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화] 결전 (2) & 변호사, 김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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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역시 초긴장 상태였다.
“이 시각 현재, 10곳의 당선자가 확정된 상황, 마지막 한 곳, 동초갑만 이 남은 상태인데요. 10여 표 남짓한 차이를 보이며 초박빙의 양상을 보이는 두 후보가 궁금하군요. 지금 최종 결과가 나왔다는군요! 김 기자!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최종 결과를 말씀해 주시죠!”
아나운서가 상기된 표정으로 가상 스테이션에 있는 김 기자를 호출했다.
“네. 저 역시 무척이나 긴장됩니다."
"결과가 나왔습니까?"
"네. 드디어 최종 개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연 누가 당선됐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입니다. 지금부터 화면을 보시죠!”
빠바바밤!
장중한 효과음과 함께 드디어 화면에 최종 개표 결과가 나타났다.
[기호 1번, 이치우 후보 : 득표수 43,234표, 40.334%. 기호 2번, 김정환 후보 : 득표수 43,229표, 40.333%. 이치우 한민당 후보 최종 당선!]
믿을 수 없는 숫자였다. 이치우와 나의 표차는 단 5표! 득표율은 0.001%의 차이였다.
“보시는 바와 같이, 국회의원 선거 사상 가장 적은 표 차이로 기호 1번, 이치우 후보가 가까스로 김정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김 기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결국, 이치우 후보가 김정환 후보의 끈질긴 추격을 물리치고 최종 당선자가 되었군요. 이치우 후보, 축하합니다!”
<신민당 당사>.
하아!
하아!
최종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밤새도록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당직자들 사이에서 거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뭐야? 다섯 표가 말이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조민영 원내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재검표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선거대책 본부장을 포함한 중진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아, 진짜 아쉽네! 5표 차이라니…….”
“그나저나, 김정환 이 사람 대단하네. 저 불모지에서 40% 득표율을 얻었어! 게다가, 당 지원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야! 정말 선전했네!”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탄식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한민당 당사>.
“만세! 만세!”
이치우 후보가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양, 양팔을 추켜올리며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당사의 분위기는 승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싸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수고했어요. 이 후보.”
원내대표 천준호가 건조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이치우를 격려했다.
“감사합니다. 전부, 당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에 반해 벌겋게 상기된 이치우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네. 수고했어요."
한민당 대표, 최대영이 짧은 격려와 함께 황급히 당사를 빠져나갔다.
“지금, 저 사람, 만세 소리가 나오나?”
“그러게. 그만큼 돈 쏟아붓고 온갖 조직 동원해 얻은 득표율이 간신히 40%라니, 어처구니없군! 고정표 30%를 안고 시작해서 얻은 득표가 40%야. 완전 망조가 났군. 다음엔 절대 쉽지 않겠어.”
“게다가, 김정환 후보와 표차가 단 5표야! 이건 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오늘부로 텃밭 하나 개간 당했다고!”
여기저기서 당직자들이 쑤군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정환 후보, 선거캠프>.
“이…… 이게 말이 되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밤새도록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진표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경악했다.
“그러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5표 차이라니…….”
장 검이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아저씨, 괜찮아요?”
진표가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울먹이며 물었다.
“뭐가? 나? 괜찮지! 그럼!”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았다. 5표 차라도 진 건 진 것이니까!
“선배님!”
아직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꼭 쥐고 있던 장 검의 양 주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다들 뭐야? 왜들 표정이 그래? 난, 아무렇지 않으니까 그런 슬픈 표정들 하지 말지?”
“…….”
“…….”
모두 내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흠흠흠, 괜찮아, 괜찮아! 다들 정말 많이 수고했어. 우리 최선을 다했잖아! 그거면 된 거지. 안 그래?”
오히려 위로는 내가 해야 할 판이다.
“저… 정말 괜찮으세요?”
장 검이 목이 메는지 어깨를 들썩였다.
“진짜, 괜찮대도! 나, 아무렇지 않으니까 신경들 쓰지 마! 음, 그나저나 나 잠시만 나갔다 와도 되지?”
“어디요?”
깜짝 놀란 장 검이 눈을 크게 떴다.
“왜? 뭘 그렇게 놀라? 내가 어디 가서 죽기라도 할까 봐?”
“아니, 그게 아니라…….”
장 검이 불안한 듯 내 팔을 잡았다.
“헐, 뭐야? 화장실 좀 가자! 급해 죽겠어!”
“네에…….”
<건물 옥상>.
후, 이럴 때 담배 한 대 피우면 분위기 딱 좋겠는걸? 이래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건가?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밖을 내다봤다. 어느새, 멀리서 벌겋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실망했나? 박상우!
나는 스스로 물었다.
아니. 전혀!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그래! 난,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동초갑에서 이만큼 성공했잖은가? 게다가, 킹 메이킹 시스템이 절대 불가하다는 30.8%의 벽을 넘어섰다. 스스로 운명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절대라는 단어는 없는 것이며 내 의지대로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증명한 셈이다. 나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양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을 얻었다!
장영은 검사, 진표와 준태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지원한 ‘강단’ 회원들!
이 사람들이 내 품에 안겼는데 내가 뭐가 두렵고 아쉽겠는가? 내 꿈은 한낱 보궐 선거 당선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들과 함께…….
아버지! 저 잘한 거죠?
이미 동이 터, 붉게 물든 태양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물었다.
“…….”
언제나, 말없이 웃기만 하시는 아버지였다.
잠시 후,
“자! 다들 뭐 해? 우리, 나가서 얼큰한 해장국이라도 먹으러 갑시다! 술도 안 마셨는데 얼큰한 게 당기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문을 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네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매가리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허! 다들 군대 좀 가야겠는데? 도대체, 누가 떨어진 사람인지 모르겠네!”
하하하, 나는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 크게 웃었다.
* * *
며칠 후,
<신민당 당사>.
신민당의 강력한 주장으로 재검표가 이루어졌지만, 개표 결과는 변화가 없었다. 결국, 이치우 후보가 5표 차이로 나를 제치고 당선이 확정되었다. 나는 곧바로 신민당 당사를 찾아 탈당계를 제출했다.
“이거, 아쉬워서 어떡합니까? 우리 당에 남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민영 대표가 아쉬운 듯 내 손을 잡았다.
“음,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습니다. 그동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거, 영 아쉬워서…….”
조민영 대표가 연신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더 만류하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내가 선거에 진 이상, 나를 잡아둘 명분도 필요도 없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김정환 선거사무실>.
며칠 후, 김정주 주필이 직접 나를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그래! 선거 치르느라 수고가 많았어!”
“주필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앉자고!”
“네.”
“실망했나?”
30분 정도 지난 보궐 선거 결과에 관한 소회를 나누자마자 김정주 주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전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뭘 얻었다는 거지?”
“사람을 얻었습니다. 사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흠, 뭘 깨달았는지 말해줄 수 있나?”
“지금까진 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요. 결국,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그런 저의 생각이 오만이자 독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구나. 나와 같은 생각과 사상을 공유할 동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을 배웠군. 자네를 보면서 내가 뭘 느꼈는지 아나?”
“…….”
“한 마리의 외로운 호랑이, 그 누구도 일대일로 붙어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힘과 카리스마를 느꼈다네.”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산중을 호령하는 호랑이임에는 틀림없는데 외로워 보였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호랑이가 존재하지만, 산을 지배하는 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리떼라는 걸세. 지금의 세태가 그래! 그래서 난 결심했네. 자네를 진정한 산의 주인으로 만들겠다고 말이야!”
김정주 주필이 강렬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 말씀은 저의 조력자가 되어주시겠다는 건가요?”
“조력자라기보다는 동지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군!”
“감사합니다. 주필님!”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감사하긴! 나야말로 이제야 평생을 찾던 주군을 만난 기분이구먼!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내 기꺼이 자네의 책사가 되어주겠네.”
“주군이라뇨?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아직 애송이입니다.”
나는 연신 손사래를 쳤다.
“뜻이 고귀하고 높은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나? 내가 비록 나이는 자네보다 많지만, 세상을 품을 그릇은 자네의 것과 비교가 되질 않아! 그러니 내가 자네를 주군으로 모시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참, 지금부터는 자네란 말도 자제해야 하겠구먼!”
허허허, 김정주 주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후회가 없겠어! 유비가 제갈량을 얻었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심장이 터질 것같이 쿵쾅거렸다.
“그나저나 우리 주군께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가?”
김정주 주필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군이란 단어 좀 빼주십시오. 낯 뜨겁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아무튼,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해 줄 수 있겠나?”
“음, 일단 변호사 생활을 해 볼까 합니다.”
“흠,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로펌에 들어가면 두루두루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김정환 검사 정도의 유명세라면 대형 로펌에서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아뇨. 로펌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아니. 왜지?”
김정주 주필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좀 더 서민들과 호흡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싶어요.”
“흠, 인권 변호사가 되시려는가?”
“아니요. 그렇게 거창한 건 없습니다. 단지, 법이 ‘강하고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보듬어 주고 싶을 뿐입니다.”
“흠, 좋은 생각이야! 역시, 내가 주군으로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군!”
김정주 주필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필님! 제발, 그 주군이란 소리 좀 빼주십시오. 진짜, 온몸에 소름 돋게 해 죽이실 작정입니까?”
“하하하, 미안, 미안해!”
* * *
몇 달 후,
<정은 법률사무소>.
장 검과 나는 시내 변두리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얻어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김정환의 ‘정’과 장영은의 ‘은’자를 따서 정(情)은(恩) 법률사무소로 이름을 지었다. 은혜로운 마음이라는 의미였다.
“와! 여기 생각보다 아주 훨씬! 후진데요?”
장 검의 말대로 사방에 거미줄이 쳐있고 페인트칠이 흉물스럽게 벗겨진 초라한 사무실이었다.
“그래? 내가 보기엔 이 정도면 궁궐인데?”
“헐, 선배님, 눈에는 이게 궁궐이에요?”
장 검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빗자루를 들어 거미줄을 걷어내며 말했다.
“나쁘지 않은데? 청소 좀 하고 페인트칠 좀 하면 쓸만하겠는데. 책상만 놓을 수 있으면 된 거지. 뭘 더 바라?”
“하여간, 할 말이 없다. 진짜! 아무튼, 청소부터 해요. 귀신 나오겠어요! 자요!”
장 검이 빗자루를 내게 넘겨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 아저씨! 저희도 도울게요!”
“저도요!”
드르륵, 그때, 진표와 준태가 양손에 청소도구를 양손에 들고 들어왔다.
“어서 와!”
“왜 이제야 오는 거지? 어! 아무튼, 지금부터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짝짝짝, 장 검이 씩씩하게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뭐야? 장 검이 연락한 거야? 손님한테 무슨 청소를 시켜!”
나는 장 검의 팔을 잡아당겼다.
“손님은 무슨요? 너희들! 여기 손님으로 온 거야?”
장 검이 눈을 부라리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아…… 아뇨.”
“아뇨!”
진표와 준태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정색을 했다.
“거봐요! 아니라잖아요. 자! 그럼, 지금부터 청소 시작!”
“넵.”
“네에.”
드디어, 이렇게 해서 장 검과 나의 변호사 생활은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 * *
몇 달 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우리의 첫 의뢰인이 찾아왔다.
“음, 어떻게 의뢰인이 한 명도 안 오네요?”
후, 장 검이 서류를 뒤적이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게, 소송할 만한 사건이 없다는 건 다행이긴 한데 말이야…….”
“이건 뭐, 전단이라도 뿌려봐야 할까요. 선배님?”
똑똑똑!
아니나 다를까, 때마침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문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장 검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소… 소문을 듣고 왔는데…… 여기가 정은 법률사무소인가요?”
허름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자가 어눌한 말투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맞아요. 여기가 정은 법률사무소입니다.”
장 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