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122화] 재개(再開) (2)
“그게 무슨 소리야? 서호영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서, 서호영이 자살 기도를 했어요! 화장실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걸 다른 재소자가 발견했나 봐요!”
“뭐? 자살? 주…… 죽었단 말이야?”
“아뇨. 다행히 목숨은 건진 것 같아요. 지금 병원에서 치료 중이에요.”
“휴, 다행이군. 그나저나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가 뭐야?”
“흠,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어요. 구구절절 자신은 결백하다는 내용이더군요. 선배님! 일단, 이쪽으로 오셔야겠어요.”
“그래. 알았어. 바로 갈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부랴부랴 모텔 문을 나섰다.
* * *
.
나는 급히 서호영이 후송된 병원으로 달려갔다. 서호영의 부친과 장 검이 이미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님! 여기예요.”
장 검이 나를 보자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서호영 씨는 어떻게 됐어?”
“신경 접합 수술 마치고 안정을 취하고 있어요.”
“무사한 거지?”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위급한 상황은 넘겼습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것 같군요.”
잠시 후, 담당 의사가 병실을 나오면서 말했다.
“아이고, 이놈아! 네가 죽긴 왜 죽어? 불효막심한 놈!”
의사의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서호영의 부친인 서장수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르신, 진정하세요. 서호영 씨는 무사합니다.”
장 검이 바닥에 주저앉은 서장수를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 제발, 제 자식 놈 좀 살려주십시오. 호영이 저놈은 절대 은혜를 죽이지 않았다고요. 제가 보장합니다. 어미 없이 자란 놈이지만 심성은 누구보다 착한 놈입니다.”
흑흑흑, 서장수가 내 팔을 잡고 흐느꼈다.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어르신, 이거 좀 마시고 진정하세요!”
장 검이 어르신을 의자에 앉힌 후 그에게 물을 건넸다.
‘선배님, 저 잠시만 봐요!’
서장수가 잠시 진정하는 기미를 보이자 장 검이 손가락으로 복도 끝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잠시 후,
장 검과 나는 서장수의 눈을 피해 복도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텔에 가신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장 검이 고개를 돌려 어르신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음, 진표 말대로 당시 창문을 열어둔 사람은 경찰들이었어.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고 오는 길이야.”
“정말요? 진짜 잘됐네요. 그럼, 사망 추정 시각도 바뀔 수 있는 거겠죠?”
“그래서 말인데. 국과수에서 근무하는 장 검 친구 이름이 뭐더라…….”
그녀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진선이요. 이진선!”
“맞아 진선 씨! 진선 씨한테 지금 상황을 좀 설명하고 사망 추정 시각이 바뀔 수 있다는 증언을 좀 확보해줘!”
“네. 알았어요. 그나저나 담당의에게서 들은 말인데 서호영 씨 몸 여러 곳에서 구타 흔적이 보인다네요? 특히, 정강이가 골절됐던 적이 있었던 것 같대요.”
“그래? 그거 확실해?”
“그래서 제가 몰래 사진을 찍어 뒀어요. 군데군데 상처가 있더라고요. 육안으로 봤을 때도 분명히 구타로 인한 흉터 같았어요. 제가 사진을 찍어 뒀으니 진선이한테 의뢰해 볼게요.”
장 검이 목소리 톤을 낮추며 소곤거렸다.
“좋아. 잘했어! 혹시 교도소 내에서 생긴 구타였을지도 모르니 그쪽도 반드시 살펴봐야 해!”
“물론이죠.”
“그리고 담당 형사는 만나봤어?”
“네. 박 형사란 그 사람, 근데 아주 진상이에요.”
장 검이 인상을 찌푸리며 진저리를 쳤다.
“어떻게 진상이라는 건데?”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은 둘째치고 이죽거리면서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느끼했어요. 아무튼, 서호영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더라고요. 건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알았어. 내가 한번 만나볼게.”
* * *
<남부 경찰서 형사 3과>.
전화했지만 받지 않아 무작정 남부 경찰서를 찾아갔다. 때마침, 박 형사가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박 형사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한 순경이 손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래? 누군데?”
쓰읍, 그가 경박스럽게 이쑤시개를 입에 물며 나를 힐끗거렸다.
“서호영 변호사라는데요?”
“며칠 전에도 이쁘장한 여자 변호사가 오더니 오늘은 또 다른 변호사네? 서호영 이 새끼, 집안에 돈 좀 있나? 오늘은 보조개가 상큼하게 들어간 변호사가 아니시네? 에이, 이왕 올 거면 같이 오지. 딱 네 스퇄이드만! 아무튼, 저는 박상근이올시다.”
박상근이 내가 다가와 먼저 악수를 청했다.
흐리멍덩한 눈빛에 지저분하게 뻗친 머리카락이 믿음이 가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가 장 검을 들먹이며 느물거렸다.
“안녕하십니까? 김정환 변호사입니다. 서호영 씨의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네. 반갑소이다. 박 형사요.”
드르륵, 그가 대충 명함을 살펴보더니 서랍을 열고 아무렇게나 명함을 집어던졌다.
“그러면 몇 가지 여쭙겠습니…….”
“잠시만요. 아야. 김 순경아! 너 똑바로 안 할래? 저 사람들 조용히 좀 시키라고! 여기가 무슨 시장 바닥이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네. 알겠습니다.”
김 순경이 정자세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지금 면전에서 뭘 하자는 건가?
박 형사가 말허리를 자르며 딴청을 피웠다.
“아아, 죄송합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빙그르, 그가 의자를 한 바퀴 돌리더니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괜찮습니다. 김은혜 살인사건의 담당 형사셨죠?”
“네. 그런 건, 그 아가씨가 말 안 하던가요?”
“그 아가씨? 그게 누구죠?”
“그 왜, 얼마 전에 왔던 보조개 죽이던 아가씨 있잖소! 아줌만가? 아까 내가 말했잖소. 같이 오지 그랬냐고?”
킁킁, 그가 손가락으로 발가락 사이의 때를 벗겨내더니 코에 대며 냄새를 맡았다.
더러운 인간!
속이 매스꺼웠다.
“흠, 그분은 아가씨가 아니라 이번 사건에 저와 공동으로 변호를 맡게 된 장영은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호칭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맞다. 장영은 변호사라고 했지? 뭐. 그럽시다. 어려울 거야 없지! 아무튼, 그 장 변호사인지 뭐인지에 할 말은 다 했는데 무슨 일로 오셨소?”
박 형사가 경박스럽게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건 일 초동 수사를 지휘하셨죠?”
“네. 제가 했수다.”
그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혹시,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었던가요?”
“뭐, 몇 개 체모하고 발자국이 나오긴 했는데 아시다시피 모텔이라는 특성상, 그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김은혜의 지갑에서 돈이 없어졌는데도요?”
“그거야 서호영이 모텔에 강도가 든 것처럼 꾸민 자작극이라고 자백했잖소!”
“그럼, 사건 현장에서 당시 창문이 활짝 열렸던 것은요?”
“그야 공기가 탁탁해서 내가 김순경한테 환…… 아니, 아니, 뭐더라? 그건 다른 사건이고! 아무튼, 몰라요. 그날 창문이 열려있었던가?”
그가 딴청 피우며 횡설수설했다.
“야, 김 형사! 김은혜 사망 사건 때, 그때 사건 현장에 창문이 열려있었냐?”
박 형사가 고개를 돌려 김 형사를 쳐다보며 윙크를 했다.
“그거 선배님이 열…….”
‘아가리 안 닥쳐!’
박 형사가 그를 향해 오만 인상을 구겼다. 그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입 모양을 뻥긋거렸다.
“아……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날, 창문이 열려있었나요?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 모습을 본 김 형사가 어물쩍 말을 얼버무렸다.
흠, 이 사람들도 자신들의 실수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군!
“알겠습니다. 결국,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는 것으로 보시는 거죠? 맞습니까?”
“네. 확실히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습니다. 새벽 3시 이후에 모텔에 투숙한 사람이 전혀 없었거든요. 다녀간 사람도 없었고! 그러니까 범인은 서호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손을 내저었다.
“당시 출입구 쪽에 설치된 CCTV가 고장 난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되면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
“당시 계산대를 지키던 종업원이 밤새 게임 해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고 진술을 했죠.”
“김성수 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김성수!”
“그렇다면, 김성수 씨의 진술 말고는 다른 증인이나 증거는 없는 겁니까? 김성수 씨의 진술을 어떻게 100% 신뢰할 수 있죠?”
“아놔. 진짜! 이 양반도 장 변호사랑 똑같은 걸 묻네? 둘이 나 엿 먹이려고 짜고 왔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수사를 어떻게 합니까? 종업원이 가해자와 뭔 억하심정이 있어서 거짓 진술을 해요?”
박 형사가 양손으로 충혈된 눈을 비비며 짜증을 냈다.
“좋습니다. 그럼 하나만 더 묻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거야 뭐. 좋을 대로 하세요. 열 개를 묻든 백 개를 묻든…….”
박 형사가 툴툴거렸다.
“서호영의 몸에 구타를 당한 듯한 흉터들이 있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지금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의 의미가 뭐요?”
박 형사가 전투 자세를 취하며 나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실 필요가…….”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요즘 누가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팬답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시려거든 당장 돌아가세요!”
박 형사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앉으시죠. 혹시, 서호영 씨가 자살을 기도했던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흠, 조금 전에 얘기 들었수다.”
흠, 마지못해 그가 자리에 앉았다.
“병신 새끼가 죄를 지었으면 교도소에서 갱생해야지, 관심 끌려고 생지랄이야. 지랄이! 에이, 관심 종자 새끼…….”
박 형사가 입에 담기 거북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혀를 찼다.
“그런데, 치료를 맡았던 담당 의사 말이, 몸에….”
“아놔! 이 양반 사람 정말 귀찮게 하네. 그 새끼 어디서 먼 짓거리를 했는지 검거됐을 때부터 정강이가 부러져 있었다고요!”
뭐야? 나는 몸이라고만 했지. 정강이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분명, 뭔가 있어!
“네? 정강이요? 서호영 씨 정강이가 부러졌었나요?”
“네? 그게. 아이 씨, 하여튼 경찰서에 잡혀 왔을 때부터 절뚝거렸어요. 아무튼,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소. 지금이 어느 시댄데 경찰서에서 구타합니까?”
이자는 내가 이미 서호영의 흉터들을 확인하고 온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군!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
“그나저나, 저, 지금 외근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기다리실래요? 한 12시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박 형사가 화제를 돌리며 이 순간을 벗어나려 했다.
“아닙니다. 저도 볼일이 있어서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살펴 가슈. 멀리는 못 나갑니다.”
박 형사가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후비적거렸다.
“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박 형사가 말없이 고개만 까딱거렸다.
“참, 이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서요! 김성수 씨는 왜 이렇게 자주 만나셨나요? 두 분이 원래 친분이 있었던가요?”
휙, 나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네? 아… 그건 이번 사건에 열쇠를 쥐고 있는 목격자라 조사할 게 많아서 그랬습니다.”
순간 당황한 박 형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느새 홍조가 그의 목까지 올라왔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요즘 수사 트렌드는 룸살롱에서 목격자 조사를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