 씨, 우린 진짜 안 돼. 이만 헤어지자. 난 우리 부모님을 배신할 수 없어!]
<2012년 11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미안해! 어쩔 수 없어!]
<2012년 12월 3일>.
[은혜야! 그냥 아무도 없는 데로 도망갈까?]
[호영 씨, 제발 그러지 마. 나, 이제 호영 씨 사랑하지 않아!]
[뭐?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게 말이 돼? 죽자! 우리 죽자고!]
“보시는 바와 같이 최근 3개월간, 피고와 김은혜가 주고받은 톡 내용입니다. 이 톡의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니 ‘죽자,’ ‘죽는다,’ ‘죽고 싶어’ 등 죽음과 연관된 단어가 총 130회가 등장하더군요. 서호영과 김은혜가 투숙하기 이틀 전, 3일에도 피고는 김은혜에게 ‘같이 죽자’는 톡을 보냈습니다. 따라서, 본 검사가 합리적으로 추론하건대 2012년 12월 5일, 피고와 김은혜가 같이 XX 모텔에 투숙했던 일, 피고는 연인의 배신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했으며, 정황상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충분한 살해 동기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이상, 피고 심문을 마칩니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심문하시겠습니까?”
“네.”
장 검이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법정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