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109화] 기호 2번 김정환 (1)
<김정환의 오피스텔>.
띠리리링.
나는 신민당 원내대표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제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정환 검사! 웬일이시오? 혹시, 정하신 겁니까?”
“네. 동초갑 보궐선거 저한테 주신다고 했던 말씀, 지금도 유효합니까?”
“암요. 당연히 유효하지요. 김 검사님만 좋다면야 우린 두 손 들고 환영입니다.”
“네. 보궐선거에 나가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내일 당사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그렇게 알고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세상을 내가 바꿔 놓겠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이이잉.
[New,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킹 메이킹 시스템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오랜만이군! 그나저나 ‘New’는 뭐지? 뭐가 바뀐 건가?
변경된 킹 메이킹 시스템이 당황스러웠다.
[지금부터, 킹 메이킹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구성의 화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업그레이드? 그건 무슨 뜻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줘.”
[네.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힌트권 사용 시 포인트를 차감하는 방식은 종전과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변경된 내용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지금부터는 힌트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상황에 따라 랜덤하게 킹 메이킹 시스템이 힌트를 일방적으로 제공했었다.
“음…… 훨씬 활용도가 높아지겠군. 내가 선택할 수 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2. 각각 선택된 힌트권은 퀘스트 수행을 통해 단계별로 진화합니다.]
“퀘스트? 그게 뭐지? 이게 바뀐 것인가 보군!”
[지금부터 힌트권을 선택하시면 총 3단계로 퀘스트를 제공할 것입니다. 각 퀘스트를 해결할 시, 힌트권의 질은 향상됩니다.]
음…… 게임처럼 힌트권의 레벨을 올리겠다는 뜻이군!
“음, 아무튼 지금부터는 내가 힌트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알겠어. 그럼 내가 필요할 때마다 호출도 할 수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OK! 좋았어!”
아무튼, 분명 킹 메이킹 시스템은 내가 정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확실했다.
<장상돈 차장실>.
나는 사표를 내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나는 그에게 집어 던지듯 사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흠, 진심인가?”
장상돈 차장이 봉투를 열어 확인하다니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
“네.”
“의외로군. 결국, 김천으로 발령한 것에 대한 불만인가?”
“꼭 그렇지만은 아닙니다.”
“음, 검사복을 벗으면 앞으로 뭘 할 생각인가? 변호사 개업할 건가? 모아둔 돈이 좀 있나 보지?”
장상돈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음, 제가 그것까지 차장님께 말씀드려야 합니까?”
“아니 뭐.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암튼, 알았네. 사표는 수리하는 것으로 하지.”
드르륵, 그가 책상 서랍을 열어 봉투를 넣었다.
후후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행동이군!
“안녕히 계십시오.”
“아무튼, 그동안 수고 많았네. 그나저나 송별회는 해야지?”
장상돈 차장이 일어나 외투를 걸치며 말했다.
“아뇨.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그래? 흠, 그것 좀 아쉽구먼. 아무튼, 사표는 지검장님께 올리겠네. 아마도 오늘 중으로 수리될 거야.”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 싶은 건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치이익, 그가 몸에 향수를 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란만장했던 나의 검사 생활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
[김정환 서울중앙지검 검사! 신민당 입당!]
[스타 검사, 과연 여의도 입성할까?]
[‘미니 총선’이라고 불리는 이번 재보선 선거! 여당 텃밭에 도전장을 내민 열혈 검사, 김정환!]
[여당 저격수! 김정환 영입한 신민당 탄력받나?]
이번 보궐선거는 미니 총선이라고 불릴 만큼 규모가 컸다. 서울은 동초갑을 포함해 세 군데, 전라도 두 군데, 경상도 네 군데, 충청도와 제주도 각각 한 군데로 총 열한 곳에서 재보선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지역도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차기 총선의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선거였다. 신민당을 포함한 집권 여당인 한민당, 그 밖의 군소 정당들까지 총력전으로 맞붙는 중요한 선거였다.
당연히 신민당은 나의 입당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언론과 인터넷은 연일 나와 신민당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고 신민당의 지지율 역시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덤으로 타 후보들까지 반사이익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신민당 당사>.
워낙 내가 매스컴을 탔기에 특별히 나를 지원할 필요는 없었지만 애초에 약속했던 전폭적 지지는 있지도 않았다. 물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음, 김 후보도 슬슬 선거 캠프를 차려야죠?”
조민영 원내대표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 장난해? 이제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제야 선거 캠프를 얘기를 꺼내나?
“네. 다행히 후원회가 결성돼서 정치자금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습니다. 서초동에 작은 선거 사무실 하나를 임대해 뒀습니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강단’이라는 후원회가 결성돼 십시일반 모인 돈은 연간 후원회 모금 한도인 1억 5천만 원을 금세 채워버렸다. 거기에 내가 지금껏 월급으로 모아둔 돈 1억 남짓, 대출금 5천만 원. 합해서 3억! 나는 3억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선거자금을 가지고 이번 선거를 치러야 했다.
“아,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음, 요즘은 워낙 보는 눈이 많아 중앙당 차원의 자금 지원이 쉽지가 않네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있는 한도 내에서 깨끗이 선거를 치르겠습니다."
“음, 지금 보유한 자금이 얼마나 되시죠?”
“3억 정도 있습니다.”
“오호! 30억 정도면 해볼 만하겠어요!”
조민영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3억을 30억으로 알아들었던 모양이었다.
귀가 먹었군!
“30억이 아니라 3억입니다.”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아, 3억…… 그래요.”
조민영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아, 그나저나 어떻게 정지수 보좌관은 쓸만하십니까? 정 보좌관이 미모가 보통이 아니던데요.”
외모가 보통이 아닌 것이 무슨 상관인가?
정지수는 중앙당에서 차출된 당원이었지만 뛰어난 외모에 비해 정치적 감각과 지식은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제길! 외모로 선거하나? 장검에 반의반만이라도 돼도 내가 업어주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장 검의 얼굴이 떠올랐다.
“…….”
“음, 우리 당에 입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지만 착하고 외모도 출중해…….”
“외모 가지고 선거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적어도 보좌관을 하려면 여론의 흐름이라던가 상대 당의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파워포인트, 엑셀 공부부터 먼저 하라고 해주십시오!”
“그… 그런가요. 그 정도는 할 텐데…….”
조민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이들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아무튼, 이번 선거는 제힘으로 치러볼 생각입니다. 같이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면 제가 나서볼 테니까, 중앙당 차원에서 인력 차출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 그럼요. 그래요. 원래 선거라는 게 자신과 손발이 맞는 사람을 써야 제대로 굴러가니까….”
조민영이 목 밑까지 벌게지며 땀을 흘렸다. 딱히 지원해줄 인력도 변변치 않았다.
“그나저나, 저쪽에서는 이치우 검사장이 후보로 나섰는데, 같은 검사 출신끼리 싸움이라 흥미롭네요.”
이치우 검사.
대검찰청 산하,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베테랑 검사 출신! 한때, ‘조폭 잡는 검사’로 그의 이름만 들어도 조폭들이 설설 기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공안부장을 거쳐 검사장을 지낸 후, 이번에 검사복을 벗고 정치에 뛰어든 인물이었다. 보수적 성향의 인사였고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다. 중견기업인 ‘금경제지’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지금까지의 실정을 만회하려는 듯, 집권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그의 장인인 장학수 회장의 물심양면 지원으로 명성이나 인적 네트워크로 볼 때 나와는 시작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 거물이었다. 당연히, 당에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결국, 이길 수 없는 선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게 뭐가 흥미롭죠?”
“아… 불쾌하십니까?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조폭 잡는 검사와 검찰 잡는 검사의 싸움이라고 언론이 하도 떠들어놔서요.”
하하하, 그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아무튼, 우리는 김 후보만 믿습니다. 잘해주시리라 생각해요. 우리도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정치가 세 치 혀로 하는 것이라지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저렇게 남발해도 되는 건가? 한심한 인간들!
“네. 알겠습니다.”
* * *
<김정환의 오피스텔>.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겠군! 그나저나, 이 여자를 어떡한다?
“정지수 보좌관님, 지난번 선거 지역별 득표율 현황 좀 파악해주세요.”
“어떤 선거요?”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요? 아님,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무슨 선거라뇨. 동초갑 지역, 선거구 세부 지역별 후보 득표율을 말하는 겁니다.”
“아… 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도대체,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뭘 어떻게 합니까? 후, 놔두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는 것이 없는 여자였다.
아… 진짜, 장 검이 그립군!
띠리리링.
그 순간, 거짓말처럼 장 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 검!”
나는 빛과 같은 속도로 휴대전화를 주워들었다.
“우리 선배님! 내 전화 기다렸군요. 벨도 안 울린 것 같은데?”
“아냐, 아냐. 여러 번 울렸는데?”
“알았어요. 알았어. 그나저나 선거 준비는 잘 되세요?”
“음, 그럭저럭.”
“에이, 목소리 들으니까 영 시원찮은 거 같은데요?”
“뭐. 처음 해보는 거니. 쉽진 않지! 그나저나 웬일이야?”
“음… 저 시원하게 사표 던졌어요!”
“그래. 잘했어. …… 뭐? 뭐라고? 왜 사표를 던져?”
“아무래도 바늘 가는 데 실이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 게 무슨 소리야?”
이미 감을 잡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뗐다.
“에이, 다 알면서, 선배님! 선배님 캠프에 사람 필요하지 않아요?”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소린 건 아니지.”
“음, 자리 없어요? 자리 없으면 말고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당황스러워서. 여기 만만한 곳 아냐. 정말 괜찮겠어?”
“선배님! 선배님이 지켜주실 거잖아요. 저!”
길상파 수사할 때, 장 검이 나한테 했던 말이었다. 그녀의 그 한마디에 나는 더 말할 수 없었다.
“어…… 그야 물론이지.”
“거봐요. 음, 이번 주까지 짐 정리하고 다음 주에 저 올라갑니다. 알았죠?”
“어… 어 그래.”
나도 모르게 답을 하고 말았다.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예스! 예스!
틱,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시 후.
그나저나, 저렇게나 처진 득표율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하나!
후유, 나는 지난 선거 세부 득표율을 살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이이잉.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의 장중한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힌트권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Y/N]
흠…… 그래! 맞아! 내가 힌트권을 사용할 수 있었지! 일단 시험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나는 YES 버튼을 눌렀다.
[힌트권 리스트 업! 인물 힌트권, 사물 힌트권, 영상 힌트권, 숫자 힌트권.]
킹 메이킹 시스템이 힌트권들을 화면에 뿌려놓았다.
숫자 힌트권? 설… 마, 이번 선거 득표율이라도 보여주는 건 아니겠지?
상태창 맨 마지막에 나타난 ‘숫자 힌트권’이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일단 선택해 보자!
툭, 나는 숫자 힌트권을 터치했다.
[보궐선거 동초갑 최종 득표율.]
[기호 1, 이치우 후보 : 42.5%. 기호 2, 김정환 후보 : ?. 기호 3, 한상필 후보 : 1.9%. 기호 4, 강철훈 후보 : 1.5%. 기호 5, 무소속 이정주 후보 : **.*%]
뭐…… 뭐야? 진짜로 득표율을 보여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