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120화] 누명(陋名) (2)
“그런데, 장 검! 장 검이 놓친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놓쳐요? 뭘요?”
장 검이 나를 쳐다보며 빠르게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여기를 봐봐. 이상하지 않아?”
나는 서호영이 조사받으며 진술한 내용을 가리켰다.
“어디요?”
장 검이 몸을 내 쪽으로 바짝 붙여 앉았다.
“이 부분.”
“음, 그러고 보니 서호영이 계속 진술을 번복했네요. 근데, 이런 경우가 가끔 있긴 해요.”
장 검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 장 검의 말대로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서호영이 진술을 번복한 패턴이 이상해. 왠지 자발적인 진술 번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진술이 죄를 인정하는 쪽으로 불리하게 바뀌었다는 거야.”
“음, 그건 조사하다 보니 명백한 증거가 나왔고, 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인정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 말고는 추가로 발견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 아니지, 당시 발견된 증거 역시 서호영이 범인이라고 100%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뿐이야. 결국, 모텔 주인과 직원, 그 당시 투숙했던 몇몇 사람들의 불충분한 증언만 있을 뿐, 스모킹 건은 사실상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선배님 말씀은 결국, 이 사건은 서호영의 자백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장 검이 눈썹을 치켜뜨며 급 관심을 보였다.
“그렇지! 경찰이나 검찰 쪽에서도 기존의 증거만으로는 그를 기소하기 어려웠을 거야. 결국, 그들로서는 서호영의 자백이 절실히 필요했겠지. 이런 상황에 서호영은 조사 과정에서 수차례 진술을 번복했고 번복된 진술은 유죄를 확정 지을 수 있는 결정적 요소가 됐다는 거지.”
“선배님, 지금 혹시…….”
장 검이 무언가 감을 잡은 듯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장 검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을 거야 아마.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쩌면 경찰과 검찰의 외압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나는 입을 오므렸다 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흠, 기소율, 유죄율에 목숨 거는 장준환 검사의 스타일을 고려해보면 그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경찰과 검찰 둘 다하고 등을 질 수도 있어요! 살인사건을 넘어서 경찰, 검찰을 상대해야 하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요. 게다가,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전혀 없잖아요.”
장 검이 귀밑머리를 넘기며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장 검이 예전에 나한테 한 말 생각 안 나? 심증만큼 확실한 물증은 없다!”
“네…… 제가요?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장 검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니면 말고! 아무튼, 내가 장 검한테 하나 물어볼게. 잘 생각해봐. 일단, 서호영이 김은혜와 다툰 후, 우발적으로 그녀를 살해했다고 가정해보자고. 만약에 장 검이 서호영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그… 글쎄요. 제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그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생각할 것도 없이 두 가지 아니겠어? 첫 번째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자수를 했겠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신고한 시점이 11시가 넘어서였으니까요!”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결국, 서호영은 자신이 죽이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야 했겠지?”
“당연히 그래야 하겠죠.”
“그럼 가장 쉬운 방법이 뭐지?”
“음, 그 상황에서 서호영이 취할 방법이라면, 하나밖에 없어요. 외부 침입이 있었던 것처럼 꾸미는 것이겠죠?”
"그렇지! 강도의 침입이 있었던 것처럼 꾸미는 것이 최선일 거야. 안 그래?”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봐야겠죠!”
“일반적이라면 우선 자신의 흔적을 없애고 김은혜가 강도에게 피습을 당한 것처럼 꾸미려 했을 거야.”
“그야 당연하겠죠.”
“그런데, 국과수의 결과대로 새벽 3시~5시 사이에 범행이 일어난 것이 확실하다면 모닝콜을 받고 서호영이 모텔을 나선 시각이 7시였으니까 적게는 2시간, 많게는 4시간이란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서호영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7시에 방을 나섰어! 그리고 태연히 11시에 돌아와 11시 5분에 바로 경찰에 신고했던 거야. 이게 뭘 뜻하는 걸까?”
“흠, 그렇다면 서호영이 모텔을 나선 오전 7시까지 김은혜가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맞나요?”
“맞아! 김은혜가 아침 7시까지 살아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그래서 당연히 서호영도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음, 근데 이상한 것이 김은혜의 지갑에 있던 돈이 없어졌거든요. 그건 서호영이 강도가 침입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그랬던 것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사건 현장에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어요. 그것도 외부 침입을 조장하기 위해서 서호영이 한 짓일 가능성이 농후한데요.”
장 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아니. 절대 그건 아냐. 서호영은 그녀의 지갑에서 돈이 없어진 사실을 전혀 몰랐어! 날짜별 경찰 조서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자신이 조작했던 것이라면 분명, 경찰 조사에서 어필했을 거야. 그것이 자신이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테니…… 그런데 서호영은 시종일관 모른다고 했어. 그러다 나중에야 그녀의 지갑에서 돈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고 진술을 번복했지. 아무래도 너무 냄새나지 않아?”
“흠, 그렇긴 하네요. 이쯤 되면 제가 선배님의 추론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죠? 예전처럼 말이에요.”
장 검이 어깨를 들썩이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래 주면 고맙고!”
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결국, 선배님의 추론이 맞는다면 또 다른 침입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장 검이 팔짱을 낀 채,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맞아! 일단, 국과수에서 분석한 사망 추정 시간은 정확한 건지, 그리고 아침 7시에서 11시 사이에 누군가 모텔에 침입한 흔적이 있는지 먼저 확실히 살펴봐야 할 것 같아! 이 두 가지만 해결한다면 사건은 180도 바뀌게 될 거야.”
“흠, 일단 국과수부터 찾아가 봐야겠군요!”
“…….”
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 * *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나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김은혜를 부검했던 부검의, 전종수를 만나기 위해 국과수를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서호영의 변호를 맡은 김정환 변호사라고 합니다.”
나는 전종수 부검의에게 인사한 후, 명함을 전달했다.
“네. 전종수라고 합니다.”
“김은혜의 직접적 사인은 뭔가요?”
간단한 통성명 후에 전종수에게 물었다.
“음,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입니다.”
전종수가 보고서를 들척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가해자는 남자가 맞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1심 재판 결과 확인 안 하셨나요? 서호영이 범인이잖습니까?”
전종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음, 이제 곧 항소심이 열릴 텐데, 그렇게 서호영 씨를 범인으로 단정 지어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일반적으로 형사사건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런 식으로 편견을 가지고 계시면, 객관성을 잃게 됩니다. 국과수는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
흠흠흠, 전종수 못마땅하다는 듯이 연신 헛기침을 했다.
“그럼,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국과수 감식 보고서를 보면 김은혜 씨가 사망한 시각이 사건 일 새벽 3시~5시라고 나와 있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겁니까? 설명 좀 해주십시오.”
“흠, 당시 피해자인 김은혜 시체의 온도가 22도였습니다. 상당히 식어있었다는 것이 되겠지요. 게다가, 사체의 지문이 잘 떠지지 않아 경찰이 사체의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간신히 손가락을 펼 정도로 사후경직이 심했던 점을 고려할 때, 사망한 시간은 대략 7시간 전, 적어도 5시간은 지나야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시간을 3시~5시로 추정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전종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측성 시반 검사는 제대로 이루어졌나요?”
“흠, 그건 현장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측정 시기를 놓쳤어요. 사체가 너무 늦게 국과수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당시, 시반은 형성이 되어있긴 했지만, 그것을 가지고 사망 추정 시각을 측정하긴 어려웠죠. 너무 늦었으니까요.”
“흠, 그렇군요. 혹시, 사망 추정 시각이 잘못 계산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뇨. 절대로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양측성 시반은 제대로 확인을 못 했지만, 저 정도 상황만 가지고도 충분히 측정 가능합니다. 오류가 있을 수 없어요.”
전종수가 완고히 고개를 내저었다.
“흠,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시 찾아와도 될까요?”
“그야. 뭐. 저야 상관은 없지만, 딱히 더 드릴 말씀은 없는 듯한데요.”
흠, 이 사람은 서호영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구나!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네. 일이 바빠서 멀리는 못 나갑니다. 살펴 가십시오.”
음, 자신들의 실수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결국, 특별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 * *
<정은 법률사무소>.
“아…… 아저씨 오셨어요?”
국과수, 전종수 부검의를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진표가 장 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 진표 왔구나!”
“네에.”
진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 아저씨, 첫 사건 맡으신 거 축하드려요!”
“어? 어… 어… 장 검, 아니지 장 변한테 들었어?”
옷걸이에 외투를 걸며 장 검의 얼굴을 쳐다봤다.
“네. 하도 궁금해하길래 제가 얘기해줬어요.”
장검이 양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흠, 이게 축하받을 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추운데 무슨 일이야? 공부나 하지.”
드르륵, 나는 의자를 빼내 앉으며 말했다.
“아… 저씨, 저 이 사건… 관심 있어요. 사건 자료 좀 보여주시면 안 돼요?”
그 순간 불쑥, 진표가 양 검지를 마주치며 물었다.
“아냐, 아냐. 넌 공부나 해. 뭘 좋은 거라고 봐!”
나는 연신 손사래를 쳤다.
“맞다! 진표가 지금 법의학자를 준비한다고 했지? 선배님,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짝짝, 장 검이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냈다.
“그…… 그렇긴 하지만, 아직 학생인데….”
“진표가 웬만한 법의학자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우리 진표, 천잰 거 몰랐어요?”
장 검이 진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 맞아요.”
헤헤헤, 진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그래? 뭐, 보여주는 거야 뭐, 어려울 건 없긴 하지만…….”
“얼른 보여주세요!”
진표가 양손을 내밀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 여깄어!”
나는 마지못해 가방을 열어 수사 자료를 꺼냈다.
잠시 후,
사건 자료를 읽어내려가는 진표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못해 심각했다. 고개를 까딱거리기도 하고 미간을 좁히며 검지를 마주치며 불안해 했다.
“진표야, 왜 그래? 뭘 찾은 거야?”
장 검이 궁금한 듯 진표의 팔을 흔들었다.
“아…… 저씨, 이… 이거 좀 이상해요!”
진표가 손가락으로 보고서를 탁탁 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