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10화 (110/170)

# 110

[110화] 기호 2번 김정환 (2)

정말 어이가 없군! 진짜, 득표율을 보여주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왜 내 득표율은 보여주지 않는 거야? 음, 킹 메이킹 시스템 말대로 힌트도 단계적이라 그런 건가?

나는 유심히 상태창의 떠 있는 표를 살펴봤다.

이치우 후보가 42.5%를 받는다? 생각보다 저조한 득표율이군.

기존의 여당 후보들은 이곳에서 60%를 상회하는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그리고 한상필, 강철훈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3.4%! 만약 무소속 김정주 후보의 득표율이 최소 10.0%로 가정한다면 내 득표율이 44.1%로 근소하게 내가 당선된다는 소린데…….

나는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표를 뚫어지도록 쳐다봤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김정주 후보가 최소 11.7%만 나와도 내가 무조건 떨어져!

결국, 킹 메이킹 시스템이 보여준 수치만 볼 땐 나는 거의 낙선할 가능성이 컸다.

그나저나 김정주 씨는 아직 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사람인데…… 킹 메이킹 시스템의 정보가 확실하다면 이 사람이 출마한다는 건가? 정치엔 관심이 없는 인사로 알고 있는데….

김정주!

그는 합리적 보수 성향의 논객으로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언론인이었다. 보수 논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TV 토론이나 논설을 통해 집권 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인물로 중산층 지지기반이 탄탄한 인물이었다. 동초갑의 특성상, 그가 이곳에서 출마한다면 여당으로서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고, 여당표를 나눠 가질 가능성이 크니 내가 봤을 때는 분명 호재가 틀림없었다.

김정주 후보의 득표율 **.*%

비록 정확한 수치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김정주 후보의 득표율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숫자이다. 최소 10% 이상이라는 의미인데…….

그 수치는 이번 선거판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 결국, 김치우 후보 나 그리고 김정주 후보의 3파전의 양상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

김정주의 득표율만 내 득표율이 될 수 있다면 분명히 이번 선거에서 승산이 있었다. 결국, 이번 선거판의 캐스팅 보트는 말할 것도 없이 김정주 후보였다.

지이이잉.

[첫 번째 퀘스트를 제시하겠습니다. 퀘스트 : 스톡홀름 증후군을 이용하라!]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나에게 첫 번째 퀘스트를 부여했다.

스톡홀름 증후군? 이건 뭐야?

스톡홀름 증후군!

원래는 범죄심리학 용어로,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은행 강도가 은행 직원을 인질로 삼은 스톡홀름 노르마름 스토리 사건에서 유래했다.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은행강도에게 비합리적인 애착이 생기는 그런 현상!

그런데 킹 메이킹 시스템이 왜 이런 퀘스트를 부여한 거지? 스톡홀름 증후군과 이번 선거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팔짱을 낀 채, 한참 동안 홀로그램 상태창을 주시했다.

맞아!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의 기저에 깔린 공포감! 자신들이 지금까지 일궈온 재산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생활의 안정감, 거기에 형성된 기득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공포감이 답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집권 여당의 행태가 못마땅해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그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런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한, 집권 여당이 어떤 실책을 하든 어떤 무리수를 두든, 어떤 사람을 후보로 내든 그들은 집권 여당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한민당과 같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집권 여당은 그 공포심을 이용해 중산층들을 그들의 인질로 잡은 것이다. 마치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말이다. 킹 메이킹 시스템은 그걸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일단, 내가 자신들의 적군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방안을 맴돌며 골몰히 생각했다.

그래! 그렇다면, 인재 영입! 그게 답이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그렇다면 딱 한 사람! 김정주!

김정주 상앙 일보, 주필을 내 사람으로 만들라는 퀘스트가 틀림없다.

* * *

<일주일 후, 서초동, 김정환 후보 선거캠프>.

그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장 검이 오는 날이다. 아침부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고 가슴이 설레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지?

오늘따라 유난히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선배님!”

드디어 장 검이 왔다. 그녀가 꽃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 검, 왔어?”

흠흠흠,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행동은 나도 모르게 데면데면했다.

이게 무슨 소심한 짓이니? 박상우!

나는 서류를 뒤적이며 일부러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를 맞았다.

“음, 괜히 바쁘신 척하는 거 다 알거든요? 속으로는 무척 반가우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죠? 선배님, 좀 감정에 솔직해져 봐요!”

장 검이 재빨리 내 앞으로 다가와 입을 삐죽거렸다.

“누구세요?”

정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 검을 쳐다보며 궁금해 했다.

“아, 장영은 검사라고 순천지청에 있을 때, 같이 근무한 동료인데 앞으로 제 일을 도와줄 겁니다.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거예요.”

“아…… 그렇군요.”

정지수가 장 검의 외모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리며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

“장 검, 인사해! 이쪽은 정지수 씨!”

“어머, 진짜 미인이시다. 안녕하세요. 장영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장 검 역시, 그녀의 외모를 훑어보며 말했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네. 안녕하세요. 정지수라고 합니다.”

정지수가 고개만 까닥거리며 장 검에게 인사했다. 분위기가 냉랭한 게 두 사람이 힘겨루기하는 듯 보였다.

“음, 그나저나 사무실이 너무한데, 우리 선배님처럼 능력자를 모셔가 놓고 사무실이 이래도 되는 건가요?”

눈싸움을 먼저 피한 쪽은 장 검이었다. 정지수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 장 검이 사무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무실 가지고 선거 치르나? 좋은 사무실 써서 뭐 하게. 나한텐 이 정도면 과분해!”

"그리고 직원들이 이렇게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선거를 치러요?"

"음, 직원이 뭘 더 필요해? 현재로선 우리 세 사람이면 족해. 추후 일손이 필요하면 그때 채용하면 되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여간, 선배님은 못 말린다니까!”

장 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나와 장 검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음, 그나저나 순천 일은 잘 마무리하고 내려온 거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요. 뭐, 마무리할 게 있나요? 그냥 짐만 가지고 나오면 되죠!”

“그렇구나. 부장님이랑 정훈이는 잘 있지?”

민망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 기분이 묘했다. 나는 괜히 두 사람의 안부를 물어보며 화제를 돌렸다.

“네. 다들 잘 있어요. 그분들이야 여전하죠. 정훈 선배는 역시나 실수 연발이고요.”

호호호,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여전하구먼. 한 검사!”

오랜만에 정훈이의 소식을 들으니 반가웠다.

“언제 한번 우리, 순천에 내려가요. 다들 선배님 보고 싶다고 난리예요.”

“그래. 시간 내서 한번 내려가서 뭉쳐야지! 나도 사람들 무지 보고 싶어!”

“그래요. 이번 선거 치르고 저랑 같이 내려가요. 그건 그렇고 자요!”

장 검이 가방에서 USB 하나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음, 이번 선거 판세를 나름대로 제가 분석해본 건데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정말?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어?”

역시, 장 검이야!

진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장 검이 준 USB에는 최근 선거 판세 분석부터 과거 득표율 분석, 그리고 동초갑 세부 지역별 분석 자료까지 파워포인트와 엑셀로 정리한 완벽한 자료였다. 그 어떤 판세 분석표보다 잘 정리된 자료였다.

“그냥 뭐.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자료 찾아가면서 분석해 봤어요.”

후후후, 장 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에이, 이건 그냥이 아닌데?"

자료의 충실도가 굉장히 높았다. 기존의 인터넷에 떠다니는 자료나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장 검이 준비한 자료는 수억을 투자해 정치연구소에서 내놓은 자료 못지않았다.

"이건 뭐. 이 정도 자료 준비하려면 몇 달은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다 장 검!”

진심으로 그녀가 내 곁에 있어 든든했다.

“그렇게 많이 안 걸렸어요. 제가 원래 좀 한 머리 하잖아요. 흠흠흠.”

장 검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

“아닌가? 아니면 말고!”

크크크, 장 검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흠, 그나저나 내가 장 검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월급도 제대로 못 줄 것 같은데….”

“어머 어머, 제 월급까지 챙겨주려 했어요? 얼마나 주실 건데요?”

그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게. 너무 미안해서 음… 그게…….”

차마 금액을 말하기 부끄러웠다.

“후후후, 저 돈 필요 없어요. 검사 생활하면서 월급 꼬박꼬박 모아뒀고 엄마가 시집갈 때 쓰라고 비상금도 두둑이 줬어요. 음, 제가 시집을 언제 갈진 모르지만, 암튼 저 꽤 부자예요!”

장 검이 상큼한 보조개를 만들며 환하게 웃었다. 내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배려였다.

“정말, 고마워, 장 검!”

“…….”

대답 대신 그녀가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나저나 장 검! 어쩌지? 나 지금 누구 좀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얼른 가보세요. 전 여기서 정리 좀 할게요. 그나저나 누구를 만나시는데요?”

“음, 김정주 주필!”

“네? 상앙 일보에서 논설 쓰시는 김정주 주필이요? 그분이라면 우리 쪽과 정치 성향이 다른 분이신데…… 무슨 일 때문이신지 여쭤봐도 돼요?"

깜짝 놀란 그녀가 되물었다.

“음…… 그게, 퀘스트 풀려고!”

“퀘스트요? 그건 또 뭐예요?”

“별건 아니고 그런 게 있어. 암튼, 다녀올게.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바로 퇴근해.”

“네에.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래.”

“지수 씨, 저 나갔다 올게요. 오늘 어쩌면 사무실 못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시간 되면 퇴근하세요.”

“네. 다녀오세요. 후보님!”

정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 * *

<상앙 일보 소회의실>.

사전에 그와 약속한 나는 그의 신문사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김정환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김정주입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곧바로 소회의실로 이동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음, 야당 후보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딱히 제가 김 후보님과는 접점이 없을 듯한데요.”

김정주가 다리를 꼰 채,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보통 인사가 아냐!

짙은 눈썹에 단정한 입술,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흠,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니 좀 긴장되는데요? 뭐. 어쨌든 편하게 말씀해 보시죠.”

그가 가지런히 손을 모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관심을 나타냈다.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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