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121화] 재개(再開) (1)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어서 말해봐!”
장 검이 잔뜩 호기심이 묻은 표정으로 진표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드르륵, 드르륵.
진표가 뜨거운 녹차 잔을 손에 들고 벌떡 일어나더니 급히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죄다 열었다. 창문을 열자 엄청난 칼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기온도 영하였지만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더욱더 떨어지는 듯했다. 바로 한기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야! 창문은 왜 여는 거야? 밖이 얼마나 추운데…… 뭘 하려고 그래?”
장 검이 옷을 동여매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진표는 지금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는 거다!
“잠깐만, 장 검! 놔둬 보자고. 진표가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순간, 나는 진표가 무엇을 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장 검의 팔을 잡고 만류했다.
“죄송해요. 30분만 차…… 참으세요.”
“그…… 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30분이야 참을 수야 있지. 그렇지 않아도 환기하려고 하긴 했어. 그나저나 선배님, 오늘이 올해 들어 가장 춥다던데 진짜 날씨 장난 아니네요?”
어느새 장 검의 손이 얼어붙은 듯 새빨개졌다.
잠시 후,
“이…… 이젠 됐어요!”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진표가 창문을 닫으며 벽에 붙어있는 온도계와 식어버린 녹차 잔을 들고 왔다.
“이…… 이거 보세요! 그새 온…… 도가 많이 떨어졌죠?”
진표가 온도계를 내보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을 것 같군!
나는 진표의 의중을 이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 추운 겨울 날씨에 창문을 죄다 열었는데 당연한 거 아냐?”
어휴, 추워!
장 검이 모아 쥔 손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이 녹차를 보세요! 많이 식었죠?”
진표가 장 검에게 식어버린 녹차를 내보였다.
“당연하지! 지금 날씨가 얼마나 찬데…… 잠, 잠깐만!”
그 순간, 장 검도 뭔가 떠올랐는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진표야! 그러니까, 지금 네가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려는 게 어쩌면 사망 추정 시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나는 진표의 얼굴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맞아, 맞아! 내가 하려던 말이야! 진짜야?”
장 검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딩동댕! 네네. 맞아요!”
짝짝, 진표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렇군! 그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네네. 사건 자료를 보니 감식반이 사건 현장에 도……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경이었어요. 평소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 거죠. 감식반이 도착했을 당시, 사체의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 지문이 안 떠질 정도로 사후 경직이 심했죠. 그리고 체온은 22도! 이…… 정도 시강이 생기고 체온이 하락하려면 보통 사후 10~12시간 정도 지났다는 얘기니까 감식반의 사망 추정 시각인 새벽 3~5시 사이가 틀린 말은 아니죠.”
진표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감식반의 추정 시각이 문제가 없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지?”
장 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지만 감식반과 국과수가 중대한 실수를 두 개나 했어요. 당연히 양측성 시반 검사를 해야 했는데 그 타이밍을 놓친 것이 첫 번째 결정적 실수예요. 두 번째는 시체 온도와 시강만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려면 김은혜가 사망할 당시의 환경요인과 조사할 당시의 환경요인이 일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해요.”
진표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흠, 그러니까 당시 경찰들이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 추정 시각은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내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맞아요! 조사 당시에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고 했어요. 그게 만약 서호영이 열어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제삼자가 열어둔 거라면 감식반이 도착했을 시간이면 시체가 상당 시간 강추위에 노출되었을 거란 말인데 당연히 체온이 떨어졌겠죠!”
장검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 변호사님이 맞아요. 가끔, 경찰들이 무심코 환기를 위해서 창을 열어둘 때도 있거든요. 워낙,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니까요.”
진표가 코끝을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네. 경찰들이 무심코 창문을 열었을지도 몰라요. 환기한다고요. 예전 그런 이유로 초동수사가 엉망이 된 사례가 있거든요.”
장 검이 진표의 말을 거들었다.
“음, 그렇군. 그럼 정리해보자고. 진표 말대로 경찰이 실수로 창문을 열었다고 가정한다면, 사체의 체온은 급격히 하강했을 테고 시강 또한 가속화된다는 소리가 된다? 그래서 사망 추정 시각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거지! 진표야 맞니?”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네에. 정확히 맞…… 아요!”
“좋아! 그렇다면 경찰들이나 제3의 인물이 창문을 열었다는 것만 확인되면 사망 추정 시각은 뒤집힐 수도 있는 거네?”
“네네. 맞아요!”
진표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흠, 선배님 이러면 희망이 좀 보이는데요?”
순간 장 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게. 일단 경찰들이 실수로 창문을 열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랬는지 그것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장 변은 당시 담당 형사를 좀 만나봐. 나는 그 모텔에 가서 목격자를 만나서 물어볼 테니까!”
“네네!”
“그나저나 우리 귀여운 진표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네! 어휴 귀여운 것! 이쁜 것!”
“장 변호사님, 아, 아파요. 아파!”
장 검이 진표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그의 볼을 잡고 흔들었다.
* * *
.
나는 모텔 주인과 종업원을 만나기 위해 서호영과 김은혜가 묵었던 모텔을 찾아갔다. 주인은 없었고 종업원만 만날 수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상호도 바꾸고 인테리어도 새롭게 한 모양이었다.
“사건 일, 서호영 씨가 아침에 모닝콜을 부탁했다고요?”
“네. 8시에 모닝콜을 부탁했는데 제가 실수로 시간을 잘못 보는 바람에 7시에 모닝콜을 보냈어요.”
종업원, 김 씨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럼, 그 모닝콜을 받고 서호영 씨가 바로 나갔나요?”
“네. 분명, 7시에 모닝콜을 했는데 바로 받았고 한 10분인가 지나서 밖으로 나갔어요.”
김 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음, 경찰 조사에서 서호영 씨가 밤새 잠을 안 잤다고 진술했던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진술한 거죠?”
“그게, 8시에 모닝콜을 달라고 했는데 제가 7시에 했잖아요? 그런데, 목소리가 전혀 잠겨있지 않았어요. 보통은 그런 경우 자다 받아서 잠긴 목소리를 내거든요. 그런데 멀쩡했어요. 게다가 밤새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다른 방 손님의 항의가 심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말했죠.”
김 씨가 코끝을 찡그리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제 얼굴을 좀 봐주실래요? 저는 어제 잠을 잤을까요? 밤을 새웠을까요?”
“네? 그…… 게.”
그가 황당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잘 모르시겠죠? 결국, 경찰서에서 진술하신 내용은 김성수 씨의 추측에 불과한 겁니다. 직접 확인하신 게 아니잖습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나는 그의 증언이 추측에 불과함을 각인시켜야 했다.
“그게, 일반적으로 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직접 확인하신 겁니까? 김성수 씨의 추측입니까?”
“흐음, 직접 확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못마땅한지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 지금 바쁜데…… 그리고 경찰서에서 다 말했어요. 더 할 얘기도 없다고요!”
김성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칠게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났다.
“잠시만요! 잠시면 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에요. 하나만 묻겠습니다! 시간 오래 뺏지 않겠습니다.”
나는 일어서려는 그의 팔목을 잡았다.
“에이, 뭔데요? 빨리 말씀해 보세요. 사장님 오시면 저 혼나요!”
그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혹시, 사건 일 서호영이 묵었던 208호실의 창문이 열려있었던데 혹시 김성수 씨가 열어놓은 겁니까?”
“아뇨! 미쳤어요. 내가 사람 죽은 방에 들어가게요? 아무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럼 창문을 누가 열었는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 창문, 경찰 선상들이 열었당께!”
그 순간, 손수레에 잔뜩 빨랫감을 싣고 내려오던 할머니가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어르신이 보셨나요?”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 할머니 앞으로 갔다.
“암만, 나가 봤제.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음…… 이 할머니의 말이 맞는다면 사망 추정 시각은 무너진다!
“경찰이 문을 열었다고요?”
“그렇당께. 그날, 거시기 208호에 처자 하나가 죽은 날 맞제?”
“네. 맞습니다. 어르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랑께. 그날 날씨가 허벌라게 추웠제.”
할머니 천천히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사건 일 오전 11시 30분, 208호>.
“야, 박 형사! 빨리 바깥에 폴리스 라인 치고 감식반에 연락해! 서둘러!”
“아이 씨, 이 새끼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박 형사님 전화 안 받는데요?”
이 형사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 일단, 현장 보존하고 증거 수집해! 아이 씨X, 공기는 왜 이렇게 탁해? 야! 김 순경! 창문 좀 열어 답답해 죽겠다! 환기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김순경이 모텔 창문을 모두 열자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날씨 졸라 춥네요?”
“겨울이니까 춥지!”
박 형사가 툴툴거리며 손에 고무장갑을 끼웠다.
“야, 여기 체모 하나 나왔다. 봉투 가져와!”
잠시 후, 박 형사가 침대 위에서 핀셋으로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 들며 말했다.
“여기 있어요. 음, 그나저나 목 졸라 죽인 것 같죠?”
이 형사가 사체를 살펴보며 말했다.
“보면 몰라?”
청소 할머니가 더듬어본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어르신, 그때가 대략 몇 시였는지 기억나세요?”
“암만, 기억나고말고. 나가 교대할 때쯤잉께. 11시 반 정도였을 거야!”
할머니가 자신감에 찬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
11시 반이라…… 감식반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이 3시 반이니까 약 4시간 동안, 영하의 날씨에 사체가 노출되어 있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진표 말대로 체온은 뚝 떨어지고 시강이 충분히 일어날 시간이 된다. 사망 추정 시각을 뒤엎을 충분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시간이야!
“음,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나중에 증언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법정에 나와주실 수 있을까요? 한 젊은 사람의 운명이 달린 일입니다.”
나는 어르신의 양손을 움켜쥐었다.
“흠, 그랴, 그랴. 나중에 연락해.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인데 나 몰라라 할 수 있간디? 서로 도와야제. 암만!”
할머니가 흔쾌히 증언을 약속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거듭 인사하며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장 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님, 지금 어디세요?”
“장 변, 무슨 일이야? 지금 서호영이 묵었던 모텔에 와있어.”
“선배님, 큰일 났어요! 빨리 이쪽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 그래?”
“휴, 서호영이…….”
장 검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호영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