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14화 (114/170)

# 114

[114화] 안 되면 되게 해야지! (2)

[김정환 후보 실시간 득표율 : 27.4%]

머리 위로 킹 메이킹 시스템이 실시간 득표율을 보여주는 상태창을 활성화해 주었다.

그래도 많이 올랐군!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한 ‘요기 베라’처럼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치우 후보, 선거캠프>.

지상파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정책 대결을 제안한 나로 인해 이치우 후보 측 선거캠프도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그들 역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김정환 이 인간 어쩌자는 거야? 그깟 애들 몇 명 모아놓고 감성팔이나 하고! 그런다고 이미 굳어진 판세가 바뀌나?”

치지직, 이치우가 들고 있던 보고서를 찢어버리며 말했다.

“음, 우리 쪽 지지율이 많이 하락했어요. 그렇게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파급효과가 커요.”

이치우의 선거대책 본부장인 조호성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경계했다.

“어차피, 우리 쪽 부동표는 건드릴 수 없을 거야.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기본 30%는 먹고 들어가니까!”

“아뇨. 그렇게 간단하게 보실 일이 아니라니까요. 후보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고요. 기존 선거 때와 비교해 볼 때 우리 쪽 지지율 하락이 10% 이상입니다. 지금 지지율이 30%대예요. 박빙 중 초박빙입니다. 그리고 김정환의 상승세에 김정주 주필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 인간이 제안한 그 뭣이냐. 정책 배틀인지 뭔지, 애들 장난질 같은 데라도 나가란 말입니까?”

이치우가 이마에 잔뜩 주름을 만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뇨. 그건 굉장히 위험합니다. 저희가 김정환 후보의 공약집을 분석해 봤는데, 교육정책이나 주택정책이 굉장히 꼼꼼하고 현실성이 높습니다. 그대로 덤볐다가는 낭패를 볼 거예요. 게다가 워낙 이슈가 큰 제안이라 종편에서도 생중계를 고려하고 있나 본데, 절대 안 됩니다.”

“그럼, 그냥 무시하라고?”

“그것도 쉽지 않은 게 저쪽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마당이라 마냥 피하기만 한다면 비겁해 보이기도 해서…….”

조호성이 난감한 듯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선거 포기해?”

김치우가 버럭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음, 그래도 다행인 게 장년층은 아직 요지부동입니다. 버스킹에 참여하는 연령대도 젊은 층에 국한돼 있고요. 아직은 우리 쪽이 유리합니다. 조직을 동원해 장년층의 표심을 확고히 잡아가면서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네거티브 선거 전략으로 몰고 가야 할 듯해요. 선거까지 3일, 최대한 김정환의 약점을 잡아내야 합니다.”

조호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자는 의도였다.

“음, 빨리빨리 움직여. 이번 보궐 선거에 떨어지면 개망신이라고! 여태까지 우리당이 이곳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것 자네도 알지?”

이치우가 신경질적으로 서류뭉치를 흐트러뜨려 버렸다.

“네.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방법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흐음, 조호성이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 * *

<김정주 후보, 선거캠프>.

“후보님, 김정환 후보가 제안한 정책 대토론회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주의 보좌관, 한민수가 물었다.

“뭘,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하자는 순수한 의도라면 받아들여야지.”

“음, 다소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위험할 게 뭐 있어? 탁 트인 공간에서 시민들과 함께 정책 대결을 펼쳐보겠다는데….”

“음, 그래도…….”

한민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자네. 내가 이번 보궐 선거에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나?”

김정주가 물끄러미 한민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후보님이 이번 선거를 정치 입문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시단 것도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선거 좋은 결과를 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무 그쪽에 휘말리면 안 될 듯싶어서요."

한민수의 우려 섞인 목소리였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게. 가만 보니 김정환 그 친구 쓸만해. 잘하면 나와 정치 인생을 함께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그의 대중 장악력을 확인하고 싶어 가는 거야.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 옥석이 가려지게 될 거야!”

“음, 그렇다면 결국, 향후 정국을 김정환 후보와 구상하시려는 겁니까?”

“흠, 일단 큰 그림은 그런데, 호랑이인지 여우 새끼인지 확인은 해야 해서 말이야. 이번 참에 호되게 검증해야지!”

“…….”

“지금 나는 그를 테스트하는 중이네. 과연, 내가 제갈량이 되어줄 만한 인물인지 아닌지…….”

김정주 후보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 * *

<보궐 선거 2일 전, 정치 콘서트, 강단>.

매일 지속하던 정치 버스킹의 하이라이트였다. 한강 둔치에 모인 청중은 적어도 수천 명은 넘어 보였다. 정책 배틀을 벌일 단상도 마련되었고 종편에서도 생중계할 예정이었다. 일게 보궐 선거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린 것도 이례적이긴 하지만, 종편에서 중계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전략이 맞아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일련의 시사 TV 토론이나 선거 방송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사회자도 없었고 사전에 선발된 방청객도 없었다.

“패널로 참여하시고 싶은 시민들을 뽑겠습니다!”

즉석에서 두 후보에게 질문을 던질 패널을 뽑았다.

“정치 배틀은 한 후보가 포기할 때까지 진행합니다. 시간은 무제한으로 하겠습니다!”

시간제한은 물론 특별한 규칙도 없었다. 리허설도 없었다. 방송국 역시, 날 것 그대로의 영상을 담고 싶어 했다. 두 후보는 링에 올라서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치고받는 녹다운 시스템, 그야말로 제로썸 배틀이었다. 선거 역사상 전무후무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었다.

“후보님의 교육관을 보니 상당히 비현실적이더군요. 공약에서 말한 ‘대기업 책임론’이 실현 가능합니까?”

드디어, 정치 배틀이 시작되었고 김정주 후보가 교육문제를 꺼내 가볍게 잽을 날렸다.

“당연히 되고 말고요. 전혀 불가능한 공약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설명해 주시죠!”

김정주가 물로 입을 축이며 말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사교육에 찌들고 입시전쟁을 치르는 이유는 단 하나, 소위 좋은 직업,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유명 대학과 인기학과에 몰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겁니다. 역사를 전공으로 하고 싶어도, 지질학에 관심이 있어도 부모들이 앞장서서 말리죠. 역사학과나 지질학과에 입학하게 두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니까요. 또한, 어렵게 역사학과 자연과학을 전공한다 해도 자신의 전공지식을 펼칠 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졸업 후에 노량진 고시촌으로 내몰리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입니다. 대입 수험생보다 노량진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 많을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결방안이 뭡니까?”

김정주 주필이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해결방안이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역사연구소와 지질학 연구소를 설립해서 운영하게 하면 됩니다. 충분한 대우와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한다면 그들이 왜,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의대를 진학하려 하고 경영학과를 진학하려 하겠습니까?”

와와!

“맞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중석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음, 지금 김 후보의 발언은 인기를 의식한 포퓰리즘적인 발상입니다. 재원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현실적인 벽이 너무도 높습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막대한 자금요? 당연히 기업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제가 검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구역질이 났던 것이 뭔지 아십니까?”

“…….”

“정치인들과 기업의 검은 커넥션입니다. 기업인들은 뒷돈을 대주고 정치인들은 그의 대가로 이권을 챙겨주는 추악한 행태들! 마늘밭에 묻혀 있던 수백억 원의 돈이면 역사연구소, 지질학 연구소 수십 개는 세울 수 있을 겁니다. 한낱 보궐 선거를 치르면서도 수십억이 들어가는 정치판입니다. 유력 정치 인사들 후원 명목으로 뒷돈을 대주는 기업들! 정치 로비를 위해 빠져나가는 수백억, 수천억의 돈들! 이런 눈먼 돈이면 수십 개가 아니라 수백 개의 연구소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와, 진짜 속 시원하다!”

“맞아, 맞아. 우리 애 꿈도 물리학자인데 솔직히 물리학과 가서 취업이 되나? 밥 굶고 살기 딱 좋지!”

“만약에 대기업에서 일반 직원들과 같은 대우를 해주는 물리학 연구소를 세워준다면 물리학과를 왜 안 보내!”

청중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나만 더 묻죠. 신민당의 교육정책을 보면, 마치 모든 학생을 하향 평준화를 하는 듯한 일방적인 교육제도인데 교육수준이 높은 동초갑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향 평준화 교육제도 맞습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김정주 주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동의합니다.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이 사회는 능력 있는 엘리트들도 필요로 합니다.”

“음, 그건 신민당의 당론과는 다른 방향인데요?”

“맞습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당이라고 잘못된 방향을 공유할 순 없죠. 공부가 적성이 맞아 공부를 업으로 하겠다는 학생이라면 공부를 시켜야죠! 그들의 천재적인 능력을 썩힐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능력을 키워줄 학교를 세워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들의 특별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계속하시죠!”

김정주 주필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떠들면서 노벨과학상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아무리 IT 대국이라 자랑하면 뭐 합니까? 자동차 수출 세계 3위라고 떠들면 뭐 합니까? 원천기술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현실인데요.”

“지금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하고 계십니다. 후보님은 분명, 신민당 소속 후보이기 때문에 당론 역시, 중요합니다.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에 주인의식과 소속감 또한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제가 검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싫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개인적으로 보면 상당한 인격과 도덕성을 겸비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면 괴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 당의 교육정책은 잘못됐습니다. 잘못된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알면서도 대의라는 명분 아래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 보궐 선거에 당선된다면 우리 당의 교육정책부터 손을 대도록 하겠습니다.”

짝!

짝짝! 짝짝짝!

파도가 밀려오듯 박수가 물결을 이뤘다.

“저 사람, 뭐가 돼도 되겠어!”

“김정주 주필한테 말발에서 밀리지 않는데?”

“밀리는 게 뭐야? 토론을 주도하고 있잖아!”

“음, 인상적이군요! 김 후보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많은 것을 연구하고 노력하신 모습이 보기 좋군요! 후보님, 건투를 빕니다.”

열띤 토론 후에 김정주 주필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역시, 대인배의 풍모가 느껴지는 큰 사람이었다.

“김정주 후보님! 질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북핵 위기에….”

“김정환 후보님!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데…….”

밤새도록 청중들의 질문은 쏟아졌고 어느 순간부터 김정주 주필과 나는 경쟁자라기보다는 뜻을 같이한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질문에 진심으로 답하며 열띤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띠링!

그 순간, 머리 위로 킹 메이킹 시스템의 상태창이 활성화되었다.

[김정환 후보의 실시간 득표율 : 30.8%]

음, 드디어 킹 메이킹 시스템이 제시한 최고 득표율이군!

“더는 안 된다는 건가?”

[네. 김정환 님의 최대 득표율입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의 건조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무튼, 이번 정치 콘서트를 계기로 판세는 초박빙으로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생각지도 못한 암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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