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화] 암초 (1)
<다음 날, 김정환 선거캠프>.
“선배님! 큰일 났어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장 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핏기가 걷힌 얼굴이 심상치가 않았다.
“뭔데 그래. 아침부터?”
“이치우 후보 쪽에서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네거티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네. 선배님, 선배님의 순청지청 생활을 걸고넘어지는 것 같아요! 믿을 만한 사람한테 들은 소식이니 확실할 거예요.”
“순천지청 생활? 난 또 뭐라고. 신경 쓸 거 없어! 난 부끄러운 짓을 한 게 없으니까!”
순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근…… 데, 기자회견장에 나올 사람이….”
장 검이 벌게진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데 그렇게 머뭇거려. 기자회견장에 죽은 망치라도 나온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 한상길 부장이오.”
“뭐? 그 사람이 왜?”
순간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한상길 부장이 어떻게 이치우 쪽과 연결된 건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되네요.”
장 검이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한상길 부장이라……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그가 김정환과 길상파의 관계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상하잖아! 분명, 내가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쉽게 덤빌 수 없을 텐데…….
나는 눈을 감고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참! 부장님. 이건 나중에 부장님 칠순 잔치 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나는 한상길에게 녹음파일을 꺼내 보였다.
“독한 놈! 너, 정말 내가 아는 김정환이 맞아?”
한상길에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당신 뒤꽁무니나 졸졸 쫓다 다니던 강아지가 아닌 것 같아 당황스럽습니까?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처리해야 할 교통사고 건이 많아서 멀리 못 나가니, 잘 사십시오. 부장님.”
“선배님! 무슨 생각을 그러게 골몰히 하세요!”
내가 상념에 빠져있자 장 검이 내 팔을 흔들었다.
“아…… 아냐. 음, 별거 아니니까 장 검은 신경 쓰지 마. 막바지 선거 준비나 잘해줘. 이제까지 잘해왔으니 마무리도 좋아야지!”
나는 장 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무튼, 어쩌면 그럴 수 있죠? 그래도 한때, 자기 부하 직원이었는데 이렇게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수 있죠? 백번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죠.”
장 검이 팔짱을 낀 채, 투덜거렸다.
“글쎄. 그렇게 의리가 있는 인간은 아니라서…….”
“참! 그러고 보니 변호사 개업한 선배한테 얼핏 들었는데 한상길 부장이 변호사 사무실을 무리해서 차리긴 했는데, 그게 좀 쉽지가 않았나 봐요. 승소율도 저조하고 자금 압박을 좀 받는가 보던데…….”
“그래?”
“네. 그렇다나 봐요.”
음,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기자회견은 언제 한다는데?”
“아마도 투표 전날로 잡아놓은 듯해요. 그래야 파급효과가 크니까!”
“내일?”
“네. 아마도요.”
장 검이 걱정스러운 듯 입술을 매만졌다.
“일단, 알았어. 장 검은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쓸 것 없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음, 선배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렇긴 한데, 괜히 찝찝해서요.”
“찝찝할 것 하나도 없어. 난 결백하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일단, 난 볼일이 있으니까 잠시만 나갔다 올게.”
“그래요. 다녀오세요!”
<김정환의 오피스텔>.
만약 장 검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상길은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모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상당한 자금의 압박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분명, 내 뒷조사를 한 이치우 후보 쪽에서 한상길을 컨택했을 거야. 그리고 이치우는 기자회견을 해주는 대가로 자금 지원을 약속했겠지! 워낙 자금력이 탄탄하니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궁지에 몰린 한상길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어!
“킹 메이킹 시스템 작동!”
나는 집으로 오자마자 킹 메이킹 시스템을 호출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작동합니다.]
“김정환의 기억 파일을 보여줘!”
[네. 알겠습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의 김정환의 기억을 생성했다.
김정환의 순천시청 생활!
수많은 폴더 중 ‘순천지청 생활’이라고 써진 폴더를 터치하자 김정환과 연관된 모든 파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청 1년 차’? 음… 이거는 아니고, ‘지청 2년 차’. 그래 이거다! 김정환이 길상파 망치를 처음으로 만난 시점이 이때니까! 그 이후에는 내가 김정환의 몸으로 들어갔으니 더 그의 기억을 살펴볼 필요가 없지! 여기에 분명 단서가 있을 거야.
나는 ‘지청 2년 차’라고 써진 파일을 터치해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그렇지! 김정환이 그렇게 허당은 아니었어!
파일을 낱낱이 살펴봤지만, 김정환은 나름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김정환은 길상파 조직원 중, 망치 이외는 아무도 접촉하지 않았으며 그 흔적 또한 깔끔하게 처리해 놓았다. 결국, 한상길 부장은 아무런 물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행 중 천만다행이었다.
“킹 메이킹 시스템! 힌트권 사용!”
나는 곧바로 킹 메이킹 시스템을 호출했다.
[네. 알겠습니다.]
[인물 힌트권, 사물 힌트권, 영상 힌트권…….]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의 힌트권을 활성화했다.
인물 힌트권!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인물 힌트권’을 클릭했다.
[인물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사용 가능 포인트 120. 포인트를 20 차감합니다.]
당연히 사용해야지!
나는 ‘인물 힌트권’의 뒷면을 클릭했다.
역시, 내 예상이 적중했어!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띄운 인물은 한상길 부장과 김정환 검사였다. 킹 메이킹 시스템이 그들이 은밀한 장소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녹취한 녹취파일을 활성화했다.
“정환아, 어차피 우린 중앙으로 갈 수 없는 서자 6두품이다. 절대로 이 바닥에서 성공하지 못해. 그러니까 아등바등할 것 없이 너도 챙길 때 챙겨라.”
“음, 그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길상파와 깊숙이 엮이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너만 입 다물고 있어 준다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마."
“부장님, 도대체 길상파와 얼마나 깊이 관여되신 겁니까?”
“음, 이젠 어쩔 수가 없어. 너무 깊이 관여됐어. 어차피 지금 와서 빠져가 오기도 힘든 상황이야. 너도 이길상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잖아? 난, 곧 있으면 검사복을 벗을 거야. 아무튼,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네.”
여기까지가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내게 들려준 녹취 내용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면 충분하다. 어차피, 내 손으로 망치와 길상파를 와해시켰다. 게다가, 나는 망치로부터 죽을뻔한 일도 있었으니 내가 망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이 파일을 공개하는 거다! 한상길을 잡기 위해 내가 세운 전략이라고 하면 문제없을 거야! 국민은 내 말을 믿어줄 것이다.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해줘!”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뭐? 왜 안 되지?”
[아직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 파일이 있는 장소라도 알려줘!”
[힌트가 업그레이드되지 않았습니다. 상세한 힌트를 원하시면 퀘스트를 해결하셔야 합니다. 퀘스트를 제시할까요?]
“아니, 지금은 시간이 없다고! 방법이 없나?”
[죄송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제길! 이걸 어쩐다!
난감한 순간이었다.
* * *
<보궐 선거 D-1일, 긴급 기자회견>.
결국, 예상대로 이치우 후보가 불리해진 판세를 뒤집기 위해 필살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가 한상길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니까, 신민당의 김정환 후보가 순천지청에서 근무할 당시, 조폭 길상사와 깊숙이 연관 관계가 있었다는 겁니까?”
한 기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네. 단순한 연관 관계가 아니라, 조직의 뒤를 봐주는 조건으로 지속해서 향응을 접대받고 수시로 돈을 상납을 받아왔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김정환 후보라고 하면 정의롭고 청렴한 사람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는데요. 게다가, 지금 엄청난 상승세로 선거를 주도하고 있는데 지금 한상길 씨의 말씀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당시 김정환 검사는 저의 부하 직원이었기 때문에 제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죠. 일명 망치라고 불리는 길상파 중간 보스와 연결돼 검찰의 수사 정보를 빼내 전달하고 그 대가로 엄청난 뒷돈을 받아왔습니다.”
“음, 정말 충격적인 발언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군요. 일개 평검사 하나가 그렇게 모든 것을 맘대로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을 텐데 배후에 또 다른 인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이 점에 관해서 솔직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또 다른 기자가 의문을 제기하며 날카롭게 물었다. 한상길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음, 김정환 검사의 타깃은 바로 저였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보니 저를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수시로 저를 설득하고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길상파의 조직원을 동원해 저를 협박했습니다. 당시 너무도 위협적이었기에 일정 부분 그와 타협한 부분은 있습니다.”
흐음, 그가 잠시 말을 멈추며 눈을 감았다.
“음, 너무도 창피하고 굴욕적인 일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합니다!”
한상길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팡!
팡팡!
팡팡팡!
그 순간, 수많은 프레쉬가 연달아 터졌다. 기자들은 카메라에 그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