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23화 (123/170)

# 123

[123화] 역전재판 (1)

“그게 무… 슨 소립니까? 지금 경찰을 협박하는 거, 겁니까? 난 그런데 간 적도 없…… 어요!”

박 형사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말을 더듬었다.

“아뇨, 아뇨. 제가 왜 경찰을 협박합니까? 제가 조사해보니 그런 정황이 포착돼서 확인차 여쭤본 겁니다.”

“뭔가 잘못 아셨습니다. 전, 절대 그런데 간 적이 없다…… 구…… 요.”

박 형사가 주위를 의식했는지 목소리 톤을 낮췄다.

“그래요? 그건 뭐, 나중에 확인해보면 나오겠죠.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어느새 박 형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클럽, 로마의 휴일 영업이사 김상돈].

박 형사의 서랍에서 발견된 명함에 쓰인 이름이었다. 사실, 넘겨짚은 것이다. 좀 전에 박 형사가 서랍을 열었을 때, 얼핏 눈에 띈 명함! 그와 똑같은 명함을 김성수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게 틀림없어!

만약 두 사람이 룸살롱에 다닐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면 그동안, 자주 만났던 것이 틀림없다. 분명 경찰과 목격자의 사적인 만남은 수사의 객관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한 것이다. 그런 부적절한 관계가 계속됐다면 이미 수사의 중립성은 깨졌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어쩌면 이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있을지도 몰랐다.

* * *

2심 공판 일주일 전.

<정은 법률사무소>.

어느새 2심 공판 일이 다가왔다. 일단은 100% 무죄를 공략하기보다는 확보된 증인과 증거를 가지고 서호영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사망 추정 시각만 바뀔 수 있다면 무조건 서호영이 유리하다. 오전 7시~10까지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니까!

일단 그 점만 증명된다면 서호영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 증거불충분으로 향후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일단 급한 불을 끈 후에 나는 경찰과 검찰의 강압 수사를 통해 서호영이 거짓 자백을 했다는 것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장 변, 진선 씨한테는 답변이 왔어?”

이번 재판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이 그녀의 증언이었다.

“네! 진표 말대로 사체를 감식할 때, 환경적 변화 요소가 있었다면 감식 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는 소견서를 보내줬어요! 그러니까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적어도 김은혜가 사망한 시각은 새벽 3시~5시까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역으로 검찰이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정황이 만들어졌어요.”

장 검이 확신에 찬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진선 씨가 재판에 나와 증언도 할 수 있는 거지!”

“당근이죠. 제 베프예요. 당연히 나와야죠!”

그녀의 표정은 자신에 차 있었다.

“일단 검찰 쪽에서 신청한 증인은 김성수 하나야. 서호영이 범행 일체를 자백한 상황이니 별다른 증인이 필요 없었을 거야. 자신만만했겠지!”

“서호영의 몸에 생긴 구타 자국은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적어도 교도소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이 정도 흉터가 생겼으면 분명히 치료를 받았을 텐데 진료기록이 전혀 없었거든요. 게다가 서호영이 교도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는 정보에요. 같은 재소자들과도 잘 지냈다고 합니다. 분명, 경찰과 검찰의 강압 수사가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장 검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심증은 분명히 있어! 하지만, 서두르면 안 돼. 그 부분에 관한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야. 아주 민감한 사안이니 이번 공판에선 그 부분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아. 좀 더 알아보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 난 후에 치밀하게 대책을 세우자고. 아무튼, 이번 공판의 핵심은 사망 추정 시각을 뒤엎는 거야. 장 변도 명심해!”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나저나 서호영이 진범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김은혜 주변을 탐문해 보니 그녀한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들은 없던데요.”

장 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닐 것 같은데? 경찰이 잡아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서호영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면 되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요. 묻지 마 범행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음, 나도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까 장 변은 이번 재판에 집중해.”

“네? 생각해둔 거요? 뭔데요?”

장 검이 호기심이 잔뜩 묻은 눈빛으로 물었다.

“흠,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야. 나중에, 나중에 확실해지면 말해줄게.”

“치, 물어본 내가 바보지!”

장 검이 입을 삐죽거렸다.

“미안해. 참! 그리고 이번 공판에 서호영이 절대 나오면 안 돼. 지금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데 그를 법정에 세우면 이로울 게 없어. 그러니까, 장 변이 법원에 서호영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줘!”

“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

<서울고등법원, 304호 법정>.

드디어 변호사로서의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법정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검사서에 담당 검사, 장준환 검사가 검사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흠흠, 이것 참, 어색하군! 하마터면 검사석에 앉을 뻔했어!

나는 검사석으로 가려다 발길을 돌려 피고 측 변호인석에 앉았다.

“피고, 서호영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을 통보해 왔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 맞습니까?”

재판장이 내게 물었다.

“네. 지금 피고는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정신적 충격이 상당한 관계로 부득이하게 본 재판에 불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본 재판은 피고 없이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검사! 공소사실을 밝혀주세요.”

“네. 피고 서호영은 12월 5일 XX 모텔에 자신의 연인이었던 김은혜와 투숙 후, 김은혜가 변심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목 졸라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게다가 강도가 침입해 김은혜를 죽인 것처럼 교묘히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하지만, 구속 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순순히 범행을 자백해 정상참작을 해 비교적 낮은 형이 선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죄를 뉘우치고 갱생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뻔뻔하게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이는 법을 유린하는 것이며 신성한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본 검사는 1심의 기소 사실을 유지함과 동시에 법의 준엄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검사로서 본 재판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이 자리를 빌려 다짐합니다.”

장준환 검사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알겠습니다. 피고 측, 모두 발언하세요.”

“네. 재판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고 서호영은 김은혜를 살해하지 않았기에 검사 측에서 제시한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흠, 좋습니다. 피고가 일신상의 이유로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피고 신문은 서면으로 대체하고 바로 증인 신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검사! 증인 출석했습니까?”

재판장이 장준환 검사에게 물었다.

“네. 출석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검사 측에서 신청한 증인! 증인석으로 나와주세요.”

“네.”

김성수가 천천히 나와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 증인 선서서 낭독하세요.”

“네. 저는…….”

재판장의 명령에 따라 김성수가 담담한 목소리로 증인 선서서를 낭독했다.

“검사 측, 증인 신문하세요.”

“네. 재판장님!”

장준환 검사가 천천히 증인석으로 다가갔다.

“증인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저는 XX 모텔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증인은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잘 파악하겠군요.”

“네. 맞습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슬쩍 한 번만 봐도 파악이 되더군요.”

직업 특성상? 장준환 검사는 김성수가 앞으로 진술한 내용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미리 못을 박는 거다. 분명, 두 사람은 사전에 입을 맞춘 게 틀림없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사건 일 몇 시에 서호영과 김은혜가 투숙했습니까?”

“음, 제 기억으로 오전 11시경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기억하죠?”

“네.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기로 약속한 시각이 11시였거든요. 막, 컴퓨터에 접속하려는데 두 사람이 왔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기억하죠.”

정확히?

예상대로 김성수가 단정 지어 말했다.

“음, 당시 두 사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그 시간에 모텔에 들어올 때는 뻔한 것 아닙니까? 대개 남자가 계산하고 여자는 조금 떨어져 어색하게 서 있는 것이 보통이긴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좀 남달랐죠. 남자나 여자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일반적으로 머쓱해 하긴 해도 그렇게 어두워 보이진 않거든요.”

“혹시, 술을 마셨던가요?”

“네. 남자 입에서 술 냄새가 조금 나긴 했습니다.”

“그밖에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까?”

“음, 아 맞다! 여자가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었어요. 창피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얼핏 보니 얼굴에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핏자국요?”

“네. 핏자국이 틀림없었어요. 누구한테 맞았는지 얼굴도 퉁퉁 부어 있는 듯했고요.”

애초에 두 사람의 사이가 극도로 악화한 상태에서 모텔에 투숙했음을 보여주려는 거다! 그래야 서호영의 범행에 근거를 부여할 수 있으니까! 일단, 여기서 막아야 해!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증인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관해 추측성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시정하여 주십시오.”

“피고 측 변호인의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증인,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발언은 삼가세요. 그리고 서기! 지금 증인의 발언은 삭제하세요.”

다행히 재판장의 나의 이의 신청을 받아주었다.

“음, 좋습니다. 아무튼, 사망한 김은혜의 얼굴이 부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새벽에 서호영과 김은혜가 묵은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났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럼요. 그때, 옆방에 묵은 손님이 프런트에 전화해 난리를 쳤어요.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조용히 좀 해달라고 전화했죠.”

“그때가 몇 시였습니까?”

“음, 새벽 2시 반쯤 돼요. 그 이후에는 조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조용했다는 말씀은 3시 이후에는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단 말인가요?”

“네. 그 이후는 조용했습니다.”

집요한 장준환 검사!

그는 지금 모든 정황을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맞추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김성수 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 내용을 보면 오전 7시에 모닝콜을 했다고 돼 있는데, 맞습니까?”

“네. 원래는 8시에 모닝콜을 해야 하는데 시간을 잘못 봐서 7시에 전화했죠.”

“바로 받던가요?”

“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받던데요. 전혀 목소리가 잠기지 않았습니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일찍 깨웠다고 막 소리를 치시거든요.”

“혹시, 전화기 너머로 죽은 김은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요?”

“아뇨, 아뇨. 여자 목소리는 전혀 못 들었어요. 보통 전화벨이 울리면 보통은 잠을 깨기 마련이라 이런저런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기 마련인데, 마치 쥐 죽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김성수는 이미 김은혜가 죽어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분명, 사전에 입을 맞춘 것이 틀림없어!

“서호영 씨가 몇 시쯤에 모텔 밖을 나섰습니까?”

“한, 7시 10분쯤요?”

“이상하군요. 8시에 모닝콜을 요청했다는 것은 그 시간에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7시에 이미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질 않는데요?”

“저도 그게 신기했어요. 10분도 안 돼서 헐레벌떡 쫓기듯이 나갔거든요.”

“그럼, 피고는 언제에 모텔로 돌아왔습니까?”

“음, 거의 11시가 다 되어 왔어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새벽 3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모텔을 나갔거나 들어왔던 사람이 있습니까?”

“총 12개 방에 손님이 묵었는데 그 시간 동안, 체크인도 없었고 체크아웃도 없었어요. 전혀!”

이번 증언 역시 단정적으로 답했다. 법정에서 증언할 경우 ‘~것 같다.’, ‘~인 듯하다.’라는 표현보다는 단정적인 어투와 단어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김성수에게 주지시켰던 모양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방청객 여러분! 서호영과 김은혜는 같은 방에서 묵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중 김은혜가 사망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외부 침입 흔적도 없고 증인의 말대로 사건이 발생했던 새벽 3시~5시 사이에 모텔을 출입한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과연 범인은 누구였을까요?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 재판, 거의 확실한데 항소를 왜 한 거야?”

“그러게 말이야!”

방청객들이 쑤군거렸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우리 호영이는 절대로 범인이 아니라고!”

서장수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흠, 피고 측 반대 심문하겠습니까?”

“네.”

이게 다인가? 너무 자만하는 것 아냐? 장준환 검사!

지금부터 하나하나 당신의 논리를 부숴줄게! 기대해도 좋아!

후후후, 나는 천천히 법정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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