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116화] 암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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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급히 서울로 올라와 TBS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선배님! 여기요 여기!”
내가 급히 차에서 내려 방송국 입구 쪽으로 달려오자 장 검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흠, 수고했어! 다행히 기자회견을 잡았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놀라지 마세요! 김정주 주필님이 힘을 써 주셨어요! 어떻게 아셨는지 제게 전화하셨더라고요.”
김정주 주필이 직접 전화를?
아무튼, 고마운 일이었다.
“김정주 주필님이?”
“네. 저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쉽지 않았는데 하늘이 도왔어요! 김정주 주필님한테 전화가 왔길래 선배님 말씀을 드렸더니 바로 손을 써주셨어요. 그나저나 빨리 들어가요. 지금 기자들 다 모였어요!”
후유, 장 검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일단 들어가자. 그리고 이거 받아!”
나는 장 검에게 USB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예요?”
“흠, 뭐긴 뭐야. 한상길 잡는 저승사자지!”
“네?”
잠시 후,
“저기 김정환 후보 들어온다!”
“어디? 어디?”
팡! 팡팡! 팡팡팡!
내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프레쉬가 터졌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회견장에 몰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동초갑 보궐 선거에 신민당 소속으로 입후보한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신속히 단상에 올라 차분하게 인사했다.
“한민족신문, 박성식 기자입니다. 오전에 한상길 전 순천지청 부장검사의 인터뷰를 보셨습니까?”
박성식 기자가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네. 좀 전에 확인했습니다.”
“한상길 씨의 폭탄선언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상길 씨는 후보께서 순천지청에 근무할 당시 같은 팀 선임 검사로 알고 있는데요.”
“흠, 네. 한때 제가 부장으로 모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김정환 후보에 관해서 잘 알고 있을 텐데요. 한상길 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성식 기자가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흠, 이치우 후보 측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볼 수 있죠.”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자님은 구급도장(狗急跳墙)이란 말을 아십니까?”
“음, 개도 급하면 담을 넘는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말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원래는 궁지에 몰리면 없던 능력도 생긴다는 말인데요. 이번에 이치우 후보와 한상길 씨가 모의한 합작품은 구급 불도장인 듯하군요. 담을 넘으려다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깨진 듯합니다. 치졸한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자들에게 자신 넘치는 눈빛으로 골고루 시선을 뿌렸다.
“흠, 모의라? 치졸이라는 워딩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김정환 후보는 결백하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 맞습니까?”
“결백이란 단어도 듣기 거북하군요. 저는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음, 자신만만한 모습이 의외군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물증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네. 지금부터 한상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들 앞에서 낱낱이 드러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 검, 녹취록 재생해줘!
나는 녹취록 재생을 준비하고 있던 장 검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알았어요! 선배님!
장 검이 입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우 후보 선거캠프>.
반박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이치우 선거캠프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김정환, 저 인간 무슨 꿍꿍이야?”
비스듬히 누워 TV를 지켜보던 이치우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게요. 이 정도면 내상이 깊었을 텐데 김정환이 이렇게 빨리 반격에 나설 줄은 몰랐습니다.”
조호성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한상길이 당장 불러!”
“네. 알겠습니다.”
<반박 기자회견장>.
웅성웅성.
“지금 목소리 한상길 부장 맞지?”
“뭐야? 이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데?”
“맞아! 한상길 부장이 한 말과 180도 다른 내용이야!”
녹취록이 재생되자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미… 믿을 수가 없군요!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있었던 한상길 씨의 기자회견은 자작극이란 건가요?”
김정환이 가지고 있던 녹취파일 두 개에 내가 보유하고 있던 녹취파일을 듣고 난 후, 당황한 상앙일보 기자가 질문했다.
“질문 있습니다!”
기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뭇거리자 서아일보 기자가 손을 번쩍 들어 선수를 쳤다.
“네. 말씀하십시오.”
“음, 녹취록을 자세히 들어보면 김정환 검사도 한상길 부장의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일단 적들을 먼저 파악해야 했습니다. 한상길 부장과 길상파의 검은 고리를 먼저 확인해야 했고 그다음에 길상파 행동대장 중간보스, 일명 망치에게 접근해 그들의 의도와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었죠.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 검거하려 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길상파 망치를 검거할 때, 그가 쏜 총알에 맞아 죽을 뻔한 경험이 있습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특본을 조직해 길상파를 일망타진까지 했죠. 과연 이런 제가 그들의 편이었을까요? 그들의 검은돈을 받았을까요? 판단은 기자분들과 TV를 지켜보고 계시는 국민에 맡기겠습니다!”
“음, 그러니까 한상길 씨와 길상파를 잡으려고 일부러 간계를 쓰신 거군요!”
서아일보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한상길 부장의 녹취록을 들춰낸 것입니까?”
“검찰 선배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결정해 죗값을 받길 기다렸는데 적반하장이더군요. 더 예우해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상길 씨가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치우 후보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뭐지?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한 거야? 그리고 저 당당한 말발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도대체, 김정환 이 사람의 끝은 뭘까?
흐음, 장 검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치우 선거캠프>.
“이보시오. 한상길 변호사!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무…… 물론 당신이 한 말에 관한 책임은 지겠지요?”
“그…… 그게. 저도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한상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흠, 일단 우리도 반박 증거를 공개합시다. 당연히 물증은 가지고 있겠지요?”
“음, 사실 김정환 검사가 녹취파일을 확보한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김정환 검사의 녹취파일을 뒤집을 만한 것이 못되어서…….”
한상길이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안절부절못했다.
“다… 당신 지금 미쳤어? 지금 무슨 개수작을 부리자는 거야? 당신이 가져간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그리고, 지금 이 중요한 시기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이런 미친…….”
와르르, 이치우가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을 양손으로 쓸어내 버렸다.
“면… 목 없습니다.”
한상길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지금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해? 이거 어떡할 거야? 어! 당장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이치우가 한상길의 목덜미를 움켜쥐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잠시 후,
한상길이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조호성이 입을 열었다.
“후, 후보님 진정하십시오. 일단, 우리도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사과 성명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바로 역풍을 맞을 거예요.”
“어떻게 사과 성명을 내자는 건데?”
“일단은 한상길 씨와 우리 쪽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고 이 사람의 자작극으로 몰아가야 할 듯해요. 한상길이 우리 캠프에 제보했고 우리는 이자에게 속은 것으로 해야죠.”
“그래? 그래그래. 좋은 생각이야. 우리가 한상길의 농간에 넘어간 것으로 한다는 거지?”
“일단, 철저히 검증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을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순 없겠지만, 이 일이 사전에 꾸민 것은 아니라는 점이 두드러지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알았어! 좋은 생각이야! 사과문 작성해서 당장 가지고 와!”
이치우가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 * *
<김정환 후보 선거캠프>.
“이번 기자회견은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검증하고 확인했어야…….”
이치우가 발언을 마친 후,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선거캠프로 돌아온 장 검과 나는 TV를 통해 이치우의 사과 성명을 시청했다.
“결국, 저렇게 꼬리 자르기를 하시겠다? 정말 야비한 인간들! 하여간, 대단하다 대단해!”
끌끌, 장 검이 혀를 차며 한심한 듯 화면 속 이치우를 노려봤다.
“…….”
“음, 분명 이치우와 한상길 간에 돈이 오갔을 거예요. 선거 끝나고 끝까지 추적해요. 선배님!”
장 검이 벌게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지이이잉.
[킹 메이킹 시스템을 작동합니다. 지금부터, 이번 보궐 선거 동초갑 최종 득표율을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그 순간, 킹 메이킹 시스템의 장중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장 검!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장 검이 옆에 있는 이상 자리를 옮겨야 했다.
“네네. 다녀오세요.”
“최종 득표율을 보여줘!”
자리를 옮긴 나는 킹 메이킹 시스템에 명령했다.
[네. 알겠습니다. 최종 득표율, 이치우 후보 : 37.4%. 김정환 후보 : 30.8%. 김정주 후보 : 28.3%. 최종 이치우 후보 당선!]
킹 메이킹 시스템이 충격적인 결과를 상태창을 통해 보여주었다.
한상길은 어처구니없는 기자회견으로 순식간에 10% 초반대로 떨어진 득표율을 반박 기자회견으로 간신히 끌어올리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더 변동사항은 없는 건가?”
[네. 아쉽지만 이것이 마지막 득표율 현황입니다.]
냉정하군!
후후후,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한때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맥도널드 벌레 고기 사건과 유사한 것이었다. 맥도널드 햄버거 매장에서 바퀴벌레가 나왔고 매스컴은 연일 대서특필했다.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들끓자 맥도널드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조리과정을 공개, 철저한 위생점검 과정 등을 보여주며 온갖 노력을 했지만 그들의 불만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소비자들은 뇌리엔 맥도널드 햄버거 = 벌레 버거라는 인신이 각인돼 있었다. 맥도널드가 미디어에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벌레 버거를 떠올렸다.
한상길의 기자회견은 너무도 큰 타격이었다. 모든 것을 반박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하려 했지만, 유권자들의 뇌리엔 한상길의 폭로가 무의식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역… 시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장 검! 인제 그만 퇴근하자! 내일 투표일인데 오늘은 푹 자두 자고!”
화장실에서 돌아와 장 검에게 말했다.
“흠, 그러게요. 하지만, 잠이 올지 모르겠어요.”
장 검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자 둬야지.”
“네. 그나저나 참! 아까 그 녹취파일은 어떻게 된 거예요? 언제 그런 걸 해두신 거예요? 혹시, 그것 때문에 순천에 내려가신 건가요?”
“아, 그거? 그…… 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