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28화 (128/170)

# 128

[128화] 이간계(離間計) (1)

<룸살롱, 로마의 휴일>.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은 장준환 검사와 박 형사가 은밀하게 <로마의 휴일>이라는 룸살롱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화면이었다.

“이봐. 박 형사, 서호영 이 새끼, 가만 보니 새가슴이야. 일단, 좀 더 세게 밀어붙이면 먹힐 거야. 자백부터 받아놓고 빨리 해결하자고.”

“네. 그렇지 않아도 거의 자백을 받아뒀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부장 심사야. 한 사건도 허투루 하면 처리하면 안 돼! 그리고 당신도 승진해야지. 언제까지 말단으로 살 거야. 반장 타이틀은 달아야 할 거 아냐!”

“검사님이 도와주신다면 그야 문제도 아니죠!”

“그래. 나도 있는 힘껏 밀어줄 테니까 그 양아치 새끼 입단속 잘 시키고.”

“김성수 말입니까?”

“누가 또 있어?”

“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이번 부장 승진은 영감님이 떼놓은 당상 아닙니까? 실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영감님을 제칠 사람이 없잖습니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했어. 아무튼, 자네 말은 입안에 사탕이구먼. 난 그래서 자네가 좋아!”

“내 잔 한잔 받아!”

“네.”

상황 힌트권을 클릭하자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흠, 정황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군! 이 정도 가지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텐데…… 그냥 잡아떼면 그만 아닌가?

만약, 약아빠진 박 형사가 뭔가 보험을 들어뒀다면? 뭔가 가지고 있지 않을까?

“킹 메이킹 시스템! 그렇지 않나?”

[…….]

역시나 킹 메이킹 시스템은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히 미션을 해결해야겠지?”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첫 번째 미션을 보여줘!”

[알겠습니다. 첫 번째, 미션을 부여하겠습니다. 이 관계를 활용하여 악의 검은 고리를 끊어버려라!]

이간계? 악의 고리? 장준환 검사와 박 형사의 연결을 말하는가 보군! 결국, 이 관계를 써서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라는 뜻인가?

“킹 메이킹 시스템! 맞나?”

[…….]

“후, 물어본 내가 바보지.”

[죄송합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필요한 과정이니 미션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신의를 바탕으로 한 끈끈한 관계가 아니다. 철저히 자기의 이익을 위해 공생하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분명, 미래를 위해 누군가는 보험을 들어뒀을지도 몰라. 나 같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둘 다 보험을 들어뒀든, 아니면 한쪽만 들어뒀든, 둘 다 아니든 상관없다.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은 사실이고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이간계는 반드시 먹힐 것이다! 솜털보다 가벼운 두 사람의 커넥션이라면…….

<남부 경찰서 인근, 카페>.

나는 우선 좀 더 다루기 쉬운 박 형사부터 만났다.

“저는 변호사님과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십니까? 재판 준비로 바쁠 텐데 이렇게 절 만날 만큼 한가하시나요?”

박 형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렇긴 한데, 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물건을 하나 가지고 와서 말입니다.”

“네? 심각한 물건이오? 그게 뭡니까?”

박 형사가 급작스레 관심을 보였다.

“그전에 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룸살롱 잘 아시죠?”

“뭐요? 내가 그런 데를 어떻게 압니까? 쓸데없이 쉰 소리를 늘어놓으시려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흠흠, 박 형사가 헛기침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예전에 보니, 형사님, 서랍 속에 거기 영업이사 명함이 얼핏 보이던데요?”

“뭐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뭐 하자는 수작입니까? 강력사건 수사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고, 조사 차원에서 받은 명함을 가지고 절 협박하려는 겁니까 지금?”

박 형사가 일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흥분하시지 마시고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흠흠흠, 박 형사가 헛기침하며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십시오. 박 형사님의 선택이 앞으로 박 형사님의 운명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박 형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이번 부장 승진은 영감님이 떼놓은 당상 아닙니까? 실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영감님을 제칠 사람이 없잖습니까?”

“사람도 참, 아무튼, 자네 말은 입안에 사탕이구먼. 아무튼, 난 그래서 자네가 좋아!”

나는 테이블 위에 비어있는 USB를 올려놓고는 박 형사가 장준환 검사가 나눈 대화 일부분을 그에게 읽어주었다.

“뭐…… 뭐야? 지금 이게…….”

박 형사의 눈 밑이 파르르 떨리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이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 USB에 녹음된 내용 일부를 적어온 것입니다. 제가 들어본 바로는 형사님의 목소리가 틀림없던데, 이래도 계속 부정하시겠습니까? 이 대화가 이루어진 장소가 로마의 휴일인 것 같은데요. 자세히 들어보니 참 심오한 내용이더군요.”

“이, 이걸 어떻게!”

박 형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죠! 그렇게 쉽게 넘겨드리기엔 너무나 심각한 내용이라….”

휙, 박 형사가 손을 뻗으려 USB를 집으려 하자 나는 그의 팔목을 잡았다.

임진왜란 때, 횃불을 들고 강강술래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왜군이 지레 겁을 먹었다고 했던가? 만화영화가 담겨있는 USB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구했습니까? 혹시…….”

박 형사가 잠시 갸웃거리더니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미간을 좁혔다.

“네. 지금 박 형사님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맞을 겁니다. 은밀하게 나눈 대화를 녹음할 수 있는 사람은 박 형사님과 장 검사 둘 뿐인데, 박 형사님이 아니라면 장준환 검사뿐이겠죠!”

나는 박 형사의 의중을 파악해야 했다.

여우 같은 새끼!

박 형사가 두 주먹을 쥐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이간은 보험을 들어두지 않았구나!

“내용을 보니 검사와 형사의 은밀한 만남에 목격자 김성수의 이름까지 거론이 된 굉장히 위험한 대화 내용이더군요.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 좀 시끄러워지겠던데요?”

나는 좀 더 심적 압박을 가해야 했다.

“지금, 그 파일을 장준환 검사가 넘긴 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요? 그게 밝혀지면 장준환 검사도 무사하지 않을 텐데?”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닐 것 같은데요? 장준환 검사가 왜 이 파일을 나에게 왜 넘겼는지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제가 이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까요?”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박 형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장준환 검사는 검찰의 비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 일이 터져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요. 당신의 비리를 캐내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어쩌면, 박 형사님이 독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지 모릅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지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나는 좀 더 애를 태울 필요가 있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저한테 그걸 들고 오셨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죠! 이제야 박 형사님다우십니다. 있죠! 당연히 있습니다.”

“그, 그게 뭡니까?”

“법정에서 증언해 주십시오.”

“뭘, 증언하라는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 아마추어처럼, 당연히 서호 양에게 거짓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강압 수사를 했다는 것을 증언하라는 거죠!”

“그… 그러면, 저는 끝장입니다. 못 합니다. 못 해요.”

“에이,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박 형사님은 선택지가 없다고요. 이 파일이 공개되면 강압 수사 정도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압 수사 정도야 징계나 감봉 정도 처리로 마무리될 수도 있겠지만 목격자를 매수해 거짓으로 증언하고 검찰과 짜고 기획 수사를 한 부분은 폭력 수사하고는 질이 다르죠. 잘 아실만하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새……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며칠만 시간을 주시죠!”

걸려들었어!

“음, 좋습니다. 시간은 충분히 드리죠. 그리고 이 USB는 법정 증언을 마치고 나면 드리도록 하죠. 저와의 약속만 지켜준다면 이 USB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 그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나중에 허튼소리 하면 그땐,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것만 명심하십시오.”

“아, 네. 절대로 이 USB는 공개하지 않는다니까요? 참, 그리고 제가 박 형사님에게 선물을 하나 드리죠.”

틱, 나는 테이블 위에 두툼한 서류가 담긴 봉투 하나를 올려두었다. 김성수와 그의 친구들에 관한 정보였다.

“이게 뭡니까?”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서호영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형사님도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서류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진범의 가능성이 큰 김성수와 그의 친구들에 관한 정보입니다. 박 형사님이 수사를 맡아서 그들의 죄를 밝혀주세요. 그러면 누가 압니까? 어느 정도 형사님의 비리가 가려질지…… 아무튼, 제 생각엔 이게 박 형사님이 사실 수 있는 동아줄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채찍을 휘둘렀으면 이젠 당근을 던져줄 차례였다.

“흠, 알겠습니다. 제가 조만간 연락을 드리지요.”

박 형사가 서류봉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며칠 뒤, 장준환 검사실>.

장준환 검사는 단순하고 다혈질적인 박 형사와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했다.

“그,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것이 뭐요?”

장준환 검사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특별히 바라는 것 없습니다. 법정에서 저와 아니 장 변과 정정당당하게 법리로 붙어주시죠. 꼼수 같은 건 집어치우고!”

“그, 그게 다입니까?”

장준환 검사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게 다죠. 뭐가 더 있겠습니까? 제가 다른 꼼수라도 부릴 것 같아서요? 저는 그런 치사한 짓은 안 합니다. 재판이 끝난 후에 USB는 넘겨드리죠. 물론, 그 USB는 세상에 공개되지도 않을 겁니다!”

만화영화가 담긴 USB를 공개해서 뭐 하겠는가? 난 분명, 이 USB를 공개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 USB를 넘겨 주신단 말씀입니까?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요?”

“믿든 안 믿든 그건 검사님의 자유시지만, 제 생각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한데요.”

“좋습니다. 하지만, 그 파일이 변호사님한테는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큰 무기가 될 텐데. 그렇게 쉽게 넘겨주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제가 말입니다. 박봉으로 검사 생활을 하다 변호사를 개업하다 보니, 돈 욕심이 좀 나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검찰과 등을 져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전 변호사로서 이 재판만 이기면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헐, 내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던가?

온몸에 닭살이 돋는 순간이었다.

“그, 그야. 당연히 그렇긴 하죠. 같은 검찰 출신끼리 서로 돕는 건 인지상정 아닙니까?”

흠흠흠, 그가 주먹을 말아 쥐며 헛기침을 했다.

간교한 인간! 역시 의심이 많군!

“박 형사가 검사님께 영감님이라 부르는 목소리가 정말 입안의 사탕처럼 들리더군요! 검사님, 똥인지 된장인지 진짜 확인하셔야겠습니까?”

“음… 아니오. 알겠습니다.”

장준환 검사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후 눈을 뜨고는 손을 내저었다.

“참! 그나저나 서호영 아버지에겐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그거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흠, 박 형사, 그 개새끼가 그럽디까? 내가 시킨 일이라고?”

미끼를 던졌더니 장준환 검사가 냉큼 물어버렸다.

서호영은 혈육이라고는 아버지뿐이다. 결국, 내 예상이 맞았어! 툭 미끼를 던졌더니 그가 걸려들었다.

늙은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있었던 거야?

“그, 그게 그렇게 되나요?”

“박 형사, 그 새끼가 다 꾸민 짓이에요. 서장수가 고리 사채가 많은 것을 알고 서호영을 협박한 겁니다. 서장수의 사채 빛을 빌미로 자백을 받아낸 거죠.”

흠, 결국 이거였군. 서호영이 증언을 거부한 이유가…….

“네. 그랬군요. 아무튼, 내일모레 법정에서 봅시다.”

“…….”

장준환 검사가 목까지 벌게진 채, 말없이 씩씩거렸다.

띠리리링.

남부지청을 벗어나자마자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박 형사의 전화였다.

“네. 김정환입니다.”

“변호사님, 증언하겠습니다.”

“네. 잘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모든 것을 걸고 진범을 잡아내겠습니다. 그러니 약속은 지켜주시는 겁니다.”

“물론이죠. 저는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않습니다.”

“변호사님만 믿겠습니다.”

후후후, 이젠 서호영만 설득하면 되는 건가?

꾹, 나는 종료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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