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27화 (12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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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사람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마라 (2)

<정은 법률사무소>.

출근해보니 이미 장 검과 공 수사관이 나와 있었다.

“수사관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왕건이라뇨? 얼른 말씀해 보시죠.”

나는 급히 외투를 옷걸이에 걸며 물었다.

“선배님, 숨 좀 돌리세요. 자 이거 좀 마시세요.”

장 검이 따뜻한 유자차를 내밀었다.

“얼른, 말씀해 보세요.”

나는 유자차에 입을 대는 둥 마는 둥 한 모금 마시고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마음이 급했다.

“아따, 우리 검사님, 아니지 변호사님 성질도 급하시네. 네네. 말씀드립죠. 남부서 박 형사, 이 인간 전적이 화려하더군요. 폭행, 강압 수사에 룸살롱 상납에, 못된 짓은 골라가면서 했구먼요. 감찰반에 여러 번 포착이 되었는데 운 좋게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이 인간이 나름 실적이 우수하거든요. 이 이간이 유흥업계와는 상당히 연이 깊어서 고급 정보를 수시로 받는 듯합니다. 그래서 검거율도 상당하죠. 경찰청장 포상 경력도 있어서 살아남은 듯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뒷배가 있는 것 같아요.”

“강압 수사요? 어떻게 말입니까?”

매우 중요한 정보였기에 조바심이 났다.

“그게 뻔하지 않습니까? 비슷한 용의자 하나 검거하면 앞뒤 안 가리고 자백을 받아내는 겁니다. 그러다 소 뒷걸음치다 쥐 밟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식 수사를 했지만요. 그러니 검거율이 급상승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검찰이 쿵 짝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요. 이건 뭐, 일제 시대 독립군 수사도 아니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짓을 하는지……”

공 수사관이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뒷배라는 말은 결국 검찰 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장 검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네네. 맞습니다. 검찰 쪽까지 줄이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추측이긴 한데 장준환 검사와 연결돼있는 것 같아요. 알아보니 로마의 휴일이라고 룸살롱에서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난 정황이 포착됐거든요.”

공 수사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마의 휴일? 그 명함 속에 써진 룸살롱을 말하나 보군! 역시, 내 추측이 맞았어!

검찰, 경찰,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가 그곳에서 만났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군.

“그렇군요. 일단, 수사관님은 그 로마의 휴일을 좀 더 파주세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합니다. 거기 영업이사 뒤를 좀 캐보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겁니다.”

“네네. 완전히 밑바닥까지 샅샅이 뒤져보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변호사님이 그 영업이사를 어떻게 아십니까?”

“뭐, 그냥, 어쩌다 보니 알았습니다.”

“오호, 이거 좀 냄새가 나는데요?”

공 수사관이 내 몸에 코를 대며 킁킁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요. 그리고 장 변은 박 형사가 처리했던 사건 자료 좀 조사해 봐줘. 참, 그리고 이번 공판은 장 검이 한번 맡아보는 게 어때? 나는 서포트만 할 테니까!”

“네? 제가요?”

“그래. 장 검 말대로 정은의 ‘은’ 자는 장 검의 이름이니까?”

“오호! 장 변호사님이 이제 머리 올리시는 겁니까? 그럼, 오늘 축하주라도 한잔…….”

공 수사관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술 마시는 시늉을 했다.

“다, 다음에요. 오늘은 가볼 때가 있어서요.”

“어디 가시게요?”

장 검이 물었다.

“서호영을 한번 만나봐야겠어. 다음 공판엔 서호영의 증언이 무엇보다 중요해. 이제 어느 정도 몸도 회복됐으니 진술을 받아둬야 할 것 같아서.”

“음, 그렇죠. 아무래도 당사자니…….”

“그래. 일단 서호영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그다음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네. 맞아요. 다녀오세요.”

<서울 남부 교도소>.

나는 서호영을 접견하기 위해 남부교도소를 찾았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초췌한 모습을 한 서호영이 다리를 쩔뚝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서호영이 쩔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아 팔을 테이블 위에 걸치자 왼쪽 팔목의 상처가 드러났다. 쇳독이 올라 벌겋게 부어있었다. 자살미수 탓에 그에 관한 감시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교도관님, 서호영 씨 수갑 좀 풀어주십시오.”

“그건 불가능합니다. 교도소 원칙에 위배돼서요.”

“지금, 서호영 씨 팔을 좀 보십시오. 시퍼렇게 멍이 들었잖습니까? 이거 교도소 인권문제 아닌가요? 인권위에 제소할까요?”

나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네. 그럼 잠시만입니다.”

교도관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수갑을 풀어주었다.

“서호영 씨, 앞으로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재판에 이기면 뭐 합니까? 건강을 잃으시면 모든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서호영이 민망한지 고개를 숙였다.

“서호영씨, 지금부터는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재판에서 우리가 완전히 이길 수 있어요.”

“네에.”

“서호영 씨가 체포 구금된 후, 경찰 조사나 검찰 조사에서 가학적 수사가 있었습니까?”

“…….”

서호영이 교도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말씀하시기 껄끄러우시면 네, 아니오라고 만 답하시던가 메모지에 적어주시면 됩니다.”

나는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네. 알겠습니다.”

[가학 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서호영이 메모에 적은 내용은 예상과는 다른 문구였다.

“네?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알기론 사망 추정 시각이 뒤바뀌고 제 알리바이가 확실해진 마당에 무죄로 풀려날 거라고 하더군요. 죄송하지만, 그거면 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서호영 씨! 아직 유력한 용의자는 서호영 씨예요. 서호영 씨가 강압 수사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는 것을 밝혀야 우리가 완전히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어요. 반드시 증언해 주셔야 합니다.]

민감한 사항이었기에 나 역시, 재빨리 메모지에 적어 그에게 내보였다.

[아무튼, 저는 강압 수사나 폭력 행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죄송하지만, 변호사님, 더 묻지 말아 주세요. 재판에 나가서도 증언하지 않을 겁니다.]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호영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관님, 저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그의 말에 교도관이 자리로 와 그의 팔에 쇠고랑을 채웠다.

뭔가 피치 못할 이유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너희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괴물 같은 놈들!

“서호영 씨…….”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장준환 검사실>.

한편 장 검은 꽃 다발을 들고 장준환 검사실을 찾았다.

“오호, 장 검사, 아니지 이제 장 변호사지? 이게 얼마 만이야. 한 10년 돼가나?”

“그 정도 될걸요?"”

“그나저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피고 측 변호사가 담당 검사를 찾아오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은데 말이야.”

장준환 검사가 장검이 내민 꽃다발을 받아들더니 향기를 맡은 후, 꽃병에 꽂아 넣었다.

“오늘은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연수원 동기 자격으로 인사차 들렀어요.”

“그래? 그렇다면야 나 역시 환영이지. 반갑구먼. 앉지!”

“네.”

“그나저나, 난 장 검이 이렇게 빨리 변호사 개업을 할지는 몰랐네. 지난번 특검에도 차출되고 해서 이쪽에서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장준환 검사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정의 구현하는데 검사, 변호사가 따로 있나요. 뭐든, 법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 아닌가요? 검사, 변호사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맞는 말이긴 한데, 아무튼 연수원 때부터 장 검은 남달랐지. 그때도 그러지만. 그놈의 정의 구현은 여전히 외치고 다니시나 보군.”

장준환 검사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비웃듯 말했다.

“네. 제 삶의 목표는 언제나 정의 구현입니다.”

“그래그래, 허울 좋은 정의 구현 좋지! 근데 말이야.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말이야.”

“당연히 호락호락하지 않죠. 정의롭지 않은 삶은 언제나 법의 단죄를 받게 돼 있으니까요. 법의 준엄함을 일깨워 준 것이 이 세상이니까요. 언제나 정의는 승리해 왔습니다.”

장 검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장 변, 그 눈빛 묘하네? 왠지 나 보고하는 소리 같은데?”

장준환 검사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아뇨. 제가 그럴 리가 있나요. 왜요? 뭐, 찔리시는 것이라도 있나요?”

장 검이 노련하게 그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하하하, 그 당돌함은 연수원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먼. 장 검 아니 장 변, 내 말 잘 들어. 힘 있을 때, 정의도 존재하는 거야. 힘 있고 권력 있는 자가 외치는 것이 정의지. 힘없고 나약한 자들이 외치는 정의는 패배의식에서 오는 열등감의 발로라고!”

“패배의식에서 오는 열등감의 발로라? 그것참 궤변이군요. 아무튼, 이번 재판에서 검사님이 말씀하시던 그 열등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지켜보죠. 이번 재판에 제가 검사님의 카운터 파트너가 될 듯합니다.”

“그, 그래? 김정환이가 안 나오고?”

“네. 이번에는 제가 공판을 진행할 듯합니다. 선배님은 좀 더 바쁜 일이 있으셔서요. 제가 맡아도 충분할 듯하다고 하시더군요.”

장 검이 은근슬쩍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그래? 그것참 잘 됐군. 연수원 때 맞붙고 이번이 처음이네? 좋아, 이번에야말로 진검승부를 펼쳐보자고.”

“네네. 저도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장준환 검사님!”

장 검이 당당하게 그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흠, 그래. 나도 기대가 되는걸? 그나저나 식사라도 하면 좋은데, 어떡하지? 내가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장준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아, 네. 저도 이제 막 가려던 참이었어요. 우리가 편안히 얼굴 마주하면서 살갑게 숟가락 뜰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장 검이 영화 대사를 인용해 여유롭게 맞받아쳤다. 역시, 장 검다웠다.

“그, 그런가?”

하하하, 허탈하게 웃는 그의 눈빛에 언뜻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사람 되기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맙시다. 장준환 검사님!”

장 검이 문을 열고 나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장 변? 지금 괴, 괴물 어쩌고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장준환 검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어제 괴수 영화를 한 편 봤더니 자꾸 기억에 남네요? 시간 되시면 검사님도 한 편 보세요.”

장 검이 그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 * *

아무래도 서호영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숨기려는 이유가 뭘까? 반드시 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뭔지 찾아내야 해! 반드시!

“킹 메이킹 시스템 가동.”

나는 신속히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했다. 시기적으로 그의 도움이 필요할 때였다.

[킹 메이킹 시스템 가동.]

역시나, 낮고 웅장한 그의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힌트권 사용!”

[힌트권을 사용합니다. 포인트를 20점 차감하겠습니다. Y/N]

킹 메이킹 시스템이 힌트권들을 화면에 나열시켰다.

상황 힌트권?

수많은 힌트권 중, 내 시선이 고정된 힌트권의 명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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