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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06화 (106/170)

# 106

[106화] 너희는 법(法)이 우습냐? (3)

“증인은 작고하신 정우랜드 이준구 씨의 부인되시는 김미숙 씨가 맞습니까?”

나는 최대한 차분한 톤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네. 맞습니다.”

그녀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저기 앉아있는 피고 김현석 씨도 잘 알고 계시겠군요. 평소에 두 분의 친분이 두터웠다고 하던데요.”

나는 손바닥을 내보이며 김현석을 가리켰다.

“네. 저희 집에도 자주 놀러 오셨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저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박정호 씨는 어떻습니까? 거래처 대표였으니 안면이 있었겠죠?”

“물론입니다. 잘 알고 있어요. 여러 번, 식사도 함께했습니다. 저 사람 역시, 제가 모를 리가 없죠.”

김미숙이 원망 섞은 눈빛으로 박정호를 응시했다.

“좋습니다. 증인, 그럼 묻겠습니다. 평소에 이준구 씨는 편지나 메모 같은 것을 자주 쓰는 편이었습니까? 제가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굉장한 메모광이셨던데요.”

“흠, 애 아빠는 워낙 꼼꼼하고 과묵한 사람이라 말수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말보다는 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음, 검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메모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것을 적어두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일들은 기록으로 죄다 남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덕에 집에 그 양반이 남긴 다이어리가 10권이 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김미숙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준구 씨한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진 못했습니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으니 말씀해 주십시오!”

“그…… 게….”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기정사실로 하며 피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증인으로 하여금 증명할 수 없는 거짓 증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시정하여 주십시오.”

장진웅 변호사가 입에 게거품을 물며 이의를 제기했다.

“인정합니다. 그리고 검사! 살인과 같은 부적절한 단어는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흠, 아주 장단이 잘 맞는구나? 어디 두고 봅시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조금 민감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증인은 시종일관 이준구 씨의 자살을 부인하셨는데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까?”

“…….”

덜덜덜, 김미숙이 이를 부딪치며 턱을 떨었다. 그녀가 피고석에 앉아있던 김현석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몸서리를 쳤다.

“여기는 법정입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네…… 에.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애 아빠는 절대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질 수 있죠?”

“애 아빠가 남긴 유서는 조작된 것입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단호하게 말했다.

“뭐. 뭐야? 이준구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거야?”

“서…… 설마?”

방청객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란 눈을 껌벅였다.

“어떤 점에서 유서가 조작되었다는 말씀이시죠? 국과수 감식 결과서에 의하면 유서의 필체는 이준구 씨의 필체가 맞는다고 나와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유서는 분명 애 아빠가 쓴 게 맞아요. 하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애 아빠는 어려서부터 절약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종이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지면을 글자로 빼곡히 채웠죠. 그런데, 이 유서는 분명 종전 애 아빠가 글을 쓰는 패턴과는 다릅니다. 이것과 유서를 비교해 보세요!”

김미숙이 이준구의 다이어리를 펼쳐 보였다.

“음, 그러고 보니 이준구 씨의 다이어리에 쓰인 글자들은 유서에 쓰인 글자보다 훨씬 간격이 좁고 촘촘하군요?”

획, 나는 방청석 쪽으로 몸을 돌려 유서와 다이어리를 들어 올렸다. 그녀 말대로 유서와 다이어리에 쓰인 글자 간격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뭐야? 진짜 글자 간격이 다르군.”

“그래도 이 정도로 유서가 위조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 유서를 쓸 당시에 심적 동요도 있었을 거고, 죽기 직전까지 뭐, 절약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긴 하네.”

방청객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재판장님, 이준구 씨의 다이어리는 그의 타살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의 다이어리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흠흠흠, 채택하겠습니다.”

박상태 재판장이 마지못해 내가 제시한 증거를 채택했다.

“흠, 하지만 이 정도 정황증거만 가지고는 유서가 위조됐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군요!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까?”

“음, 제가 유서를 보고 결정적으로 이 유서가 위조됐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증거가 있습니다.”

“그래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애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 딸애에게 진아라는 이름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딸애가 어릴 때, 절에 갔더니 진아라는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절의 주지 스님이 딸애에게 유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유정 아빠는 진아라는 말을 안 씁니다! 입밖에도 내지 않았어요. 그 날 아침에만 해도 딸애 연주회 간다고 그렇게 들떠 있었는데…… 우리 애 아빠가 왜 자살을 합니까? 그 양반은 절대 우리를 그냥 두고 그렇게 가실 분이 아니에요! 이건 분명 누군가가 애 아빠에게 강제로 쓰게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흑흑흑, 김미숙이 감정이 북받치는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증인, 진정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전달해 주었다.

“보십시오! 이건 평소 이준구 씨의 다이어리와 그가 아내인 김미숙 씨에게 쓴 편지들입니다.”

그녀를 진정시킨 후, 나는 계속 심문을 이어갔다.

지이이잉.

버튼을 눌러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

[유정 엄마! 항상 당신한테 미안하고 감사해 ]

[우리 유정이 항상 아빠가 사랑한다!]

[유정 엄마, 그리고 우리 유정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갈하게 또박또박 쓰인 글씨! 그 어디에도 진아라는 이름은 없었다.

“화면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어디에도 진아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딸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준구 씨는 혹시나 딸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진아라는 이름은 입에 담지도 글에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분이 유독 유서에만 진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요?”

웅성웅성.

그 순간, 방청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본 검사는 이 유서는 이준구 씨가 피치 못할 강압적인 상황에 놓였고 강요로 인해 원치 않는 유서를 쓴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라고 봅니다. 만약, 이준구 씨가 누군가의 강요로 유서를 써야만 했다면 그 유서를 쓰게 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요? 당연히 그가 죽음으로써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겠죠!”

“뭐지? 이거 진짜 조폭들 동원해 강제로 유서를 쓰게 한 건가?”

“믿을 수가 없군. 요즘에도 저렇게 악랄한 짓을 하는 건가?”

방청석은 충격의 도가니였다.

“재판장님! 검사의 추론은 근거 없는 궤변입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어떡하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 몸부림쳤다.

“기각합니다. 좀 더 검사의 말을 들어보죠. 검사 계속하십시오!”

박상태 판사가 장진웅 변호사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차마 더 딴지를 걸기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좋아! 이젠 쐐기를 박아주마!

나는 다음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 · ·- - ·· ·- - · - - ·]

“저건 뭐지? 무슨 부호 같은데?”

“맞아! 저거 모스부호야!”

한 기자가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증인! 저 부호가 뭔지 아십니까?”

“네. 모스부호입니다. 애 아빠와 저는 대학 때 아마추어 무선 동아리인 햄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재판장님! 화면을 자세히 봐 주십시오! 저 모스부호는 이준구 씨가 강제 유서를 쓰며 곳곳에 필사적으로 남긴 다잉 메시지입니다. 증인! 저 메시지가 무슨 뜻이죠?”

“네. 저 모스부호의 뜻은 H… E…… L… P… M…… E입니다.”

흑흑흑, 김미숙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오열했다.

“흠, 증인, 진정하십시오.”

“네에.”

김미숙이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참담하군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이준구 씨가 유서에 ‘구해줘’란 모스부호를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상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김현석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뭐야? 도와줘? 자살한 사람이 그런 말을 유서에 남길 이유가 없잖아!”

“그러게 말이야. 김 기자, 본사에 빨리 연락해!”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심문하겠습니까?”

“아뇨,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피고, 김현석의 동료 검사인 한장석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한정석을 증인으로 신청해 피고에게 유리한 답변을 끌어냈다.

“박정호 소유의 한일 물산에서 영업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김삼수 씨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나는 김삼수를 증인석에 앉혀 맞받아쳤다.

격렬한 법정 공방을 치른 후, 재판의 흐름은 우리 쪽으로 완전히 넘어왔고 상황이 불리해진 장진웅 변호사는 예상대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박정호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몰아가며 김현석과 박정호를 분리하려 안간힘을 썼다.

어림없습니다! 결코, 당신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겁니다.

“검사! 추가 증인 심문하시겠습니까?”

포커해본 적이 있는가? 네 명이 포커게임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중 한 놈이 포커판을 지배하고 있다. 손안에 두 장의 K 카드를 쥔 채, 바닥엔 에이스가 석 장이 깔려있다.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미친 듯이 배팅하고 있다. 누가 봐도 에이스 풀 하우스다. 어쩌면, 포커일 수도 있는 엄청난 바닥 패다.

“저건 적어도 에이스 풀 하우스 일 거야!”

제일 먼저, 플러쉬를 바라보며 질질 끌려온 한 놈이 패를 내던진다.

“흠… 어떡하지? 포커면 어쩌지?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바닥에 5 원 페어, 손안에 10 카드 3 석 장을 들고 있던 놈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갈등하다 바보처럼 패를 던져 버린다.

내 패를 볼까?

바닥엔 2 카드 두 장, 나머진 아무런 연관성 없는 카드 2장! 솔직히 말해서 잡패다. 하지만, 손안엔 하트 에이스 한 장과 2 카드 두 장이 들려 있다. 말 그대로 히든에 2 카드 한 장이 올라왔다!

액면은 그가 무조건 유리하다. 상대는 나를 죽이기 위해 엄청 한 레이즈를 해대고 있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다! 이 게임은 내가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니까….

내 손안에는 하트 에이스가 들려져 있다. 결국, 에이스 포카드는 아니라는 뜻! 아무리 높아 봐야 에이스 풀 하우스다. 그러나, 나는 2 포 카드다! 포 카드 중에 가장 낮은 2 포 카드! 하지만, 그는 나를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아무리 낮아도 포 카드니까….

에이스를 잡는 카드 숫자 2! 그게 나, 박상우다!

더 시간 끌 것 없다. 이제는 끝장을 봐야 했다!

“조상진 씨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조성진은 박정호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그의 매형이었다. 나는 에이스보다 강한 카드 2를 꺼내 들었다. 장진웅 변호사는 내가 카드 2를 들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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