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화] 판세 (2)
“진표 군? 내가 아는 진표 군 맞아요? 여길 어떻게?”
“아… 저… 씨, 제가 아저씨를 좀 도와주려고요.”
정진표가 고개를 삐딱하게 숙여 양 검지를 마주치며 빙그레 웃었다.
“반가워요. 진표 씨! 일단, 앉아요!”
장 검이 정진표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정진표가 장 검이 내어준 의자에 앉았다.
“아니, 그나저나 뭘 돕겠다는 거예요? 의학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해요!”
“아…… 아니에요. 저 머리 좋은 거 아시잖아요. 공부 다 했어요!”
정진표가 해맑게 웃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마음은 고맙지만, 진표 씨한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정색했다.
“제…… 제가 아파서요?”
“아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표 씨처럼 똑똑한 사람이 저를 도와주겠다는데 내가 왜 마다해요? 그게 아니라…….”
순간, 당황했는지 목 밑이 벌게졌다.
“그럼 됐어요. 제가 너무 아저씨를 도와주고 싶어서요.”
“그게…….”
정말 난감했다.
“동초갑 지역의 세부 지역구는 잠영동, 장포 본동…… 총 9개 세부지역으로 171,356명의 유권자가 있으며, 평균 당선 가능 득표율은 55%이고…… 15대 총선, 16대 총선…….”
정진표가 갑자기 동초갑 선거구의 세부사항들을 기계처럼 나열하며 설명했다.
“뭐, 뭐예요? 언제 그런 걸 다 분석했어요?”
장 검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냥, 한 번 보면 알아요.”
그렇지! 진표 군은 모든 것을 사진 찍듯이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
“정말? 진짜, 대단하네요!”
장 검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아저씨, 제 생… 각에는 현재 상황에서 장년층 부동표는 잡기 어, 어려워요. 그쪽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해요. 우리는 2~30대 젊은 층을 공략해야 합니다. 전체 투표율이 65% 안팎인데 20대, 30대 투표율은 50%도 되지 않아요. 투표율을 끄… 끌어올려야 합니다.”
“…….”
그는 이미 판세를 꿰뚫고 있었다.
“그들을 공략해 투표장에 나오게 해야 해요. 그리고 그에 만… 족하지 말고 그들의 부모를 설득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어요. 그들은 귀를 닫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식들은 다르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요.”
크크크, 정진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후, 명나라 대군 10만보다 이순신 장군 한 분이 낫다더니, 100명의 신민당 당원보다 진표 씨가 훨씬 낫군!
혹시, 킹 메이킹 시스템이 말한 젊은 피가 진표 씨?
황당한 순간이었다.
“흠, 맞는 말이에요.”
짝짝짝, 장 검이 손뼉을 마주치며 반색했다.
“그렇긴 한데, 젊은 세대를 어떻게 투표장으로 나오게 할까?”
나 역시 궁금했기에 그에게 물었다.
“버…… 버스킹, 버스킹을 하는 거예요! 그들을 공략하려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드에 맞춰야 해요. 버스킹을 하면서 밤샘 토론하는 거예요. 정치 주제도 좋고, 경제도 좋고, 뭐… 연애 문제, 진로 문제 기타 등등 현세대의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거예요.”
“진표 씨 말이 맞아요! 고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하던 것처럼요. 우리나라가 당면한 현안에 관해서 밤새도록 젊은 사람들과 끝장 토론을 매일 하는 거예요.”
짝짝짝, 장 검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다른 아저씨들은 절대 그렇게 못 해요. 왜냐면, 그게 한두 시간만 대화 나누다 보면 밑천이 저… 전부 드러나거든요. 금세 모든 것이 들통날 거예요. 하… 하지만, 아저씨는 해낼 수 있을 거예요. 해박하시고, 지금까지 정의롭게 살아왔으니까!”
헤헤헤, 정진표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웃었다.
그래! 끝장 토론을 벌인다면 내가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버스킹? 그니까 정치 토론 버스킹을 하자는 건가?”
“네.”
정진표가 수줍게 웃었다.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쓸데없는 전단이나 홍보 자료 같은 거 만들지 말고 우리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토론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거죠. 그리고 다른 후보들도 이곳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거예요. 이곳에서 나와 랩 배틀 벌이듯 정책 배틀 한번 벌여보자고!”
장 검이 흥분하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흠,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들이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당… 연히 안… 받아들일 거예요. 구린 데가 많은 아저씨니까요. 하지만, 우리 작전이 먹혀 매스컴을 타게 되면 안 나올 수도 없을걸요? 아저씨는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세대 사이에서 아저씨는 영웅이에요. 엄청나게 인기가 많거든요! 제 예상대로라면 SNS나 인터넷을 통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볼 거예요. 수천억을 들여서도 살 수 없는 홍보 효과요!”
정진표가 양손으로 펼쳐 둥그렇게 만들며 말했다.
“내가? 인기가 많아?”
순간적으로 얼굴이 벌게졌다.
“진표 씨 말이 맞아요. 선배님,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장 검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른 아저씨들이 끝장 토론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야 더 좋은 거죠. 나오면 아저씨가 논리로 박살 내면 되고, 안 나오고 제안을 거절하면 비겁자가 되니깐! 일거양득이에요!”
헤헤, 정진표가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음, 나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나올 수도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자? 이거 정말 굿인데요. 선배님!”
장 검이 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음, 그러게. 난 도움이 되지도 않는, 중진들의 지원 유세나 트럭 유세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거든.”
진표 군의 생각은 분명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아… 아저씨, 그리고 또 한 명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장 검이 토끼 눈을 뜨며 정진표를 쳐다봤다.
“저… 저만큼은 아니지만 똑똑한 애예요.”
“네? 또 누가 온다고요?”
“이제 올 때가 다 됐는데, 왜 안 오지?”
정진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 쪽을 응시했다.
똑똑똑!
그 순간,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 열려 있으니 들어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단정한 옷차림을 했으며 검은 안경테의 안경을 쓴, 얼핏 봐도 똑똑해 보이는 한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어서 와!”
정진표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이, 인사해!”
“누구?”
장 검과 나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저는 진표 친구, 현준태입니다!”
그가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저씨, 준태는 제… 친군데요. 이 친구는 서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미래에 정치가가 되는 게 꾸, 꿈인데 아저씨가 로… 롤모델이래요.”
정진표가 어눌한 어투로 그를 소개했다.
“어머? 그러면 내 후배네? 몇 학번이지?”
장 검이 급작스레 관심을 보였다.
“09학번입니다!”
“헐, 까마득한 후배네! 반가워요. 장영은이에요!”
장 검이 손을 내밀었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이에요?”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나는 현준태에게 물었다.
“이번 선거에서 검사님을 돕고 싶습니다.”
그가 정자세를 취하며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준태도 머리가 무지무지 좋아요. 물론, 저만큼은 아니지만!”
정진표가 그를 가리키며 웃었다.
“후, 나야 고맙긴 한데,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데… 게다가, 내가 금전적으로 보상할 사정이 못돼서…….”
“괜찮습니다. 저는 검사님을 도와 이번 선거를 치르는 것이 학교에서 이론 공부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이미 휴학한 상태라…….”
“뭐라고요? 이런!”
젊다는 게 한밑천인가? 무모함인가? 어처구니없었다.
잠시 후,
“저는 이번 선거의 핵심은 지역 경제 정책이라 봅니다. 동초갑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곳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생계와 연관된 경제 정책은 의미가 없어요. 포인트는 두 가지예요. 재건축 문제와 아이들 학업 문제! 우선, 지역의 특성상 노후한 아파트가 많아 재건축에 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해요.”
현준태가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설명했다. 이 친구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이 친구도 보통내기는 아니군!
“계속해보세요!”
“네.”
“그런데 김 후보의 정책공약집을 살펴보면 속도에만 치우쳐있어요. 재건축을 일괄처리하겠다더군요. 자신이 서울시장과 막역한 사이니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모든 재건축을 원샷으로 처리하겠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이에요.”
“음, 진태 군이 제대로 짚었어요. 김 후보 측의 완전한 실수죠. 현 서울시장의 정책에 가장 큰 반감을 품은 지역이 이곳인데. 서울시장과의 인맥을 내세워 그 부분을 강조하니 지지율이 떨어지는 겁니다.”
장 검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럼, 진태 군 생각은 어떤가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건물이 낡은 건 맞아요. 그러니 재건축은 해야 합니다. 무작정 부동산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막아서는 안 돼요. 부동산 과열은 재건축을 막아 유입을 없앤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부동산은 심리입니다. 사람들은 불안해지면 더욱더 부동산에 집착해요. 단지별 문제점이 다르니 개별 개발계획을 세워야 해요. 결코, 원샷 개발은 불가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따라서, 김 후보의 공약은 공허한 선심성 공약에 불과합니다. 이 지역에 사는 유권자들의 교육수준이 매우 높아요. 결코,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정확한 분석이다!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해!
“대… 대단하군요!”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걸 보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
현준태가 USB 파일을 건네주었다.
“뭐지?”
파일을 열자 맞춤형 교육, 복지, 의료 등 전반적인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교육 정책, 노인복지 및 육아 정책 등 하나같이 현실이 반영된 정책들이었다. 하나같이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참신한 계획들이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중앙당에선 내놓을 수 없는 주옥같은 정책들이었다. 이 친구! 정말 욕심이 나는군!
“음, 이러면 우리 후배님, 놓칠 수가 없겠는데요?”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장 검이 먼저 선수를 치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게. 이렇게 훌륭한 참모들을 놓치지 않는 것 또한 전장의 장수가 갖춰야 할 덕목이지! 좋아요! 어디 한번 해봅시다.”
“네!”
“네!”
정진표와 현준태가 목소리 톤을 높여 큰소리로 답했다.
“그럼, 앞으로 장 검이 진태 군과 정책과 공약 쪽을 맡아줘요. 전 진표 군과 정치 버스킹 준비를 하겠습니다!”
“넵. 물론이죠!”
“네!”
“네!”
다들 패기 넘치는 목소리! 믿음직스러웠다.
결국, 장 검과 정진표 그리고 현준태가 합류함으로써 선거캠프로서의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화려한 경력과 재력을 지닌 그 어떤 지원군보다 더 든든한 참모들이었다. 나는 이들이 있어 어쩌면,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후원모임인 ‘강단’의 2~30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나를 도왔다. 공인중개사, 취준생, 의사 등 각자 종사하는 직업도 다양했다.
* * *
<김정환의 오피스텔>.
지이이이잉.
[New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김정환 님, 축하합니다.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음, 역시, 진표와 준태가 젊은 피가 맞았군!
[선택하신 힌트권을 업그레이드하겠습니다. 화면을 터치하십시오.]
음, 그래? 업그레이드라…… 살짝 긴장되는군!
나는 상태창에 나타난 ‘숫자 힌트권’의 뒷면을 클릭했다.
[기호 1, 이치우 후보 : 36.5%. 기호 2, 김정환 후보 : 30.8%. 기호 3, 한상필 후보 : 1.9%. 기호 4, 강철훈 후보 : 1.5%. 기호 5, 무소속 정주 후보 : 29.3%.]
30.8%? 뭐…… 뭐야? 내가 떨어진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