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17화 (117/170)

# 117

[117화] 결전(決戰) (1)

<어제, 김정환의 오피스텔>.

음, 이 인간이 녹취파일을 어디에 두었을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확보해둔 것이라면 쉽게 눈에 띄는 곳에 보관했을 리는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김정환의 지청 생활 기억 파일을 다시 한번 열어줘!”

[네. 알겠습니다.]

휴, 없군!

게다가 김정환의 기억 파일 속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었다.

음…… 아무래도 망치와 접점이 있을 거야! 김정환이 망치와 가까이 지냈으니 어쩌면 망치와의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을지도 몰라!

“킹 메이킹 시스템, 망치와 연관된 김정환의 모든 기억 파일을 보여줘!”

[네. 알겠습니다.]

촤르르,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망치와 연관된 모든 기억 파일이 담긴 폴더들을 업로드 했다.

‘구조라 방파제’? 음… 이건 아니야.

‘목포 횟집’? 이것도 아냐.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이렇다 할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룸살롱, 현경’? 이 파일은 뭐지?

마지막 남은 파일이었다. 나는 ‘룸살롱, 현경’이라고 쓰인 파일을 클릭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이 비밀리에 만났나 보군!

‘룸살롱, 현경’에서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화면이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은밀하게 접선해 거래하는 장소였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김정환과 망치의 대화 장면이 재생되었다.

“아따, 성님은 그라고 엔젤스타가 조아부러요? 리더 갸가 이름이 한수지라고 하드만 한수지 맞소? 야리야리한 거시 겁나게 맛나게 생겼드만!”

망치가 솥뚜껑 같은 손등으로 두툼한 입술을 훔쳐냈다.

“그래. 한수지 맞다. 좋으면? 어떡하게?”

“나가 우리 성님 일이라면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다 줄 거인디, 그깟 년 하나 못 델고 오겄소? 난중에 광주나 목포 쪽에 공연 내려오믄 확, 싸가지고 와불까요? 아니면 머리끄댕이라도 잡아댕겨가꼬 끌고 오던가?”

망치가 무언가 휘어잡는 동작을 취했다.

“미친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한잔 말아! 그리고 내가 노파심에 말하는데 너랑 나 사이에 있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아니, 죽어서 저승에 가서도 입도 뻥긋하지 마!”

“알았어라. 알았당께! 형님! 술 한잔 빨고 우리 신나게 붕가붕가나 합시다. 나가 한수지 낯바닥멩키로 반들반들한 것들로 대기시켜 놨응께!”

망치가 손뼉을 쳐 소리를 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그래? 어디 얼굴이나 볼까?”

흠, 완전 엉망진창이군. 쓰레기 같은 인간들! 가만…… 엔젤스타 한수지? 망치가 분명 한수지를 언급했는데, 한수지라. 한수지…….

맞아! 한수지!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불현듯 순천지청 시절, 공 수사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기, 검사님도 표시를 해두셨잖아요.”

공 수사관이 손가락으로 책상에 있는 달력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5월 10일에 하트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후,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내뱉었다.

05월 10일? 설…… 마?

띠리릭, 자물쇠 번호를 0510으로 맞춰 돌려보니 잠금장치들이 풀어졌다.

맞아! 엔젤스타, 한수지! 그녀의 생일이 5월 10일이었어! 그래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 김정환의 아파트>.

나는 부리나케 순천으로 내려가 김정환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혹시 몰라, 처분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래! 바로 저거야! 분명 저기에 있을 거야!

딸각,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왼쪽 벽면에 엔젤스타, 한수지의 브로마이드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흠, 귀찮아서 놔뒀는데……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부어 우욱, 벽에 붙어있던 한수지 브로마이드를 찢어내니 예상대로 김정환의 비밀금고가 눈앞에 나타났다.

음…… 그렇다면 비밀번호는? 0, 5, 1, 0?

띠, 띠, 띠, 띠.

‘0510’ 네 자리 숫자를 누르고 손잡이를 잡아당겨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아? 8자리군!

자세히 살펴보니 8자리를 눌러야 열리는 금고였다.

그렇다면?

띠띠띠띠, 띠띠띠띠, 띠리링.

열렸다! 후후후, 단순한 인간!

비밀번호는 05100510이었다.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드디어 금고의 문이 열렸다.

바로 이거야!

당연히 금고 안에는 한상길을 잡을 살모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금고 안에서 파란색 USB를 찾을 수 있었다.

* * *

<투표일, 동초갑 제13 투표소>.

“야, 너 여기 웬일이야?”

“웬일이긴, 투표하러 왔지.”

“헐, 네가 투표를 하러 오고. 어이 상실이다. 대통령 선거 때도 놀러 가던 놈이 웬일이냐?”

“국민의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면 되나? 그나저나 넌 여기 왜 왔냐?”

“왜긴? 투표하러 왔지!”

“너도 미쳐가는구나. 네가 투표를 다 하고!”

오전부터 동초동 주변에 마련된 투표소에 젊은 층들이 호황을 이뤘다. 총선, 대선 때도 관심이 별로 없던 20~30대 젊은 층들이 투표소로 몰려들었다. 특히 20, 30대 유권자들의 참여가 최악인 지역구였기에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다.

<오후 1시, 김정환 후보, 선거캠프>.

“선배님, 지금 투표소에 다녀오는 길인데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요?”

장 검의 표정이 잔뜩 고무돼 있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너무 무덤덤하신 거 아니에요? 난 무진장 떨려 죽겠는데!”

장 검이 양팔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흠,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하여간, 선배님 무뚝뚝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깐!”

“…….”

“그나저나 분위기가 왠지 예전에 젊은 층의 성원에 힘입어 당선되었던 한 대통령 당선 때 같아서 예감이 좋아요. 동초갑 선거 사상 이렇게 젊은 층이 투표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고 하네요.”

장 검이 상기된 표정으로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김정환 후보! 우리 왔습니다.”

그 순간, 조민영 원내대표와 당내 중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거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그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자 체면치레를 위해 사무실을 찾은 모양이었다.

“네. 앉으시죠.”

“음,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은데요? 불모지에서 활짝 꽃이 필지도 모르겠군요?”

조민영 원내대표가 볼살을 씰룩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당이 이곳에서 단 한 번도 당선자를 배출 못 했는데 잘하면 신기원을 이룩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수고했습니다. 김정환 후보! 전 김 후보가 이번에 대형사고를 한번 칠 줄 알았어요!”

껄껄껄, 당 중진의원인 전종필 의원이 목젖을 드러내며 웃었다.

대형사고? 당신들에겐 대형사고겠지! 하지만 나에겐 당연한 결과야! 내가 그동안 어떻게 선거운동을 펼쳤는지 당신들이 알기나 해?

“…….”

“그러게 말입니다. 한 대통령 당선 때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예감이 아주 좋은데요?”

조민영 원내대표가 옆에서 거들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은데……”

그들과 더 말을 섞기가 싫었다.

“그래요. 그래! 이래저래 마음이 싱숭생숭할 텐데. 우리도 이만 당사로 들어갑시다.”

전종필 의원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따가 개표 시작하면 당사에서 봅시다.”

“…….”

“그래요. 결과 확정되면 바로 당사로 들오세요!”

흠흠흠,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민영 원내대표가 헛기침하며 문을 열며 말했다.

“저 사람들 비위도 참 좋아요? 어떻게 여길 찾아올 생각을 다 하지?”

사람들이 나가자 장 검이 입을 삐죽거렸다.

“흠, 혹시나 내가 당선되면 생색이라도 내려고 온 것이겠지. 아무튼, 끝까지 같이할 사람들이 못 되는 것 같아. 장 검도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게요. 이번에 당선돼도 앞으로가 문제에요. 저 사람들이랑 어떻게 일을 해나가야 할지.”

후, 장 검이 문을 향해 한심스러운 눈빛을 흩뿌렸다.

똑똑똑!

“아…… 아저씨, 저희 왔어요!”

때마침 정진표와 현준태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어서 와요. 진표 씨!”

“준태, 어서 와!”

우리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 * *

투표 마감. TBS 선거 개표 방송.

“지금부터 2년 후 있을 총선의 모의고사라고 불리는 재보궐 선거, 국민의 선택! 선거 개표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빰빠바밤,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와 함께 드디어 개표가 시작되었다.

“한수현 기자! 지금 시각 가장 치열한 접전을 보이는 곳은 어디죠?”

저녁 10시, 본격적인 개표에 들어가자 긴장감이 감돌았다.

“네. 의외의 곳에서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화면을 보시죠.”

한수현 기자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나와 이치우 후보의 모습을 본떠 만든 아바타가 말을 타고 질주하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엎치락뒤치락 초박빙 양상이었다.

“현재 1위는 이치우 후보, 40.0%, 그 뒤를 김정환 후보가 39.9%로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표차가 0.2% 정도밖에 나지 않는 초박빙 양상입니다.”

“김정환 후보의 약진이 의외인데요. 사실, 이곳은 여당인 한민당의 텃밭이었던 곳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야당이 이곳에서 20% 이상을 득표한 적이 없었는데, 아직 이르긴 하지만 대단한 선전입니다.”

“김정환 후보의 약진이 무서운데요. 원인이 뭡니까?”

아나운서가 패널로 나온 정치평론가 천상도에게 물었다.

“음, 일단 좀 더 개표를 지켜봐야겠지만, 반 여당 성향의 젊은 층들이 대거 투표장을 찾은 듯합니다. 김정환 후보의 정치 버스킹이 큰 효과를 본 것 같아요. 젊은 감각에 맞는 감각적인 선거 유세와 솔직 담백한 김정환 후보의 이미지가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낀 20~30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낸 것으로 분석됩니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강직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부각하며 상승 효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현재까지는 역사상 대 이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천상도가 화면 속 그래프를 주시하며 설명했다.

“그렇군요. 좀 더 개표 결과를 지켜봐야겠군요.”

<이치우 후보 선거캠프>.

“이… 이거 뭐야? 이러다 뒤집히는 것 아냐?”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치우가 물었다.

“후보님, 아직 속단은 이릅니다. 아직은 우리가 앞서나가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호성이 그를 진정시켰다.

“이게 말이 돼? 여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외국으로 놀러 가도 30%는 그냥 나오는 곳이야. 근데 이제 갓 40%를 넘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지난번 총선 때도 71%가 나온 곳이라고!”

이치우가 붉어진 얼굴로 침을 튀며 말했다.

“후, 그래도 여러 악재를 고려하면 우리도 선전하고 있는…….”

“집어치워! 너는 도대체 뭘 한 거야! 하여간, 이번에 잘못되면 넌 죽는 줄 알아!”

이치우가 주호성의 말을 가로막으며 악다구니를 부렸다.

<김정주 후보 선거캠프>.

“후보님, 김정환 이 친구, 정말 물건이네요.”

“흠, 그렇군! 생각보다 쓸만한 재목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마력을 가진 친구야. 20~30대 유권자들을 죄다 투표장으로 끌고 나올 힘을 가지고 있어! 언젠가는 큰일을 할 날이 올 거야.”

“흠, 이번 선거에서 잘하면 신세계를 열겠는데요?”

“흠, 이쯤 되면 결과는 상관없어. 그깟 보궐 선거에 담을 그릇이 아니야. 이 친구는 분명 호랑이다.”

“그럼, 이미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보좌관이 김정주 주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천하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 아닌가? 난, 기꺼이 그의 책사가 될 생각이라네. 내가 그의 제갈량이 되어야겠어!”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듯, 김정주 주필이 눈에 힘을 주었다.

* * *

현재 득표율. 이치우 후보 : 39.700%, 김정환 후보 : 39.694%.

새벽 6시가 지난 시점, 나와 이치우 후보 간의 표차는 0.01%. 단 10여 표.

드디어 15 투표소의 마지막 투표함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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