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11화 (111/170)

# 111

[111화] 판세 (1)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반드시 그를 잡아야 했다. 절실한 심정으로 매달렸다.

“네?”

김정주 주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했다.

“당황스럽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선거캠프로 와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숙여 정중히 청했다.

“허허허,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거 제 귀가 잘못된 건가요? 농담이시죠?”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뇨. 농담 아닙니다. 저는 주필 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평소에도 주필 님 글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고 있어요. 항상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식견에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해박한 정치적 식견과 지식을 저에게 빌려주십시오.”

나는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흠, 그런 눈빛으로 절 쳐다보니 부담스럽군요! 아무튼, 뭐 제 글을 읽어주신다니 감사하긴 한데, 전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김정환 후보와는 색깔이 전혀 맞지 않는데요?”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 않을 텐데….

“음, 주필 님도 사설에 쓰셨듯이 지금 우리나라의 정국은 엉망진창입니다. 곳곳에서 비리 사건이 터지고 정부 또한 실정을 거듭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여의도는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좌우가 어디 있으며 진보와 보수를 나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곳곳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비아냥이 넘쳐나고 있어요. 일단 나라부터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진지하게 나의 정치 철학을 그에게 피력했다.

“후후후, 좋은 말이죠. 암요! 분명 그렇습니다. 작금의 현실은 암울합니다. 밖에선 북이 핵 무장을 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안에서는 온갖 비리와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치고 있지요. 정부와 여당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그 와중에 야당은 오합지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김정환 후보가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는 거 아시잖습니까?”

“…….”

“음, 저도 김정환 후보를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이구나 싶었죠. 검찰에 저 정도 능력과 신념을 겸비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감탄까지 했습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검찰개혁도 가능하지 않겠나 희망을 품었죠. 하지만, 뭡니까? 결국, 당신도 포기한 것 아니에요? 검찰의 두꺼운 성벽을 허물어내지 못했잖습니까? 사실 그 점이 너무도 실망스럽더군요. 그래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김정주 주필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음, 백번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하나 있군요. 저는 결코 포기하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안에 있으면서 성벽을 부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죠. 결국, 그 안에서의 투쟁은 자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성벽을 부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성 밖으로 나오게 하면 되니까요.”

“…….”

김정주 주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내 말에 경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성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성 밖으로 나와 그들의 아집이 매우 잘못됐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외치려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손바닥만 한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성 밖으로 나와 더 푸르른 하늘을 느껴보라고! 그래서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흠, 김 후보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창랑이 이렇게 더러워져 있는데 결국, 김 후보님도 그 속으로 들어가 파도를 일으키겠다는 뜻 아닙니까? 작금의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가 굴원의 고사를 들먹이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니요. 저는 흙탕물로 파도를 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창랑을 정화하기 위해 구정물 속으로 뛰어든 겁니다.”

“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생수통 몇 통 들이붓는다고 창랑이 맑아지지 않습니다.”

“아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작도 안 할 순 없지요. 흙탕물은 스스로 정화되지 않으니까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생수통 몇 통 붓는 거지만, 일단 내가 시작하고 나면 분명,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한 명, 한 명 생수통을 붓는다면 언젠가는 맑아지겠죠. 전 그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흠, 용기가 가상하시군요. 아무튼, 그 패기 하나는 맘에 들어요. 언제까지 그 마음이 변치 않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다 김 후보님 같았어요!”

허허허, 김정주 주필이 호탕하게 웃었다.

“초지일관(初志一貫)하겠습니다.”

“허허. 좋아요, 좋아. 아무튼, 그 패기는 맘에 듭니다. 하지만, 어쩌죠? 제가 김 후보님을 도와드릴 수 없는 처지인 것 같은데요?”

허허허, 김정주 주필이 주먹으로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음,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음,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 말씀드리죠. 제가 이번 보궐선거 서초갑에 출마할 생각이에요. 내일 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할 겁니다. 그러니, 김 후보님은 저의 경쟁자가 되겠죠? 그게 뭘 뜻하는지는 후보님도 잘 아시리라 봅니다.”

역시, 킹 메이킹 시스템이 맞았어!

“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었다고요?”

내가 너무도 태연히 대답하자 그가 당황했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 허허허,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더니 세상에 비밀은 하나도 없나 보구려. 내가 이렇게 입단속을 했는데도 이렇게 새가 간 걸 보면 말입니다.”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도와주십시오!”

“허허허, 이거 난감하구먼. 내가 후보로 나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쟁자한테 도와달라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그가 손으로 허공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후보로 나시지 마시고 우리 선거캠프에 와주십시오. 저는 주필 님이 우리 캠프 쪽으로 오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흠, 후보로 나서지 말고 당신을 도와달라? 음…… 당돌하시군요. 결국, 이번 선거에 내가 이길 수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네.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주필 님은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없으십니다.”

“가관이구먼. 너무 직설적이지 않소? 나도 선거에 이기기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왠지 섭섭해지려고 하는데요?”

허허허, 김정주 주필이 허탈한 듯 쓴웃음을 내뱉었다.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다만, 주필 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 분석에 의하면 주필 님은 결코 이번 선거에 이기실 수 없습니다.”

“흠, 이건 뭐. 육십 평생 살면서 김 후보님 같은 강단은 처음이군요. 알아요. 알아! 이번 선거에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김정주 주필의 얼굴에 홍조가 감돌았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김 후보님의 신념과 패기가 맘에 들긴 합니다. 내가 선거에 나서지만 않았어도 김 후보님을 도와드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이미 늦었어요.”

“다시, 생각해주실 수 없습니까?”

나는 그에게 간절한 눈빛을 쏟아냈다.

“흐음, 좋습니다. 그럼 내가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후에 물었다.

“네. 뭐든 좋습니다.”

“김 후보의 목표는 단지, 이번 보궐선거에서 이기는 겁니까?”

“아뇨. 전 대통령이 될 겁니다.”

“허허허, ‘되고 싶습니다.’ 도 아니고 ‘될 겁니다.’입니까? 흠, 좋습니다. 그 강단 진짜 마음에 드는군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드르륵, 김정주 주필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저는 이번 선거에 반드시 나설 겁니다. 그건 요지부동이에요. 다만, 이번 선거가 김 후보님의 정치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앞으로 총선도 있고 그다음 큰 선거도 있기에 앞으로 대업을 이룰 만큼 큰 제목인지 제가 테스트를 해보고 싶군요!”

“테스트요?”

“네. 이번 선거에서 제 도움 없이 김치우 후보를 제압해보십시오. 물론 저도 당연히 이겨야겠지요. 온전히 김 후보님의 힘만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김 후보가 큰일을 할만한 제목임을 보여주세요. 그다음부터는 기꺼이 제가 김 후보의 제갈량이 되어드리지요. 그때 가서 저를 내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흠……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야. 이 사람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그래, 어차피 내 목표는 이번 보궐선거 당선이 아니지 않은가?

“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의 눈빛으로 볼 때 더 설득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래의 제갈량을 가질 기회를 얻게 되었다.

“흠,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그럼 우리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봅시다.”

그가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이이잉.

[New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김주필과 대화를 마친 후, 신문사를 나서는데 킹 메이킹 시스템이 가동했다.

[퀘스트 실패, 추후 퀘스트를 재전송토록 하겠습니다.]

[퀘스트 : 현재 김정환 후보 실시간 득표율은 18.2%입니다. 젊은 피를 수혈해 일주일 내로 득표율을 23%로 만드십시오.]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뿌려준 수였다.

“실시간 예상 득표율 18.2%? 이게 지금 현재 선거를 치른다면 내가 받을 수 있는 득표율이라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음, 형편없는 득표율이군!

“득표율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건가?”

[네.]

“음, 그러면 매일매일 득표율 추이를 확인할 수 있겠군!”

[물론입니다.]

“그 득표율을 일주일 내에 23%로 만들라는 건가?”

[네.]

“그나저나 젊은 피? 그건 뭐지?”

[김정환 님이 해결하셔야 합니다.]

난감하군!

며칠만 있으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해야 하는데, 5%에 가까운 상승을 이뤄내라는 건데…… 지금과 같은 선거 판세에서는 절대 쉽지 않은 수치였다.

* * *

보궐선거 D-20일.

<서초동 인근, 선술집>.

“이번에 누가 될 것 같아?”

한 남자가 물었다.

“김치우가 되지 않겠어? 선거 한두 번 치른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될 리 없잖아?”

“그래도 김정환 검사면 해볼 만한 것이냐? 같은 식구인 김현석도 쳐냈잖아? 강단이 있어 보이던데?”

“글쎄. 오히려 그게 문제지. 같은 검찰을 쳐낸 게 난 솔직히 거북스러워. 너무 강성이고 위태위태해 보이거든. 그 사람 보면 폭탄 들고 섶으로 뛰어드는 것 같아. 왠지 불안해서 영!”

“그나저나 김정주 주필이면 김치우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한민당 하는 꼬락서니가 완전 당나라 군대 같아서 맘에 안 들어. 난 김정주가 맘에 들더라고!”

이 사람들의 대화는 정확히 선거 판세를 반영하고 있었다. 김치우가 전폭적인 당의 지원과 자금력으로 앞서나가고 있었고 나는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긴 했지만, 야당의 한계를 뛰어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김치우의 표를 갉아먹을 것으로 예측한 김정주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로선 호재가 아니라 악재였다.

<김정환 선거캠프>.

“김정주 주필의 상승세가 무섭네요! 후보 등록을 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두 자릿수 지지율이에요. 게다가 오히려 우리 쪽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요!”

‘김치우 : 51.3%, 김정주 : 24.9%, 김정환 : 20.7%’

장 검이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김정환 예상 득표율 : 18.5%]

킹 메이킹 시스템의 화면에 현재 예상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실제 여론조사보다 더 떨어진 득표율이었다.

“흠, 어쩌면 결과가 더 안 좋을 수도 있어.”

“결과가 더 안 좋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아냐! 지금같이 상황이 안 좋아지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러게요. 그나저나 선배님, 선거는 결국 조직력 싸움인데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자금력에서 저들과 상대가 안 되는데 조직력까지 지원받지 못한다면 이번 선거 불 보듯 뻔해요. 진짜!”

“음, 장 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난 그러고 싶은 맘이 없어. 조직 동원하고 돈 살포하면서 국회의원 되면 뭐 할 건데? 국회의원 되는 데 몇십억에서 몇백억까지 들어간다지 아마? 그럼 국회의원이 되면 본전 생각나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시궁창인 거야.”

“…….”

“지역구 내 각종 공사 이권에 개입하고 부적절한 정치자금에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잖아. 돈 가지고 정치하면 그럼 나도 똑같은 인간이 되는 거 아냐? 난 돈 들이지 않고 조직, 인맥 동원하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어. 비록 떨어진다 해도 말이야. 그렇게 신기원을 이뤄내고 싶은 맘이야.”

“선배님 말씀은 백 번 천 번 이해하지만, 국내 정치 현실에서 조직력 없이 어떻게…….”

장 검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똑똑똑!

그 순간,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아…… 아저씨! 저예요.”

어눌한 목소리, 분명히 정진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