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화] 역전재판 (3)
국과수 부검의 이진선이 증인 선서서를 낭독한 후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은 국과수에서 근무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8년 차가 돼가는군요.”
“음, 그렇다면 수많은 사체를 부검해 보셨겠군요?”
나는 그녀의 전문성을 부각해야 했다.
“네. 셀 수가 없을 정도죠. 거짓말 좀 보태면 산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녀가 담담한 표정으로 소회를 밝혔다.
하하하하!
그 순간,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조용히 하세요! 증인, 진지하게 답변해 주세요!”
법정이 소란스러워지자 재판장이 이진선에게 경고했다.
“네. 죄송합니다.”
이진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흠, 그렇군요. 그러면 김은혜 씨의 직접적 사망원인은 무엇입니까?”
“몸과 얼굴에 가벼운 외상이 있는데 그건 김은혜가 격렬히 반항하다 생긴 상처로 추정되는바, 직접적 사망원인은 질식사라고 판단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감식반의 감식 결과 보고서를 보면 김은혜의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3시에서 5시였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검의가 현장에 입장하여 현장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시체의 사후경직 상태나 체온을 측정하고, 시반의 형태 등을 면밀하게 관찰한 후에 바로 부검해 객관적인 정보들을 취합하여 분석한다면 정확하고 확실한 사망 추정 시각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
이진선이 얼굴을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계속하시죠!”
“네. 하지만 그건 이상적인 상황이고 실제로는 범죄 건수보다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감식반의 육안에 의한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부검하는 데도 여러 가지 제약조건 때문에 부검하기까지 하루에서 이틀, 혹은 그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하므로 정확한 사망 추정 시각을 측정하는 데 너무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
“일단, 감식반이 측정한 사망 시각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타당하다 보겠습니다.”
이진선이 차분하게 진술을 마쳤다.
“지금, 증인은 일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뭔가요?”
“네. 외관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세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런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검사 결과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힘들죠.”
“전제 조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사체의 나이대, 성별, 생전의 건강 상태, 착용 여부, 외부 온도, 실내 환경 등의 수많은 변수가 있고 상황 또한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애로점이 많습니다. 따라서, 법의학서에 쓰인 각종 현상에 따른 사망 시각 추정 방법을 일괄 적용하기는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계속하시죠!”
“법의학서에 나온 표준 목록 역시, 적정 온도 기준으로 산출한 측정치죠. 적정 온도라는 게 외부 변수에 의해 상당히 변질할 수 있으므로 사체가 발견된 상황과 감식할 때 상황이 같다면 문제는 수월하지만 사건 현장은 너무나 다양해서 체온 하강이라든지 시강 등으로 사망 추정 시간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조금 어렵군요. 그렇다면 조금 쉽게 묻겠습니다. 김은혜를 감식했던 감식반은 사체의 체온 하강과 시강 정도를 파악해 사망 추정 시각을 내놓았는데 이 측정치가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전제 조건이 필요할까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험실 환경으로 맞출 순 없지만, 최소한 사망 당시의 환경과 유사한 상태에서 감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김은혜가 사망한 당일은 외부 기온이 굉장히 낮았습니다. 따라서, 외부 온도와 내부 온도 차가 컸죠. 어떤 요인에 의해 실내 온도가 바뀌었다면 측정치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서너 시간 정도 외부 온도에 사체가 노출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흠, 당시 외부 기온은 영하 10도로 매우 추운 날씨였죠. 게다가 바람도 심하게 불었습니다. 그 상태라면 시체 경직과 체온 하강으로 사망 시각을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팩트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황한 장준환 검사가 급제동을 걸며 이의 제기를 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변호인의 말을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제가 말실수를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물론, 있습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수사하던 장면을 목격한 김정난 씨의 증언이 담긴 서류를 제출합니다.”
나는 재판장에서 김정난 씨의 목격 진술서를 제출했다.
“뭐야? 이렇게 되면 김정환 검사의 완승인가?”
“아무튼, 대단하네. 대단해! 1심이 뒤집힐 것 같은데?”
방청객에서 탄성과 환호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무죄판결을 받은 장한평 룸살롱 살인사건이나, 파기 환송판결을 받은 천안 여고생 살인사건에서 보듯이 현장 보존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임장한 감식 요원이 시체 상황, 특히 사체의 체온과 시강 등을 파악해 작성한 보고서로 추정된 사망 시각 의견은 이러한 변수로 인해 법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판례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 변호인은 김은혜의 사망 추정 시각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상입니다.”
“끝났네. 끝났어!”
“서호영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구먼!”
“……,”
어느새 나무 거죽처럼 거칠어진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변호인, 더 심문할 내용이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그러면, 검사 측 반대 심문하십시오.”
“네.”
장준환 검사가 벌게진 얼굴로 증인석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양 주먹을 꼭 쥔 모습이 적잖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지금 증인의 발언은 국과수 전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입니다. 본인 또한 국과수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장준환 검사의 첫 질문은 이진선이 심적 동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가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치사한 인간! 지금 이진선을 심적으로 압박하고 있어!
“아뇨. 제 생각은 검사님과 다릅니다. 오히려 실수를 감추고 숨기는 것이 국과수의 명예를 더럽히는 거로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이 명확한데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감추는 것이 신뢰성을 높이는 건가요? 만약, 저의 발언으로 제가 어떠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저는 적어도 양심을 속여가면서까지 조직의 치부를 감추고 싶지 않습니다.”
멋지다! 역시, 장 검의 친구가 맞아! 저 정도 강단이면 믿을 수 있어!
이진선은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장준환 검사의 눈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단호하게 맞받아쳤다. 전혀 위축되는 모습이 아니었다.
“흠흠흠, 알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하죠.”
오히려 기가 꺾인 쪽은 장준환 검사였다. 그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좋습니다! 증인의 진술대로 사체의 체온 하강과 시강으로 파악한 사망 추정 시각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죠.”
인정한다? 의외군! 다른 복안이 있다는 뜻인가?
나는 장준환 검사의 입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환경요인에 의해 감식반의 검사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면 부검 결과는 어떤가요? 부검 결과마저 부정할 순 없겠죠? 그렇다면 국과수는 존재할 의미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미 확보된 부검 결과에 타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야!
“음, 법의학상 정상적인 부검 결과는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국과수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장준환 검사가 두툼한 보고서를 펼쳐 들어 부검 결과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장준환 검사가 읽어 내려간 보고서는 김은혜 시체에서 발견된 음식물의 상태를 파악해 사망 추정 시각을 추정한 보고서였다. 부검 결과, 김은혜의 위에서 소화되지 않아 육안으로도 식별 가능한 과일이 발견되었다. 실제로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서호영과 김은혜는 맥주와 과일 안주를 먹었던 사실이 조사결과 밝혀졌었다. 일반적으로 위로 들어간 음식물이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소화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
결국, 위에서 발견된 과일이 소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망 추정 시각은 감식 결과와 상당 부분 일치한 새벽 3시에서 적어도 새벽 4시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국과수의 의견이었다.
“이 보고서의 내용에 관해서 증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준환 검사가 이진선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부검 결과는 정확합니다.”
“네? 정확하다고요?”
장준환 검사는 이진선이 보인 의외의 반응에 흠칫 놀란 눈치였다.
“네.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진선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뭐, 뭐야? 지금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오늘 공판, 완전 롤러코스터군!”
당황한 건 방청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듯이 정상적인 부검일 때만입니다. 부검에서도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지요.”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생전의 건강 상태입니다. 법의학서에도 피해자의 생전의 건강 상태는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빨리 말씀하시죠!”
장준환 검사가 미간을 좁히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김은혜 환자는 살해되기 전, 위장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만성 위염으로 심각한 소화불량을 앓고 있었죠. 게다가, 최근에는 결혼 문제로 원형탈모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기존의 위염에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 위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소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인 소견입니다. 따라서, 2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이 지나도 음식물이 위장에 소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흔하고요. 따라서, 부검에 의한 사망 시각 추정 역시 객관성을 담보한다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이진선이 고개를 돌려 방청석에 앉아있던 장 검을 향해 윙크했다.
“어, 어떻게 증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죠? 그건 개인적인 소견 아닙니까?”
“물론, 저의 의견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겠죠? 그래서 미국에 분석 자료를 요청해 뒀는데 다행히도 어제 도착했더군요!”
“재판장님! 김은혜의 진료 기록과 미국에서 분석한 자료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내가 적기에 끼어들었다.
“채택합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 기록부를 받아들었다.
“흠, 이제 진짜 끝났군!”
기자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하나, 둘 법정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검사 측, 추가 심문이 남았습니까?”
재판장이 장준환 검사에게 물었다.
“아, 아뇨. 이상 심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 1차 재심 공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공판은 한 달 뒤에 이곳에 다시 열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 역시, 공판 자료를 챙겨 법정을 빠져나갔다.
“선배님, 수고 많이 하셨어요.”
공판이 끝나자 장 검이 득달같이 달려와 환하게 웃었다.
“음,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야!”
“흠, 대표님! 저 친구 제법 쓸만한데요?”
한 남자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는 국내 로펌 순위 1위인 박엔정의 수석 시니어 변호사 홍정호였다.
“우리가 저 친구한테 두 번 물을 먹었던가?”
“네. 그렇습니다.”
“저 친구, 내가 가져야겠어!”
“쉽지 않을 텐데요!”
“둘 중 하나야. 가지거나 아니면 부숴버리거나!”
박엔정 대표 주종수가 나를 응시하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