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105화] 너희는 법(法)이 우습냐? (2)
“검사! 경고합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더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며 분을 삭였다.
“그럼, 피고 심문을 마치고 증인 신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 측에서 신청한 김진철 증인은 개인 사정상 오늘 불출석을 통보했습니다. 검사, 추후 서면으로 심문 내용을 정리해 제출하세요.”
박상태 재판장이 서류를 들척이며 말했다.
뭐?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어…… 떻게 된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왜 출석을 못 한다는 겁니까? 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 교도소 측에서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김진철 증인이 심한 복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더군요.”
미치겠군! 김진철까지 손을 댄 건가? 도대체 거기까지 마수를 뻗친 건가?
“아… 알겠습니다.”
“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옆에 앉아있는 박 검사에게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김진철이가 갑자기 맹장이 터졌다나 봐.”
“제길!”
“그럼, 피고 측에서 신청한 증인 신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기섭 증인! 출석했습니까?”
김기섭! 한때, 아버지와 같은 신문사에 근무했던 동료 기자. 현재는 YBS 보도 국장으로 재직 중인 친정부 언론인이었다. 방송 노조 탄압을 일삼으며 기득권 세력에 빌붙은 어용 언론이었다.
“증인! 증인선서서 낭독하세요.”
“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김기섭이 천천히 증인석으로 올라와 증인선서서를 낭독했다.
“피고 측 변호인! 그러면, 증인 신문 시작하십시오.”
“네.”
“흠, 증인은 죽은 박윤석 기자와 어떤 관계입니까?”
장진웅 변호사가 서류철을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옛 직장 동료였습니다.”
“그렇군요. 평소에 박윤석 기자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외골수에다가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주변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가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강직해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뒤로는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의 뒤를 캐서 약점을 잡고 그걸 미끼로 인권을 챙기던 사람입니다.”
김기섭이 너무도 태연하게 아버지를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 지금, 뭐 하자는 건가? 너희들!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켜 넘겼다.
“흠,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시, 박윤석 기자가 평소에도 저기 계신 피고, 김현석 씨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네. 박 기자는 평소에도 호구를 잡았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호구요? 혹시 그 단어가 지칭하는 사람이 피고 김현석 씨입니까?”
“네. 맞습니다. 밤새 미행해 꼬투리를 잡아 들이밀었더니 김현석 씨가 벌벌 떨었다고 했습니다.”
김기섭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거짓 증언을 늘어놓았다.
“증인! 증인은 지금 대단히 중요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박윤석 기자로선 입 밖에 내기 조심스러운 말이었을 텐데 지금 증인에게 털어놓으셨단 말이죠?”
“네.”
“좋습니다. 그런 말을 언제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1996년 말쯤부터였을 겁니다. 술만 마시면 그런 말을 했습니다.”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가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그런 소리를 했어요.”
“음,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박윤석 기자가 피고를 굉장히 심적으로 압박했군요.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장진웅 변호사는 여차하면 박정호는 버릴 생각이다! 아버지를 악덕 언론인으로 매도해 김현석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고 그의 하수인 박정호가 자발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으로 가려 하는 거야! 게다가 증거가 없으니 만취 상태, 심신미약으로 에두르면 형량을 줄일 수 있다는 복안이겠지!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특사 형식으로 형을 감하면 나올 수 있다는 계략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장진웅 변호사, 착각하고 있는구나! 내가 그렇게 되도록 놔둘 것 같은가?
“검사! 반대 신문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흠, 기껏 여태까지 준비한 것이 어용 언론인 하나 불러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것인가?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만 너희들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 역시 죽었으니 무슨 수작을 부리든 증빙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겠지! 하지만 내가 바로 박윤석 기자의 아들, 박상우다!
너희들이 나보다 아버지에 관해서 잘 알 수 있을까?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을 차근차근 밟아주마!
“흠, 증인의 발언을 들어보니 고 김윤석 기자와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것 같군요.”
나는 증인석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네. 입사 동기로 절친이었습니다.”
김기섭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웃기지 마라! 우리 아버지는 당신 같은 표리부동한 인간과 친분을 맺을 분이 아니야.
“그렇군요. 그렇다면 박윤석 씨 장례식엔 참석하셨겠군요? 그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신데 제가 너무 실례되는 질문을 드린 건가요?”
“아, 아닙니다. 그게 그 당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참석은 못 하고 동료 편에 부의금만 보냈습니다. 저도 당시에 너무 참석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못했습니다. 그 부분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군요.”
새빨간 거짓말!
“아! 그렇군요. 그 부의금은 제대로 잘 전달됐겠죠? 실례가 안 된다면 금액은 얼마나 되셨는지요?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면 적지 않은 금액일 것 같은데요.”
“그런 걸 왜 묻습니까? 성의껏 보냈고 동료한테 잘 전달됐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요? 확실합니까?”
“재판장님! 지금 검사는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질문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딴죽을 걸고 나섰다.
“아뇨! 분명히 증인 진술 진위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검사! 지금 그 발언 책임질 수 있습니까?”
제가 박윤석 기자의 아들 박상우입니다!
“네! 재판장님! 만약 저의 질문이 본 사건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면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흠, 좋습니다. 계속하십시오.”
차마 이것마저도 막을 수는 없었는지 박상태 판사가 마지못해 심문을 허락했다.
“흠, 그것참! 이상하군요. 제가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박윤석 기자 장례식 때는 그의 평소 소신에 따라 부의금과 조화를 전혀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증인의 부의금만 전달이 됐을까요? 부의금을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었나 해서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증인은 이 점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는 내게 항상 말씀하셨다! 나중에 내가 죽거든 부의금과 조화는 받지 말고 조용히 장례만 치러라! 이것이 내 부친, 박윤석의 생각이셨다!
“그, 그게, 음, 뭐가 잘못됐나 봅니다. 제가 분명 부의금을 전달했는데….”
김기섭이 당황해하며 횡설수설했다.
“뭐…… 야? 말이 돼? 절친인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 안 한 것도 그런데 어떻게 헷갈릴 수 있지?”
“그러게, 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방청석 역시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음, 좋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착각할 수도 있겠죠. 십분 이해합니다. 그럼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평소에 박윤석 기자와 술을 자주 드셨다고 했는데 주로 어디서 드셨습니까?”
“음, 주로 신문사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마셨습니다.”
김기섭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렇지! 당시 한민족신문 근처에서 장사했던 포장마차가 지금까지 있을 리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그렇군요. 보통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는데 맞습니까? 저는 그렇습니다만.”
“네.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의 주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한 두세 병 정도는 취하지 않고 마십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박윤석 기자도 그 정도 마십니까?”
“아뇨. 박 기자는 소주 반병 정도면 술에 취하는 스타일이라 많이는 못 마십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보통 두 분이 포장마차에 가면 박윤석 기자는 소주 반병, 증인은 한두 병 정도 마시는군요?”
“네. 아닐 때도 있지만, 대개 그 정도 마신 후 헤어집니다.”
“확실합니까?”
나는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아야 했다.
“네!”
그가 짜증스러운 어투로 대답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박윤석 기자의 술버릇은 없었나요?”
“음, 특별한 것 없었어요. 그냥 모 횡설수설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요? 확실합니까?”
“네! 그렇대도요!”
김기섭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짜증을 냈다.
“재판장님! 어이없게도 증인은 신성한 법정에서 위증하고 있군요!”
획, 나는 몸을 돌려 박상태 판사를 응시했다.
“검사!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뭐야? 무슨 위증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게? 검사가 궁지에 몰리니 무리수를 두는 것 아냐?”
“어디 좀, 두고 보자고!”
기자들이 다이어리를 꺼내 들며 호기심을 보였다.
“본 검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기섭 증인의 발언은 사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더군요. 술을 마시면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물질이 생기는데 박윤석 기자는 그것을 분해하는 효소가 거의 생성되지 않아 주류는 거의 치명적인 독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죠. 그 사실은 그의 주변 지인들에게 확인하면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런 박윤석 기자가 증인과 자주 술을 마셨다고요? 그것도 소주를 반병이나? 게다가, 술을 마신 후, 횡설수설하는 정도의 증세를 보였다고 증인은 말씀하신 겁니까?”
“네? 네에.”
김기섭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분의 아들, 박상우다! 중학교 첫 시험에 내가 전교 1등을 했을 때, 너무도 기분이 좋은 나머지 아버지가 소주 두 잔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 바로 호흡곤란이 오셔서 응급실에 실려 가신 적이 있었다. 나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996년 3월 XX 목동병원 응급실!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으니까….
너희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박윤석 씨는 맥주 한 잔, 소주 2잔이면 치사량입니다. 거의 혼수상태가 돼버리는 분이시죠. 그런데, 증인과 자주, 그것도 소주를 그렇게 마셨을까요? 게다가 소주 반병을 마셨다면 박윤석 씨는 분명 급성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을 겁니다. 당연히, 증인이 모를 리 없죠!”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한 장진웅 변호사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하지만, 증인은 그저 횡설수설했다고만 증언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증인은 박윤석 씨가 심한 알코올 알레르기 증세를 보인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친분이 없는 사람임이 증명된 셈입니다. 그러니 그와 술을 마신 적도 없었겠죠. 따라서, 증인은 지금 신성한 법정에서 위증하고 있습니다. 위증죄는 법률에 의해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서 국가의 사법 작용 교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에 처하고 있는 중죄입니다.”
“그… 그게.”
김기섭이 장진웅 변호사를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몰랐다.
“재판장님! 김기섭 씨를 형법 제152조 (위증, 뭐 해 위증)에 의거 고발합니다. 이와 함께 필요하다면 박윤석 씨의 진료기록을 서면으로 첨부하겠습니다.”
“검사, 확실한 겁니까? 추후, 서면으로 제출하실 수 있습니까?”
박상태 판사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래!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는데 당연히 확실하지 않겠나? 그래, 좀 더, 좀 더 쳐다오! 그럴 때마다 정의의 칼을 더욱더 시퍼렇게 날이 설 테니까…….
“네. 진료기록 첨부하겠습니다.”
“뭐야? 김기섭 저… 저 사람! 그러니까 장진웅 변호사가 배우를 쓴 거야?”
“와, 그나저나 김정환 검사 대단하네. 이미 죽은 지 15년이 지났는데 저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가족들이나 알 수 있는 일이었을 텐데 말이야."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 눈빛! 분명 박 기자와 같은 눈빛이었어? 그렇다면… 아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김현석이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거칠게 앞 머리카락을 흩트려 버렸다.
“조용히들 하세요. 여기는 신성한 법정입니다. 그럼, 다음 증인 신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리자 박상태 재판장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검사! 증인 출두했습니까?”
“네.”
“김미숙 증인 증인석으로 나와주십시오!"
“네.”
김미숙은 죽은 정우랜드 사장 이준구의 아내다.
“검사, 증인 신문 시작하세요.”
그녀가 증인선서서를 마치자 재판장이 증인 신문을 지시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열어주마. 지옥의 문을… 너희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내가 아주 잘근잘근 씹어먹어 줄 테니까!
“네. 재판장님!”
나는 천천히 증인석으로 걸어 나왔다.