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113화] 안 되면 되게 해야지! (1)
“저 표가 사실이라면, 내가 떨어진다는 뜻인가?”
[네. 그렇습니다.]
“30.8%가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 득표율이란 거지?”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안 된다는 건가?”
[네.]
킹 메이킹 시스템의 목소리는 망설임 없이 단호했다.
흠, 역시 역부족인가?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정주 주필 말대로 내 목표는 보궐선거가 아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이순신 장군께서는 12척의 배를 가지고 명량해전에 나서 적을 섬멸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고 그의 부하들마저 두려움에 떨어 도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것이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나는 양 주먹에 힘을 줘 굳게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 날, 신민당 당사>.
조민영 원내대표의 호출로 나는 신민당 당사를 찾았다.
“이거, 김 후보, 미안해서 어쩌죠? 우리도 지원 유세를 나가야 하는데, 일정을 잡기가 영 쉽지 않군요! 워낙 박빙인 지역구가 많아서 여유가 없어서요. 당의 입장을 좀 이해해 주십시오.”
조민영이 내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일정을 잡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원할 마음이 없었던 거지.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지역구에 괜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 아닌가?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번 선거는 오롯이 제힘으로 치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흠, 역시 대단한 배포입니다. 제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어요. 역시, 우리가 인재를 잘 뽑았습니다.”
조민영 원내대표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
“그럼, 이제 본격적인 선거 활동 기간인데 선거 전략은 잘 세우셨습니까?”
“네. 얼추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음, 현수막이나 홍보 책자의 전단을 만들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할 텐데 중앙당 차원에서 해드릴 수 있는 자금이 한정적이라 걱정이네요.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민망했는지 조민영이 내 눈치를 보며 서류뭉치를 뒤적거렸다.
“아뇨! 이번 선거운동에 현수막이나 홍보 전단 같은 의미 없는 것들은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트럭 유세도 하지 않을 겁니다!”
“네? 그럼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가 의아한 듯 눈을 껌뻑거렸다.
“거리로 나가 버스킹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직접 만나려 합니다.”
“네? 설마, 그 애들이 장난삼아서 하는 거리공연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니죠?”
조민영이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난삼아? 당신들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겠지! 돈 선거, 조직 선거 말곤 해본 적이 없으니 내 말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네. 맞습니다. 거리로 직접 나가 유권자들을 만날 겁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김 후보가 정치 신인이라 뭘 잘 모르는가 본데요. 그런 식으로는 씨도 안 먹힙니다. 버스킹을 한다면 얼마나 모이겠습니까? 몇십 명이나 모이겠어요? 안 돼요. 안 돼!”
조민영이 손사래를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흠, 그렇지! 돈 살포해서 유세장에 사람들 동원하고 조직 동원에 선전 선동하고 해야 당신들이 말하는 선 거지! 하지만, 난 절대로 그런 더러운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되든 안 되든 제가 결정할 겁니다. 한 명이 모이든 10명이 모이든 전 사람들과 호흡하고, 느끼고, 공유할 겁니다. 하루하루 그렇게 그들과 소통한다면 제 진심이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작금의 정치도 불통으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큽니까? 전 정치는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맞는데…….”
조민영이 답답하다는 듯이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아무튼, 이번 선거는 제 의지대로 치를 것이니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이 당에 입당한 조건도 그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공당으로서 품격이 있지. 어떻게…….”
공당의 품위? 그건 당신들이 개나 줘버린 지 오래되지 않았나?
“어차피, 저는 버리는 패 아닙니까? 이젠 홍보 효과도 미미해졌고 단물도 빠졌으니 관심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김 후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속내를 들킨 것이 멋쩍었는지 그가 연신 손사래를 쳤다.
“중앙당 차원의 지원 유세나 자금 지원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저의 지대로 이번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놔두십시오. 제가 대표님께 바라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물론 그럴 맘도 없으셨겠지만요.”
“흠흠흠,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죠. 원래 선거라는 게 치러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니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향후, 정치를 계속하시려면 경험을 쌓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내가 이번 선거에서 떨어질 거로 생각하나 보군! 좋아, 반드시 지켜보십시오. 12척의 배가 얼마나 강한지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김 후보!”
그가 맘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악수를 청했다.
* * *
한강 둔치, 길거리 버스킹 첫날.
드디어 정치 버스킹 첫날이 다가왔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저 돗자리 하나와 생수, 맥주 캔 몇 개면 족했다. 나는 돗자리를 깔고 서너 명의 젊은이들과 맥주를 마시며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첫 버스킹을 시작했다.
“어,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누구지?”
“누구?”
“저기, 저기 셔츠 소매 둘둘 말아 올리고 있는 사람!”
“어! 저 사람 TV에서 봤는데, 맞아! 김정환 검사 아냐?”
“김정환? 맞네. 그러네. 이번에 보궐선거에 나왔다던데 선거운동은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그 흔한 현수막 하나 안 달렸네. 당선이 되고 싶은 맘은 있는 거야? 뭐야?”
한강 둔치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나를 보더니 웅성거렸다.
“검사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후보님이라고 부를까요?”
틱, 캔맥주 캔을 따며 한 남자가 물었다.
“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네. 저는 이현성입니다.”
“나이는요?”
“네. 올해 21살입니다.”
“그럼, 형이라고 부르세요!”
“네? 진짜 그렇게 불러도 되나요?”
하하하,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박장대소했다.
“형님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십니까?”
“어떤 산악인이 그랬던가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음, 국회가 거기 있어 국회의원이 되려 합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국회의사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농담입니다. 농담이에요. 제가 검사였잖습니까? 실제로 법을 집행하다 보니 참 많은 법이 잘못돼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더군요. 즉, 입법 과정에서 잘못 상정된 법안이 너무 많아요. 저는 그런 것들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는 했지만, 저는 ‘악법은 만들어지지 말아야 한다.’라고 외치고 싶군요!”
“악법은 만들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거 명언이네요.”
하하하, 웃음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가자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검사 생활을 하시면서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한 여대생이 물었다.
“웬걸요? 저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옆에 계신 장영은 검사 아니었으면 지금 여기 앉아 있을 수도 없었죠!”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장 검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정말요?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도 일어나는군요?”
여학생이 놀란 표정을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그때는 진짜 끔찍했어요…….”
나는 망치 사건에 관한 에피소드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심각하게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밤을 지새워 대화를 나눴다. 말하다가 힘들거나 지치면 돗자리에 누워 자기도 했고, 배가 고프면 컵라면을 사다 먹기도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나는 그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생각을 공유했다.
“후보님은 홍보 책자도 없으시던데?”
“흠, 제가 돈이 없어서요.”
“저희라도 십시일반 모아볼까요?”
“음, 한 100억쯤 모으실 수 있으면 주시던가요!”
“네?”
‘푸웁,’ 한 대학생이 마시던 맥주 캔 입구에서 거품이 흘러넘쳤다. 깜짝 놀랐던 모양이었다.
“농담입니다. 괜찮아요. 여러분들의 마음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릅니다. 전!”
“하하하, 깜짝 놀랐습니다!”
“검사님, 저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인데요. 진짜 억울해서요…….”
“네. 말씀해보세요.”
즉석에서 법률상담도 해주었다.
“어…… 르신, 혈압이 높으시네요.”
진표는 버스킹에 참여한 장년층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의료 서비스를 해드리기도 했다.
[김정환식 버스킹 유세, 새로운 정치문화를 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한강 둔치에서 재현되다.]
[돈 안 드는 버스킹 유세, 선거문화를 바꿀까?]
정진표의 말대로 정치 버스킹은 대성공이었다. SNS와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큰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10명, 100명, 점점 버스킹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실시간 득표율 : 김정환 후보, 23.6%! 퀘스트 달성.]
[3단계 힌트권 업그레이드, 힌트권을 터치하시오.]
음, 슬슬 버스킹 효과를 보는군! 이제 23.6%까지 올라갔단 말이지!
나는 상태창의 힌트권 뒷면을 조심스럽게 터치했다.
[기호 1, 이치우 후보 : 36.5%. 기호 2, 김정환 후보 : 30.8%. 기호 3, 한상필 후보 : 1.9%. 기호 4, 강철훈 후보 : 1.5%. 기호 5, 무소속 정주 후보 : 29.3%.]
하지만,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수치는 종전과 같았다. 전혀 변화가 없었다.
전혀 변화가 없는 수치군! 결국, 킹 메이킹 시스템의 예측이 맞는다는 건가?
후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보궐 선거, 4일 전.
버스킹, 정치 콘서트는 계속됐고 버스킹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나날이 늘어 한강 둔치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김정환 후보 선거캠프>.
진표가 제안했던 버스킹, 정치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삽시간에 주요 포털 사이트 댓글 창은 나와 버스킹에 관한 소식으로 채워졌고 급기야 방송국에서까지 취재하기 위해 선거캠프를 찾았다.
“음, 이번 정치 버스킹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 한 말씀 해주시죠!”
“음, 다른 건 필요 없고 타 후보들에게 정책 배틀을 제안합니다. 각 당에서 세운 모든 정책을 들고나와 지역구민들과 대토론회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며칠 밤이든 꼬박 새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언제든지 이곳으로 나오십시오. 저와 이곳에서 끝장 토론을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