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화] 너희는 법(法)이 우습냐? (4) & 이 길이 아니라면 (1)
조상진이 박정호의 눈치를 보며 증인석으로 걸어들어왔다.
“조상진 씨,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네에.”
조상진이 불안했는지 자꾸 고개를 돌려 박정호를 쳐다봤다.
“증인은 피고 박정호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매… 매형입니다.”
조상진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조상진 씨가 소유하고 있는 마늘밭에서 수백억의 현금다발이 나온 것은 알고 계시죠?”
“네네. 알고 있습니다.”
조상진이 연신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그 돈의 출처가 어딘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에. 그…… 그게.”
조상진이 여전히 불안한지 박정호를 힐끗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조상진 씨,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 게. 처남이 맡겨둔 돈입니다.”
“아이, 개새끼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처하는 거야! 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매형이라고 봐줬더니 미쳤어! 그 주둥아리 안 닥쳐!”
그 순간, 박정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피고! 조용히 하세요!”
당황한 박상태 판사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너,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해? 주둥이 조심해! 쓸데없는 소리 하면 죽여버린다!”
박정호가 박상태 판사의 경고를 무시하며 조상진을 향해 악을 썼다.
“피고!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더 소란을 피울 시엔 강제로 퇴장시키겠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박정호가 자리에 앉아 입 옆을 깨물며 조상진을 노려봤다.
“흠, 여기는 법정입니다. 누구도 증인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증인의 신변을 보호해 줄 테니 있는 그대로 사실만 말씀해 주십시오.”
“네에. 검사님!”
조상진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천천히 증언을 시작했다.
한 달 전,
나는 조상진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그를 만났다.
“조상진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현재 조상진 씨에게 부가될 수 있는 죄목은 차고 넘칩니다.”
나는 그 앞에 서류뭉치를 내려놓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는 처남의 돈을 맡아 놨을 뿐이에요. 제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다만 몇 푼 빼다 썼을 뿐인데…… 그 정도는 수고비로 챙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전, 처남한테 별도로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요!”
조상진이 억울한 듯 뒷머리를 거칠게 긁적거렸다.
“아뇨. 조상진 씨가 저지른 범죄는 엄청납니다. 우선, 범죄 수익 은닉죄! 범죄 수익 등을 은닉한 자 등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범죄 사실을 알면서 범죄 수익을 수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 8년 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죠. 조상진 씨는 박정호 부정한 방법으로 습득한 돈을 은닉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항목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네? 그, 그게 말이 됩니까?”
“네. 말이 되고 말고요. 그리고 두 번째. 법 제246조(도박, 상습 도박)에 의한 상습 도박죄! 상습성이 인정되면 제2항에 근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조상진 씨가 도박한 횟수는 총 24회로 충분히 상습성이 인정된다 볼 수 있겠군요. 게다가 도박에 사용한 금액이 2억 7천만 원이니 당연히 3년형을 받겠군요! 합이 11년!”
“마… 말도 안 돼!”
조상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게다가, 그 돈은 분명 남의 돈을 절도한 것이니 절도죄도 적용할 수 있겠군요. 절도죄는 6년이니 더하면 17년이 되겠군요.”
“거거…… 검사님 살려주십시오.”
조상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으며 벌벌 떨었다.
“게다가, 정치후원금을 목적으로 이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으니 정치 자금 위반에 뇌물죄도 적용할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적어도 30년은 감옥에서 썩게 될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 저는 처남이 시킨 대로 이 의원에게 후원금을 보낸 것뿐입니다. 게다가, 저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도 못했는데, 무슨 뇌물죄가 적용된다는 말입니까? 네?”
“아뇨. 대가성 뇌물이 맞습니다. 조상진 씨는 분명 뇌물에 관한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마늘밭을 시세보다 싸게 구입했고 자격도 되지 않는 조상진 씨가 정부로부터 영농 후계자 지위를 받아 각종 혜택을 누리셨죠. 게다가, 농협에서 초저리의 대출도 받았잖습니까? 그게 조상진 씨의 힘만으로 됐을 거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죠?”
“그게. 아, 그…… 게.”
당황한 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아, 아직 끝나지 않았군요? 저는 이번 재판에 조상진 씨를 증인석에 앉힐 생각인데, 만약에 박정호의 보복이 두려워서 위증한다면 5년이 추가되니 총 35년이군요. 30년에 5년 더하면 35년이 맞죠?”
“검…… 사님, 도와주십시오. 제발, 저,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상신이 손바닥으로 바짓단을 문지르며 애원했다. 더 이상의 부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제 말대로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암요. 그렇게 하고 말고요.”
조상진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해주세요.”
“그…… 그러면 처남이 저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상진 씨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증언해 준다면 제가 책임지고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게다가, 박정호는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겁니다. 내가 있는 한 그자는 결코 이 사회로 환원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조상진 씨가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조상진이 눈알을 굴리며 내 눈치를 봤다.
“또한, 조상진 씨의 형량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제가 돕겠습니다.”
“저…… 정, 정말입니까?”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지 그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네.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조상진 씨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요.”
“네네. 그러면 저는 검사님만 믿고 증언하도록 하겠습니다.”
꿀꺽, 조상진이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법정, 417호>.
“이 돈들은 사실…….”
조상진은 차분하게 비자금의 출처 및 관리 그리고 사용 용도에 관해서 설명했다.
웅성웅성.
“저 사람 말이 사실이야?”
“이거 사실이면, 대박 특종인데. 본사에 빨리 연락해! 김현석 중수부장 오늘 죽는 날이라고!”
기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화면을 보시죠!”
조상진의 증언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나는 버튼을 눌러 ppt를 화면에 띄웠다.
[김현석의 카드 사용 내역(2010년 2월 4일 의성 마늘 5만 원)]
[마늘 매출 전표(2010년 2월 4일 마늘 한 상자 5만 원)]
[조사 이진의 비자금 장부(2010년 2월 4일 현금 5천만 원)]
화면 왼쪽부터 표가 차례대로 나타났다.
“햐. 대박!”
“빼박이네. 이건!”
방청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보시는 바와 같이 김현석을 포함한 박정호 일당은 교묘하게 돈을 세탁해왔습니다. 김현석이 온라인으로 마늘을 주문하고 조성진에게 오만 원을 송금합니다. 정상적으로 구매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함이죠. 그러면, 조상진은 마늘 상자에 현금 5천만 원을 넣은 상자를 마늘로 위장해 택배를 보내는 시스템이죠. 결국, 김현석은 5천만 원을 단돈 오만 원으로 구입한 셈이 되는 거죠.”
나는 포인터로 표를 가리켰다.
“이… 게 뭐, 뭐야?”
장진웅 변호사가 손바닥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그 역시 패닉에 빠진 듯했다.
“다행히 증인이 꼼꼼히 장부를 기록해 두었더군요. 이런 식으로 2010년 2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총 25차례 12억 5천만 원이 김현석에게 지급됐고 그 돈 중 절반은 김 의원의 후원단체인 ‘청록회’로 흘러 들어가 김 의원의 정치 자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그 기간 한일 물산은 각종 특혜에 세금 포탈까지 온갖 혜택을 누리며 500% 성장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게 됩니다. 과연 일련의 일들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뭐, 이 정도면 개작살 나는 거네.”
“결국, 사건이 터지니까 이준구의 입이 불안하니 박정호를 이용해 그를 제거하고 자기 매형이 관리하고 있던 비자금을 처리하려다 덜미를 잡힌 거네. 와꾸 딱 나오는구먼!”
기자들이 노트북을 켜고 서둘러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재판장님! 수사 중 새롭게 밝혀진 사항이 있어 김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합니다.”
“그, 그래요. 알겠습니다!”
박상태 판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망연자실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신 매형. 저 인간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절대 증언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김현석이 옆에 있던 박정호의 멱살을 붙잡으며 노려봤다.
“그…… 그게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박정호의 눈망울이 마구 흔들렸다.
“변호인, 반대 심문하겠습니까?”
박상태 판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반대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장진웅 변호사의 표정 또한, 박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 2차 재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상태 판사가 재판 종료를 선언하자마자 서둘러 법정을 빠져나갔다.
“흠, 선배님! 나를 또 놀라게 하시는군요!”
재판이 끝나자 장 검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냥. 뭐. 하던 대로 한 거지!”
“아무튼, 선배님은 진짜! 후, 내가 할 말이 없다. 없어!”
장 검이 이마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 * *
석 달 후,
3차례 공판을 거친 1심 재판이 끝나고 3명의 판사가 선고하기 위해 재판석에 앉았다.
“피고 박정호를 무기징역에 처한다.”
“피고 김현석을 징역 20년에 처한다.”
예상대로 김현석과 박정호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이 의원과 검찰총장의 혐의가 이렇게 명확한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더는 안 된다고! 아무튼, 여기서 끝내는 거니까 그렇게 알아!”
쾅! 신임 장상돈 차장이 거칠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결국, 나는 완강한 검찰의 저항에 부딪혀 검찰총장과 이 의원을 잡아낼 수는 없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나는 검찰이란 거대한 괴물들을 혼자 상대하고 있는 듯한 무기력감이 들었다.
한 달 후,
<서울중앙지검, 장상돈 차장실>.
“이번 재판 정말 수고했어. 김 부장! 그동안 고생도 많았는데 음… 공기 좋은 데 가서 충천 좀 하고 오는 것이 어떻겠나?”
신임 장상돈 차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공기 좋은 데라…… 후후후,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건가? 나가 죽으라고 성 밖으로 내보냈더니 오히려 적들을 죄다 베어버린 장수! 그들이 나를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없다. 결국, 이렇게라도 해야겠는가? 비겁한 인간들!
“공기 좋은 데요? 어디로 갈까요?”
“원 참! 사람도 그렇게 나오면 내가 민망하잖나? 아무튼, 군대에서도 앞으로 크게 키울 장교는 전방으로 보낸다고 하지 않던가! 김천에 내려가서 좀 쉬다 와.”
좀 쉬다 온다? 내 자리가 있긴 하는 건가? 내려가면 다시는 서울로 올라올 수 없겠지!
“네.”
더는 이들과 더러운 괴물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역시! 우리 김 부장은 말귀가 통해서 좋아. 그럼 다음 주, 발령이니까 금요일에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김정환 부장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안 되는 건가?
띠리리링.
허탈한 웃음을 뒤로한 채, 짐을 챙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김 부장님?”
“네. 김정환입니다. 누구십니까?”
“아, 나 신민당 조민영이오.”
조민영? 제1야당 원내대표 조민영을 말하는 건가?
“아 네. 무슨 일이신지…….”
“음…… 제가 김 부장님이 좀 탐이 나서 말이에요.”
“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허허허, 자세한 건 우리 만나서 얘기합시다. 시간 괜찮으시죠?”
“네에. 괜찮긴 하지만.”
“그럼, 우리 당사에 한 번 나오실 수 있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